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33화 (33/90)
  • 33.

    윈터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보더니 혀를 찼다.

    “거울 보면 모르십니까?”

    “뭘?”

    “주인님은 잘생기셨죠.”

    “그리고 아름답게 생기셨습니다!”

    페른이 옆에서 청소부 차림새로 윈터의 말을 거들었다. 페른의 청회색 정수리 위에서 데이지가 머리카락을 힘껏 붙들고 다시 청소하라고 재촉했다.

    “데이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에휴. 돌아 버린 주인님 모셔서 내가 왜 이런 질문까지……. 물론 클로드 님은 아주 아름다운 분이시죠. 제 주인님께서 지치지도 않고 쫓아다닐 정도로요.”

    그게 뭐 어떻다는 걸까.

    ‘진짜 몸이라고는 해도 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가 않은 얼굴인걸?’

    “그게 세드릭이 아멜리아를 다치게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자 윈터가 손에 묻은 잼까지 냠냠 핥아 먹으며 말했다.

    “질투죠, 질투.”

    “질투?”

    “주인님을 보고 한눈에 반한 겁니다. 2황자 전하께서요.”

    “뭐어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그 애 엄마가 카밀라잖아. 나라면 이를 박박 갈면서 싫어할 텐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어?”

    “부모와 자식은 다르죠. 아무리 어미가 싫다, 싫다 노래를 불러도 자식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클로드 님의 말도 안 되는 외모를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죠. 마탑에서도 클로드 님 좋아하는 추종자들의 80퍼센트는 아마 외모 때문에 따르기 시작했을 겁니다.”

    황당해하는 나를 두고 윈터와 데이지, 페른은 저들끼리 근거를 대며 쑥덕거렸다. 이 셋이 은근히 나를 곤란하게 만들 땐 죽이 잘 맞아서 큰일이었다.

    “장난하지 말고…… 지금 아멜이 계속 세드릭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잖아.”

    “그리고 황녀 전하는 그게 괴롭힘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상태고요.”

    “그래. 그러니까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생각해야 할 거 아니야.”

    “주인님. 이게 대비책입니다. 저는 핵심을 짚고 있어요.”

    “뭐가!”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자 아멜리아와 유리의 어깨가 움찔하고 튀었다.

    “아니야, 얘들아. 너희한테 그런 거 아니야. 소리 질러서 미안.”

    내 사과에 유리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윈터의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응?”

    “그때 세드릭이 스승님께 말했잖아요. ‘저 애들은 싫어도 대마법사님은 또 만날 수 없어요?’라고요.”

    유리의 말에 아멜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그때 많이 속상해서 기억해요. 세드릭은 우리 말고 클로드 님을 더 보고 싶어 했어요. 그 표정은…… 제가 꼭 처음으로 클로드 님께 이름을 받고 기뻐하던 때와 무척 닮아 있었어요.”

    “…….”

    두 아이마저 윈터의 주장을 뒷받침하니 내가 더는 아니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세드릭이 아멜리아를 괴롭히기 시작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애들이 제 편을 들어 주니까 이제서야 들어 주시는군요. 패밀리어로서 속상합니다, 주인님.”

    “장난 그만하자, 윈터. 그래서 세드릭이 질투한다는 게 뭐 때문이야?”

    대마법사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싶어서 그런 건가? 원작의 세드릭은 호시탐탐 황좌를 노리는 야심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오답이었는지 윈터의 얼굴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2황자 전하께서는 그냥, 지금 첫사랑을 시작한 겁니다. 본인은 아직 자각하지 못한 거 같은데, 이르면 그 나이 때에도 첫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요.”

    “윈터 네가 어렸을 때 대마법사님을 보고 반드시 그분의 밑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말이지.”

    “시끄러워. 데이지.”

    방금 윈터를 놀릴 엄청난 건수가 지나간 것 같았는데, 놓쳤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데 아멜리아는 대체 왜 괴롭히는 거야?”

    “질투의 희생양이죠. 엉뚱한 데 불똥이 튄 겁니다. 주인님께서 그때 2황자에게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다들 기억력이 뛰어났다. 난 그날 이후로 세드릭에 대한 기억은 일절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모두 그날이 충격적이었는지 잘만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아마 2황자 전하께는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그날 눈빛만 봐도 알았죠. 2황자 전하가 주인님께 반했다는 걸요. 그런데.”

    중간에 윈터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런데?”

    “반한 상대가 곧바로 차갑게 본인에게 다신 볼 일 없을 거라고 매정하게 보내 놓고는, 다른 아이들은 챙기니 샘이 난 거죠. 그것도 자신과 가장 비슷한 존재인 누이에게 주인님의 관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논리야.”

    황당해하는 내게 윈터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질투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왜곡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물며 2황자 전하께서는 아멜리아 황녀 전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갈구하는 관심을 받지 못하니 얼마나 애가 타고 분했겠습니까? 황비궁에서 하던 성격대로 잔인하게 나오는 거죠.”

    “아멜리아를 괴롭혀서 내 곁에서 치우려고?”

    그러면 내 관심이 자기한테도 올 줄 알고 이런단 말이야?

    “네. 정확히 그겁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2황자 전하께서 아멜리아 황녀 전하께 시비를 걸 이유가 없어요.”

    “…….”

    어이가 없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비궁에서 애가 어떻게 자랐길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지……?’

    윈터의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진상을 듣고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세드릭의 엉덩이를 때려 주고 싶으니까.

    “그럼 우리가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윈터?”

    한숨을 푹푹 쉬며 피로한 낯으로 묻자 페럿 집사님은 차를 홀짝이며 우아하게 대답했다.

    “우선 아멜리아 황녀 전하와 2황자 전하가 만나지 못하도록 떨어뜨려 놓죠. 이대로는 황녀 전하만 계속 당할 뿐입니다. 동생을 만나서 기쁘다는 마음에 2황자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어 주니까요.”

    “……그래야겠지.”

    일주일간 아멜리아의 몰골은 처참했다. 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어디가 또 긁히고, 다치고. 곱게 차려 입힌 옷과 신발은 새것이란 게 무색하게 엉망이 되어 못 쓰게 되고.

    ‘어린아이의 심술이라고는 해도 이건 심각하잖아.’

    회복 마법으로 몇 번을 치료한다고 해도, 이건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 이미 일주일 동안 아멜리아는 여러 군데 다치며 고통받았다. 괜찮다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내 눈에는 다 보였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악용한 거지요. 2황자는 싹부터가 틀려먹었습니다. 황비궁에서 안하무인으로 황비와 똑같이 패악을 저지른다는 이야기가 나돌 때부터 알아봤어요.”

    로라가 아멜리아를 데리고 재우러 간 뒤, 윈터는 찻잔을 내려놓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 껄끄러운 아이긴 하지.”

    저번에 세드릭을 잠시 황태자궁 안에 들여보내 줬던 일이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세드릭과 아멜리아가 만나지 못하게 막는 건데.’

    아니야. 내가 그 애에게 시선 한 줌이라도 주면 안 되었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신음하자, 윈터가 나를 토닥였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인님. 지금이라도 아멜리아 황녀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리고, 2황자의 접근을 원천 차단한다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야겠지. 착한 아멜리아가 동생을 못 보게 한다는 것에 알겠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로 고민이 깊어져 나는 밤에 잠도 자지 못한 채 일어나야 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윈터와 로라 사이로, 작고 붉은 사과 같은 아멜리아가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클로드 님! 어, 어제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음…… 그럭저럭.”

    “그럭저럭은 잘 해결되었다는 거예요?”

    “아멜리아가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해결될 거야.”

    “뭔데요?”

    초록색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는 아멜리아에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세드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 아멜을 만나려 했는지, 그간의 만남은 오로지 괴롭힘과 자기 만족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 등을.

    “……그러니까 오늘부터 세드릭은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멜리아. 괴롭힘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까. 동생이라고 해도 경계해야……”

    “싫어요!”

    주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모두가 아멜리아를 쳐다봤다.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한 적 없던 아이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세드릭은 제 동생이에요! 그, 그러니까 저한테 나쁜 짓을 계속할 리 없어요. 그걸 들어주면 엄마에게 제 칭찬을 해 주겠다고도 한 아이인걸요! 괴롭히는 게 아닐 거예요!”

    “……아멜리아.”

    “클로드 님은, 히끅, 엄마가 저를 버렸다고 하셨지만 세드릭은 아니라고 해 줬어요. 전 세드릭의 말을 믿고 싶어요. 엄마가, 동생이 보고 싶어요…….”

    아멜리아는 결국 식탁 의자에서 내려 와아앙 울며 도망쳤다. 나는 아멜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 쫓아갈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를 위해서 내린 선택이었는데, 오로지 그건 내 생각에 불과했던 걸까?’

    원작대로라면 아멜리아는 황궁 아무 데나 버려진 채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그 아이를 거둬 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동정심에 쓸데없이 버려진 황녀를 주웠다가 변을 당할까 두렵다는 이유로 아이는 방치되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아이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사하고 만다.

    잔인한 어머니였기에 나는 지금까지는 최대한 아멜리아를 카밀라와 세드릭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내심 가족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좋지.’

    우울해하는 나를 본 유리가 내게 말했다.

    “스승님, 제가 아멜의 뒤를 따라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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