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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32화 (32/90)
  • 32.

    “그…… 그걸로 뭘 하려고?”

    “어머니 드리려고. 장미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거든.”

    “그랬구나……. 몰랐어.”

    “누나도 어머니가 그립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뭔가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세드릭 안에서 작은 뱀이 알을 깨고 나왔다. 질투와 악의가 섞인 눈으로 그는 아멜리아에게 장미를 꺾어 오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저기 있는 장미는 가시가 너무 날카로운데…….”

    “싫어? 싫다면 말고. 난 누나가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그대로 돌아서려는 세드릭을 아멜리아가 겨우 붙잡았다.

    “하, 할게! 이걸로 어머니가 기쁘다면야 할 수 있어. 그렇고말고.”

    “정말이지?”

    “으, 응…….”

    “그럼 어서 꺾어 와. 어머니가 계신 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거든.”

    세드릭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줄줄 내뱉었다. 세드릭에게는 통금 시간이란 게 딱히 없었다. 카밀라는 아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또 이야기도 없이 몰래 나왔으니 이번에 가면 혼이 날지도 모르지만.’

    적당히 변명으로 둘러대면 그만일 거라 생각했다. 카밀라는 세드릭을 사랑하니까. 세드릭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그녀는 아들을 끔찍이 여기니 결국 이해해 줄 것이다.

    버린 딸과 직접 키우는 아들 중에서 누구의 편을 들지는 자명하니까.

    세드릭이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아멜리아를 재촉했다.

    “자, 어서 장미를 꺾어 와. 누나.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면.”

    ‘이건 나쁜 짓이 아니야.’

    세드릭은 자기 자신에게 세뇌를 걸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못난이에게 가서는 안 될 애정을, 도로 찾는 일환일 뿐이라고 되새기며.

    * * *

    “으아아아앙!”

    ‘뭐야?’

    유리와의 마법 수업을 끝낸 후, 흙투성이가 되어 황태자궁으로 돌아오니 쩌렁쩌렁한 울음바다가 우릴 맞이했다.

    “흐어어어엉. 아파아…… 아파아아…….”

    “그러니까 왜 맨손으로 가시 달린 장미를 꺾겠다고 한 거니……. 어휴, 손에 상처 좀 봐. 장차 숙녀가 될 황녀 전하 손이 이게 뭐람.”

    로라가 아멜리아를 붙들고 한숨을 푹푹 쉬며 치료하고 있었다. 소파 옆에는 상처 났을 때 쓰는 의약품이 즐비했고, 아멜리아는 궁이 떠나갈 정도로 울기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로라?”

    “아멜, 손이 왜 이래? 어디서 다쳤어?”

    나와 유리가 의아해하며 동시에 묻자, 로라가 아멜리아의 손에 마저 연고를 발라 주며 답했다.

    “정원에서 장미를 한 아름 꺾었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시가 너무 뾰족해서 조만간 정원사들이 다듬어야겠다고 한 그 장미나무요?”

    “네. 그걸 장갑도, 가위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허겁지겁 꺾어 댔으니……. 손이 남아나질 않았죠. 저도 황녀 전하가 울면서 오셔서 알았습니다.”

    “흐어엉, 흐어어어엉……. 손…… 손에 상처 나면 안 되는데…….”

    아직도 아멜리아는 서럽게 울었다. 다소 배움이 느린 아이긴 해도, 황녀인 아멜리아의 손에 흉이 진다는 건 큰 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머, 멋진 왕자님을 이래서는 만날 수가 없어요……. 어머니도……. 다 싫어할 거에요. 이런 못난 손은.”

    ‘응? 어머니?’

    왕자님 이야기야 최근 아멜리아가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동화를 즐겨 보니 그렇다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친어머니가 황비 카밀라인 것을 알고 있는 아멜리아는 쉽사리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아이였다.

    나는 소파 위에 천천히 다가서서 아멜리아의 두 손을 잡아 줬다.

    “아멜리아, 많이 아프니?”

    “흐끅, 끕. 네, 많이 아파요……. 너무 따끔따끔해요. 장미가 나빴어요.”

    “그래. 장미가 나빴다. 아멜이 많이 아야 했겠네. 흉질까 봐 무서울 정도로 울고.”

    “흑, 끅. 세드릭이…… 동생이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세드릭이?

    ‘아까 연무장에서 누가 왔다 간 건 역시 세드릭이었나?’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했지?

    ‘우선 아이 치료부터 하고 물어보자.’

    “[아물어라.]”

    마법을 사용하자 상처투성이였던 아멜리아의 손은 금세 새로운 살이 차올랐다. 흉터 질 걱정 없이 말끔하게.

    아멜리아는 눈물 달린 눈으로 무척 기뻐하며 웃었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클로드 님!”

    방방 뛰며 다시 활달해진 아멜리아를 두고 윈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귀한 치료 마법을 이렇게 흔쾌히 사용할 수 있는 건 역시 우리 주인님밖에 없으시지.”

    “아암. 그렇지.”

    페른이 거기에 동조하며 은근슬쩍 물걸레를 옆으로 치우려 했다. 그에 데이지가 차게 식은 눈으로 주인을 툭툭 쳤다.

    “주인님. 청소. 아직 다 안 끝내셨잖아요. 게으름 부리지 마세요. 어서 일하세요. 노예 각서에 서명하셨으면 노예답게 일을 하셔야죠.”

    “이익……! 데이지 너, 누구 패밀리어인데 나한테 요즘 왜 이렇게 엄격해?”

    “그야 위대한 대마법사님 댁에 머물겠다고 매달려 결국 얹혀살게 된 페른 님의 패밀리어 아니겠습니까.”

    “야!”

    투닥거리는 데이지와 페른을 뒤로하고, 나는 로라에게 아멜리아의 손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음, 잘 치료되었어요. 의원을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싸!”

    “그렇지만 치료된 거와 별개로, 황녀님께서는 대체 왜 무리하면서까지 장미를 꺾으셨는지 말해 주셔야겠어요.”

    “그…… 그건요…….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고 들어서…….”

    “누가?”

    “세드릭이 그랬어요. 내 동생이.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늦으면 이런 기회는 없을 거라고, 그러면 엄마가 실망할 거랬어요.”

    아멜리아는 솔직하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이는 그래도 자기 동생이라고 끝까지 세드릭을 옹호했다.

    “세드릭 때문에 다친 건 아니에요! 제가 고집부렸어요! 저도 엄마한테 뭔가 해 주고 싶어서…….”

    “알았어. 아멜리아.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

    나는 또 울먹이려는 아멜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로라는 다음부터는 절대 위험한 일에 손을 대지 말라며 잔소리를 해 줬고, 윈터는 아멜리아에게 또 이러면 앞으로는 맛있는 사과파이를 주지 않겠노라 으름장을 놨다.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푹 수그린 아멜리아에게 유리가 다가갔다.

    “다들 걱정해서 그런 거야. 아멜이 소중하니까. 앞으로는 다치면서까지 그러지 않기. 약속!”

    “약속……!”

    아멜리아가 코를 훌쩍거리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조용히 윈터와 로라, 페른에게 가서 속삭였다.

    “2황자 세드릭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이게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셋이서 아멜리아에게 밀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막아 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클로드 님을 쫓아다니는 게 본분…… 아야!”

    “주인놈아, 말을 마세요.”

    데이지가 한심한 눈으로 페른을 흘겨보았다. 페른은 억울해했고,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

    “…….”

    “또야?”

    “예…….”

    순진무구한 아멜리아는 오늘 ‘또’ 다쳤다. 세드릭 때문이었다.

    세드릭의 교활한 세 치 혀놀림에 넘어간 아멜리아는 장미 사건 이후로도 삐걱거리는 사다리를 가지고 높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려다 떨어졌다. 어느 날은 비를 쫄딱 맞고 젖은 채 진흙투성이로 돌아왔다.

    ‘헤헤. 죄, 죄송해요……. 그래도 이거 다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런 거예요.’

    ‘……2황자 전하께서 시키시던가요?’

    ‘아니에요! 그 애는 나를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엄마랑 내가 친하지 않으니까……. 우리 사이를 도와주려고…….’

    세드릭이 문제냐고 물으면 아멜리아는 어떻게든 자기 잘못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숨이 도져서 땅이 꺼질 것만 같았다.

    “이 새끼가 왜 이럴까.”

    “주인님. 비속어 주의하셔야죠.”

    “화나잖아.”

    “물론 2황자를 그 새끼라고 부르는 것에는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자중하셔야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겠습니까?”

    “…….”

    그 말에 앞에 앉아서 과자를 오독오독 뜯는 유리를 보았다. 유리도 화가 났는지 호두가 들어간 과자를 오도도도독 무자비하게 물어뜯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스승님?”

    “아니다. 아니야.”

    ‘말조심하자.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애가 듣잖아…….’

    꾹꾹 미간을 문지르며 윈터에게 물었다.

    “2황자가 갑자기 왜 아멜리아를 괴롭히는 거지?”

    “글쎄요. 정치적 상황만 두고 봤을 땐 2황자 전하께서 아멜리아 황녀 전하를 괴롭혀서 얻을 게 없을 텐데 말이에요.”

    아버지인 황제에게도, 어머니인 황비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해 이름도 없이 버려진 1황녀.

    황족이 받는 이름은 곧 황위 계승권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이름도 받지 못한 아멜리아의 경우, 완전히 버려진 것으로 취급해 황위 계승권에서는 제외되었다.

    ‘이 나라는 딸보다 아들을 후계자로 우선시하고, 아멜리아는 외가로부터도 지원을 일절 못 받고 있으니 이용할 구실도 없어.’

    그러니 황비가 무관심하게 내버려 둔 게 몇 년간의 일이었는데, 세드릭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윈터는 블루베리 잼을 식빵에 발라 먹으며 우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2황자가 무단으로 황태자궁에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때 주인님 얼굴 봤죠?”

    “어…… 그런데 그게 중요해?”

    “중요하죠. 그다음에, 주인님 마법 쓰는 것도 봤어요? 2황자가?”

    “아마……? 연무장에 유리 데리고 수업하러 갔는데, 그 애가 지켜보다 간 흔적이 남았거든.”

    “그럼 그거네요. 질투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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