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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34화 (34/90)

34.

율리시즈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궁을 나섰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다면서.

“잠깐, 유리!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스승님이 걸어 주신 축복과 보호 주문이 막아 주리라고 믿을게요!”

유리는 뜀박질에 속도 증가 마법을 걸어 엄청난 속력으로 아멜리아를 찾아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윈터와 데이지, 페른은 감탄을 내비쳤다.

“오. 저거 며칠 전에 배운 속도 증가 마법 아니에요? 저걸 저렇게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는다고?”

“대단하죠? 저게 다 우리 주인님께서 잘 가르치신 덕분이죠.”

“클로드 님이 대단하신 거야 다들 잘 알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지, 윈터. 저건 배우는 쪽인 황태자 전하도 만만치 않게 마법적 재능이 뛰어나단 뜻이야. 마탑 근처에서 태어났다면 진즉에 마탑주에게 납치당해서 키워졌을지도 몰라.”

“얘들아, 우리 애 칭찬은 고마운데 나 지금 너무 심란하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가며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래, 이게 세드릭이 내 관심을 못 받았다고 생긴 일이라, 이거지.

“역시 내가 직접 따라가 봐야겠어.”

걱정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잘 익은 사과 같은 아멜리아와 노오란 민들레 같은 율리시즈가 행여 세드릭에게 다칠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엑. 그럼 당연히 저희도 같이 갈래요.”

“은신 마법은 기본으로 걸어야 하는 거죠?”

“기척 없애고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저희 주인님 특기죠. 어쩌다 보니 저도 그렇게 되어 버렸지만…….”

“어머. 다들 외출하신다면 저도 같이 나가도 될까요?”

페른과 윈터, 데이지와 로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들을 같이 따라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너무 많잖아. 눈에 띄어.”

“클로드 님은 눈에 안 띄는 줄 아세요?”

“……말을 말아야지. 알았다, 알았다고. 같이 가서 확인하자.”

“좋아요!”

‘이 사람들…… 어째 나를 너무 편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어느새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지?

의아함을 삼킬 새도 없이, 우리는 아이들을 찾아 이동했다.

* * *

아멜리아는 세드릭을 찾아 한밤중의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세드릭? 세드릭, 어디 있어?”

‘세드릭이 힘든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 폐궁으로 오라고 했었어.’

황태자궁을 무작정 뛰쳐나온 아멜리아는 갈 곳이 없었다. 황제궁은 들어갈 엄두도 못 냈고, 그렇다고 황비궁에 가자니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어머니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세드릭이 기댈 곳이 없어지거든 오라고 내밀어 준 쪽지대로 폐궁으로 향했다. 한때는 아름다웠을 외딴곳의 궁은 먼지가 많고 거미줄이 가득해 으스스했다.

“세드릭? 거기 있어?”

어두운 폐궁은 아멜리아의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 조용하기만 했다. 까맣게 물든 어둠 속은 마수의 아가리처럼 불길하기만 했다.

‘무서운데…….’

급하게 달려 나왔기에 어둠을 밝힐 도구라고는 없었다. 촛대도 성냥도 챙기질 못했다. 아멜리아는 율리시즈처럼 간단히 불을 밝히는 마법은 아직 배우지도 못했다.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야. 세드릭이 언제든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잖아?’

기다림은 쓸쓸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었다. 한때 아멜리아는 황태자궁에서 오지 않을 어머니를 기다리며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있어 잘 알았다.

“세드릭! 거기 있는 거지? 나랑 숨바꼭질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나, 겁 안 먹을게! 세드릭도 무서워서 혼자 못 나오는 거잖아. 누나인 내가 널 데리고 나와 줄게!”

‘나와서, 세드릭이랑 같이 엄마를 뵈러 가는 거야.’

참 행복한 상상이었다. 아멜리아는 머릿속으로 활짝 웃는 엄마가 세드릭과 자신을 맞이해 주러 나오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자 눈앞의 폐궁이 덜 무서워졌다.

“나, 들어갈게!”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폐궁의 낡은 문을 열었다. 더듬더듬 벽과 기둥을 짚어 앞으로 걸어갔다. 가끔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다 썩어 빠진 나무토막 등을 밟으면 깜짝 놀라 숨을 멈추고 서 있기도 했다.

“세드릭? 세드릭~ 나야! 아멜리아야! 어디 있어?”

한참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아멜리아는 서서히 지쳐 갔다.

‘여기에 세드릭은 없는 게 아닐까?’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성큼 아멜리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세드릭이 그저 아멜리아를 이용하기 위해 만나러 왔고, 여태까지 놀이라고 생각했던 건 전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한 계략일 뿐이라고.

‘만약 그렇다면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밤의 폐궁은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아멜리아는 따듯한 불빛이 가득 찬 황태자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세드릭을 불러 보자.’

이 상황이 되면서까지도 아멜리아는 세드릭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했다.

“세드릭! 어디 있어? 나야, 아멜리아 누나야!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없는 줄 알고 도로 갈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멜리아 누나? 여기야, 여기. 나 여기 있어.”

“세드릭? 어디야?”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침실에 넘어져 있어, 누나. 발목을 삐었는지 움직일 수가 없어. 도와줘…….”

“그,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

세드릭이 아프다니. 그것도 다쳤다니!

‘얼른 구하러 가야 해!’

아멜리아는 순간 어둠에 대한 두려움조차 잊어버리고 달음박질했다. 세드릭이 혼자서 공포에 떨면서 울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어머니도 슬퍼할 테니까. 그건 싫었다.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아 아멜리아는 달빛에 의존하며 겨우겨우 침실로 향했다. 들어갈수록 세드릭의 목소리는 커졌다.

“여기야. 이쪽으로 와 줘, 누나.”

“거의 다 왔어! 세드릭! 내가 갈게!”

‘내가 구해 주러 오면 세드릭도 기뻐할 거야.’

그렇다면 그 아이도 이번에는 내게 진짜로 웃어 주지 않을까, 하고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상냥한 미소를 지니고 대해 준 세드릭이었지만, 아멜리아의 눈엔 억지로 웃는다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드릭과 잘 지내고 싶어. 어머니와도 마찬가지야.’

아멜리아는 세 식구가 나란히 소파에 앉은 모습을 상상했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이윽고 아멜리아는 낡아빠져 덜렁거리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 왔어, 세드릭! 이제 같이 집에 돌아가…… 어?”

“누나. 여기야. 이쪽으로 와 줘.”

세드릭의 목소리는 분명히 방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만, 그 목소리를 내는 건 금발에 벽안을 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투박한 장신구처럼 생긴 녹음용 아티팩트였다.

“……세드릭?”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 줘. 누나.”

아멜리아가 같은 말만 반복하는 녹음용 아티팩트를 주우려는 찰나였다. 아이의 머리 위로 뭔가가 삐걱거리더니 천천히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건 거대한 기둥이었다. 딱딱한 돌을 가져다 조각한 기둥이 아멜리아의 머리를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도……”

도와주세요.

공포에 질려 손끝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아멜리아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위험천만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아멜리아의 귓가에 닿았다.

“아멜리아! 위험해!”

“……유리 오빠?”

쿵. 기둥이 무너졌다. 아멜리아는 율리시즈의 기지 덕에 간발의 차이로 기둥을 피할 수 있었다.

“오빠!!!”

“…….”

하지만 아멜리아를 구한 율리시즈는 정작 그 돌기둥을 피하지 못해, 그만 아래에 깔려 버리고 말았다. 바닥으로 붉은 피가 뭉근하게 흘렀다. 아멜리아의 발치에 그것이 묻자,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누구,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오빠가, 황태자 전하가 많이 다쳤어요!”

세진이 아이의 신변을 위해 걸어 놓았던 무수한 보호와 축복 마법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암살자들의 습격을 대비하고 건 주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돌기둥이 율리시즈를 덮치는 순간 가해지는 타격을 낮춰 줘 즉사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 오빠. 어, 어떡해. 나 때문에…….”

“괜찮아……. 아멜리아. 어른들이 곧 오겠지. 스승님이라면 내가 어디에 있든 찾으러 오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잖아.”

“하지만 오빠 상처가…… 피가…….”

아멜리아는 울음을 애써 삼켰다. 율리시즈의 상처가 심각했다.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돌기둥이 무너진 여파로 그 문마저 막히고 말았다.

“괜……찮아. 분명 스승님이시라면, 우릴 걱정하셔서 바로 따라온다고 나갈 채비를 하셨을 거야.”

“정말 그럴까?”

“응……. 스승님은 우릴 무척 사랑하시니까. 그러니까 아마 다 같이 우릴 찾아올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피가 스멀스멀 상처 부위를 통해 흘러나왔다. 아멜리아는 덜덜 떨며 제발 빨리 클로드가 오기를 바랐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다시는 세드릭과 어머니를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유리 오빠를 살려 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빈 기도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다행히 바깥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나야. 세드릭이야.”

“……세드릭? 정말 너니?”

“응. 누나가 본 장난감 말고 진짜 나야.”

‘구하러 왔구나!’

묘하게 웃음기가 묻어나는 음성이었으나, 사람이 나타나 기쁜 마음에 아멜리아는 서둘러 외쳤다.

“도와줘, 세드릭! 오빠가…… 유리 오빠가 나를 지키려다 많이 다쳤어. 제발 어른들을 불러와 줘.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몰라……!”

아멜리아의 말을 들은 세드릭은 일순 조용해지더니, 잠시 후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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