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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65화 (164/218)

165화. 낯설지 않은 자

대공성에 자리 잡은 마차는 총 2대였다.

세린은 준비 된 마차와 실어지는 짐을 체크하며 제이를 향해 물었다.

“아이들의 짐이 조금 많아져서 마차가 두 대는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나누어 탈까요?”

“흠...”

제이는 하얀 은발을 휘날리며 부드럽게 세린의 옆에 섰고 이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당신과 나, 플로리아, 앤젤라는 함께 마차를 타고 이엔과 레기, 에드를 함께 태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도 좋은 것 같네요.”

“나는 레기 오빠랑 가고 싶어요...!”

세린의 긍정에 다급히 앤젤라가 외쳤다.

제이는 동그란 눈으로 그런 앤젤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근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빠들이랑 함께 가고 싶었나보구나.”

“네! 저 오빠들이랑 가도 되요?”

“물론이지.”

사랑하는 딸의 부탁에 거절이란 없었다.

제이는 앤젤라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흐트러트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천천히 앤젤라의 눈동자에서부터 머리카락이 남색으로 빛나며 바뀌어갔다.

제이가 건네준 반지를 낀 에드와 레기 또한 남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바뀌었다.

제이는 반지로 인해 갈색으로 빛나는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엔을 향해 말했다.

“아이들이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군.”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만약 힘들게 하거나 무슨 일이 있거든 바로 이야기해주게.”

“네.”

이엔의 부드러운 대답에 제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플로리아를 안아 올렸다.

“내가 엄마 옆에 앉을 거예요!”

제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논쟁이 지겹지도 않는 것이냐. 엄마의 옆자리는 아빠의 것이다.”

“싫어여!! 리아꺼!!”

“엄마의 옆도 앞도 모두 아빠 것이다.”

“싫어여!!!”

재밌는 논쟁을 살벌하게 주고받는 부녀를 애틋하게 바라본 세린이 이엔을 향해 말했다.

“미안해 이엔. 너희들 이엔 말 안 들으면 바로 엄마랑 아빠 마차로 올 거야!”

“네!”

“네, 어머니.”

“네!”

세쌍둥이의 힘찬 대답에 할 수 없다는 듯 웃은 세린이 쌍둥이들의 볼에 입을 맞춰준 후 마차에 올랐다.

이엔도 쌍둥이들을 향해 다정히 말했다.

“저희도 이제 마차에 오를까요.”

“응!!”

“신난다!!”

에드와 앤젤라의 경쾌한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마차가 출발했다.

*

푸른 하늘 위의 햇빛이 아름답게 빛났고 시원한 공기가 코를 자극했다.

앤젤라는 창문 밖의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의 성 밖의 외출이 무척이나 즐거운 탓이었다.

이엔은 그런 앤젤라를 다정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가방 안에서 큰 통을 꺼냈다.

“음??”

에드가 그런 이엔의 통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엔, 그게 뭐야?”

“주방장님께 부탁드린 간식들입니다. 너무 많이 드시면 마차를 타고 가실 때 힘드실 테니 한 입 씩 맛을 보세요.”

“우와...!! 이엔 최고야!”

에드가 밝게 웃으며 외치자 앤젤라도 통에 담긴 쿠키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행의 시작이 무척이나 산뜻했다.

조금씩 쉬어가며 달리는 마차 위의 하늘은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밝은 노을 밑으로 도착한 마을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

마부가 서둘러 마차의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연 에드는 제 은발을 쓸어 넘기며 뒷목을 붙잡았다.

“으 뻐근해...!”

“으에.... 나도...”

뒤에서 따라 나오던 앤젤라도 기운 없는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레기는 투덜거리는 동생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바로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제이와 세린을 가리켰다.

“수고 많았어. 어머니랑 아버지가 기다리시니까 얼른 가자!”

레기의 다정한 말에 앤젤라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물었다.

“오빠는 안 힘들었어?”

“응?”

앤젤라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레기는 이내 근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검술 훈련이랑 기초체력 훈련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 정도는 괜찮아.”

“우와....”

그렇다.

레기는 이엔과 제이의 밑에서 검사로서의 재능을 발굴하고 연습에 매진하는 기사를 꿈꾸는 아이였다.

본래 가지고 있는 마력과 체력이 흘러넘치니 연습의 강도가 높아지던 참이었다.

앤젤라는 그런 레기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세린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의 여관에 방을 잡은 제이가 열쇠를 들고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세린의 손에 열쇠 하나를 더 쥐어준 후 말했다.

“이 방은 당신과 리아, 앤젤라가 함께 쓰고 바로 옆방을 우리가 쓰겠습니다.”

“고마워요. 제이도 힘들었을 텐데 얼른 밥을 먹고 쉴까요?”

“아이들도 피곤할테니 1층 식당에 먼저 자리를 잡겠습니다. 옷이라도 편하게 갈아입고 내려오세요.”

“알겠어요.”

부드럽게 대답하는 세린을 다정히 바라본 제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리엘은 그런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앤젤라를 향해 말했다.

‘항상 보기 좋네. 두 사람.’

“음? 엄마랑 아빠요?”

‘응. 특히 너희 아빠가 엄마한테 푹 빠진 것 같고 말이지.’

“하하하.”

아리엘의 개구진 말에 앤젤라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 아빠가 엄마를 엄청 사랑하거든요.”

‘.... 그러게. 정말 그래 보여.’ 아리엘은 조금 애틋한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세린을 따라 이동했다.

제 소중한 딸은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이를 만나 지금도 사랑받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아리엘의 마음을 애틋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히히 엄마 좋아여.”

“엄마도 리아가 너무너무 좋아.”

제이가 사라지자마자 세린의 품을 차지한 플로리아의 입 꼬리가 하늘로 용솟음쳤다.

아빠가 없는 사이 세린을 사수한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했다.

세린은 응석을 부리듯 제 품에서 마구 볼을 부비는 막내딸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제이를 똑 닮은 외모지만 성격만큼은 호쾌한 리사를 닮은 플로리아가 너무도 어여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복도 속에서 아리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

식당으로 내려온 가족들은 제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함께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상다리가 휘어질 것처럼 쌓여 있었다.

이엔은 그 음식들의 양과 기세에 입을 떡 벌렸다.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잘 먹겠습니다!!”

그런 이엔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에드와 레기, 앤젤라가 재빠르게 수저를 들었다.

화려하게 움직이는 포크와 나이프들의 행진 속에서 음식들은 빠르게 없어졌다.

제이와 세린은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고 말이다.

“천천히 먹으렴, 탈이 나면 어쩌려고.”

“마시써여!”

“리아, 입에 있는 걸 꿀꺽 삼키고 나서 말해주렴.”

“아빠 싫어여!”

“내가 싫다는 말은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는구나.”

플로리아와 제이의 2차 전쟁에 불이 붙을 무렵 누군가가 인파에 밀려 세린의 테이블에 부딪쳤다.

퍽!

쨍그랑!!

물병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처참하게 깨졌고 제이와 이엔은 누구보다 빠르게 세린의 곁에 서서 그녀를 감쌌다.

세린은 놀란 눈동자로 테이블에 부딪힌 인영을 바라보았고 제이가 살벌한 기세를 흩뿌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죄송합니다. 그만 사람들에게 밀려서...”

굵직한 사내의 음성에 이엔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깊게 눌러쓴 로브 속에서 제이와 다르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발견하였고 살짝 엿보이는 금발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턱 쪽에 자리한 깊은 화상 자국이 먼저 시야에 담겼고 말이다.

사내의 미안하다는 음성에 세린은 제이와 이엔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죠.”

“이해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내가 미안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세린을 눈에 담았다.

그의 입매가 미미하게 굳어가는 듯 했지만 세린은 그런 그를 신경 쓰지 못했다.

“... 여행을 오셨나봅니다...?”

“네...?”

“어디서 오신 분이시죠?”

“....?”

사내가 한걸음 다가오며 부드럽게 묻자 당황한 세린의 앞으로 제이가 그녀를 감췄다.

“더 말을 섞고 싶지 않군. 물러나라.”

“..... 이런.... 제가 또 실례를... 죄송합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사내가 다시 고개를 숙여 사과의 말을 내뱉은 후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그의 시야에는 계속 세린이 눈에 담겨 있었으나 곧 그 시선도 세린에게서 멀어졌다.

제이는 사라지는 사내를 눈으로 끝까지 쫓으며 침묵했다.

몰론 옆에 서 있던 이엔도 조금 긴장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고 말이다.

아리엘은 멀어지는 사내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본 사람이었을까?

로브를 깊게 눌러 써서 자세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엿보인 눈동자와 이목구비가 낯이 익었다.

낯설지 않은 자의 등장에 아리엘이 생각에 잠겨갔고 이내 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는 기억력도 엉망이라니까...’

별다른 상황 없이 식사가 마무리되자 하늘에는 밝은 보름달이 자리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과 보름달은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를 반짝이게 만들었다.

“예쁘다....”

“예쁘다니 다행이네.”

“엄마, 성 밖은 너무 아름다워요.”

“하하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세린은 부드럽게 앤젤라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말했다.

“밖에 나와서 즐겁니?”

“네!! 너무 너무 즐거워요!”

“네가 즐겁다면 그걸로 된 거야. 엄마도 우리 가족들이랑 이엔이 같이 와서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마음이 같네요?”

“그렇네, 똑같은 마음 인가봐.”

“히히히!”

앤젤라의 귀여운 웃음소리를 듣던 세린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에 자리한 달로 향했다.

어느 새, 자신은 엄마가 되어 있었고 어느 덧 아이들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건강하게 자라갔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성장한 제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것을 느끼고 알아가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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