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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29화 (128/218)

129화. 참을 수 없는 분노.

“헤일리!!!!”

작은 여인의 몸이 휘청 이다가 이내 바닥에 곤두박질치듯 쓰러졌다.

세린은 다급히 그런 헤일리의 몸을 받아내며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헤일리!!”

“우우욱!!”

푸른 드레스가 헤일리의 피로 인해 차갑게 적셔갔다.

세린의 눈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붉어졌고 동시에 굳건히 닫혀있던 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콰광!!

“세린!! 헤일리!!”

트레일과 제이였다.

세린은 다급히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트레일을 향해 외쳤다.

“오빠!! 헤, 헤일리가!!”

“헤일리!”

트레일의 시선이 의식을 잃은 헤일리에게 닿자 창백하게 빛났다.

트레일은 다급히 세린에게서 헤일리를 받아 안으며 그녀를 불렀다.

“헤일리! 눈 떠봐요! 헤일리!”

“.....”

꿈쩍도 하지 않는 두 눈에 트레일은 큰 위기감을 느꼈고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 나갔다.

이 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로.

제이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트레일을 지나쳐 서둘러 세린에게 다가갔다.

“무사하십니까.”

“제이!!”

세린의 옷에 가득 묻은 핏자국들이 그의 인내심을 자극시켰다.

세린은 제이의 품에서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돌려 클로라를 향해 외쳤다.

“차에 뭘 탄 거야!!”

“저, 저는 아무것도.... 시, 시녀가 벌인 일이에요... 전 몰라요!”

세린의 호통에 외려 눈물 짖던 클로라는 안쓰럽게 손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세린은 입술을 꾹 깨물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거짓말 하지 마!!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쉬이... 세린, 진정해요.”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을 안아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세린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이가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 일으켰고 이내 날카로워진 시선으로 클로라를 향했다.

그의 시선 속에서 살을 찢을 듯한 살기가 흘러 넘쳤다.

클로라의 얼굴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제이가 그 살벌한 기세 가운데에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황족의 핏줄을 위협시킨 죄, 대귀족 살인미수죄를 토대로 당신을 구속하겠습니다.”

“... 뭐라고요?”

“구속해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클로라의 두 팔을 등 뒤로 꺾으며 그녀의 무릎을 꿇렸다.

털썩

“꺅!!”

클로라는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무릎이 꿇렸다는 모욕감에 뒤를 돌아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란 눈동자 속에서 경악을 여실 없이 담았다.

“넌...”

햇빛을 받은 은발이 찬란하게 흔들렸다.

마주친 푸른 눈동자 속에서는 경멸과 함께 분노가 넘실거렸다.

리사는 제 얼굴을 소름끼치게 바라보는 클로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죄인은 입을 열 수 없다.”

“너...!!!”

팍!

“꺅!!”

클로라가 입술을 떼자마자 리사는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 바닥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을 열 수 없다고 했다.”

“으윽!!”

리사는 지금 너무도 화가 난 상태였다.

방금 전, 황후를 만나던 중 들어온 시종은 황후와 그녀를 향해 이런 소식을 전했었다.

‘방금 순찰을 돌던 기사의 소식입니다. 서부제국의 황녀전하께 배치 받은 시녀가 황성의 정원 옆에 죽어 있었습니다.’

‘뭐라?!’

분노에 찬 클로비스의 외침과 동시에 리사의 눈도 번쩍 떠졌다.

‘독을 먹은 것처럼 체내의 피를 모두 토했습니다. 아무래도 황녀전하와 연관된 사건인 것 같아 서둘러 이리...’

‘지금 내가 그녀에게 가보겠다.’

‘마마!’

황후를 애타게 부르는 또 하나의 목소리에 클로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녀가 다급히 황후전의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독입니다! 독이 검출됐습니다!’

‘....!!’

‘2황자 전하와 대공작님께 잡힌 서부제국 시녀의 주머니에서 독이 검출되었습니다!!’

클로비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 후 더욱 충격적인 말은 이어 나왔다.

‘지금 황녀전하의 손님 궁에 방문한 헤일리 공녀님과 대공부인께 그 차를 내렸다고 자백을...!!’

리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클로라의 궁으로 달려들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고 리사는 굳게 클로라의 머리를 잡았다.

“감히 누굴 건드려?”

“으아악!”

“네 까짓 것이?”

리사의 눈에 이성이 점차 사라져갔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리사는 클로라의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퍽!

기절한 듯 바닥에 곤두박질 친 클로라를 무심하게 바라본 리사는 이미 세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난 제이의 흔적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피가 가득한 카펫 위에서 헤일리가 겪었을 고통이 엿보였다.

그녀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리사는 냉정히 클로라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었다.

*

클로라가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배경이었다.

코를 자극하는 지독한 악취와 귀를 자극하는 듣기 싫은 쇳소리에 저절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으윽...”

“일어났나.”

“...!!!!”

클로라의 눈이 커지며 다급히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붉은 눈동자에 클로라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분홍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긴 사내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손에 쥐고 있는 수갑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내 제국에서 이리 말썽을 부리니 정말 화가 나다 못해 할 말도 잇지 못하겠어.”

“..... 폐하.”

“내가 황제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테오는 날카롭게 웃으며 클로라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어디 이야기를 해볼까.”

“......”

“네가 벌린 일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말이야.”

“!!!!”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면 그 새치 혀부터 잘라버릴 것이다.”

클로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테오는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마저 입을 열었다.

“내가 네 까짓것의 생각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전...”

“네 목소리 따위가 듣고 싶어서 성대를 안 베어낸 것이 아니다. 닥치도록.”

“!!!”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벌였는지 알고 싶은 마음 따위 추호도 없지만 일단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말해주마.”

테오는 천천히 제 손에 깍지를 끼며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제국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것들이 총 3가지가 있다.”

“....”

“하나는 우리 제국의 검.”

“...”

“또 하나는 황족의 핏줄.”

“.....”

“마지막은 우리 황가의 막내지.”

테오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담겼다.

“그런데 너는 지금 그 세 가지 모두를 건드려버렸더군. 그렇다면 뭐가 답인지 아나?”

“... 저.. 전.... 전 그저...”

“쉿.”

테오의 긴 손가락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

그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 미래는 죽음이다. 단지 차이를 두자면 네가 언제 죽느냐... 겠지.”

“!!!!!”

“철이 없는 것도 정도이며 생각이 없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 눈을 감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제, 제발 살려주세요!!”

“틀렸다.”

테오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넌 이미 늦었거든.”

*

트레일은 서둘러 헤일리를 안고 로레인의 탑으로 달렸다.

“형님!!! 형!!!”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바로 반응한 푸른빛들이 그의 앞으로 쏟아졌고 동시에 로레인이 나타났다.

그의 제비꽃 색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하며 그를 바라보았고 이내 그의 품에 힘없이 안겨 있는 피범벅이 된 헤일리의 모습에 로레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슨 일이야.”

“도.. 독을 마신 것 같아..! 빨리 살펴봐줘!!”

“이리 내려주렴.”

트레일은 부드러운 손길로 헤일리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로레인은 천천히 헤일리의 배에 손을 올려 마력을 움직였다.

그리곤 천천히 창백해진 안색으로 트레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장을 녹이는 독이다. 우리 제국에서 구할 수 없는 독일 것인데... 무슨 일인거지?”

“서부제국의 황녀가....”

“미친년.”

웬만해서는 욕을 입에 담지 않는 로레인이 입 밖으로 욕을 내뱉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로레인은 두 손을 헤일리의 배 위로 올려 눈을 감았다.

독으로 인한 내상을 제 마력으로 최대치까지 치료를 해봐야 시간을 돌려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로레인의 손에서부터 푸른 마력이 헤일리를 감쌌다.

천천히 창백해진 안색이 제 혈색을 되찾아가고 있었으나 여전히 안쓰러울 정도로 창백했다.

트레일은 그저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맴돌며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로레인의 이마에 땀이 몇 방울 씩 흘러내린 후에야 마력을 멈췄다.

트레일은 서둘러 로레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형! 괘, 괜찮은 거예요? 헤, 헤일리 무사한 거예요?”

“.... 다행히 빨리 데려와서 내 힐로만 치료할 수 있었던 거야. 조금만 더 늦었어도 시간을 돌려야 했다고.”

“하.....”

로레인의 말에 트레일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눈을 꾹 감았다.

차오르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그렇구나. 정말 다행이야.”

안도감에 휩싸여 눈을 쓸던 트레일이 도중에 번쩍 눈을 떴다.

“.....!!! 형님!”

“...?

“그, , , ! 헤일리의 뱃속에 호, 혹시 아이가 무사한지...!!”

“아이?”

“그, 임신일 수 있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뱃속에 마력이 있었는데!!”

트레일의 말에 로레인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 서렸다가 이내 서둘러 다시 헤일리의 배 위로 손을 올렸다.

그 치명적인 독을 마셨는데 임신까지 했었다고?

그렇다면....

로레인의 손에서 천천히 푸른빛이 생겨났고 빛들이 모여 헤일리의 배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녀의 배를 향해 마력을 집중하던 로레인이 천천히 마력을 거두었다.

트레일이 다급히 물었다.

“형....! 어, 어때요? 무사해요??”

로레인은 제 막내 동생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천천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뱃속에 마력은 보이지 않아.”

“!!!!!”

“독 때문일 테지만.... 네가 말한 마력은...”

“..... 형.”

“안 보여.”

트레일의 가슴이 소리 없이 무너졌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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