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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21화 (120/218)

121화. 팔불출의 소굴로

세린은 제이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며 그의 반응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까.

그에게 행복한 일이 될 것은 분명했다.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던가?

세린은 키득키득 웃으며 생각했다.

그가 원했던 딸도 좋았고 그를 닮은 아들이었어도 좋겠다고 말이다.

누구든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할 테니까.

같은 시각, 제이는 황성의 복도에서 마주친 로레인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2황자 전하. 그간 별고는 없었는지요.”

“막내가 보고 싶은 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은 없었지.”

“연회가 끝난 후에도 며칠 황성에 머물 예정입니다.”

“오늘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군.”

제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로레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제이는 그런 로레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고 이내 조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전하. 갑작스럽고 실례된 말씀이오나 전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로레인의 푸른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대공작이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당연하게도 그가 부탁할만한 일이란 것은 세린에 관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로레인은 수려한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지? 세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뭐냐.”

로레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진 것과 동시에 제이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아이를 가진 것 같습니다.”

로레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 말을 꺼낸 제이도 같이 굳은 표정을 했다.

“.... 한 것 같다는 것은 불확실하다는 건가.”

“아뇨... 확실합니다. 요즘 들어 잠이 많아지고 자주 속이 메슥거린다고 하여서 혹시나 한 마음에 확인을 했는데...”

“그랬는데?”

“뱃속에서부터 저와 비슷한 마력이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더군요.”

“흠....”

로레인의 얼굴이 조금씩 걱정으로 물들어졌다.

그 마르고 여린 아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이의 표정을 볼 때 진짜 문제는 이것이 아님을 알았다.

로레인은 제이를 향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그대가 나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뭔가.”

“....”

제이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걱정과 불안감이 로레인의 가슴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이는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

“그녀의 뱃속에서 느껴진 마력이 3개였습니다.”

“...!!!!”

로레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제이는 굳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제가 잘못안 걸 수 도 있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하께서 판단하셨을 때 그녀가 위험할 것 같다면 말씀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위험하다고 한다면?”

“....”

제이의 푸른 눈이 천천히 노을로 물들여지는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의 묵묵한 옆모습에서 단단한 각오가 엿보였다.

“제게는 그녀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붉은 태양은 산 너머로 제 몸을 숨었고 짙은 그림자를 닮은 밤하늘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

세린은 제이가 올 시간에 맞춰 대공저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너무도 행복한 이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웠던 그녀였다.

이윽고 대공저 앞에 마차가 도착하였고 마차에서 부드러운 몸짓으로 내려온 제이가 근사하게 세린의 앞에 섰다.

동그랗게 커진 눈과 함께 말이다.

“세린?”

“제이!!”

세린은 너무도 반가운 그 얼굴에 서둘러 그의 품에 안겼고 제이는 안정적으로 세린의 몸을 감싸 안았다.

“힘들게 왜 나와 있나요.”

“제이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

“저야 괜찮았습니다. 세린, 세린은 오늘 하루 어떠했나요.”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고 세린은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엄청난 소식이 있어요. 제이! 제이고 들으면 놀랄걸요?!”

“엄청난 소식이요.”

“네!”

설렘이 가득한 두 볼이 귀여워 제이의 눈가가 고이 접혔다.

“어떤 소식일지 너무 궁금하군요. 무엇입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야 해요?”

“마음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실은 제이!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

제이의 푸른 눈이 천천히 굳어갔다.

세린은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제이의 가슴에 기대었고 제이는 그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햇살처럼 다정한 미소는 그의 심장을 거칠게 두들겼으나 동시에... 밀려오는 불안과 걱정이 그를 덮쳤다.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이는 바로 황궁의 도서관까지 달려가며 출산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책에서는 그의 예상처럼 두 쌍둥이도 출산이 위험하다고 적혀 있었으며 세 쌍둥이는 이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명확하게 쓰여 있었다.

산모가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그 글귀에 제이는 손에 피가 통하지 않도록 세게 쥐었었다.

그녀를 단 1%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그이기에 이 문제는 보다 심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품에 안긴 세린은 아이의 소식에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얼굴 가득 올라온 그녀의 행복과 설렘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제이는 천천히 세린을 제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제이??”

그녀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제이는 이내 두 눈을 감고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위해서 미리 로레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고 마법사인 그의 도움을 받으면 그녀도 아이도 무사할지도 몰랐다.

부디 그녀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제이는 세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제이는 로레인에게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세린이 세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확실한 정보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로레인이 확인한 후 소식을 알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가 그리 마음을 먹은 후부터는 세린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 앉든 제 옆에 꼭 붙어있는 이엔과 제이가 그 첫 번째였고, 먹는 음식에서부터 씻는 것, 심지어 걷는 것마저도 시녀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도움을 주려했다.

제일 큰 문제는 리사일 것이다.

“전하!!”

“전하!!”

“전하!!!!!”

쉬는 날, 출근시간, 퇴근시간에 맞춰 세린을 찾아와 그녀의 상태와 마음상태, 미열, 마력 등 아주 사소한 것 까지 모두 점검하고 체크하는 리사의 노력이 지극정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황성의 출근도 힘들어했던 리사를 알기에 세린은 그런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몰론 세상에서 제일 약한 유리를 만지듯이 섬세하고 다정한 손길에 너무도 행복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불편했다.

‘다들 너무 과하다니까 정말...’

그러면서도 자신의 걱정을 하느라 바쁜 대공저의 식구들이 귀엽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세린의 마음을 알고 있는 대공가의 식구들은 갈수록 입덧이 심해져가는 세린이 걱정되어 불안했다.

자신의 임신을 인식하자마자 물이 밀려오듯 반복되는 입덧과 헛구역질로 제대로 음식을 먹기 힘들어했고 고작 과일로 만들어진 푸딩이나 상큼한 과일만을 먹으며 하루를 버텨갔다.

조금이라도 구워진 음식이나 요리된 음식이 나오면 바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참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제이도 함께 창백해진 낯으로 음식들을 치워버렸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세린, 많이 먹기 힘듭니까.”

“냄새 때문에 속이 더부룩해지는 기분이에요...”

“이러다 쓰러지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영양식을 먹어야지요.”

“제이이이... 나 레몬푸딩 하나만 주면 안 될까요? 그것만 먹으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제이이이~”

세린의 응석에 제이가 침묵했다.

저 깜찍한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이이지만 어느 새 레몬푸딩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는 제 자신을 늦게 발견했다.

제이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지만 푸딩 하나에 행복해하는 세린을 보니 마음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이 귀여운 사람에게 자신이 이기는 날이 오기는 할까.

“맛있나요?”

“맛있어요! 제이도 먹어봐요!”

“저는 당신이 먹는 것만 보아도 배부르군요.”

“하지만 정말 맛있는데...”

“세린의 입술이라면 맛보고 싶은데... 어찌 안 되겠습니까.”

“으악!! 제이!!”

“하하하”

세린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제이의 미소가 깊어졌다.

아름다운 이 사람과 이 작은 일상이 너무도 행복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부디 아가도 그녀도 지금처럼 건강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제이와 대공저의 사람들에게 온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세린은 즐겁게 일상을 보냈고 동시에 연회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회의 날보다 하루 일찍 입궐하기로 한 세린은 제이의 손을 잡고 마차 앞에서 부드럽게 웃어주는 아인과 메리에게 밝게 인사했다.

“먼저 가 있을게요.”

“우린 내일 천천히 갈 테니 가족들을 많이 안아주고 오거라.”

“네!”

“어디가 아프거든 바로 제이에게 말하고!”

“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세린의 힘찬 대답에도 메리의 근심이 쌓인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보다도 세린의 건강이 우선적으로 걱정된 탓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함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제이는 밝게 웃는 세린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세린을 마차에 오르도록 도왔다.

마차에 오르는 그녀의 거침없는 발걸음에 심장이 홀쭉해진 기분이었지만 제이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엔과 리사는 눈에 띄게 홀쭉해진 얼굴로 그런 세린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두 눈에 담긴 감정들을 해석하자면 세린을 연회가 끝나고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안아서 이동시켜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싶어 하는 얼굴들이었다.

시녀들은 조금 난처하게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저 정도 걸어 다니시는 것은 괜찮은데.’

‘연회에서 계속 대공님께 안겨있게 되시는 것은 아니실까.’

‘황제폐하와 황자님들께 안겨 있으실지...’

‘그 전에 리사공녀님이 안고 계실지도 몰라.’

어찌 보면 팔불출의 소굴로 스스로 들어간 모습인지라 세린이 걱정된 그녀들이었다.

그래, 이 기회에 살이라도 많이 쪄서 돌아오시기를...!

시녀들은 그런 간절한 소망을 담고 세린의 마중을 도왔다.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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