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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20화 (119/218)

120화. 그와 나의 아이

밝은 태양이 뜬 하늘 아래에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졌다.

“리사경~~!”

“전하!!!”

세린과 리사는 서로가 마주친 복도를 달려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애틋한 눈빛으로 그동안의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곁에 서 있던 이엔도 제이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리사경... 잘 지냈어요? 일은 힘들지 않고요?”

“저는 괜찮습니다. 전하께서도 그간 별다른 일 없으셨나요?”

“저야 늘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경!”

“네?”

“이제 서로 호칭이 바뀌어야 하겠어요.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큽!!!”

리사는 세린의 밝은 미소와 '가족'이라는 호칭에 두 코를 감쌌다.

오랜만에 마주한 심장어택에 출혈이 상당했다.

서둘러 마력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세린은 리사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밝게 말했다.

“전 경을 아가씨라고 불러야하네요! 아가씨!”

“느허.....”

“경은 절 새언니라고 불러야 하고요.”

“억...”

리사의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 해맑은 이야기였다.

리사는 무너져가는 가슴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언니라고...! 언니...!... 언니!!’

“언...!!”

용기 있게 내뱉은 한 마디가 세린의 밝은 미소를 마주한 순간 멎었다.

리사는 커진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신....”

“네? 리사경??”

“엇...”

이게 아니지.

세린의 당황에 리사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태평하게 입을 열었다.

“새언니라는 호칭도 감지덕지지만 아직 입에 붙기 힘든 단어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 동안은 익숙한 호칭을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아요!”

세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약간 낯을 가리는 듯한 리사의 표정이 너무 귀여운 탓이었다.

그보다 익숙한 호칭?

그런 거라면 '전하' 아닌가?

세린의 의문과 동시에 리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신님...”

세린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리사경!”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제이와 이엔은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를 한 채 웃음을 참았다.

참 개성이 강한 재밌는 대화였다.

시간은 느긋하지만 빠르게 지나갔다.

리사는 저녁 퇴근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엔과 대공저의 대문에서부터 정원으로 산책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세린은 매일 아침이고 저녁이고 제이와 함께 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제이는 늘 그랬듯이 저녁이 되자 세린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나긋이 웃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목부터 가녀린 몸에는 그의 흔적이 가득했다.

“아픈 곳은 없는지요.”

“... 몰라요!”

세린이 그의 질문에 기겁을 하며 그의 어깨를 투닥였다.

그 간지러운 느낌에 피식 웃은 제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은 어깨 위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제 자야지요. 일주일만 더 있으면 연회를 위해 황성에 가야하지 않습니까. 연회가 길기도 하고 황성에 며칠 머물 것이니 미리 체력을 아끼셔야지요.”

“아...! 맞아요!!”

세린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운 가족들이 있을 황성에 가는 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제이는 가족이 그리울 세린을 알기에 황성에서 연회를 즐긴 후 며칠 동안 황성에 머물러 있기로 계획했던 것이다.

그녀가 이리 좋아하니 더 오래 머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었다.

세린은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두 눈을 곱게 감았다.

제이와 자주 사랑을 나눠서인지 금방 피곤함에 물들어 잠이 들기를 반복하고 있던 일상이었다.

오늘도 눈을 감자마자 몰려오는 졸음에 세린은 깊이 잠이 들었다.

제이는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후 자신도 두 눈을 감았다.

그 날 저녁, 이엔과 리사도 일상처럼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곧 작위를 받으시는군요.”

“너도 받잖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작위는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흙 같은 것이 아니야. 넌 그걸 받아도 될 정도로 제국을 위해 노력해줬고 말이야.”

“아하하... 조금 부끄럽네요.”

“야! 넌 좀 당당해져야 해! 고개 들고 허리 펴!”

“아...! 네!”

허둥지둥 이엔이 곧게 허리를 폈고 리사는 푸른 눈에 웃음기를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자세 잘 기억해둬.”

“...?”

“이제부터 이 자세가 네가 받을 작위보다 아래에 있는 귀족들에게 보여 져야 하는 자세야.”

“!!!”

“넌 그 자들보다 더 위의 사람이니까 좀 건방져도 된다고.”

리사의 말에 이엔의 수려한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찼다.

이엔은 한 번도 다른 귀족들에게 건방지게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작위를 받으면 뭐가 달라질지 드문드문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리사의 손을 잡으면서 이엔의 생각이 조금씩 깊어졌다.

‘내가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된다고..’

어차피 자신이 귀족이 된 후에도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 별로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작위를 받으면 조금 더 당당하게 그녀의 옆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단단해지고 견고해질수록 그녀를 더욱 망설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

이엔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담았다.

벌써 연회의 날이 기대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연회관련 업무로 제이가 이른 시간에 황성으로 출근을 했기에 세린은 아인과 메리와 함께 식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올려 졌고 메리는 세린의 그릇 위로 부드러운 고기를 옮겨주었다.

“아가, 많이 먹으렴. 아가는 살이 좀 쪄야해.”

어느새 세린을 향한 호칭이 완벽한 애정으로 바뀐 메리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세린은 그 부드러운 어조에 맑게 웃었다.

“아하하 어머님께서 챙겨주셔서 많이 쪘어요.”

“거짓말하면 안 돼! 살 많이 빠졌지?”

“음....”

세린의 얼굴에 난처한 미소가 담겼다.

아인은 그런 세린을 보며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 눈에도 살이 빠진 것 같구나. 어디 아픈 것은 아니냐.”

“그래, 요즘 많이 피곤해서 잠도 많이 잔다고 시녀들이 걱정하던데... 제이가 많이 괴롭히니?”

“아, 아니에요! 제가 대공저에 너무 열심히 적응해서 그런가 봐요. 아버님, 어머님 음식이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세린이 서둘러 얼버무리며 아침을 권유하자 메리도 아인도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은 맑게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고 부드러운 고기를 썰어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나 고기를 입에 넣기도 전에 포크는 그릇 위로 처참하게 떨어졌다.

쨍그랑

“우욱!!”

세린은 속에서 올라오는 거북함과 메슥거림에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메리와 아인이 당황이 담긴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았고 세린은 떨리는 눈으로 고기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 번 더 신음처럼 괴로운 숨을 토했다.

“우욱!!”

“아가!”

“세린!”

갑작스런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에 세린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메리가 단단히 붙잡아주었고 아인도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픈 것이냐!”

“으....”

대답도 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세린이 눈을 질끈 감아버리자 메리가 다급히 시녀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의원을 불러 오거라!”

“네!”

시녀가 서둘러 발을 옮겼고 세린은 메리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식당에서 나왔다.

세린은 환한 공기를 마시자 속에서 올라온 메슥거림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체했나... 어제 내가 뭘 먹었더라...’

메리는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물었다.

“아가, 어제 뭘 먹었는지 기억하니?”

“어....”

생각해보니 저녁에 제이가 준 과일 푸딩을 맛있게 먹었고 그 후 속이 더부룩한 느낌에 밥을 걸렀던 기억이 있다.

“과일푸딩 하나... 먹었어요.”

“흠....”

메리는 가만히 세린의 등을 쓸어주며 생각에 잠겼고 이내 의사가 도착을 알렸다.

“의원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실까요?”

“어서 들어오라 하거라.”

아인의 긍정에 의원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했고 서둘러 세린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세린의 몸에 이상이 있는지 이곳저곳 살펴본 후 가녀린 그녀의 손목을 짚었다.

두 눈을 감은 의원이 천천히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고 조금 기쁜 얼굴로 세린을 향해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마님.”

“음?”

세린의 연두색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축하라고?

어떤?

아픈 것이?

그런 세린의 의문을 알고 있는 의원이 맑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방에 있던 모두가 놀랄만한 큰 소식을 말이다.

“임신이십니다!”

“....”

아인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올랐고 메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음을 터트렸다.

세린은 가만히 앉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의원만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입술을 달싹이던 세린이 천천히 다시 물었다.

“임신?”

“네, 마님. 임신을 하신 지 지금 한 달이 조금 지난 정도의 상태이십니다.”

“한... 달?”

“네 마님.”

세린은 천천히 제 배를 바라보았다.

쏙 들어가 있는 이 배 안으로 제이와 자신의 아이가 있다고?

자신이 지금 임신 중이라고?

의원은 그런 세린을 향해 말했다.

“굉장히 조심하셔야 하는 시기이십니다. 초기에는 작은 충격으로도 위험할 수 있으니 항시 몸가짐을 조심하셔야 하시며 잘 먹어주셔야 합니다. 주방장에게 입덧과 산모에게 좋은 음식의 종류와 리스트를 짜서 보낼 테니 마님께서도 주의하시며....”

세린은 의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두 손으로 제 배를 감싼 세린은 의원이 가고 나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기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갑작스런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가 있어.

이 곳에 나와 그의 아이가 있는 거야.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세린의 눈에 천천히 눈물이 차올랐다.

다급히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는 메리와 당황하는 아인의 위로를 느끼며 세린은 한 손으로 제 눈을 감쌌고 다른 손으로 제 배를 감쌌다.

아이가 생겼다.

사랑하는 그 사람과 자신의 아이가 생긴 너무도 사랑스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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