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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94화 (94/218)

94화.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로레인이 건네준 따뜻한 꽃차를 마시며 세린은 꼼꼼하게 그를 관찰했다.

윤기가 나는 분홍빛의 긴 머리카락이 빛이 났고 제비꽃색의 눈동자가 화사했다.

섬세하고 깊은 이목구비는 그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세린의 시선이 점차 로레인의 붉고 생기가 넘치는 입술로 옮겨갔다.

세린의 관찰을 모르는 척 하던 로레인이 결국 난처하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린, 왜 그러니?”

“아.... 아니요! 그냥...”

“그냥...?”

로레인의 부드러운 추궁에 세린의 큰 눈동자가 또르륵 굴러갔다.

시선을 약간 피한 세린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오빠도 스스로 관리를 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놀랐어요.”

“.......”

책상에 올려놓은 립스틱과 제 입술을 번갈아 바라보는 세린의 모습에 로레인이 소리 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삼켰다.

난감한 얼굴이 떠오르는 로레인을 보며 화들짝 놀란 세린이 다급히 말했다.

“아니!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빠가 어쩐지 너무 예뻐서... 예쁜 것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어요..!!!”

“......”

로레인의 제비꽃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린이 제게 칭찬을 해준 것에 기쁜 것과 동시에 칭찬이 아닌 듯한 말 같아서 무척 애매한 기분이었다.

로레인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까 고민을 하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립스틱을 가져왔다.

“오빠??”

세린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로레인이 그녀에게 립스틱을 건네주었다.

“실은...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오빠가 네게 주려고 형님께 부탁했던 것이란다. 오빠가 립스틱을 바를 리가 없잖니...”

“네에??”

세린의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로레인은 그 놀란 눈의 동생이 그저 귀여워서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구 때문에 바빠서 한참 나오지 못했거든. 그래서 이걸 주문해 달라고 형님께 부탁드렸었어... 한 번 발라보지 않겠니?”

“정말 제거에요...?”

“그래, 네 것이란다.”

세린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로레인을 바라보며 두 손을 뻗어 립스틱을 받았다.

정말 내거...?

그럼 오빠가 립스틱을 바르는 게 아닌 건가?

그런데도 입술이 저렇게 예쁜 색이야?

세린은 로레인에게 부러움을 느끼며 립스틱을 개봉했다.

다시 눈으로 본 립스틱의 색은 주홍색보다는 연하고 연한 분홍빛이 돌고 있었다.

‘예쁘다...’

립스틱의 색에 감탄한 세린은 발라보라는 로레인의 권유에 제 입술에 바르기 시작했다.

“이런, 거울 없이 바르는 것은 힘들 거야.”

로레인이 다급히 마법으로 거울을 꺼내어 세린의 앞에 띄워주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립스틱을 바른 세린은 생기가 넘치는 제 입술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정말 예쁜 색이었다.

“마음에 드니?”

“너무요!! 고마워요 오빠!”

세린의 미소가 화사하게 빛났고 로레인은 너무도 좋아하는 막내를 바라보며 함께 미소를 지었다.

아마 테오가 이 사실을 일았다면 무척이나 억울할 것이 분명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같은 시각 테오는 에드윅과 아인대공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심각한 토론 속에서 그들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여러 의견을 제시했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에드윅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러다가는 결국 모두에게 흠이 될 것 같구나”

“...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테오가 에드윅의 말에 수긍하며 미간을 좁혔다.

아인대공은 그런 두 황족들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우리 아들 일에 이리 열정을 보이시는 건지...’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 대공은 저 남자들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만들 만한 인물이 이 제국에 단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 턱을 한 손으로 쓸며 생각에 잠긴 대공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황녀전하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요?”

“.....”

“.....”

잠깐의 침묵이 생겼다.

그러다 이내 태연한 얼굴로 눈썹을 올린 에드윅이 아인대공을 향해 물었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자네의 아들문제인데 우리 세린이 왜 거론되는 것인가?”

“폐하와 제가 함께 지냈던 35년도 넘는 세월을 무시하시면 곤란하지요. 폐하의 표정만 보아도 티가 납니다.”

아인대공은 에드윅의 태연을 가장한 당황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당황할수록 냉정해지는 얼굴을 알기에 대공이 다시 한 번 확신을 느끼며 물었다.

“저희 제이의 구혼서가 황녀 전하와 어떤 관계라도 있습니까?”

“...... 없다네.”

“황녀전하께 직접 뵙고 여쭈어도 되는 부분입니까?”

“.......”

에드윅의 입술이 굳게 닫혔고 테오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부터 눈치는 더럽게 빠른 인간이었지...’

입을 열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일 무렵 문 밖에서 대기하던 시종이 문을 두드렸다.

“폐하...!”

시종의 다급한 말투 속에서는 짙은 낭패가 섞여 있었다.

테오의 미간이 좁아지며 날카롭게 문 밖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스페라도 대공자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지금 황녀전하를 뵈러 오셨다며....”

삽시간에 테오와 에드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아인대공은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모습과 행동들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뭘 숨기고 있는 것일까?

제이와 황녀전하가 연관되어 있는 것은 거의 맞는 것 같은데....

아인대공은 시종에게 제이의 방문을 허락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던 두 황족들에게 밑밥을 던졌다.

“혹여 황녀전하와 제이공자가 교제라도 하는 것.....”

“쿨럭!!”

“..!!!!”

이거야 뭐...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뱉어진 반응들이 너무도 확실해서 대공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제이 이 녀석이 요즘 혈색이 좋아졌다 했더니... 이런 깜찍한 사실을 잘도 숨기고 있었군...’

점점 창백해지는 황족들의 얼굴에 비해서 대공의 얼굴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도대체 누구 아들인지 아주 훌륭하다 못해 분에 넘치는 분을 제 옆으로 찾아왔다.

대공의 미소 속에서 뿌듯함과 함께 만족감이 흘러 넘쳤다.

에드윅은 그런 대공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착각하지 말도록! 난 아직 공자를 인정하지 않았어.”

“누가 뭐라고 했답니까. 소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만 봐도 알고 있다. 지금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기색이 가득한 눈빛이었어.”

“이런... 감정을 잘 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

에드윅과 테오의 이가 갈렸다.

아인대공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이의 문제에 이리 열심히 도와주셨군요.”

“공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 소식에 황녀전하께서 결혼이라도 하려 하실까봐 그런 것은 아니십니까?”

“.......”

정곡이었다.

아인대공은 눈매를 찌푸리는 에드윅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제 아들이라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녀석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제 능력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다면 황녀전하께서 구혼을 하시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녀석입니다.”

“.......”

“완벽을 추구하는 변태 같은... 아니 올바른 성격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황녀전하를 위해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욕심이 클 것입니다.”

아인대공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애들 문제는 애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지켜봐주시지요. 황녀전하께서도 황궁에 가족들이 있는데 벌써 떠날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 후”

테오와 에드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공의 말처럼 제 아이들의 문제이며 그들이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놓아줄 수 없던 이유는... 앞으로 세린이 자신들의 곁에 머무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에드윅의 붉은 눈동자가 조금 쓸쓸하게 변했다가 이내 마음을 굳힌 얼굴로 시종을 향해 말했다.

“황녀에게 방문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전해라.”

“알겠사옵니다.”

“아버지.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래. 이 상황을 공자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겠다.”

“......”

에드윅의 말에 테오가 수긍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고 아인대공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떤 해결방안을 찾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 아인대공이었다.

세린은 로레인의 궁 앞으로 제이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

“오빠, 저 갔다 올게요!”

“..... 그래 세린. 조심해서 다녀오렴.”

그녀를 더 붙잡고 싶었던 로레인은 방해꾼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세린의 표정을 보며 꿍한 마음을 감출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부드럽게 에스코트 해주며 궁 밖까지 안내했다.

궁 밖에서는 은실의 자수로 장식된 검은 제복을 입고 있던 제이가 이엔과 나란히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도 두 사람의 커다란 키와 다부진 체격이 눈에 띄었다.

세린은 뒤를 돌아 로레인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꽃차 정말 맛있었어요.”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줄 수 있단다.”

“그럼 먹고 싶을 때마다 와야겠다!”

“부디 그래주렴.”

“약속하신 거예요! 잊으면 안 돼요!!”

로레인은 세린의 응석이 귀여워 환히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세린이 행복해하니 자신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언제든 어디서든 이리 행복하게 웃어주었으면 싶었다.

세린은 천천히 로레인의 품에서 나와 제이와 이엔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제이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린이 놀란 얼굴로 그를 향해 달려가며 물었다.

“제이! 안색이 안 좋아요... 무슨 일 있나요?”

“.... 잠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하.”

“.... 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자리를 옮겨서 말씀드려도 괜찮을지요...”

“... 네 제이.”

세린의 가슴에 불안함이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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