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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58화 (58/218)

58화. 밝혀지는 이엔의 과거

그리고 테오는 피투성이가 되어 그대로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졌다. 마를린은 그런 테오를 향해 한 발씩 다가갔다.

“정말... 이래서 황족들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받는 거야.”

“쿨럭!”

테오는 쓰러진 자세에서 피를 토했다.

콰직!

“큭....!”

마를린은 그런 테오의 손을 짓밟으며 비웃음을 날렸다.

“너 때문에 마탑 피해가 어마어마해졌어. 죽음으로 갚으렴.”

그리고 다가온 한 남자는 덥석 테오의 손을 잡았고 검은 안개가 테오의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다시 뜬 테오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힘겹게 움직여 상체를 들어올렸다. 피투성이의 몸과 바닥에 잔뜩 고여진 피를 덤덤히 바라본 테오는 자신과 좀 떨어진 거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녹색머리의 민간인을 발견했다.

주변에 창살이 가득하고 냄새나는 악취를 볼 때 지하에 세워진 감옥 같았다. 테오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민간인을 향해 말했다.

“어디서 왔지.”

“헉!!!”

녹색머리카락의 남자가 경악하며 테오를 바라보았고 테오는 고운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ㅈ... 제국 수... 수도에서...”

“제국 수도라....”

중얼거리며 수도를 발음한 테오는 “퉤!

“ 하고 입가에 가득 고인 피를 내뱉으며 이내 옷의 단추 하나를 뜯어 남자에게 던졌다.

탱그랑!

녹색머리의 남자는 서둘러 그 단추를 주웠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의 손끝이 까맣게 보이다가도 보라색으로 보였다. 썩어가는 신체부위에서 악취도 났다.

테오는 덤덤하게 그런 제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워프마 도구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 그거 하나밖에 없어.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장소 잘 생각하고 워프라고 외치도록.”

“.... 네?”

테오는 말을 내뱉는 것도 지쳤는지 한숨을 내뱉었다.

“후... 그걸 쓰고 여기서 도망가라는 이야기다.”

“저.. 전하께서는... 어, 어찌하시고.”

“난...”

테오는 힐끔 자신의 썩어가는 손끝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몸이 무겁고 손에서부터 타오르듯 뜨겁게 욱신거렸다.

‘얼마 못 버티겠군.’

“보시다시피 몸이 이래서 말이지. 가봤자 죽는 건 똑같아.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봐야지.”

“전하.....”

“빨리 가시지. 들키기 전에.”

테오의 눈이 고통으로 얼룩졌다. 눈이 무거워지고 온 몸이 칼에 찔리는 듯 아팠다.

녹색머리의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테오를 향해 큰 절을 올렸고 눈물을 흘리며 워프했다.

털썩!!

테오는 사내가 워프한 것을 바라본 후 바닥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고통을 버텨가며 생각에 잠겼다.

당신도 세린을 지키기 위해서 이 고통을 견뎠다는 건가.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정말 미련한 어머니였다.

그런 내가 당신을 베어낼 수 있을까.

다시 베어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어쩌면 난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영혼이 남아 있다고 했나.

그래서 우는 것이었나.

죽어서까지 당신은 이리도 괴로워해야 하나.

테오는 천천히 정신을 잃어가며 사랑스러운 여동생과 사랑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네가 걱정할 텐데...

네가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아름답게 휘어 웃는 그 미소와 즐거워하는 그 웃음소리.

그게 마지막인줄 알았다면 너와 한 곡을 더 출 것을 그랬구나.

그의 호흡은 아주 천천히 멎어가고 있었다.

*

이엔과 북쪽으로 워프한 세린은 어두운 하늘과 눈이 내리는 추운 계절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 세린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엔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야?”

“북쪽지역으로 넘어가는 경계 산맥입니다. 지금 이 길을 따라가면 적어도 내일 저녁쯤에 마탑이 보일 것입니다.”

“꽤 멀구나...”

세린은 슬픈 눈동자로 고개를 숙이다 이내 다짐한 듯 굳은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워프를 하고 싶었지만 정확한 좌표가 없는 한 이동이 불가능하여 이엔을 따라 길을 걸었다.

이엔은 세린의 몸에 담요를 둘러준 후 그녀보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걸었다. 그러다 세린은 눈을 돌려 이엔에게 물었다.

“저주가... 얼마나 걸릴까?”

“.... 황태자 전하께서 저주를 받은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나 최근이라고 한다면....”

“.....”

이엔은 망설이다가 세린을 슬프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도 3일 안으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느낌에 세린이 숨을 멈췄다. 저주를 소멸시키는 방법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이었다.

테오를 마탑에서 구했다고 해도 그의 몸에 남은 저주는 어찌한단 말인가.

세린의 굳어가는 눈동자에 이엔이 안심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전하. 2황자 전하와 함께 저주에 대해서 연구를 했었습니다. 저희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저주받은 것들의 모든 공통점이 심장이 멈춘 것과 동시에 저주가 사라지더군요.”

“.....”

“생명에게만 붙는 저주라서 생명이 꺼질 때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것을 역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역이용...?”

“심장을 잠시 멈추게 한 후에 다시 되돌리는 것이지요. 조절을 잘못하면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나 지금의 최대 방법은 그뿐인 것 같습니다.”

“.......”

세린은 그런 이엔의 말을 들으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마탑에 도착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를 안전하게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붙잡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탑이다. 그러니 순순히 따라가는 척을 하며 틈을 노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아니면... 마력을 사용해서 무력진압을 시킨다던지 말이다.

세린은 굳은 마음으로 테오를 향해 다가갔다. 그를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세린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추운 겨울의 날씨와 하늘에서 천천히 내리는 눈은 북쪽의 특지이라고 했다. 세린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슬픈 얼굴로 눈을 감고 걸음을 옮겼다.

궁에서 괴로워할 아빠가 생각났다. 테오 오빠의 소식에 괴로워했을 그였을 텐데 자신까지 이리 북쪽으로 향하면 얼마나 가슴이 무너질까.

하지만 세린은 멈출 수 없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아빠....’

황제는 태양궁 집무실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로레인은 집무실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와 그런 황제에게 말했다.

“아버지!! 세린이 사라졌습니다...!!”

“........”

어쩌면 예상했던 결과였다. 황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주먹을 쥐고 팔짱을 끼웠다. 그리고 로레인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북쪽으로 갔을 것이다. 진군준비를 하고 출격하겠다.”

“아버지..!!!!”

“너는 트레일과 남아 있거라.”

로레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장난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 저를 황성에 놓고 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남아 있거라.”

“아버지!!”

언성을 높이지 않는 로레인의 고함에 황제는 천천히 뒤를 돌아 로레인을 바라보았다.

“테오가 돌아오지 않을 시 네가 황태자가 될 것이고 내가 돌아오지 않을 시 네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 설마 이 자리를 트레일에게 앉으라고 말할 것이냐.”

“..... 아버지 제발....”

“로레인.”

황제는 천천히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마.”

로레인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하나뿐인 형님과 사랑하는 동생의 위험소식이 로레인을 힘겹게 만들었다. 숨을 쉬는 것마저도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다.

황제는 그런 아들의 넓은 어깨를 잡아주며 말했다.

“너에게 또 짐을 주는구나.”

“.......”

“미안하다.”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을 지나쳐 진군준비를 시작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딸을 구하기 위해서.

황제와 수많은 기사들은 북쪽으로 출발했다.

세린과 이엔은 나무 밑의 사이에서 불을 피우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북쪽의 밤은 빨리 찾아왔고 너무도 어두워서 더는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세린은 이엔과 자신의 주위에 마력으로 막을 만들어 하늘이서 내리는 눈을 피했고 차가운 바람을 피했다. 이엔은 담담하게 담요에 얼굴을 묻는 세린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세린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굳은 얼굴로 이엔이 말했다.

“제가 어쩌다 마탑에 들어갔는지 아직 모르시지요...”

“....?”

“저는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저 가난했던 아이였습니다.”

입을 열기 힘들어하는 이엔을 보며 세린이 낮게 이야기했다.

“이엔... 힘든 이야기라면 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이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마탑에 가기 전, 그 마탑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잔인한지 전하께서 아실 필요가 있으십니다.”

이엔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엔은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가난에 고달프고 힘들어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엔은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을 하고도 노동을 했다. 마차의 짐을 옮기는 일에서부터 말의 대변을 치우는 일, 짐꾼이 되어 수발을 드는 것까지 안 해본 노동이 없을 정도였다.

지칠 여유도 없이 바쁜 빈민가의 삶에서 이엔은 엄마와 아빠를 위해 버텼다.

가을의 낙엽 같은 붉은 갈색의 머리카락, 고동색 눈동자의 자상한 엄마와 남색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다. 이엔은 가난했고 노동에 힘들어 쓰러지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이엔, 몸은 좀 어떠니?”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어난 이엔은 방긋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하였다. 자상한 엄마는 그런 이엔을 보듬어주며 슬프게 웃었다. 이엔을 이러한 노동을 하게 만들어버린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이엔은 그런 엄마의 품에 안겨 정말 괜찮다고 정말 건강하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엄마의 괴로운 얼굴은 이엔을 괴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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