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이엔의 과거 2
어느 날이었다.
이엔은 여전히 고된 일을 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가 옮기는 거대한 짐들은 이엔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짐을 옮기는 이엔의 앞에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순백색의 하얀 신발에 이엔이 긴장했다.
천천히 눈을 올린 이엔은 붉디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을 가진 한 여인을 발견했다.
하얀 로브를 입은 그 여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엔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아가야.”
“..... 예.”
이엔은 긴장으로 딱딱해진 입을 천천히 열어 대답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자신의 뒤에 서있는 남자를 향해 물었다.
“얘야? 어둠술사라는 애가.”
“맞습니다.”
“우와... 진짜 어리네.”
붉은 머리의 여인은 짙게 웃으며 이엔을 향해 말했다.
“반가워. 내 이름은 마를린이야.”
“......”
“너 마탑에서 일 해볼 생각 없니?”
“....???”
이엔의 눈이 커졌다.
마탑이 무엇인지 가난한 빈민가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귀한 피를 이어 마법을 사용하는 신비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마탑이 아니던가.
이엔은 커다란 눈동자로 마를린을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넌 어둠술사로 재능이 있다는구나. 그 재능을 키워서 우리 마탑의 일을 도와줬으면 해.”
“어둠술사...?”
“그래. 어둠술사. 그 일을 한다면 이런 노동은 더 하지 않아도 되거든.”
이엔의 마음이 흔들렸다.
고통스러운 노동에 여려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고 이내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저희 엄마와 아빠도... 마탑으로 갈 수 있나요?”
“음?”
마를린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네 부모는 갈 수 없어. 안 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지.”
“그게 무슨...”
“선택해. 갈 거야 말거야?”
“.....”
이엔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같이 못 간다면 저도 안 갈래요...”
“흐음... 그래?”
마를린은 짙은 고민을 담으며 웃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이엔은 다시 거대한 짐을 옮겨 노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이엔의 인생을 바꿨다.
고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온 이엔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과 널브러진 집 안의 물건들에 놀라 굳었다.
바닥에는 자잘한 핏방울들이 묻어있어 그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 엄마!! 아빠!!”
서둘러 방을 달려 둘을 찾은 이엔의 앞에 하얀색의 신발이 보였다.
천천히 눈을 올려 신발의 주인을 바라본 이엔은 전의 븕은 머리카락 여성의 소름 돋는 미소를 발견했다.
“..!!!!!”
“안녕 아가야.”
마를린의 미소에 이엔의 눈이 크게 떨렸다.
“어.. 엄마는... 아빠는 어디 있나요....?”
마를린은 이엔의 말에 키득키득 아이처럼 웃었다.
“네 부모가 안 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내가 말했지?”
“!!!!!”
“지금 우리 마탑에 있어. 네가 따라간다면 다시 안전하게 풀어주마.”
이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린 아이는 마를린의 손에 이끌려 부모를 되찾기 위해 마탑으로 끌려왔다.
수많은 마법사들 사이를 지나쳐 어두운 지하에 굴러 들어온 이엔은 여러 명의 어린 아이들을 발견했다.
자신 또래의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더러운 구석에서 시선을 피하며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몇 명의 아이들은 신체 부위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거나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눈에 동공이 하얗게 변해 시야가 차단되어 보였다.
이엔은 저절로 올라오는 역한 구토를 참았다.
마탑이 이런 것이던가.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나한테.... 우리 엄마 아빠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엔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마를린을 만난 그 순간부터 평범한 제 삶이 금이 갔음을 알았다.
금은 점점 많아지고 길어져 곧 자신을 산산조각을 낼 것이었다.
이엔은 점점 숨이 막혀왔다.
그 후부터는 괴로운 하루하루였다.
마탑은 밤인지 낮인지 모르는 어두운 곳에서 어둠술사로서의 능력을 끄집어내려 이엔을 고문했다.
신체적 압박과 괴로움에 이엔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마를린이 보여준 부모의 영상구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영상구 속의 부모는 감옥 속에서 힘없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거나 울고 있었다.
이엔은 마탑이 움직이라는 말에 움직이고 자라는 말에 자고 먹으라는 말에 먹었다.
자신의 의지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를린은 웃으며 말했다.
“이엔의 저주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특별해.”
“......”
“생명체를 재로 만드는 저주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
“.....”
“그러니 이엔...”
마를린의 붉은 입술이 잔혹하게 휘었다.
“어느 정도의 무기가 될지 실험을 해보자.”
이엔의 눈이 공허했다.
마를린은 그렇게 이엔을 데리고 한 구석진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활기찬 시민들을 관찰하며 말했다.
“자! 죽여.”
“...!!!!!!”
“네 저주로 저 사람들을 공격해봐.”
“모.. 못해요! 살아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 살아있는 인간한테 사용하면 몇 명이 몇 분 만에 몇 일만에 죽어 가는지 파악해야 해.”
“.... 마를린!!!”
이엔의 퀭한 눈동자에 충격이 담겼다.
마를린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 부모를 죽일지 저 사람들을 죽일지 선택해.”
“.....!!!!!!”
마를린은 히죽 웃었다.
“네가 저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한다면 난 네 부모들의 몸에 저주를 넣을 거야.”
“마를린!!!”
이엔의 눈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눈물이 가득 고인 금빛 눈동자가 너무도 안쓰럽게 흔들렸다.
마를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이엔은 활기찬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본 이엔은 두 눈을 질끈 감고 평생을 떳떳하지 못한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제 인생의 소중한 부모를 위해 다른 이의 가족들을 죽이고 말았다.
사람들의 비명과 절망이 이엔의 귀를 괴롭혔다.
“으아아아아아아!!!!”
이엔은 두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죄책감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런 이엔의 앞에 마를린이 수고했다고 웃었다.
한 개의 영상구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것은 이엔의 두 부모가 이미 숨을 거둔 모습이었다.
“!!!!!!!”
“너 하나 살리겠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몰라. 그래서 오자마자 그냥 죽여 버렸어.”
충격으로 갈 곳을 잃은 시선이 천천히 땅으로 향했다.
“그러니 결국 너는 민간인들을 죽여 버린 쓰레기라는 것이란다. 아가야.”
마를린도 그 후 망설임 없이 이엔의 목 뒷덜미를 잡고 폭발인장을 만들며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제 쓸 때 없는 짓을 한다면 네 목에서부터 이 인장이 폭발할거야.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해.”
이엔은 그 후 모든 감정을 내려놓았다.
삶의 방향을 잃었다.
몇 개의 마을에 저주를 뿌렸는지 수를 세지도 못할 정도로 이엔은 망가져갔다.
늘 가둬진 지하 감옥에서 이엔은 감정도 마음도 모두 죽어갔다.
“이... 이엔...”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어둠술사의 아이가 이엔의 이름을 불렀다.
이엔은 그저 “응“ 라고 대답하며 감정 없는 눈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지금... 마를린이 마탑에 어, 없어.”
“.... 응.”
“그, 그러니까 지, 지금 너라도 나.. 나가.”
“....?”
그 어둠술사 아이는 이엔을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너라도 빠져나... 나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라도 살아...”
이엔의 눈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그런 이엔을 바라본 또 팔이 뒤틀린 한 명의 아이가 말했다.
“우린 이미 몸도 많이 망가져서 나갈 수 없어요. 그러니 부디 여기서 탈출해주세요.”
“.... 너희...”
“탈출에 성공하면 부디 전해주세요.”
“......”
“우리들이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것도 마탑의 모든 것들도 다 모두에게 알려주세요.”
이엔은 소리 없이 울었다.
“어서요.”
“빠.. 빨리 나가.”
아이들의 작고 검은 손길은 이엔의 등을 밀었다.
모두 함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그림자에 들어간 아이들은 이엔을 밖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서둘러 다가오는 다른 어둠술사와 마법사들의 바쁜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잘가 이엔.”
“살아야해.”
이엔은 굴러 떨어지듯이 마탑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숲 안쪽으로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멎기 직전까지 달린 이엔은 깊은 숲 속에서 넘어져서 쓰러졌고 쓰러진 자세로 소리 없이 울었다.
“으으으윽......”
자신이라도 살리겠다고 노력한 아이들의 생이 불쌍했다.
그 아이들의 손길에 자신만 지옥을 빠져나가버린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으아아아으으윽!!!!”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괴롭게 울부짖은 이엔은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었다.
마탑의 모든 것을 알리고 싶었다.
마를린도 마탑의 마법사들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런 도중 제국의 기사단 옷을 입은 기사들의 행군을 발견했다.
마탑의 위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제국의 기사들일지도 몰랐다.
이엔은 천천히 그 행군으로 다가갔다.
그게 이엔의 이야기의 끝이었다.
세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감은 세린은 화가 난 얼굴로 이엔을 향해 소리쳤다.
“넌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 나랑 같이 마탑에 다시 돌아간다 한 거야??? 장난해!!”
“전하...”
“이엔 넌 정말 멍청한거야!! 왜 나를 따라 그딴 곳에 가겠다고 한 거야??”
이엔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세린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금 슬프게 웃었다.
“전하의 호위기사로 선택되어 제가 전하를 그 곳으로 혼자 보낼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 하지만 이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건 제 의지고 제 선택입니다.”
“.... 이엔.”
이엔은 금빛 눈동자를 부드럽게 휘어 웃으며 그녀의 몸에 담요를 정돈해주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서 이엔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세린은 고통으로 얼룩진 눈으로 이엔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제 손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고민들이 세린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