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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7화 (107/228)

던전 안의 살림꾼 107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평소 살림에 느꼈던 즐거움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종류의 흥미였다.

“이대로 길드에 네 솜씨까지 보고할 생각이야?”

희원이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그 또한 지난번 납치 사건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희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얘기하려고. 길드장님은 사람 속 읽는 스킬도 있고, 이런 큰 건은 차라리 얘기해 두는 편이 마음 편할 것 같아. 얘기하고 보호를 더 받든지, 지원을 더 받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번에는 땅콩 때처럼 우연히라도 정보 안 새어 나가게 좀 더 철저히 계약하고.”

“……뭐,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도록 하자. 한데…… 정말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나 보네. 소심한 이희나가 어떻게 그런 대범한 결정을 했대?”

희원이 희나를 슬쩍 놀려 왔지만, 모른 척 넘겼다.

‘언제까지 소심하게 꼭꼭 숨어 살 수는 없잖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능력을 무작정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었으니까.

* * *

희원이 기르던 작물이 다 자랐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길드장과의 미팅은 빠르게 잡혔다.

미팅은 희나의 요청대로 점심시간에 희나의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무실에서 희원이 길드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희나는 사무실 옆에 붙은 조리실에서 식사를 차렸다.

메뉴는 지난번 먹었던 것과 같았다.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무침, 시금치 프리타타가 메인이었다.

“식사하면서 마저 얘기 나누세요.”

희나의 호출에 불려 온 김규희 길드장은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에 눈썹을 올렸다.

“이게 그 시금치로 만든 요리인가 보군요.”

“네! 이왕 선보일 음식, 직접 식사하시면서 맛보시면 좋을 듯해서 이렇게 모시게 됐어요.”

“효능은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라 이건가? 그래요. 아무쪼록 잘 먹을게요.”

길드장은 시원시원한 태도로 수저를 들어 밥을 뜨고 반찬을 집었다.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무감했던 길드장의 눈동자가 확대됐다.

맛이 좋아서인지, 특별한 시금치 요리가 주는 뛰어난 효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동안 김규희 길드장은 차분히 수저를 놀려 희나가 차린 반찬을 하나하나 맛보았다.

‘어쩐지 긴장되네.’

그동안은 한 입 먹자마자 맛있다고 외쳐 주는 헌터들만 만나서 그랬을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긴장이 됐다.

“흠.”

어느새 밥공기를 절반 정도 비운 김규희 길드장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뭐라고 평가해 줄까?’

귀가 쫑긋 섰다. 길드장은 희나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는 빙긋 웃었다.

“이희원 씨 말대로군요. 생시금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데, 이희나 팀장의 손길을 거치니 그 효과가 증폭했어요.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 라는 말과 달리 맛도 아주 좋고요.”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

이건 딱 포션을 이르는 말이었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그 효능이 높아질수록 포션의 맛은 고약해졌다. 절대로 맛이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여러모로 흥미롭군요.”

김규희 길드장은 재미있는 것을 관찰하듯 시금치나물을 젓가락으로 집어 살폈다.

희나는 거기에 어떤 설명 창이 뜰지 알고 있었다.

<특별한 시금치 무침(S):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한 시금치 무침. 섭취 시 45분 동안 근력이 18% 증가한다.>

지난번에 A가 떴던 시금치 무침은, 이번에는 S등급으로 조리되었다.

다른 음식들도 그랬다. 희나가 처음 요리했던 때 보여 주었던 등급, 효능과는 달랐다.

“제가 시금치를 조리하면 날것보다는 훨씬 효능이 좋아져요. 하지만 일정하지는 않고, 상승치가 들쭉날쭉해요. 등급도 달라지고요. 집에서 몇 번 요리해 봤는데, 그때마다 효과 상승 폭이나 유지 시간이 달랐어요.”

그리고 시금치의 등급도 일정한 건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A급이긴 했지만, 시들시들한 B급 시금치도 있었다. 그걸 요리하면 훨씬 등급이 낮은 결과물이 나왔다.

희나는 조금 고민스러웠던 부분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뽑기처럼 불규칙하게 품질이 정해지는 건 곤란하지 않나요? 길드에 뭔가를 납품하려면 품질이 좀 일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부분은 괜찮아요. 공산품이 아니니까 일정한 규격을 맞출 필요는 없지.”

“앗, 그런가요?”

희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집에서 몇 번을 조리했는데, 매번 결과물이 달라서 걱정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김규희 길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이건 아까 이희원 씨와도 논의했던 부분인데, 섭취의 용이성 부분에 문제가 좀 있어요.”

“용이성이요?”

“이건 일시적으로 힘 관련 능력치를 끌어올려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전투 직전이나 전투 중에 급히 섭취해야 할 텐데, 음식물 형태라 포션보다는 섭취 방법이 불편해요.”

“아…….”

듣고 보니 그랬다.

희나의 음식을 꺼내어 먹는 것보다야 포션을 홀랑 마시는 편이 더 빠르고 간편할 것 같았다.

희나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사이, 김규희 길드장이 은근슬쩍 운을 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팀장 능력을 썩히기엔 아깝지. 그건 우리 모두 동의하는 바일 거예요. 그래서 그런데…… 이희나 팀장, 혹시 우리 측과 공동 연구를 해 볼 생각은 없나요?”

이에 희나는 앵무새처럼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공동 연구요?”

길드장은 희나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살피며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청룡에 소속된 연금술사 팀이 있어요. 그중 입 무겁고 능력 있는 사람 하나를 붙여 줄 테니, 협업해서 결과를 내 봐요. 이희나 팀장도 아까 말한 바가 있지 않나? 같은 사람이 같은 스킬을 쓰는데 생산 품질이 오락가락하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청룡의 연금술사들은 모두 숙련된 연구자이니, 이 팀장의 의문을 푸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물론 번거로운 일이니까 희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돼.”

희원이 부담 갖지 말라는 듯 빠르게 덧붙였다. 혹시나 동생이 힘들어질까, 신경 쓰는 티가 팍팍 났다.

“길드장님이랑 그렇게 얘기해 놨어. 우린 이대로 가공 안 한 시금치만 팔아도……”

“아냐. 괜찮아. 오빠, 나 이거 해 볼래.”

희나는 오빠의 말을 딱 잘라 끊었다.

의외로 순순히 떨어진 대답에 희원이 눈썹을 까딱였다.

“정말? 좀 더 고민 안 해 봐도 괜찮겠어?”

“응. 재미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길드장님 말씀대로 이번 계기로 내 스킬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 싶기도 하고.”

희나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청룡의 연금술사들은 모두 숙련된 연구자이니, 이 팀장의 의문을 푸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강진현과 ‘해충 박멸’ 스킬을 수련하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본인의 스킬을 이해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당장 강진현이 스킬 설명을 새롭게 해석해 주었을 뿐인데, 스킬의 이용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지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 기억은 희나에게 굉장한 경험으로 남았다. 자기의 능력에 대해 되돌아보며 흥미를 돋우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스킬 이해도를 높여 놓는 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앞으로 희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물 뜯기’ 스킬과 ‘안락한 침상’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처럼, ‘해충 박멸’ 스킬을 공격 스킬로 승화시킨 것처럼, 이 요리 스킬도 어딘가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것이 희나가 군말 없이 길드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까닭이었다.

김규희 길드장은 희나의 흔쾌한 대답이 몹시 마음에 든 듯했다.

“잘됐군요. 마침 강 헌터도 외부 임무 중이니, 내일 당장 담당자 미팅하고 계획 잡아 보도록 해요. 자세한 사항은 강 팀장 통해서 전달할 테니 그렇게 알아 두고.”

“넵!”

희나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길드장의 기대 어린 눈빛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일부터 생길 새로운 일들이 기대됐다.

이전의 희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설렘이었고, 배짱이었다.

* * *

똑똑, 노크가 들려오자마자 희나는 후다닥 문을 열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직장인다운 붙임성으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상대는 열린 문 사이로 쌩하고 지나가 버렸다.

‘엥?’

맥 빠지는 상황이었다. 희나는 애써 웃음기를 유지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랑 같이 일하실 연금술사님, 맞으시죠?”

“응. 맞아.”

초면인 직장 동료에게 듣는 반말에 희나는 기분이 팍 식어 자기 앞에 선 상대를 훑어보았다.

연금술사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또래의 남자였다. 그는 계절감 없는 데다 음침하기까지 한 로브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거기다 햇볕을 거의 쬐지 않는지 피부는 희다 못해 창백했다. 여기에 위로 살짝 치솟은 눈꼬리에 불퉁한 입술까지 더하니, 굉장히 까탈스러워 보이는 인상이 완성되었다.

“저기가 작업실이야? 흠. 공간이 생각보다 넉넉하네. 기구를 더 들고 와도 되겠어.”

그는 사무실에 딸린 주방 문을 열고서 멋대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희나의 이마에 빠직 핏줄이 섰다.

“저기, 죄송한데 저는 연금술사님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전달받지 못했거든요.”

“내가 연금술사인 거만 알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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