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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6화 (10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06화

    “어쨌든 오빠 말은…… 이번 농사도 성공이라는 소리구나.”

    동생의 대꾸에 희원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럼. 아주 대성공이지!”

    그의 등 뒤에 후광이 언뜻 비치는 것 같았다. 성공한 부농의 광채였다.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의욕 넘치는 오빠를 보니 절로 힘이 솟았다.

    “이제 이걸 어떻게 요리할지만 정하면 되는 거지?”

    상태 창에 쓰여 있기를,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하면 더 큰 효과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희나가 이걸 가지고 샐러드를 만들든, 나물을 무치든, 국을 끓이든 뭔가를 하면 B급 근력 포션보다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마 네 손 닿으면 A급 이상의 효능이 나오지 않을까?”

    희원 또한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희나의 불끈 쥔 주먹을 바라보았다.

    희나는 오빠를 따라 방긋방긋 웃다가 이내 무언가를 기억해 냈다.

    “그나저나 좋은 소식 두 가지라면서? 하나는 시금치 얘기고…… 나머지 하나는 뭐야?”

    “아! 맞다!”

    희원이 깜빡 잊었다는 듯 탄식했다.

    희나에게 퍼센티지 버프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해 주느라 좋은 소식을 한 가지 덜 전할 뻔했다.

    “예전에 ‘공간의 조각’이 사라지고 생긴 씨앗 있잖아. 기억나?”

    “아, 그거. 기억나.”

    오색이가 ‘공간의 조각’을 사용한 후에 찌꺼기처럼 남은 무언가가 있었다. □□□ □□이라고 이름이 아예 뜨지 않는 물건이었다.

    상태 창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 □□: 씨앗.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일단 땅에 심어 볼까? (능력치 부족으로 정보를 완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일단 씨앗이라고 하고, 심어 보라니 땅에 심어 두었다. 이후에 ‘공간의 조각’을 얻어 생긴 새로운 씨앗도 그 옆에 열을 맞춰 심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첫 번째 씨앗만 해도 희원이 물을 주고 정성을 다했지만 싹 하나 돋을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얼마 전에 싹이 텄어.”

    “그래? 상태 창에 뭐라고 떠?”

    “글쎄…….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이것도 정보가 다 뜨는 게 아니라서.”

    희원이 끙차 몸을 일으키며 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흥.”

    희나는 오빠의 손을 무시한 채 새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낯간지럽게 오빠랑 손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희원이 피식 웃었다.

    “옛날엔 오빠, 오빠 하면서 쫓아다니면서 귀찮게만 하더니. 이제는 미련 없다 이거지?”

    “오빠 손을 잡아서 어디다 쓰겠어? 잘생긴 남자면 몰라.”

    장난스럽게 대꾸하는데, 오색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하숙인 = 잘생긴 남자」

    「손잡을 의향 有?」

    하숙인인 강진현은 잘생긴 남자이니 손을 잡을 거냐는 물음이었다.

    안타깝게도 오색이는 달팽이라 달리 표정이랄 것이 없어, 이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뭐, 뭐?”

    희나는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오색이의 질문을 보자마자 강진현의 커다랗고 뜨끈한 손이 떠올랐다.

    사실 이미 희나는 강진현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채 산책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 그때는 바둑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뿌리칠 수가 없었으니까.’

    손을 놓으면 바둑이가 아주 실망할 것 같기도 했고, 남의 손을 갑자기 뿌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희나는 속으로 애써 변명했다.

    “뭐야?”

    홧홧해진 얼굴을 식히는데, 희원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희나를 훑어보았다.

    “너 진현이 좋아해?”

    “다, 당연히 좋아하지!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강진현 헌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희나는 빽 소리 질렀고, 희원이 귀를 막는 척을 했다.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누가 뭐랬어? 괜히 성내긴.”

    “예전부터 오빠가 진현 씨를 이상하게 의심하고 그랬으니까 그런 거 아냐!”

    “그거야 옛날에는 진현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으니까 하는 말이고. 이제는 아니야. 나는 진현이 매제로 찬성한다. 직업이 좀 위험한 게 흠이긴 한데, 그것 빼고는 다 괜찮아.”

    「본 주택 관리자도 애정 관계에 긍정적.」

    오색이는 잠깐 안테나를 흔들더니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나 스킬 문제상 ‘홈 스위트 홈’ 부부 공동명의는 불가함.」

    매제라니! 부부 공동명의라니! 한 사람과 한 달팽이의 급발진에 희나의 눈이 팽팽 돌았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결국 희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등 뒤로 희원의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희나! 공간 뭐시기 싹 튼 거는 안 보러 가려고?”

    ‘이게 나를 놀리나?’

    희나는 콧잔등에 잔뜩 주름을 지으며 오빠를 흘겨보았다.

    “됐어! 지금 그럴 기분 아냐!”

    활짝 열려 있던 현관문을 쾅 하고 닫으며 등을 기대어 섰다.

    “……진짜 별소리를 다 한다니까. 민망하게.”

    강진현이 급히 출장 나가 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이 대화를 들었을지도 몰랐다.

    한숨을 휴 내쉬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솥밥 먹는 가족끼리 왜 이래? 애당초 우리는 스캔들 기사 났어도 아무 사이 아니라고 확정까지 한 사인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터무니없는 말을 들어서야.

    희나는 그렇게 스스로 변명하며 떠오르는 부끄러운 생각을 애써 지워 냈다.

    * * *

    그날 저녁, 희나는 희원이 가져온 시금치 한 단을 모조리 요리했다.

    조물조물 고소한 시금치나물을 무쳤고, 조개를 넣고 시원하게 시금치 된장국을 끓였다. 달걀을 넣고 시금치 프리타타라는 오믈렛도 만들었다.

    밑반찬들과 함께 식탁에 올리니 보기에 아주 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완성되었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희원이 뿌듯한 눈길로 식탁을 바라보았다.

    “우리 살림꾼님이 요리한 시금치가 얼마나 대단해졌을지 확인해 볼까?”

    그도 그럴 게, 그는 경미한 땅콩 알러지가 있어 지난번에 수확한 땅콩을 맛보지 못했다.

    이번이야말로 자기가 제대로 농사지어 수확한 작물을 먹어 보는 감격스러운 첫 순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남매는 수저를 들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오!”

    “우와!”

    그와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청 맛있잖아!’

    던전에서 스킬을 사용해 직접 키운 작물로 만든 것이라서일까? 평범한 시금치 요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손맛 스킬에 익숙해진 희나와 희원 남매가 이럴 정도니,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차마 상상조차 안 갔다.

    ‘이건……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희나는 눈을 빛내며 다른 요리들을 한 입 한 입 맛보았다. 그럴 때마다 눈앞에 불꽃이 터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

    한편, 희나가 눈앞에 반짝거리는 것이 불꽃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몇 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상태 창이었구나.’

    특별한 시금치 요리를 먹고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잔뜩 떠 있었다.

    세 가지 요리를 먹자 근력 버프가 세 번이나 중첩되어 근력 스탯이 거의 14에 달했다.

    희나의 작고 보잘것없는 근력 스탯을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많이 오른 것이었다.

    괜히 근육이 불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차오르는 흥분감에 손에 힘을 주자, 손에 들린 쇠숟가락이 휘어졌다.

    “어머! 이거 어떻게 해!”

    희나는 휘어 버린 숟가락을 보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원상복구 하려 다시 반대로 힘을 주어 보았지만, 역시 힘 조절이 되지 않아 불쌍한 숟가락의 허리는 완전히 나가 버렸다.

    “힝.”

    희나는 울상을 지었다.

    고심해서 산 예쁜 수저 세트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 버릴 줄이야.

    “네 손맛 솜씨까지 들어가니까 엄청난데? 이 정도면 최상급……, 아니 특급 포션이야!”

    한편, 희원도 눈앞에 뜬 상태 창을 확인했는지 호들갑을 떨었다.

    A급이었던 시금치의 등급은 희나의 손을 거치자 최소 A급을 유지하거나 S급으로 상승했다. 더불어 효과 또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등급도 달라지나 봐. 메뉴마다 효과가 달라. 헉, 심지어 시금치 프리타타는 민첩 항목까지 증가하네. 더블 버프라니, 이건 정말……!”

    희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오빠에게 다소 맹한 질문을 던졌다.

    “더블 버프면 좋은 거야?”

    동생의 물음에 희원은 침이 튀도록 설명했다.

    “어! 당연하지! 포션 하나에 두 가지 효과를 담아내는 건 정말 엄청난 기술이거든! 상급 시약술사나 겨우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스터 피스라고!”

    희나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오빠가 저렇게 흥분할 정도면 이 음식들이 진짜 대단한 효과를 가졌다는 건데……. 이번에 길드에 알릴 때는 단단히 조심해야겠어.’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력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시금치가 들어간 음식은 생각보다 많았다. 시금치 샐러드라는 것도 있었고, 시금치 파스타, 시금치 페스토도 있었다.

    시금치가 주된 재료가 되진 않지만 김밥에도, 잡채에도 시금치가 들어갔다.

    시금치로 보여 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이 음식들은 어떤 등급과 효과를 가지게 될까?’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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