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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7화 (2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27화

    오색이가 생각에 빠진 사이 희원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살림꾼이라니, 집 주는 스킬 말고는 무슨 스킬 가지고 있어?”

    “그냥, 이런저런 것들……. 집안일 관련한 솜씨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게 대부분이야.”

    희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는 데 도움 많이 되겠네. 대신 위험하니 헌터 일은 하면 안 된다.”

    희나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남이사! 오빠야말로 앞으로 헌터니 뭐니, 말 꺼낼 생각도 마!”

    “아니,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이번에는 진짜 안전한 일 찾아서 갔다고. 지인 소개로 던전 토벌 후발대 채집 인원 뽑는다길래 갔는데, 그게 취업 사기 인신매매일 줄은 알았겠어?”

    희원이 한숨을 내쉬며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나도 이번 일로 생각 많이 했어. 나 없으면 너 혼자 남아서 어떡하나, 그런 걱정 많이 했다고.”

    “맞아. 세상에 우리 둘밖에 안 남았는데, 오빠까지 없으면 난 어떻게 해? 그러니까 제발 몸 좀 생각하면서 일해! 이제 나도 돈 버니까 좀 놀아도 돼. 돈 많이 못 벌어도 되니까 안전하고 쉬운 일들만 하란 말이야.”

    “그래, 그래.”

    희원이 희나를 위로하듯 손을 붙잡고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희나는 싫은 척, 그 손을 떨쳐 냈다.

    “민망하게 왜 이래!”

    오빠의 손은 거칠었고, 흉터로 가득했다. 지난 10년간, 동생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었다.

    희나는 고개를 돌려 찔끔 나오는 눈물을 감췄다.

    “아무튼…… 그렇다고. 이제 나 청룡 길드에 취업해서 옛날보다 더 많이 벌어. 야근도 없고. 그러니까 오빠도 한동안 쉬면서 뭐 할지 찬찬히 생각이나 해 봐. 몇 년이고 놀아도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희원이 키득거리며 희나를 놀렸다.

    “그런 말 했다가 나중에 백수 새끼 키우기 지겹다며 후회하려고?”

    “됐어. 그동안 오빠가 나 키워 줬잖아.”

    희나는 오빠의 손등을 찰싹 때리며 희원을 흘겨보았다. 하여간, 산통 깨는 데는 선수였다.

    감동적인 분위기도 파장 난 김에, 희나는 줄곧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오빠, 오빠는 각성 직업 클래스가 뭐야?”

    “그건 왜? 그동안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잖아.”

    “예전에는 각성자는 다 비슷비슷한 줄 알아 가지고……. 별로 안 궁금했거든.”

    희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희나도 일반인 시절에는 각성 클래스의 중요성을 몰랐다.

    하지만 막상 자기가 각성하고 청룡 길드에서 여러 각성자들을 만나다 보니 이게 얼마나 다양하고 중요한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오빠의 클래스도 궁금해졌다. 막연히 D급이라는 것만 알았지, 오빠가 무슨 클래스인지, 어떤 스킬을 가졌는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나는 오빠가 각성자 일 하면서 다쳐 오는 게 싫어서……. 그래서 더 알고 싶지 않았어.”

    “하……. 하하. 그런가?”

    희나의 진심 섞인 고백에 희원이 난감하게 웃었다. 애써 풀어 놓은 분위기가 또 진지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희원이 대화 주제를 황급히 틀었다.

    “근데 내 클래스도 좀 웃겨. 듣고 웃으면 안 되는 것 알지? 오빠의 위엄에 누가 될 수 있단다.”

    괜한 허세에 희나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안 웃어.”

    특이하고 웃기기로는 희나는 어디 가서 안 질 자신이 있었다. ‘살림꾼’을 이길 만한 각성 클래스가 어디 있겠는가?

    “그건 두고 봐야지.”

    능글맞은 대답에 희나가 자기 가슴을 팡팡 쳤다. 감질났다.

    “대체 뭔데? 뜸만 들이지 말고 말 좀 해 줘.”

    “어디 가서 처음 얘기해 보는 거라서 좀 떨리네.”

    “빨리!”

    희나의 재촉에 희원이 두 손을 들고 항복 표시를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도 히든 클래스야. D급 ‘농사꾼’이라고.”

    “엥?”

    코딱지만큼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각성 클래스에 희나는 눈만 끔뻑였다.

    D급 ‘농사꾼’이라니? 이게 웬 소리인지?

    “오, 오빠, 헌터 아니었어?”

    당혹 가득한 물음에 희원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응. 헌터 일을 하면 다 헌터지, 뭐겠어? 아무리 D급 비전투계라고 해도 일반인보다는 스탯이 높으니까. 쉬운 일 맡으면 할 만해.”

    “뭐야…….”

    희나는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다 지나갔다.

    ‘농사꾼’이라는 클래스는 대체 어떤 클래스냐는 기초적인 궁금증부터, 그런 평화로운 각성 클래스를 가지고 헌터 일을 하겠다고 뛰어든 오빠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여태까지 오빠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에 대한 상상 등등…….

    희나의 복잡한 표정을 읽은 희원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네가 D급 살림꾼으로 각성했다고 했을 때 많이 놀라지 않았던 이유도 내 클래스 때문이야. 오빠인 나는 농사꾼인데, 동생인 네가 살림꾼이라니……. 우리가 그래도 남매는 남매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 같은 ‘꾼’ 자 돌림이잖아.”

    별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웃긴지 희원이 킬킬 웃었다.

    희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 소리 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그렇게 쉽게 웃음이 나와?”

    “어. 웃긴데.”

    태평한 소리에 희나의 속이 부글부글 탔다.

    “맨날 다치고, 아프고, 힘들었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거네! 나는 오빠 랭크가 낮아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전투계가 아니니까 당연히 그렇지!”

    희원이 열심히 반박했다.

    “아냐. 들어 봐, 희나야. 난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안 했어. 진짜 헌터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는데 뭘. 거기다 너 중고등학교는 졸업시켜야 할 것 아냐? 헌터 일 안 했으면 우리 굶어 죽었어. 사회 경험 없는 애송이가 그만한 돈 버는 방법은 헌터 일밖에 없었다고.”

    희원은 기어코 희나의 뚜껑을 열고야 말았다. 희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이희원! 이 바보 같은 놈아! 목숨 걸고 뭐 하는 짓이야? 그런 개소리하면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잘도 좋아하시겠다!”

    집 안에 날 선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스템 창이 스치듯 눈앞에서 반짝였다.

    동시에 희나의 손바닥이 위로 치솟았다, 부웅 소리를 내며 아래로 꺼졌다. 타깃은 자기 목숨을 우습다는 듯 지껄인 괘씸한 오빠의 등짝이었다.

    짝!

    “으아악!”

    짝! 하는 차진 소리와 함께 희원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좁은 원룸에 쩌렁쩌렁 울렸다.

    “으아아! 대박 아파! 희나야! 오빠 죽는다! 또 때리지 마! 아파!”

    희원이 등에 손을 대고 데굴데굴 굴렀다. 어지간해서는 우는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 희원이 저럴 정도면, 정말 아픈 거였다.

    「집주인, 고약한 손버릇. 폭력 규탄!」

    공간의 조각에 대한 설명을 탐색 중이던 오색이가 은근슬쩍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자기도 한 대 맞아서 그 아픔을 안다는 듯 바닥을 뒹구는 희원의 주위를 꼬물꼬물 기어 다녔다.

    “앗, 미안. 스킬이 시전될 줄은 몰랐는데…… 미안. 많이 아파?”

    희나는 쪼그려 앉아 오빠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해충 박멸 스킬은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시전되고 난리야?’

    처음 이 집에서 오색이를 보았을 때도 시전되더니, 오빠에게까지 시전됐다.

    나쁜 저격수를 향해 사용할 때는 스킬을 발휘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했는데, ‘해충 박멸’에 당한 무고한 피해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건 반갑지 않았다.

    “……비전투 계열 살림꾼이 왜 이리 손맛이 매워? 와. 죽는 줄 알았네.”

    희원이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중얼거렸다. 희나는 스킬 창을 슬쩍 띄워 읽었다.

    “해충 박멸. D랭크. 스킬 내용은 가내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를 퇴치한다……라는데. 아까 시스템 창에는 가내의 평온이 깨질 위협이 어쩌고 하면서 원인을 제거한다고 떴어.”

    그러자 희원이 혀를 찼다.

    “설마 네가 나 때문에 화를 내서 가내 평화를 해친다고 판정한 건가?”

    “……그런가?”

    들어 보니 그럴싸했다. 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킬 설명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진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네. 뭐, 어쨌든 됐어. 너도 공격 스킬 비슷한 건 가지고 있다니까 안심이 되긴 한다. 한 방이 겁나 아파.”

    일련의 폭력 사태로 격했던 집안 분위기는 다시 평화로워졌다.

    희원은 얼얼한 등이 아파서 허허 웃었고, 희나는 때린 게 미안해서 오빠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충 박멸’은 실로 평화를 추구하는 스킬이었다.

    “그래서 오빠 각성 클래스는 어떤 능력이 있는 거야? 내 살림꾼 클래스 설명은 이래. ‘훌륭한 솜씨로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다!’”

    다시 봐도 정말 구린 설명이었다. 희원도 그 설명이 웃긴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비슷해. 농사꾼. D랭크. ‘훌륭한 솜씨로 농사일을 꾸릴 수 있다.’”

    살림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설명이었다. 희나는 입술을 내밀었다.

    “농사일을 잘할 수 있는 클래스면 귀촌이라도 하지 그랬어? 나도 지금 살림꾼으로 각성해서 청소 일 하고 있잖아.”

    그러자 희원이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그게…….”

    희나가 두 눈을 매섭게 뜨고 추궁했다.

    “근데, 뭐? 나 때문에 못 내려간 거야, 설마?”

    “아니. 그건 아니야. 스킬이 실제로 쓸 만한 게 없어서 그랬어.”

    그러면서 자기의 농사 스킬에 대해 마저 설명했다.

    “내 농사 스킬은 전부 다 던전 토양에서만 적용돼. 시골로 내려가 봤자 삽질이나 좀 잘하는 일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걸.”

    “던전 토양? 그러니까 던전 안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뜻인 거야?”

    “똑똑하네, 내 동생.”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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