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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8화 (2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28화

    어처구니없는 조건에 희나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뭐, 이렇게 구린 클래스가 다 있어?”

    “그건 말이 좀 심한데.”

    “헉. 미안.”

    희나는 망언을 내뱉은 입을 합, 하고 틀어막았다. 희원이 어쩌겠냐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너처럼 망스탯은 아니라서 스탯빨로 어찌저찌 헌터 일은 할 만했어.”

    복수의 의미로 은근슬쩍 희나의 구린 스탯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그랬다면 다행이고.”

    둘은 정말이지 의좋은 남매였다.

    서로의 클래스에 대한 궁금증을 푼 희나와 희원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희원이 취업 사기로 노역장에서 일할 때의 일화가 입에 오른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스킬은 평생 쓸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가서 삽질 스킬 발휘 좀 했지. 덕분에 비교적 편하게 지냈어. 1등급 노예였다고, 내가. 그 인간들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희원은 노천 광산에서 일하며 삽질 스킬이 D등급에서 B등급으로까지 올랐다며 자랑했다.

    “그, 그래? 잘…… 잘된 건가?”

    희나는 어떤 표정을 하며 그 얘기를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노예처럼 지냈다는 건 슬픈데, 그 와중에 노예 중에 제일 잘 지냈다는 건 또 잘된 것 같고…….’

    희원은 늘 그랬다. 이상한 데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한편, 방바닥에 퍼질러 누워 있던 희원이 영차, 하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런데 희나야, 내가 있던 미등록 던전에는 대체 어떻게 떨어진 거야? 잔업 중에 우연히 떨어졌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나도 모르겠어. 동전 같은 걸 닦았더니 빛이 났고, 순식간에 던전으로 이동했거든. 그 동전 때문인 것 같긴 한데…… 강진현 헌터도 자세한 건 모르겠다더라.”

    말이 나온 김에 희나는 인벤토리에서 잠자고 있던 ‘□□의 조각’을 꺼냈다.

    “이게 그거야?”

    희원이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내비쳤다.

    희나는 엄지와 검지로 ‘□□의 조각’을 잡아 들여다보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쇳덩이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대체 □□는 뭘까?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거지?’

    생각에 빠졌을 때였다.

    「!!!!!!! ! !! !!!!」

    눈앞에 색색깔로 반짝이는 커다란 느낌표가 폭죽처럼 터졌다.

    “악! 내 눈!”

    급작스러운 안구 테러에 희나는 들고 있던 ‘□□의 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오색아!”

    희나는 어지러운 눈을 비비며 이 테러의 주동 달팽이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오색이는 희나의 눈초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신, 달팽이의 기준으로 치면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의 조각’을 향해 기어갔다.

    「유료…… 캐시……!」

    오색이는 탱글탱글한 몸체로 ‘□□의 조각’을 덮었다. 그러자 오색이의 껍데기가 파격적인 무지갯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희나는 그 장면을 보며 오색이의 이름을 오색이가 아니라 무지갯빛 ‘칠색이’라고 지어 주어야 했나 하고 또 후회했다.

    다행히도 발광하던 오색이의 껍데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색이는 올라타 있던 ‘□□의 조각’ 위에서 내려왔다.

    “와!”

    희나는 감탄했다.

    오색이의 손(?)을 거친 ‘□□의 조각’이 엄청나게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이 비칠 듯 반짝거렸다. 진짜 갓 주조한 은화처럼 보였다.

    “달팽이한테 세척 기능도 있나 보네? 말도 안 되게 깨끗해졌는데?”

    희원도 오색이의 성능을 칭찬했다. 오색이 안테나를 으쓱거렸다.

    「식은 상추 먹기.」

    희나는 상추는 늘 식어 있다고 말하려다가, 오색이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

    “진짜 영롱해졌네. 우리 오색이는 못 하는 게 없구나.”

    성의 없는 칭찬과 함께 ‘□□의 조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작은 쇳조각은 거울처럼 희나의 얼굴을 비췄다.

    손끝으로 ‘□□의 조각’을 톡 치자 허공에 시스템 설명 창이 떴다.

    <공간의 조각(Hidden): 주택 관리자의 손길로 완전히 쓸모를 되찾은 공간의 조각. 과금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소유주: 이희나)>

    □□로 표기되었던 공란은 모두 채워졌지만, 설명은 여전히 괴상하긴 매한가지였다.

    “공간의 조각?”

    ‘공간의 조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집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과금! 업그레이드! (@[email protected])!!!」

    ……그보다 오색이가 ‘공간의 조각’ 위에 덥석 올라타는 게 먼저였다.

    우웅!

    공기가 묵직하게 진동했다.

    “앗! 오색아? 이게 무슨 짓이야!”

    희나와 희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색이의 몸통 아래에 덮인 ‘공간의 조각’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종전에 무지갯빛으로 빛나던 오색이의 등 껍데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웅웅, 우우웅!

    웅웅, ‘공간의 조각’을 중심으로 커다란 진동이 몇 번 더 울렸다.

    “어어?”

    이내 미세한 빛 가루가 오색이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가루들은 희나의 3평 낡은 원룸 안에 민들레 홀씨처럼 퐁퐁 퍼져 나갔다.

    샤아아.

    빛 가루는 공기 중을 동동 떠다니다가 하나, 둘 벽으로 흡수되었다.

    “와…….”

    희나와 희원은 잠시 모든 상황을 잊고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번쩍였다. 희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시스템은 희나의 스킬 랭크가 올랐다며 요란하게 알림을 보내 왔다.

    ‘레벨 업 선물도 랜덤 뽑기로 나오더니, 이제는 과금이라고?’

    아무리 이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게임스럽다고 해도, 이렇게 게임스러울 데가 있나!

    거기다 시스템 서비스가 악덕 게임의 전철을 조금씩 밟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희나의 착각일까?

    희나의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있는 걸 본 희원이 물었다.

    “시스템 창에 뭐라고 떠?”

    “유료 과금해서 스킬 랭크가 올랐대.”

    “뭐?”

    뜬금없는 스킬 랭크 업 소식에 희원이 오잉, 하는 소리를 냈다.

    랭크 업 당사자인 희나도 이 일이 ‘오잉’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누구 맘대로 과금에, 랭크 업이야?”

    「좋은 게 좋은 것♪」

    얼떨떨한 희나를 향해 오색이가 곰실곰실 기어 왔다. 오색이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공간의 조각’ 대신 가무잡잡한 씨앗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건 뭐야? ‘공간의 조각’은 어디 가고?”

    중얼거리며 씨앗을 집어 들어 확인하려던 때였다. 희나의 생각을 방해하려는 듯 다시금 시스템 창이 반짝였다.

    희나는 그대로 시스템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 손에 쥔 씨앗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 주머니에 쏙 들어간 상태였다. 던져 버리지 않은 게 용했다.

    “인테리어 테마라니?”

    낯선 단어의 등장에 희나가 혼잣말하자 시스템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실내 분위기 = 벽지 + 바닥 + 천장 + 기타 등등…….」

    오색이도 설명을 거들었다.

    대충 알아듣기론 희나가 부드러운 노란 톤으로 꾸며 둔 방의 콘셉트를 저장하면, 다른 방도 이런 분위기로 꾸밀 수 있다는 뜻 같았다.

    희나는 설명을 읽고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히 저장하지. 내가 여길 얼마나 힘들여서 꾸몄는데!”

    테마 이름은 의식의 흐름대로 지었다.

    “노란색.”

    테마를 저장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 알림이 떴다.

    열렙을 하거나 돈을 쓰라는 메시지였다.

    아까부터 이어지는 과금 타령에 희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스템이 돈에 미쳤나?”

    그러자 시스템이 갑자기 공익 광고 카피 같은 소리를 했다.

    □□ 문화가 대체 무엇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시스템은 모른 척 다음 메시지를 띄웠다. 희나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투 룸이라고?”

    말을 꺼내고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세상이 일순간 뒤집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희원 또한 같은 감각을 느꼈는지 “뭐야, 이건?” 하고 소리쳤다.

    희나는 잠깐 비틀거리다 정신을 차렸다.

    “헉!”

    고개를 들자마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좁은 3평 원룸이 자그마한 투 룸 형식의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좁은 거실과 주방이 붙어 있었고, 욕실에 방 두 개도 보였다.

    이름대로 연식이 조금 오래되어 보이긴 했지만, 청소하면 그럭저럭 깨끗하게 쓸 수 있을 만한 집이었다.

    원래 희나가 오빠와 함께 전세 살던 다세대 주택의 구조와 비슷했다.

    「과금! 무려 투 룸! 해금! ◑☆!몹 시 신 남!★◐」

    한편, 희나의 발밑에서 오색이는 꾸물꾸물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있었다.

    주택 관리자로서, 자기가 관리하는 주택의 격이 상승했다는 게 아주 기쁜 모양이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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