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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6화 (2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26화

    3. 이상한 나라의 살림꾼

    강진현은 상황을 익숙하게 정리했다.

    그는 노역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러내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강제 노역을 하던 사람 중에서 몸이 멀쩡한 사람이었고, 둘째는 그중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들을 감시하던 인신매매꾼들이었다. 인신매매꾼들은 줄줄이 굴비처럼 묶였다.

    인원수를 체크한 강진현은 모두를 데리고 던전 게이트로 향했다.

    수개월 만에 던전을 탈출하게 된 노역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설렘이 감돌았다. 반면 인신매매꾼들의 낯은 똥 씹은 듯 어두웠다.

    게이트를 나선 후에는 일이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경찰과 언론이 몰려들었고, 이들을 구출한 강진현은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연일 언론에서는 미신고 던전, 강제 노역, 인신매매 등의 자극적인 단어로 만든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아이고 복잡해라.’

    희나는 희나대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인신매매 현장의 주요 목격자로서 경찰 인터뷰를 했고, 의도치 않게 무단결근하게 된 회사에도 재빨리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밝혔다.

    강진현과 얽힌 일이라서인지 청룡 길드에서는 별 코멘트 없이 사흘의 유급 휴가를 추가로 내주었다.

    한편, 실종됐던 이들은 의료적 처치와 경찰 조사를 받은 후 귀가 조치되었다.

    희나는 사건 임시 본부 앞을 서성이며 오빠를 기다렸다. 본부 앞은 희나처럼 실종된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침내 익숙한 머리통이 보였다. 희나는 손을 붕붕 흔들며 희원을 불렀다.

    “오빠! 이희원! 이희원 씨! 오빠!”

    희원이 희나를 발견하고 반색하며 다가왔다. 얼굴은 여위었지만, 자유를 얻어서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오래 기다렸지? 피곤할 텐데 먼저 집에 가 있지 그랬어?”

    “아냐.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 거기다 오빠는 집 가는 길 모르니까 우리 같이 가야 해.”

    “나 바보 아니야. 몇 달 밖에 있었다고 집 주소 까먹는 일은 없거든!”

    희원의 우스갯소리에 희나는 오빠를 흘겨보았다. 이렇게 큰일을 겪어 놓고 별일 아닌 것처럼 구는 게 원망스러웠다.

    심술이 돋은 희나는 희원에게 툭 말을 내뱉었다.

    “아냐. 오빤 우리 집 몰라. 전셋집 없어졌거든.”

    뜬금없는 소리에 희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전세 계약 1년 반 남았잖아.”

    “그 집, 던전 게이트에 휘말려서 집터만 남고 다 사라졌어.”

    “뭐?”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희원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역시 그도 한국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납치되었다가 풀려났다는 사실보다 전셋집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더 깊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전셋값 보상은 받았어? 아니, 그 전에, 그럼 넌 어디서 지내고 있고? 언제 그런 일이 생겼어?”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지는 오빠에게 조용히 하란 뜻으로 희나는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대 보였다.

    “쉿. 나중에 다 설명할게. 우선 우리 집으로 가자.”

    “집 없어졌다면서?”

    “내가 알아서 다 마련했어.”

    “우리 아직 전세 대출 다 못 갚았는데, 어떻게 또 대출을 땡겼어? 사채 쓴 거 아니지, 희나야? 응?”

    희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에 희나가 질겁했다.

    “미쳤어? 내가 그런 데 손댈 사람으로 보여?”

    안전주의자 중에 최고 안전주의자인 희나가 사채라니, 말도 안 됐다.

    사채를 쓸 바에야 희나는 차라리 노숙하길 택했을 것이다. 그편이 차라리 더 안전했다. 적어도 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희원을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끌어낸 후, 주의를 줬다.

    “오빠, 뭘 보더라도 시끄럽게 굴면 안 돼. 알았지? 그리고 앞으로 달팽이를 보게 될 건데, 걔한테 벌레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때려서도 안 돼. 이건 아주 중요한 거야. 다시 한번 기억해. 달팽이를 소중히 여겨야 해.”

    애써 꾸며 놓은 집이 다시 꽃무늬 벽지로 뒤덮일까 봐 두려워 희나는 희원에게 몇 번이고 경고했다.

    동생의 진지한 표정에 희원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달팽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집은 어딘데?”

    “우선 들어가서 얘기하자.”

    희나는 ‘홈 스위트 홈’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평범한 콘크리트 벽 위에 현관문이 하나 생겼다.

    마법 같은 장면에 희원이 입을 쩍 벌렸다.

    “빨리 들어와. 누가 볼라.”

    희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오빠를 끌어당겼다. 희원은 얼결에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입장했다.

    희원이 희나의 ‘홈 스위트 홈’에 들어와 가장 먼저 남긴 감상은 이랬다.

    “뭐, 뭐지? 여긴 뭐야?”

    희나는 착한 동생답게 사근사근 대답해 주었다.

    “내 집이야, 오빠. 그러니까 일단 들어와 앉아.”

    희원의 등을 떠밀어 작은 방 안에 앉혔다. 3평이 갓 넘는 방은 희나와 오빠가 앉으니 거의 꽉 찬 것처럼 보였다.

    「집주인 무단 외박 규탄! 무단 외박 규탄!」

    정신없는 와중에 어디선가 오색이가 고물고물 기어 와 희나의 무단 외박을 지적했다.

    스물이 훌쩍 넘은 희나의 외박 여부를 이렇게나 신경 쓰다니, 깐깐하기 그지없는 달팽이였다.

    “기다렸어, 오색아?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던전에 떨어졌다가 겨우 나왔어.”

    「?!」

    희나의 대답에 오색이의 안테나가 쫑긋쫑긋 솟았다. 크게 놀란 것 같기도 했고, 마치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같이 보였다.

    작은 달팽이의 걱정 어린 안테나짓에 괜히 희나의 마음이 찡해졌다.

    “나는 다친 곳 없이 무사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집주인 사지 멀쩡. 다행.」

    오색이와의 눈물 어린 상봉을 하는 와중, 희원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달팽이가 시스템처럼 말을 하네? 집에 너무 가고 싶어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희나야, 나 지금 너무 헷갈리니까 제발 상황 설명 좀 해 줄래?”

    허공에 생긴 문에, 그 문 안의 작은 자취방, 거기다 말하는 달팽이까지…….

    연이은 사건으로 인해 그는 정말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방문객 정체 보고 필수.」

    오색이도 뉴 페이스의 소개를 요구했다.

    희나는 양쪽에 달팽이 한 마리와 사람 한 명을 두고 서로를 인사시켰다.

    “오색아, 여기는 우리 오빠야. 친오빠고, 이름은 이희원이야. 그리고 오빠, 이 귀여운 달팽이의 이름은 오색이야. 이 집의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어.”

    오색이가 안테나를 기역자로 까딱거리며 먼저 인사했다.

    「방가방가.」

    살가운 인사에 희원 또한 자기 주먹만 한 작은 달팽이를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 그, 그래. 오색아 안녕.”

    그러면서 희원은 희나에게 눈짓하며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길 간절히 요청했다. 그는 많이 혼란해 보였다.

    희나는 그런 오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이제 다 설명할게. 첫째로…… 오빠, 나 각성했어.”

    이에 희원이 자기의 뺨을 찰싹 때렸다.

    “내가 아직도 꿈을 꾸나?”

    * * *

    몇 달간 벌어졌던 다이내믹한 사건들을 모두 설명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희나는 자기가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각성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이 집을 얻게 된 연유와 청룡 길드에 입사한 일, 거기다 오빠를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 노역장에 있던 오빠를 발견하고 강진현 헌터가 사람들을 구해 준 거야.”

    대강의 설명을 끝낸 희나는 냉장고로 가서 생수 한 컵을 따라 마셨다.

    “캬, 맛있다!”

    내내 걱정하던 오빠를 찾아서일까? 물은 시원한 데다 꿀맛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집이 네 스킬로 얻은 거란 말이야?”

    희원은 희나의 설명이 쉽게 믿기지 않는지 연거푸 질문을 해 댔다.

    그는 희나가 ‘살림꾼’이라는 괴상한 클래스의 직업으로 각성한 것보다 ‘홈 스위트 홈’ 스킬에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희원은 전형적인 한국 사람답게 집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었으니까.

    ‘하긴. 집이 생기는 능력이라니, 신기하기는 하지.’

    사람들이 건물주를 신에 빗대어 갓(God)물주라고 이르기도 한다는데, 그럼 희나는 신의 기적과 비슷한 스킬을 얻게 된 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좁기는 한데, 집을 주다니 진짜 대박인 스킬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데!”

    집이 좁다는 희원의 의견에 오색이가 쏙 끼어들었다.

    「공간 협소→집주인의 역량 부족 때문.」

    오색이는 스킬에는 문제가 없고, 희나의 낮은 스킬 랭크가 문제라고 일러바쳤다. 그리고 덧붙였다.

    「차후 자기 계발 및 과금을 통해 주거지 확장 가능.」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희나는 의아해 물었다.

    자기 계발 이야기는 랭크 업을 이야기하는 걸 텐데, 대체 ‘과금’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정말 뜬금없었다.

    “과금? 그건 게임할 때 현질하고 막 그럴 때 쓰는 용어 아니야?”

    달팽이가 안테나를 까딱거렸다.

    「비슷.」

    “그럼 시스템에 돈을 지급하면 집이 더 좋아져? 근데 시스템한테 돈을 어떻게 줘? 허공에 뿌리면 되나?”

    희나는 중얼중얼 의문을 읊조렸다. 이 귀여운 달팽이는 다 좋은데 말을 너무 간략하게 해서 문제였다.

    ‘가끔 가르쳐 주어야 할 사실을 까먹고 안 알려 주기도 하고.’

    속으로 흉을 보고 있는 사이 오색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과금 = ‘공간의 조각’ 지불.」

    「‘공간의 조각’ 지불 시 주거지 확장.」

    대충 알아듣자니, 여기서 과금이란 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공간의 조각’이라고 하는 걸 지불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를 알면 모르는 게 또 하나 생겼다. 덕분에 물음표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끌려 나왔다.

    “공간의 조각은 또 뭔데?”

    공간의 조각이 무엇이냐고 묻자, 오색이의 안테나가 천천히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 (적절한 설명 탐색 중) …….」

    실제로 자기 상태에 대한 설명까지 괄호 안에 덧붙여서 알려 주기도 했고.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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