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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5화 (25/228)

던전 안의 살림꾼 25화

‘S급?’

무려 S급짜리 단검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희나는 잠깐 오빠 걱정을 잊고 손을 떨었다.

“희나 씨의 오빠가 문제에 처했으니, 이대로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강진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이 댕그래진 희나를 향해 찬찬히 일렀다.

“여기 앉아 천천히 300까지 세고 있으십시오. 그리고 이 단검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드리는 거고, 실제로 쓸 일은 없을 겁니다.”

“강진현 헌터님?”

“일은 빠르게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혹여나 불쾌한 소리가 나더라도,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

희나가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강진현이 몸을 일으켰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그는 그림자에 스며들듯 한순간, 종적을 감췄다.

펑! 그와 동시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컥!”

“으억!”

“악!”

고통스러운 비명들이 꽥꽥 허공을 갈랐다. 희나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쪼그려 앉아 눈을 껌벅거리며 그 소리를 들었다.

‘무슨 상황인 거지?’

충격을 받았다가, 슬펐다가, 당황했다가 홀로 남겨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가 얼떨떨했다.

“침입자다! 막아!”

누군가가 강진현을 침입자라며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희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오빠를 구해 주려고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었어.’

고마움과 걱정이 뒤섞였다. 희나는 강진현이 준 S급 보호의 단검을 손에 꽉 쥔 채 귀를 쫑긋 세웠다.

강진현은 희나가 300을 천천히 세고 있다 보면 돌아오겠다고 했다.

허세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전투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을 들어 보니 영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을 대체 어떻게 상대하고 있는 거지?’

걱정과 궁금증에 희나는 뒤를 돌아볼까, 말까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조력자다! 우리도 가서 도웁시다!”

오빠의 목소리가 노천 광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강진현은 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남은 혈육에 대한 정이 너무 깊었다.

희나는 바위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오빠!’

오빠는 쓰러진 동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곤,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낡은 곡괭이는 감시꾼들의 강력한 무기에 대적하기에 형편없어 보였지만, 오빠는 요령 있게 상대를 공격했다.

“덤벼!”

“여길 탈출하자!”

희나의 오빠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니, 노역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섰다. 피로에 지친 몸이었지만,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강진현 헌터는 어디에 있지?’

한편, 희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강진현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S급 전투 헌터답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그가 스쳐 간 자리에는 흥건한 핏물이 고였다.

강진현은 죽음의 사신 같았다.

‘그림자에서 손이 뻗어 나와 사람들을 우그러뜨리는 것 같아.’

잔혹한 광경이었다. 누군가의 등 뒤에 그림자가 스치면, 그자는 영락없이 죽음에 이르렀다.

머리가 터지거나, 몸 한군데가 검은 재가 되어 부스러졌다. 같은 사람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능력이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컴퓨터 그래픽 같았으므로 현실감조차 들지 않았다.

“으악! 죽기 싫……!”

“살려 줘!”

“으어억!”

노천 광산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무장한 10여 명의 헌터가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적들에게는 공포가, 아군에게는 희망이 서렸다.

“나갈 수 있다!”

노역자들이 감시꾼들의 뒤를 덮쳤다.

희나의 오빠도 그중 한 무리에 끼어 적들을 제압했다. 희나는 오빠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도 뭔가 돕고 싶은데!’

마음속으로는 당장이고 뛰쳐나가 저 무리에 끼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D급 비전투계인 데다 일반인 수준의 스탯을 가진 희나는 저기에 가 봤자 힘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게 뻔했다.

그런 희나로서는 발만 동동거리며 아수라장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

오빠를 조준하고 있는 저격수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저격수는 희나와 멀지 않은 거리에 숨어, 난동 피우는 사람들을 한 명씩 쏘아 넘기고 있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희나의 오빠에게 총부리를 겨눈 건 썩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총구가 오빠를 향했고, 손가락이 당장이고 움직일 듯 꿈틀댔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희나에게는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안 돼!’

희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격수를 저지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적어도 총탄이 엇나가게는 해야 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생각할 틈 따윈 없었다.

“오빠!”

희나는 온 힘을 다해 손에 든 S급 보호의 단검을 집어 던졌다.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쌔애액!

희나의 손을 떠나간 단검은 파공성을 울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체력 8, 근력 5, 민첩 6짜리 스탯으로는 불가능한 속도에, 힘에, 정확성이었다.

‘해충 박멸’ 스킬 보정의 효과였다.

“커흑!”

오빠를 조준하던 저격수는 날아온 단검 손잡이에 관자놀이를 맞고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몸을 몇 번 부르르 떨더니 정신을 잃었다.

“해냈어!”

희나는 오빠를 구해 냈다는 기쁨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물론 뒤늦게 자기가 던진 게 S급짜리 아이템이란 사실이 생각나긴 했지만, 그래도 S급 아이템은 오빠의 목숨보다는 덜 귀했다.

“여기에 웬 여자지?”

한편, 기뻐하는 희나의 등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헉.”

뒤를 돌아보니, 무장한 남자 서넛이 서 있었다. 강진현과 노역자들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무리 중 하나로 보였다.

“네년도 저 괴물과 한패냐?”

거친 사내가 날카로운 칼붙이를 꼬나 쥐었다. 예상치 못한 위협에 희나는 뱀 앞에 선 쥐처럼 바짝 얼어붙었다.

‘어떻게 해!’

마침 강진현이 몸을 보호하라고 주고 간 단검까지 던져 버린 상태였다.

오빠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몸이 저절로 움직였는데, 막상 자기가 위험에 처하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몸이 굳었다.

“빨리 해치우고 가자!”

누군가가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칼날이 번뜩였다. 희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다가올 고통을 예견했다.

‘그래도 오빠는 무사하니 됐어!’

그런 생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을 때였다.

휙, 하고 날카롭게 바람 스치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울렸다.

“억!”

그리고 무언가가 후드득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토막 난 시체가 구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으…….’

희나는 차마 눈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풀썩 주저앉았다. 이내 어깨에 뜨끈한 손이 닿는 게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희나는 그제야 부스스 손을 치우고 앞을 볼 수 있었다.

“강진현 헌터님…….”

강진현이었다. 그의 옷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제가 주었던 단검은 어디 두고 어쩌다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가 된 겁니까?”

강진현은 핏자국이 튄 자신의 옷을 감추며 희나의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사람들을 도륙하며 피바다가 된 광경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민간인에게 자신의 잔혹한 손속을 보여 주길 꺼리는 편이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두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희나는 그의 눈에 담긴 옅은 염려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검은…… 누가 오빠를 공격하려고 해서, 그 사람한테 던져 버렸어요. 잃어버린 건 아니에요. 저기에 있어요. 흠집 났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배상해 드릴게요.”

대신 S급 아이템을 짱돌로 사용하였다는 데에 강렬한 죄책감을 느꼈다.

희나는 기절한 저격수를 손가락질했다.

“저 사람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그만…….”

강진현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구는 희나를 내려다보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안 하는 아이템 때문에 무어라 한 게 아닙니다. 아이템 따위보다는 희나 씨같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는 손을 내밀어 주저앉은 희나를 불쑥 일으켜 세웠다.

“상황은 대강 정리했습니다. 이제 강제 노역자들을 모아 함께 게이트로 나갈 생각입니다.”

희나는 강진현을 따라 비탈을 내려갔다. 사람들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S급 헌터인 강진현이란 것을 뒤늦게 알아보았다.

“강진현이다!”

“우리를 구하러 온 건가?”

“강진현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허름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희나와 강진현을 힐끔거렸다.

다만, 가까이 올 용기는 차마 없어 보였다. 강진현의 소름 끼치는 무위를 눈앞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희나는 사람들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채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부쩍 야윈 모습의 오빠밖에 눈에 안 보였다.

“오빠!”

오빠를 부르며 뛰쳐나가자, 동료의 상처를 살피던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희나? 네가 여기 왜……?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꾸나?”

그 모습에 희나는 분통이 터져 꽥 소리를 질렀다.

“야, 이희원 이 바보야! 너야말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돈 벌어 온다며! 그런데 왜 여기서 이 꼴로 이렇게 지내고 있냐고!”

“희, 희나야?”

희나의 오빠인 이희원은 말을 더듬었고, 강진현은 흥분한 치와와 같은 희나의 모습에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렸다.

희나는 넝마 옷을 입은 오빠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울먹였다.

“내가 못살아, 정말! 집에서 놀고먹어도 되니까 앞으로 이깟 헌터니 뭐니 하는 일 다 때려치워! 돈이고 뭐고, 하마터면 오빠까지 잃어버릴 뻔했잖아! 난 이런 거 더는 못 견뎌!”

“걱정 많았구나. 미안해, 희나야.”

희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동생의 등을 토닥였다.

어릴 적부터 저를 달래 주곤 하던 그 익숙한 손길에 희나는 그만 엉, 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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