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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53화 (53/120)

53화. 정력

이틀 전, 벨데메르는 메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소원은 당연히 루이가 건강해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루이는 건강해졌다. 그런데 벨데메르도 건강해지고 말았다. 단전에서 열기가 들끓었다.

힘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벌써 컵을 두 개 깨 먹고, 포크 세 개를 휘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을 뽑아 버렸다.

“무, 문이.”

문밖에 서 있던 르니예는 황당해 말을 잃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문고리가 돌아갔다.

샤피로가 열어 주려나 보다 하고 기다렸는데 돌연 경첩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뽑혔다.

“아니, 이게, 문이 이게, 이렇게 쉽게…….”

르니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 르니예.”

벨데메르는 뽑힌 문을 가뿐히 지탱하고 서서 말했다. 르니예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서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님?”

“문이 아주 약하구나, 샤피로.”

잘 열리지 않기에 힘을 살짝 주었을 뿐인데 뽑히다니. 벨데메르는 혀를 끌끌 찼다.

“더 튼튼하게 고쳐 보겠습니다.”

당황스러웠으나 샤피로는 차분하게 뽑힌 문을 받아 들었다. 그도 아직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벨데메르, 더워요?”

전혀 더운 날씨가 아님에도 벨데메르는 셔츠 단추를 세 개나 풀고 있었다.

“몸에서 열이 나는군.”

“감기 걸렸어요?”

“그런 건 아니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답답한 것뿐이었다. 소원을 하나씩 들어줄수록 기운이 넘쳤다.

르니예의 소원 때문에 처음 조각상에서 나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조각상에 봉인되기 전의 몸 상태를 거의 회복한 것 같았다.

“아픈 건 내가 아니라 그대처럼 보이는데.”

“피곤해서 그래요. 많이 걸었더니.”

르니예는 눈앞에 보이는 계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쉽게 올라가던 계단도 피곤하니 더 높아 보였다.

“그래?”

벨데메르는 난간을 잡으며 한숨을 쉬는 르니예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르니예를 번쩍 들어 올렸다.

“……꺅!”

르니예는 순간 붕 뜨는 두 다리에 깜짝 놀라 벨데메르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베, 벨데메르.”

“힘들다며. 내가 저 위까지 올려다 주지. 그대는 가만히 안겨있기만 해.”

단단한 팔뚝이 르니예의 등허리를 고쳐 잡았다.

“무거울 텐데…….”

“전혀. 뭘 든 것 같지도 않군.”

그 말을 하면서 벨데메르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대는 너무 가벼워. 살을 더 찌울 필요가 있겠어.”

르니예는 여전히 앙상히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이래서야 언제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벨데메르, 더 살찌우면 나 굴러다닐지도 몰라요.”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그때도 내가 들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귓가로 흘러드는 달콤한 농담에 르니예는 붉어지는 얼굴을 숨기려 벨데메르의 목덜미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건 좀 잘못된 선택이었다. 벨데메르는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르니예의 숨결에 이를 악물었다.

간질거리는 감각과 함께 단전에서부터 열이 올랐다. 그래, 이번에는 확실히 더웠다.

“르니예.”

르니예를 내려놓고도 벨데메르는 그 허리를 감싼 손을 풀지 않았다. 열감으로 충혈된 그의 눈을 보며 르니예가 물었다.

“창문을 좀 열까요?”

“아니.”

“열어야 할 것 같은데.”

벨데메르의 품에서 빠져나온 르니예는 창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

“창문도 뽑으려고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농담 같은 진담을 말하며 르니예가 벨데메르를 말렸다. 벨데메르는 당장이라도 르니예를 품 안에 가두고 싶었다.

창문이 두 개만 더 있었어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좀 괜찮죠?”

“전혀.”

찬 바람으로 식힐 수 있는 열기였다면, 벌써 얼음물에 들어가 있겠지.

벨데메르는 분출되지 못한 열에 괜히 셔츠 깃을 잡고 흔들었다. 그 바람에 셔츠 단추가 하나 톡 떨어져 나갔다.

단추는 데굴데굴 굴러서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여기 어디로 들어갔는데?”

르니예는 단추가 굴러 들어간 지점 부근에 쪼그려 앉아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지금 꼭 주워야 하나?”

“금방 주워요.”

벨데메르는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침대로 가 침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저기 있군.”

“……네, 저기, 있네요.”

르니예는 두 눈을 깜박이며 단추를 주웠다. 벨데메르가 아무렇게 놓아 버린 침대에서 쿵- 소리가 났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군, 르니예.”

“무, 뭐 가요?”

“나를 애태우려고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벨데메르는 르니예를 천천히 침대로 몰았다. 뒷걸음질을 치던 르니예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결국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그대를 원한다는 걸 알잖아.”

벨데메르는 돌아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 르니예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가질 차례였다.

“그, 그러니까…….”

“그대도 나를 원하고.”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귓바퀴를 은근히 매만지던 손이 르니예의 턱 선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를 스쳤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더는 문제가 없지 않나.”

르니예가 저를 싫어한다면 모르지만, 그녀는 조각상인 자신을 보고 반해 소원까지 빈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르니예가 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벨데메르는 서서히 르니예를 향해 다가갔다.

곧이어 르니예의 등이 매트리스 위에 닿았고, 그 위로 벨데메르의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일 층에서는,

“……꿀벌, 네가 손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샤피로가 홀로 고군분투하며 문을 고쳤다.

* * *

다음 날, 르니예는 오후가 되기 직전에야 눈을 떴다. 더 자고 싶었지만 갈증이 심했다.

“아!”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물컵을 가져다 대자 팅팅 부어오른 입술이 따끔하게 아팠다.

이것은 어제 솟구치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한 벨데메르의 탓이었다. 그리고 벨데메르를 거부하지 못한 르니예의 탓도 조금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에니한테 엄청 놀림당하겠는데.”

곤란하다, 곤란해. 르니예는 거울을 보며 입술을 톡 건드리다가, 또 따끔 아픈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벨데메르는 제가 자신에게 반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르니예, 이제 일어났군. 아침, 아니, 점심 먹을 시간이야.”

벨데메르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귀신같이 벨데메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르니예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또 아릿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얼음찜질이라도 해야지, 안 되겠어.

“어제 나 때문에 너무 무리했나 보군.”

벨데메르는 퉁퉁 부은 입술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가 꼭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아 르니예는 흠칫했다.

“약이라도 발라야 하나.”

“그 정도는 아니고요.”

르니예는 그가 입술로 손을 뻗으려 하는 것을 덥석 잡았다. 그랬다가 또 그렇고 그런 분위기가 잡히면, 이번엔 입술에 피가 날 것이다.

“얼른 내려가요.”

“그러지.”

르니예는 손을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벨데메르가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며 고쳐 잡는 바람에, 그럴 기회를 놓쳤다.

“저, 저기, 벨데메르.”

손깍지라니, 이건 너무 당황스럽잖아. 꼭 연인 같고, 사이 좋은 신혼부부 같고. 물론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가 좋은 남편이 되어 주겠다고 했을 때. 하지만 그때와 느낌이 달랐다. 너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잡는 손은, 부부인 척할 때 잡는 손과 달랐다.

“왜? 아직도 피곤한가? 안고 내려갈까?”

“아니에요. 내려갈 수 있어요.”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어지러웠다. 심장이 빨리 뛰어서 그런 걸까.

* * *

벨데메르에게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싫지도 않다.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뭘 두고 온 것처럼 찜찜한지 모르겠다.

“어르신, 저 왔어요.”

그런 와중에도 르니예는 벨데메르의 소원 개수를 채워 주기 위해 점술가 노파를 만나러 왔다.

“어서 오게. 여기 앉고.”

노파는 이가 나간 찻잔에 뜨거운 차를 잔뜩 부어 건넸다.

“감사합니다.”

르니예는 예의상 차를 홀짝였다.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향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심란했던 마음이 한층 진정되었다.

“그런데 찻잔이 왜 세 개예요?”

“한 사람 더 올 거거든.”

노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힘없는 목소리로 “계세요”라고 속삭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르니예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와 르니예는 서로 어색해하면서도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쪽이 소원을 빌고 싶어 하는 당사자야. 제인이라고, 서로 인사해.”

“아, 안녕하세요.”

제인이 손을 내밀었다. 르니예는 그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제인에게는 무슨 소원이 있는 걸까?

안색이 파리한 걸 보니 제인도 어디가 아픈 건가.

“정말 소원을 들어주시나요?”

“어떤 소원이냐에 따라서 달라요. 들어줄 수 없는 소원도 있거든요. 누굴 죽여 달라 이런 건 안 되고요.”

제인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속삭이는 것보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런 소원은 되나요?”

“어떤 소원인데요?”

“제 남편이 죽어서도 저만 사랑하게 해 달라는 소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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