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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6화 (56/163)

56화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메이아는 고개를 돌려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멍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눈빛과 마주치자 그를 불렀다.

“대공님?”

“예.”

“너무 가까이 붙어 앉으신 거 아니에요?”

“불편하시나요?”

자꾸만 옆에서 그의 체향이 느껴지자 그의 곁을 좀 더 파고들며 그 향을 맡고만 싶어진다. 이게 불편하다는 감정인 걸까? 아니,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한데…….

“불편한 건 아니지만…….”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말을 듣고 금방 축 처지는 모습이 되었다.

가까이 붙어 앉으면 안 되는 건가, 설마 기분 나쁜 건가. 그저 그녀를 기쁘게 해 주고만 싶었다.

마음속과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워스트가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마음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메이아는 손을 뻗어 테오도르의 뺨을 만졌다.

“왜 그런 표정 지으세요, 테오도르 대공님?”

“……제가 곁에 앉은 게 싫으신가 해서.”

“아직 절 모르시네요. 전 싫으면 한 공간에 함께 있지 않아요.”

그녀가 언제나 이렇게 황홀한 목소리와 마음을 흔드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테오도르는 꼭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것 같았다. 아프지만 달콤하고, 죽을 만큼 좋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붙어 앉으면 정분난다고 하던데…….”

“전 좋습니다.”

테오도르의 말에 메이아는 그의 얼굴에서 손을 뗄 수도 없었고, 시선조차 옮길 수 없었다.

맨날 눈을 피하며 도망 다니며 부끄러워하던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둘은 서로의 뺨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테오도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테오도르 대공님.”

“……예.”

더는 이곳에 있다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자꾸만 그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어지고, 껴안고 싶어지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전 이 책 들고 가서 방에서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이만 나가 봐요.”

“알겠습니다.”

테오도르는 아쉬웠지만 새빨개진 메이아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가시죠, 공녀님.”

약간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메이아의 뒤를 테오도르가 미소 지으며 뒤따라갔다.

그리고 서재에 들어왔을 때처럼 서재의 문을 여는 주문을 외웠다.

“오픈.”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오픈!”

서재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테오도르가 문을 열기 위해 주문을 외워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연히 문이 열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동어는 바뀐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이 왜 열리지 않는 거지……? 시동어가 잘못될 리도 없는데…….”

테오도르는 시동어가 듣지 않아 당황해했다.

“글쎄요. 저도 문이 열리지 않은 건 처음 보는데요. 제가 한 번 살펴볼게요.”

메이아는 문을 쓰다듬고 살펴보았지만 딱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시동어가 먹히지 않은 이유라면 시동어를 잘못 말했을 때뿐이다. 하지만 테오도르의 당황스러움에는 거짓이 없었다.

“오픈! 오픈! 왜 안 열리지?”

당황하며 계속 시동어를 외치는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공녀님.”

테오도르는 내심 두근거리고 신나는 자신의 마음을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최대한 비참하고 막막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보다 키가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속으로는 은근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메이아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믿음직스럽게 말했다.

“희한한 일이네요.”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이 왜 안 열리는지 계속 살폈지만 딱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

그 시각, 아그니타와 푸링은 마차를 타고 플로렌스 대공저로 들어가는 커다란 입구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아그니타는 플로렌스 대공가 앞까지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질주를 했다.

당연히 푸링은 달리는 아그니타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여기가 바로 플로렌스 대공가!”

“에구! 이 녀석아! 천천히 좀 가거라.”

“빨리 아가씨를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아그니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푸링에게 말했다.

보다 못한 쥬안이 푸링의 편을 들며 아그니타에게 말했다.

“아그니타! 푸링님을 잘 모시고 가야지.”

“알았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마탑에 이르고 드디어 푸링과 함께 플로렌스 대공저 앞에 도착했다.

대공저 입구 앞을 지키던 기사들은 대마법사 푸링과 쥬안 그리고 새로운 시녀 한 명이 온 걸 곧바로 베나블에게 보고했다.

플로렌스 대공가의 집무실에 모인 베나블과 사용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테오도르와 메이아의 감금 아니, 둘의 앞길을 진심을 다해 축복하고 있던 중이었다.

“요번 작전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쟈스민 부인, 도움 감사합니다.”

쟈스민 부인은 잔을 들며 웃었다.

“우리 대공가의 앞날이 화창하군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플로렌스 대공가 사용인들은 최선을 다해 공녀님께서 대공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작전 성공의 축하 시간은 짧았다.

똑똑.

노크가 다섯 번 울리기 시작했다. 노크 다섯 번은 ‘긴급 상황’을 알리는 사용인들만의 신호였다.

그걸 눈치를 챈 베나블은 문 쪽을 쳐다보고 말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거지?”

부집사 켈베인이 들어와 긴급 상황을 보고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 공녀님을 찾아온 대마법사 푸링 님과 쥬안 및 아그니타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헤만은 인상을 썼다.

“쥬안이 벌써 오다니…….”

“왜 하필…….”

베나블은 그 말에 잔을 다시 내려놓은 뒤,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긴장할 거 없습니다, 여러분. 플로렌스 대공가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에 놀라며 호들갑 떨면 안 되는 일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나갑시다.”

베나블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니타는 대공저에 들어오자마자 응접실로 안내받은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이아를 만나고 싶다 말했지만 베나블 집사는 서재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까진 이해했다. 그녀는 책을 매우 사랑하니 말이다. 다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플로렌스 대공도 함께 단둘이 서재에 있다는 것이다!

기분 나쁜 예감이 계속 마음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처럼 콸콸 넘쳐 흘렀다.

“서재는 언제쯤 가신 거예요?”

아그니타의 질문에 베나블이 웃으며 답했다.

“얼마 되지 않으셨습니다. 한 10분쯤 되신 것 같습니다.”

베나블은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으며 아그니타의 질문에 거짓으로 답했다. 사실 메이아와 테오도르가 서재에 들어간 지 세 시간은 넘었다.

아그니타는 자신의 앞에 있는 딸기 차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저희 아가씨는 언제쯤 오시나요?”

“흠흠, 기다리시면 오실 겁니다. 워낙 책을 좋아하시니 말입니다.”

베나블의 말을 듣고, 아그니타는 쥬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빠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아가씨 좀 찾아봐.”

아그니타의 말에 쥬안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권능을 차단하셨어.”

“뭐?”

그림자 일족의 권능은 주인의 의지로 차단할 수가 있다. 힘을 차단당한 그림자 일족은 주인이 부를 때까지 그림자 밖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아가씨가 부르실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니, 오빠는 차단까지 당하고 뭐 하는 거야!”

“너 데리러 갔잖아!”

“그러면 미리 아가씨한테 권능 차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어야지!”

“나도 내가 권능 차단당할 줄 몰랐어. 아그니타! 그리고 아가씨가 권능 차단하는 거에 내가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남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던 베나블은 허허거리며 마음속으로 춤을 추었다.

권능을 차단하고 자신의 주인과 단둘이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다정한 예비 대공 부부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보였다!

하지만 침착한 표정으로 있어야 한다. 싸우는 남매 앞에서 좋아하는 티를 낼 순 없었다.

옆에 있던 한나 또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는 걸 보았다.

그녀 역시 베테랑 시녀장답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공손히 있었다.

“베나블 집사님.”

푸링이 베나블을 불렀다.

“예, 대마법사 푸링 님. 말씀을 편하게 하십시오.”

“말 편하게 하는 건 차차 하겠습니다. 하룻밤은 머물고 갈 예정이니 방을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예, 여기 한나 시녀장이 안내해 줄 겁니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푸링 님.”

푸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쥬안과 아그니타에게 말했다.

“메이아 공녀님은 책 읽을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하시지. 너희도 잘 알지?”

푸링의 말에 남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방으로 돌아가 쉬고 있다가 아가씨가 서재에서 나오면 보자꾸나.”

푸링의 말에 쥬안은 말했다.

“전 아가씨 서재 문 앞에 나오실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저도 오빠 의견에 찬성합니다.”

“나 혼자 있을 거다, 아그니타.”

쥬안의 말에 아그니타는 발끈했다.

“나도 기다릴 거야!”

푸링은 남매의 사소한 말싸움을 들으며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똑똑.

“퀴니입니다!”

베나블은 퀴니의 방문에 얼른 다가가 문을 열었다. 부집사 켈베인에게 말해 퀴니를 얼른 부르도록 했다. 베나블은 퀴니와의 반가운 만남이 메이아를 찾으려고 하는 이들의 행동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퀴니는 들어오자마자 푸링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바로 쥬안과 아그니타를 기쁘게 맞이했다.

“도착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뛰어왔습니다! 아그니타도 쥬안도 아주 오래간만이구나!”

응접실에서 나가려 했던 푸링은 갑작스러운 퀴니의 방문에 기뻐했다.

“퀴니, 오래간만일세.”

“퀴니 할아버지!”

아그니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퀴니에게 달려가 안겼다.

“안 본 사이에 더 예뻐졌구나! 아그니타.”

퀴니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아그니타는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정말 보고 싶은데 서재에 계신대요.”

“그러냐? 난 술 한잔하고 내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터라.”

“술 좀 줄이시라고 그리 말씀드렸는데도.”

“그러기엔 대공가에는 좋은 술들이 많단다, 하하.”

투덜거리는 아그니타 옆으로 쥬안이 다가와 퀴니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퀴니 님.”

“쥬안,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나저나 공작저는 어떠냐?”

퀴니의 말에 아그니타가 대신 답했다.

“말도 마세요. 저 독방에 갇혀 있다가 그냥 공작저를 뒤집고 탈출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아그니타는 퀴니가 떠난 직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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