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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107)화 (107/123)
  • 107.

    네 사람이 그동안 해온 조사 덕분에 흑마법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살필 수 있었다.

    “내 지원 없이 움직이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고마워.”

    에리스텔라가 네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네? 방금 뭐라고…….”

    “저희한테 한 말입니까?”

    네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심각해졌다.

    왜 그러지. 내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했나. 에리스텔라가 의아해할 때였다.

    “전하가 우리한테 고맙다고 하다니…… 정말 괜찮으신 거 맞는 겁니까. 혹시 흑마법에 당하면서 머리에도…….”

    브릭이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에리스텔라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동시에 브릭의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더니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으아아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농담이 과했습니다! 저, 전하 저 무섭습니다……!”

    그제야 에리스텔라가 브릭을 곱게 내려주었다.

    “저 높은 곳 무서워하시는 거 아시면서…… 저처럼 연약한 사람을 괴롭히시면 안 됩니다.”

    브릭의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약한 척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에리스텔라는 한탄했다.

    나는 정말 착해지기는 어려운 거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더 조사해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대신 돌아오셨으니 그동안의 임금은 물론이고 이번 일은 두 배로 청구할 겁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브릭이 어느새 단호한 얼굴로 네 사람을 대표해서 으름장을 놓았다.

    에리스텔라의 한쪽 눈썹이 씰룩였다.

    “고작 두 배?”

    “…….”

    “배포를 좀 더 크게 가져봐. 얼마를 상상하든 그 이상을 줄 거니까.”

    브릭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하께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

    역시 고마움은 말 대신 돈으로 표현해야 제대로 통하는구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은 누구보다 그들이 고맙고 반가운 건 에리스텔라였다.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간절하게 필요했다.

    ***

    에리스텔라는 황궁으로 향했다.

    오늘 디아클렌 자작가의 가족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 해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디아클렌 자작은 이상할 정도로 순순하게 조사에 협조하는 중이야.”

    특히, 데클렌이 얌전히 붙잡혀 있다는 게 수상했다.

    “일부러 혼란을 가중시키는 거 아니고?”

    “딱히 그런 거 같지는 않아.”

    데클렌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지. 그래서 오늘 그를 한번 떠볼 작정이었다.

    ***

    그동안 황궁과 마법 기사단이 주도한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디아클렌 영지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소환되었다.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이 무슨 조력을 하고 있을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 데클렌에 관해서 아는지도.

    “흐, 흑마법이라니요.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희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흑마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사색이 되어 모든 것을 부정했다.

    “저희는 결백합니다. 흑마법은커녕 마법에 관해서도 잘 모릅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작은 영지에서 적당히 사는 이들입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은 생각도 못 합니다.”

    “저, 저희 애는요? 저희 애가 겁이 많아서 이런 곳에서 잘 버티질 못할 텐데…….”

    설마 디아클렌, 데클렌을 말하는 건가.

    저들에게는 그가 ‘겁이 많은 아이’에 불과한 건가 새삼스러울 때였다.

    “이제 고작해야 열여섯밖에 안 먹은 아이입니다. 부디 그 아이는 풀어 주십시오.”

    그들이 걱정하는 건 다른 자식이었다. 마치 디아클렌 자작은 없는 자식인 것처럼 그들은 늦둥이 아들을 걱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에리스텔라가 데클렌을 조사하기 위해 마주 앉아 있는 심문실.

    디아클렌 자작가의 가족들이 조사를 받는 상황은 마법으로 모두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정이라고는 안 가는 족속들이네.”

    데클렌이 그런 그들이 하는 행동을 팔짱을 낀 채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이걸 저한테 왜 보여 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소용없을 겁니다.”

    그리고는 에리스텔라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저들은 그저 가족이라는 허울을 갖고 있으려 둔 존재니까요.”

    “그럼 진짜 가족이 아냐?”

    조사한 결과 그가 디아클렌 자작가의 장자인 것은 틀림없었다.

    단순한 기록뿐만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까지 모두 확인한 내용이었다.

    “가족이라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그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 몸에 같은 피가 흐르냐고 묻는다면 가족이 맞습니다.”

    “…….”

    “하지만 그게 전부죠.”

    데클렌의 얼굴에는 냉기가 뚝뚝 흘렀다. 전혀 감정이라고는 한 조각도 깃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디아클렌 소공자였던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부모를 진정한 가족이라고 여긴 적 없으니까요.”

    “……?”

    “뭐, 저야 아무런 감정도 안 들고요.”

    “그럼 저들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건가.”

    에리스텔라가 통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를 떠보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데클렌이 마법 영상을 향해 눈을 한 번 찡긋거리는데, 곧바로 영상이 일그러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저 이제 쓸모가 다했으니 귀찮은 일이 하나 사라졌네요.”

    데클렌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

    디아클렌 자작가의 가족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저희는 그저 주는 돈만 받아 썼을 뿐입니다. 가문의 주인이 일가족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무슨 짓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지는 몰라도 저희 죄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받은 돈밖에 없습니다.”

    “디아클렌 자작에 대해 의심 가는 점은 없었나?”

    조사관의 질문에 그들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놈이야, 원래 어릴 때부터 찜찜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말대답도 제대로 못 하는 애였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바뀌더니.”

    그가 갑자기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때부터 얼마나 약아 빠지고 계산적인지. 저희도 가까이하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가까이 두기는 불쾌하나 돈은 열심히 받아먹었다는 뜻이었다.

    흑마법과 관련이 되어 있든 아니든 음침하고 뻔뻔한 이들이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말에 크게 거짓은 없었다.

    디아클렌 자작의 사업에 대해 아는 게 정말로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조사관들조차 디아클렌 자작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질 나쁜 부모라는 게 결과라면 결과였다.

    ‘근데 디아클렌 자작이 어린 시절 갑자기 달라졌다는 그 말도 진짜일까.’

    단 하나, 그 말만은 신경 쓰였다.

    혹시 그게 디아클렌 자작과 데클렌이 공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

    에리스텔라의 이전 동료였던 네 사람에게도 디아클렌 자작가에 관한 조사를 부탁해 두었는데, 그들에게서 긴급 서신이 왔다.

    - 디아클렌 자작 관련 수상한 장소를 발견. 단, 직접 접근하기에는 위험성이 높아서 내부는 확인 불가. -

    위치를 표기해 놓은 지도와 함께였다.

    그들의 직접 발로 뛴 정보는 정확도가 굉장히 높았다. 에리스텔라는 때때로 황궁 조사단보다 그들을 더 신뢰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 이건 무조건 확인해 봐야 했다.

    “위험하다는 걸 보니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럼 같이 가.”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직접 나섰다.

    지도에 표시된 장소는 꽤 험난한 산속에 있었다.

    “광산 아니야?”

    지형도 그렇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봐도 광산이 틀림없었다.

    “그럼 마력석을 이용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그때 물건을 확인할 때, 딱히 마력석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어떤 방법을 쓴 거지.

    게다가 대량의 물건을 마력석을 이용해 만들려면 공급량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일단 안을 확인해 보는 게 먼저겠네.”

    아직 광산에는 채굴하는 인부들이 있었다.

    “내가 한 번에 모두 기절시킬게. 그게 피해가 가장 적어.”

    인부들이 흑마법에 조력하는 이들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피해는 적을수록 좋았다.

    “다 기절했어. 이제 들어가자.”

    에리스텔라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잠재웠다. 혹시 모르니 한쪽으로 사람들을 정리해 놓고.

    광산 안을 확인했다.

    “마력석이 맞는 거 같아.”

    “잠깐만. 마력석 같기는 한데 뭔가 좀 다른 거 같은데?”

    “다르다고?”

    에리스텔라가 의아해하며 마력석을 자세히 살폈다.

    흐릿한 물결 모양이 눈에 띄었다.

    “이거…….”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의미심장하게 가늘어졌다.

    “……흑마력?”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력석에서 흑마력의 흐름이 느껴질 수 있나?

    “설마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인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건 아닌 거 같아. 분명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이야.”

    “그럼…… 흑마력이 자연으로 발생하기라도 한 거야?”

    “글쎄.”

    하인리시온 역시 혼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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