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108)화 (108/123)
  • 108.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은 서둘러 광산 곳곳을 자세히 살폈다. 인부들이 나르던 것들도 모두 확인해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지만.

    아무리 봐도 조작된 흔적은 없었다.

    “일단 이걸 가져가서 좀 더 자세하게 조사해 보자. 그리고 그대까지 이곳은 폐쇄시켜야 해.”

    그리고 디아클렌 자작가가 유통하던 물건을 모두 회수하고 광산을 폐쇄하고서 출입을 철저하게 막았다.

    앞으로 흑마력이 나오는 광산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할 예정이었다.

    디아클렌 자작가의 사업에 관련되어 있던 자들도 다시 한번 조사를 하고.

    모든 과정을 거친 후, 나온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자연에서 나오는 흑마력석입니다. 이걸로 물건을 만들어 낸 걸 확인했습니다.”

    데클렌이 어떤 얼굴로 이 결과를 받아들일지 벌써 예상이 되었다.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흑마력석에 대해서는 기밀로 다룬 채 조사하는 중이었다.

    에리스텔라는 바깥에서 조사관이 디아클렌 자작을 조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디아클렌 자작이 눈앞에 놓여있는 흑마력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게 흑마력석이라뇨?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디아클렌 자작이 놀란 듯 전혀 몰랐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광산에 가서 직접 확인한 거다. 발뺌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광산은……!”

    “그래. 디아클렌 자작이 아무도 모르게 운영하던 광산 말이다.”

    조사관의 추궁에 디아클렌 자작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결국, 디아클렌 자작이 결정을 내린 듯 순순히 자백했다.

    “사실 제가 우연히 마력석이 나오는 광산을 발견했습니다.”

    사실을 털어놓던 디아클렌 자작의 시선이 조사관을 비켜 나가 옆에 있는 벽에 닿았다.

    “…….”

    그곳은 에리스텔라가 서 있는 곳이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는 보일 리도 없는데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에리스텔라의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력석을 발견하면 제국에 보고를 하고 채굴에 관한 심의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광산은 채굴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험과 사고에 노출되기 때문에 제국의 허가와 관리를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저처럼 작은 가문은 다른 사람에게 뺏기는 일이 다반사인 건 아실 겁니다.”

    그러니 결국 마력석 광산은 몇몇 소수의 가문만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광산을 발견한 걸 비밀에 부쳤습니다.”

    그리고 광산을 개발하고 거기서 채굴한 마력석을 이용해 최상의 배합 비율을 찾아냈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최대한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럼 마법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거짓이었군.”

    “……죄송합니다. 그래야 상품 가치가 높아져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 마력석이 흑마력석이란 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마력석과는 다르다는 걸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것만은 전혀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력석은 모두 똑같은 모양이 아닌데다가 각각의 무늬가 있었다.

    “그러니 저도 그저 다른 마력석과는 다른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게 평범한 마력석이 아닌 자연에서 나온 흑마력인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세상에 누가 그런 게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디아클렌 자작의 해명을 듣고 있던 에리스텔라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얼핏 들으면 일리 있어 보이는 말이네.’

    하지만 전부 가짜다.

    우연히 흑마력석이 있는 곳을 발견하다니.

    세상에 그런 편리한 우연이 어디 있나.

    ‘잠깐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디선가 일반적인 마력석과는 반대의 능력을 지닌 마력석이 존재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흑마력석을 말한 거였나.

    ‘어디서 봤더라.’

    모호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흑마력석을 말하는 것 같았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기는데.

    ‘어느 도서관에서 봤던 거 같은데. 황궁……? 아니, 내가 여우가 된 후에….’

    조금만 더 생각하면 떠오를 것도 같은데.

    하지만 에리스텔라의 생각인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순수한 마력석이 아니어도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주고 싶었습니다.”

    참 웃기는 일이다.

    그의 말은 분명 맞는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귀족들은 즐거워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덕분에 편리했으니까.

    그렇기에 사람들을 쉽게 매혹시킬 수도 있었다.

    지금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숨겨 놓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회수 작업이 더뎌지는 중이었다.

    한 번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문제가 생기고는 하니까.

    “물론,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유통한 책임은 지겠습니다. 그리고 마법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죄 역시 받겠습니다.”

    디아클렌 자작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반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저것도 전부 연기하는 거지만.

    “하지만 흑마법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만 철저하게 부정한 채로. 게다가 증거가 없으니 계속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

    ***

    조사는 며칠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대화가 반복되었고, 그 이상의 수확은 없었다.

    “일단 디아클렌 자작의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으니, 광산 무단 개발 및 채굴 그리고 사기로 죄를 묻기로 했대.”

    황제가 고민 끝에 디아클렌 자작에 대해 내린 결정을 하인리시온이 알려 주었다.

    “그다음에 흑마법에 대해서도 증거를 찾아내겠다는 계획이셔.”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이지.”

    에리스텔라 역시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그걸 디아클렌 자작은 아직 모르지?”

    “내일 발표하고 수감시키기로 했어.”

    지금은 무슨 의도인지 몰라도 자신의 의지로 순순히 잡혀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강제로 그에게 죄를 물으려고 하는 순간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사실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을 할 수 없는데.’

    그래도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에리스텔라뿐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나도 내일 참석하는 게 좋겠어.”

    “같이 가.”

    하인리시온이 에리스텔라의 걱정을 눈치채고 말했다.

    ***

    다음 날,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황궁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런데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디아클렌 자작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급박하게 달려온 기사단장이 현 상황을 알려 왔다.

    “계속 감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지다니?”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마법을 쓴 흔적도 없습니다.”

    에리스텔라만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나라면 할 수 있어. 그러니 데클렌도 할 수 있겠지.’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는 것쯤이야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제도를 관통하는 성문은 모두 닫고 수색을 이어 나갔지만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마법사에게 거리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디아클렌 자작가의 사업에 대한 제재는 들어간 거지?”

    “사업에 관한 모든 서류는 물론이고 자금까지 압수했어.”

    “그나마 다행이네.”

    에리스텔라는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사라졌으니 책임을 물을 곳도 없어졌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지.

    황제가 낮게 중얼거리며 기사단장을 향해 지시했다.

    “일단 디아클렌 자작을 추적하라.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쫓아야 한다. 제국에 위해를 가하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황제가 엄중하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디아클렌 자작을 잡는 건 불가능할 거다.

    “못 잡을 거야.”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황제는 불가능한 걸 안다고 해도 쉽게 포기해선 안 됐다. 그게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못 잡을 거라고 한 건 말 그대로 디아클렌 자작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거란 의미야.”

    그러니 디아클렌 자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사라져?”

    “응.”

    황제가 의아해하며 묻자 에리스텔라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마도…….

    “그래도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해 줘. 큰 피해는 없는 게 좋잖아.”

    데클렌이 작정하면 상대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없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상대하는 건 피해만 키울 뿐이었다.

    황제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결국엔 너한테 의지하겠구나.”

    “그건 당연한 거야.”

    고민할 여지도 그리고 오빠가 책임감을 느낄 문제도 아니라고.

    에리스텔라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사실 겉으로 웃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마도 디아클렌 자작의 모습을 버렸겠지.’

    그러기로 결심해서 사라진 거다.

    둘 다 그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 디아클렌 자작을 잡으려고 하면 찾을 수 없을 거다.

    데클렌을 잡는다고 해도 디아클렌 자작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소용도 없을 거고.

    에리스텔라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데클렌일 것이다.

    그때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것들도 모두 드러내겠지.

    그러니 그때까지 강해지자.

    데클렌을 만났을 때 그를 제압하고 모든 걸 끝낼 수 있게.

    에리스텔라는 그날을 대비해 준비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