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보름간의 한국 체류를 예상하고 왔던 은준은 겨우 이틀만에 방구석 폐인으로 전락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돌아온 것을 체류라고 하기는 우습지만, 최근 2년을 생각해보면 한국보다는 아프리카에 있던 시간이 더 많으니 체류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왔으면 좀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밖에서 활동적으로 생활해야지...”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에 즐거워하셨던 그의 어머니도 하루 반짝 외출했다 들어온 뒤로 나갈 생각을 않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렇지만 열 몇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빗자루로 후두러 쫒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눈치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 덤으로 아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니 강하게 나갈수도 없는 어머니다.
“내가 뭐 놀고 있나? 전부 다 아프리카로 돌아갈 때 필요한 것들 챙기는 중이잖아요.”
그러면서 무슨무슨 기계를 사니, 무슨무슨 데이터를 수집하니 하며 모니터 속 화면이 정신 없다. 평소에 컴퓨터를 하면 어지럽다며 예전에 컴퓨터를 배운 뒤로 거의 손을 안대는 그의 어머니로서는 아들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마디 보탰을 뿐이다.
“필요한게 있으면 나가서 보고 골라야고, 정보가 필요하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야지, 인터넷에 떠도는건 다 헛지식이야...”
평소 책과 신문의 신봉자였던 은준의 어머니는 허구헌날 나오는 인터넷에 대한 안좋은 기사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중 진짜는 100중 1도 안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은준이 찾는 정보 즉 데이터는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 굳이 배우별이나 날짜별로 나눌 필요는 없겠지. 일단 스샷만 전부 받은 다음에 일차로 거르고, 영상을 받으면서 포토샵빨인걸 이차로 거른 다음에 마지막에 쭉 훑어보면서 삼차로 거르면 될거야.”
하루에도 수십편씩 새로 올라오는 영상물이었던 탓에 그가 확인해야 할 분량이 어마어마 했지만, 벤시몽의 인터넷 환경을 생각하며 눈에 힘을 주고 모니터를 살폈다.
물론 이런 영상물을 단지 그 혼자 보며 손장난을 하려는 목적으로 다운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다만 야와 얌에게 보여주며 시청각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p2p사이트에선 각종 게임이 받아졌다. 주로 RPG와 FPS게임이었고 가끔 ‘시빌라이제이션5’와 같은 유명한 게임도 은준의 검색망에 올라 외장하드로 직행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다운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정품CD도 구매를 했다. 비록 부피 때문에 아프리카 까지 가져가기 번거로와 외장하드에 털어넣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겨우 몇 만원에 양심을 팔 생각은 없었다.
‘물론 이미 불법 다운을 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품도 사주잖아?’
다만 며칠 후 택배로 박스가 쏟아져들어오고 그것이 전부 게임이란 것을 알자 은준의 어머니의 화가 그에게 쏟아졌음은 훗날의 일이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게임이야!”
영화도 덤이었다. 국내 국외 영화를 막론하고 그의 취향에 맞는 장르의 새로 나온 영화들도 전부 다운 리스트에 추가되었고, 곧장 테라바이트 단위의 외장하드에 쏙쏙 들어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는 것은 성인 영상물이었다.
당연하지만 은준의 위시리스트엔 이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다만 그가 심심할 때 시간을 달래줄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것들이었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일상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각종 현대의 이기들이었다.
노트북이 아닌 고사양 데스크탑 컴퓨터와 야, 얌과 함께 즐기기 위한 Wii 게임기. 부드러운 착용감을 자랑하는 고급스러운 메이드 인 코리아 속옷과 양말과 같은 의복류. 매일 걷는게 일이다보니 닳고 닳은 신발을 대신할 작업화와 일반 신발들. 거기에 특별히 야와 얌을 위한 세련된 의상과 수영복들 등등.
아프리카에서 수영복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 싶겠지만, 은준 스스로 했던 약속 즉 매 수확시기 때마다 자신 스스로를 위한 선물을 해주기로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저번에는 셋이 올라타도 충분할 커다란 침대를 자신에게 선물했었고, 이번엔 벤시몽 저택 뒷마당에 야외 수영장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간 아프리카의 더위 때문에 은준은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돈이 있으니 자신에게 수영장을 선물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수영장이 생기면 야에게 이런 저런 수영복을 입혀서...”
은준은 생각만해도 즐거운지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의 앞에 펼쳐져있는 쇼핑몰 창에는 낯뜨거운 수영복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의 위시 리스트엔 빙수 기계도 있었다. 얼음을 갈아 팥빙수를 만들어 먹을 계획인 것이다.
은준이 아프리카에 와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의외로 아이스크림 가게와 같은 것들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덥고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다니다 보면 달달하고 차가운 것을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빙수 기계를 가져다가 집에서 직접 팥빙수를 만들어먹을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얼음만 얼려 갈고, 그 위에 깡통팥을 퍼 올리고, 신선한 과일을 잘라 넣으면 아주 쉽게 차가운 팥빙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음... TV는 아프리카에 가서 사야 하나? 비쌀거 같은데. 최신형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프리토리아쯤 되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면 또 문제란 말이야. 있어도 비싸면 굳이 더 비싸게 살 이유도 없고.”
대형 평면 TV를 살펴보고 있는 은준의 고민이 깊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전부 사서 통째로 배나 비행기 편에 보내버리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외장하드와 같은 작은 물건이야 자신의 짐에 넣어가지고 가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빙수 기계나 TV, 컴퓨터와 같은 크고 무거운 것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화물로 짐을 부쳐야 하는데, Importers Code 즉, 수입업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엔 들여오는 화물의 가치가 2,400 US달러를 초과할 수 없었고, 그것도 연 3회 까지만 가능했다. 또한 거래를 목적으로 한 수입은 불가능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으니 이건 은준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TV 하나만으로도 가격 제한에 걸리니 문제는 문제였다.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수입 대행 업체를 통해 물건을 전해 받는 것이었다.
이렇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수입 대행 업체와 견적을 내고 협상을 하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추석 명절도 전과 다를바 없이 무난하게 넘겼다. 2년 만에 만나는 친척들이지만, 사실 그 전에도 거의 명절 아니면 볼 일이 없었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임에도 특별히 더 반갑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은준이 친척들을 반가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이야기나 현재 생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친척들의 걱정과 관심도 있었지만, 미리 준비해둔 이야기로 넘길 수 있었고, 친척 어른들도 은준의 일에 과하게 참견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간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낸 은준은 마지막으로 친구인 준승을 만나고는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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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회광반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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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벤시몽으로 보냈습니다.
지난화는 댓글이 많이 달려서 무척 좋았습니다. 잇힝~ 선추코 감사합니다.
댓글엔 제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것도 있고, 미처 생각지 못한 것도 있고, 이건 좀 다르다 싶었던 내용도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 머리로 생각하는게 그게 그거인듯;; ㅋㅋ77화에 '야를 연주하는' 이라고 쓴 것은 나름 괜찮은 표현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분만 언급을 해주셨네요 ㅜ아! 그리고 투베 언급해주셨는데, 그거 보고 일반란 투베 보니까 정말 1위에 올라있더군요. 깝놀했습니다. 비록 전체 투베는 50위권쯤? 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ㅋㅋ게다가 서평도 올라와있었습니다! 8월 28일자인데, 이제 확인했네요 ㄷㄷ 홍가55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