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야의 이야기가 끝나고 은준은 고민에 빠졌다. 쉽지 않은 선택을 야로부터 종용받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어렸을적 의지할 사람이라곤 자매인 서로 밖에 없어서 평생 함께하자고 약속하며 결혼할 때도 헤어지지 말기로 했다니. 그래서 자매가 한 남자를 공유하겠다는건 무슨 미연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람...'
야의 이야기는 이랬다.
야와 얌이 아주 어렷을적, 그러니까 아직 리소테로 오기 전 가나에서의 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천애고아가 된 야와 얌은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내전 때문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버러지처럼 죽어나가던 시절이라 그녀들을 거둬 돌바줄 사람도 없었고, 겨우 일곱 살, 네 살 먹은 어린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나이가 어리고 여자아이라 남자아이들처럼 소년병으로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행운인것만은 아닌 것이, 당장 굶주림을 면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 야가 더 어린 얌을 업고 다니며 빈 집을 뒤지고 다니고, 그래도 아무것도 찾지 못할땐 종일 굶는 것도 예사였다.
둘은 서서히 죽어갔다. 내전에 고아가 된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신세였지만, 그들을 돌봐줄 어른도 없었다. 내전이란,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던중 처마밑에 주저앉은 야는 얌의 손을 꼭 붙잡고 약속했다. 살자고, 꼭 함께 살아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탈진한 두 자매를 구원한 것은 전도를 왔다가 피난을 가던 천주교의 신부였다. 뉴-카파의 나눔자리 성당에서 고아원을 함께 꾸리고 있는 신부가 바로 그였다.
'그러니까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자매가 한 남편을 공유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이야긴가?'
은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망상에서라면 한번쯤 해봤을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최고의 궁합은 처제와 형부다!'
무슨 패륜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언니 밑에서 둘째로 자란 동생은 자라면서 생긴 트라우마와 같은 것을 언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라 할 수 있는 남편 즉, 형부를 뺐으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고, 남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아내와 닮은 그렇지만 조금 다르면서도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아내의 이미 지나버린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처제로부터 아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또 한편으론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은준이라고 다를 것 하나 없었다. 게다가 자매라고는 하지만 생김새도 닮은 구석이 있는것 같으면서 색다른 면이 있었다. 말 그대로 색色이 달랐다.
뿐만아니라 쌀이 익어 밥까지 된 것은 아니지만, 밥 먹기 전에 국 한숟갈은 벌써 입에 넣은 뒤였다. 그것도 국이 알아서 은준의 입으로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만 좋다면 얌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마누라는 남편이 혼자 어디서 밥상을 받아먹고 있으니 잘 먹는다고 옆에서 어여 먹으라고 손짓까지 하는 형상이었다. 실제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한 지붕 아래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자며 살을 맞대고 살고 있으니 사실상 부부나 다름 없었다. 현지처도 처妻 맞다.
'아아,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뭐하고.'
퉁야? 돈 많다고 남의 나라 와서 자매를 날로 먹었다고 밤중에 찾아올까 무서웠다. 물론 퉁야야 이러저런 꼴도 많이 봐온 사람이고,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 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은준의 괜한 걱정이었다. 다만 퉁야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시간이 지나 은준이 두 여자를 버리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가졌을 것이다.
그나마 아는 교민인 차호중 의사? 교민들 사이에서 처제까지 건드리는 불한당으로 소문나면 어쩌랴.
부모님? 아직 야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분들, 무슨 반응을 보이실지 은준은 상상도 안갔다.
은준의 고민은 오후가 되어도 끝날줄을 몰랐다. 중간중간 너무 머리가 복잡해 모든걸 잊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한 시간도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야다.
야는 은준이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지금까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얼마 안가 결정을 내렸거나, 혹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일은 있었어도 한가지 일로 이렇게 오래 고민하진 않았던 것이다.
야는 얌을 찾았다. 얌은 오전에 마을 아이들과 놀이겸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야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때론 얌의 시선이 은준에게 머물러있기도 했다.
야와 얌은 깊은 대화를 나눴다.
"킴?"
은준은 자신을 부르는 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저녁때인가?"
그는 식사시간이 되어 야가 자신을 부르러 온줄 알았다. 하지만 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얌이었다. 은준은 얌을 보자 지난 새벽 자신의 것을 물고있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야, 얌!"
"킴. 킴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알지 못해요. 하지만 이것이 단지 킴 혼자만의 일은 아닐거에요. 당신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 저에게 털어놔보아요. 그럴수 있죠?"
혼자 풀리지 않는, 풀릴 수 없는 고민에 빠져 끙끙 앓고 있던 은준은 야의 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야...!"
은준은 따뜻한 야의 눈빛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이는 야가 훨씬 어렸지만, 어떤면에선 그녀가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사실은 내가 살던 곳,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언니와 동생을 한 남자라 받아들이는 일은 없어.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그리고 여자도 한 남자와만 결혼을 하지. 그렇지 않은 경우 결혼하지 않은 다른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불륜이라고 하는데, 특히 처제와의 관계라면 패륜이라고하서 해선 안될 일이라고 봐. 그런데 나와 야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았다고해서 동생인 얌을... 물론 벌써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은준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생각하는 자매와의 결합, 그로 인해 받게될 세상의 지탄 등.
그런데 이야기를 끝낸 은준은 고개를 들었다가 야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야...!"
그는 야가 왜 눈물을 글썽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동생인 얌의 신세만 버렸다고 생각하는걸까?'
아프리카에 왔지만, 도시인 뉴-카파에서도 멀리 떨어진 벤시몽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이렇다할 다른 이들과의 교류 없이 생활해온 은준으로선 이곳의 풍습이나 문화에 대해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킴...!"
하지만 야의 눈물은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은준과 이런 관계가 되면서도 한가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은준이 떠나고 난 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은준의 속마음을 들은 야는 그 안에서 그가 평소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가 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은준 스스로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인데, 그가 야와 얌에 대해 이러한 고민을 하였다는 것 자체가, 그가 속으론 이미 야를 자신의 아내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인 얌을 처제로 생각해 그녀와 관계되는 것을 그가 자라며 보아온 관습법대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은준이 속내를 털어놓자, 야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가 가진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라!'
한국에선 한국법을, 리소테에선 리소테의 법을 따르면 될 일이었다. 일부러 여러명의 여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나라로 국적을 변경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이곳에선 한 남자가 두 여자를, 그리고 자매를 부인으로 맞이하여도 문제가 없는 나라다. 은준은 야의 이야기에 자신의 고민중 하나가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날 분위기에 휩쓸린 은준은 자신 소유의 소에 마을로부터 몇 마리의 소를 구입해 야와 얌에게 주는 것으로 두 사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고아인 야와 얌의 것인 소들은 가져갈 처가가 없으니 그대로 셋의 것이 되었다.
야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침대 위에서 얌에게 도장을 찍게된 은준은 다음날 제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곰곰이 따져보았을 때에는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다음이었다.
============================ 작품 후기 ============================
자매덮X. 근데 이런식으로 가버리면 여성 독자분들이 떠날지도 ..ㅜㅜ (있기는 했던가;;?)옆동네에 예전에 연재했던 글 때문에 조금 머리가 복잡한 관계로... 글을 쓰면서도 글이 뭔가 꼬인 기분이 드네요..
서비스님 숫기, 수정했습니다. 고향에선 숩기라고 썼는데, 이게 표준말이 아니었네요 ㄷㄷ미투나님, 쿠폰 감사합니다. 근데 몇장 주셨는지 제가 알지를 못해서.. ㅜㅜ마찬가지로 다른분도 주신 분들이 계실텐데, 어디서 보는지 모르겠어요 ;;; 그래도 감사하빈다.
대청도구영탄님, 걱정하실 필욘 없을것 같아요. 19금 글이 아니기때문에 자세한 묘사는 생략할겁니다. 대충 모호하게... 읽으시면서 원하는쪽으로 생각하시게.. 살짝 늬앙스만 풍기고 생략!ㅋㅋㅋ권우현님,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볼로쟈님, 음.. 절단은 되도록 안하겠습니다.
무한의원님, 오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