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65화 (65/107)

65화

야는 은준이 부르자 그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필요한거라도 있으세요?"

그녀는 항상 은준의 부름에 살갑게 대답을 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을때 잔심부름을 시킨다거나 차를 타오라는 등 번거롭게 하면 귀찮을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그러는 법이 없었다.

야는 은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고용인으로서도 그랬고, 또한 동거인으로서, 애인으로서 까다롭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도시에 나가는 주말이면 시장 구경을 하다 샀는지 *쇼키쇼키란 과일을 까서 자신에게 주기도 하고 손이 거칠어진다며 고무장갑이란걸 사주는 그런 남자였다.

은준에게 있어선 설겆이란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인 까닭도 있고, 야의 손이 매초롬 하면 좋을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걸 사준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친절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은준에게 고용되어 벤시몽에 오기 전, 일을 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게 있었다. 고용인이 편히 앉아있는걸 못참는 주인이나 때리는 백인 고용주, 돈을 주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로 떼먹으려는 고용주 등등.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되어 성당에서 자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에 민감했다. 많이 배우지 못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정되어 있었고, 먼저 성당 고아원을 나간 언니들의 소식을 들을때면 자신도 훗날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은준의 경우엔 손찌검도 없고 까다롭지도 않으며, 오히려 아침이면 우유를 짜온다거나 창고의 닭 둥지에서 달걀을 찾아 꺼내오는 등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마치 고용주가 아니라 자상한 남편처럼 말이다. 아니, 차라리 때리는 남편보다 훨씬 나았다.

다만 잠자리에서 불결하게 입을 사용한다거나 반대로 입으로 해줄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짐승처럼 뒤에 올라타거나 해괴망측한 동작을 시키기도 하며, 최근엔 자꾸만 엉덩이 구멍을 만지려고 하는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은준의 말에 따르자면 그렇게 하는게 평범한 것이라고 하니, 남자라고는 은준이 처음인 그녀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그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따랐다.

물론 아직까진 부끄러움 때문에 엉덩이는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그가 만져줄 때마다 간질간질한 것이 그곳에 은준의 것이 들어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드는 것을 보면 얼마 못가 뒤쪽도 허락을 하지 않을까 가슴이 뛰는 야였다.

은준은 뭐가 필요하냐며 돌아서는 야의 손목을 잡고는 이제 막 치운 식탁의 의자를 빼내어 거기에 앉혔다. 그리고는 정작 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퉁야가 밖으로 나갔는지, 근처에 물을 뜨러 왔다가 기웃거리는 마을 주민은 없는지 살폈다. 그가 하려는 이야기를 혹여 누군가가 듣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어디까지나 그의 추측일 뿐이니 말이다.

저택 안에나 마당에 아무도 없자 이번엔 부엌 창문을 열고 얌이 멀리 있나도 확인했다. 얌은 마을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곧 아침 수업을 할 참인가보다.

주변에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더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은준은 무거운 걸음을 옮겨 야의 옆자리 즉, 식탁 끝의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자신의 신세가 답답하기만 했다. 형부의 침대로 숨어드는 처제라니!

'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과 전쟁인가?'

은준은 다시 생각해보니 사랑과 전쟁보다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맞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침대로 숨어든다는 사실만 가진다면 사랑과 전쟁이 맞지만, 그 전에 얌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모르고 전에 없던 행동을 하는 은준의 모습 때문에 두 눈을 말똥말똥 떠가며 자신을 쳐다보는 야의 모습에 막상 두 사람이 마주 앉아있으려니 우물쭈물 입을 열지를 못했다.

'아, 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하지? 잘못하다간 야가 충격을 받을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확실한 이야기도 아니고, 내 추측일 뿐인데 섣불리 말했다가 야가 얌을 추궁한다거나 해서 얌이 삐뚤어지면 어떡해! 아프리카에도 명예살인이 있던가? 설마 야가 얌을? 아, 아니 그건 이슬람 이야기던가? 또 이야기 하려면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것도 곤욕스럽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은준은 정면돌파 보다는 우회전략을 쓰기로 했다.

"얌은 어떻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불러다놓고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려는듯 하다가 별안간 동생의 안부를 물어보니, 야는 그제서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 졸이던 것을 놓으며 재잘거렸다.

"하아... 얌은 아주 좋아요. 모두 킴 덕분이에요. 주말마다 만나게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방학이라고 저와 함께 머물수 있게 해주니 너무너무 고마워요. 킴은 저의 *포튜나에요."

벤시몽에서 뉴-카파까지는 편도 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다. 보통 일요일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뉴-카파에 다녀오려면 근 9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이니 그것이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야가 모를리가 없었다. 특히 빈둥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은준이 매주 도시에 나가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그래? 그래도 일주일이긴 하지만, 항상 자던 성당도 아니고, 바로 옆방에 잘 모르는 남자도 있는 거잖아? 얌이 불편해하지는 않아?"

"후훗,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성당에서도 아이들끼리 한쪽은 남자애들방, 한쪽은 여자애들방 이렇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거든요. 그러니 얌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거에요."

야는 안심하라며 한 이야기였지만, 은준은 야의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자방하고 여자방하고 그렇게나 가깝다고? 보통 기숙사도 건물을 따로 쓰거나 하지 않나?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아주 애들은 몰라도 열몇살만 넘으면 알건 다 알텐데.'

"아, 혹시 얌이 킴을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그러는거면 걱정 마세요. 얌이 킴에 대해 아주 호기심이 많아 보이더라구요. 평소에 킴 앞에서 조용한건 애가 숫기가 없어서 그래요. 얌이 킴을 관찰하고 있는건 몰랐죠? 후훗! 킴이 볼때는 아닌척 하다가 당신이 고개를 돌리면 아주 뚫어져라 쳐다본답니다?"

'숫가 없다니! 야, 네가 속고 있는거야!'

얌이 한밤중에 한 일을 알고 있는 은준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관심이 많다고? 그럼 지난번에 내 앞에서 치마를 걷어올렸던 것도 그냥 놀려먹으려고 한게 아니라는건가? 설마 세, 셀프 아스께끼?'

은준은 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고민하던 것이 새롭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얌의 그런 행동이 그녀가 성당에서 혹은 언니의 보호가 없는 사이에 남성에 의해 성폭력을 당해,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막말로 정신이 헤까닥 돌아서 남자를 밝히게 되는 그런 정신병이 온 것은 아닌가 하는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의 이야기대로 얌이 은준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 예전부터 그런 행동을 보인것이라면, 밤중에 일어났던 일도 그것과 같은 일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아직 열네다섯살밖에 안먹은 여아가 남자가 잠든 사이에 침대 이불속으로 숨어들어가 손장난에 입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말이야, 얌이 날 좋아한다면 어떨거같아?"

은준은 심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러자 그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야도 조금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얌이 킴을 조, 좋아한다면 물론 저도 좋겠죠?"

마치 스스로에게 묻는듯 야의 말끝이 올라갔다.

그런 대답에 은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진지하게 물어보는거야. 그런거 말고 이성으로서 말이야."

은준의 물음에 야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살짝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얌을 좋아하세요?"

야는 은준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그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말을 돌린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니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도 않아 보였다.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은 아주 흔한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또 한명 한명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에 소 20두를 아비에게 주고 자매를 사오는 일도 심심찮은게 현실이었다. 한 명당 10두씩 지참금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사고파는 일 같아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선 평범한 일로서 딸가진 입장에선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였고, 적령기 남성으로선 자신의 경제력을 증명하는 한 방법이었다.

그런면에서 은준은 신랑감으로서 아주 합격점인 남자였다. 소도 물론 가지고 있고, 직접 기르진 않지만, 마을 사람에게 대신 소를 기르게 하였고 그 소를 잡을일이 없으니 계속해서 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얼마 되지 않아 크게 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게다가 아주 큰 땅을 가지고 있으며 산더미 같은 옥수수를 수확해냈다. 그것을 팔아 얼마를 벌었는지는 야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새로 큰 창고를 짓고, 비싼 농기계를 사들이는 것을 보면 역시나 큰 부자임을 알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성격까지 좋고 여자를 챙길줄 아니 일등 신랑감이 따로 없었다. 다만 멀리 한국이란 나라에서 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오히려 자신과 동생이 그를 잘 따르고 모시며 아이를 낳아주면 그가 이곳에 정착해 고국으로 떠나버리지 않지 않을까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얌도 킴을 마음에 들어하는것 같으니 저도 마음이 괜찮아요."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은준은 야가 뭔가 오해하는듯 싶자 갑작스렇게 말을 끊고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어쩔수 없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말이야, 음, 얌이 몽유병이라던가 하는 증세를 보인적이 없었어?"

"몽유병이요? 아뇨, 한 번도 그런적은 없었어요."

야는 은준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자 의아했다.

"사실은 말이야, 지난밤에 얌이..."

은준은 야의 눈치를 살피며 간밤에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둘은 야의 동생인 얌에게 비밀로 하기 위해서 얌이 벤시몽에 있는 동안은 각방까지 쓰면서 조심했는데, 정작 동생인 얌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버린 상황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야도 어이가 없는지 벙 한 얼굴로 앞지마를 쥐어뜯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리곤 마음을 정리했는지 작게 '폭'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아... 그 아이가 결국..."

의아해하는 은준에게 야의 설명이 이어졌다.

============================ 작품 후기 ============================

쇼키쇼키는 람부탄이라고도 하는 열매입니다. 모양은 참...괴이하게 생겼는데(검새해서 이미지를 한 번 봐보세요 ㅋ) 안에 과육은 중국집에서 주는 그 열매처럼 안에가 하얀 젤리같은? 그런게 들어있는 열매입니다. 맛은... 저도 못먹어봤어요 ㅜㅜ포튜나는 포르투나라고도 하죠. 운명의 여신입니다. 원랜 행운의 여신이었다가 운명의 여신으로.. 또 그 전엔 풍요다산의 여신이었고.. 이직이 잦았네요..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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