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L.
나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하얀 눈꽃이 써늘히 침묵하는 빌딩 숲을 가차 없이 멍 들이고 있었다. 짙푸른 암흑의 강으로 눈의 여왕이 흰 드레스 자락을 드리우며 침몰하는 밤이었다.
문득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겼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습니까.」
메사라였다. 어딘지 화가 난 기색이었다. 호텔에서 섹스를 할 때부터 저랬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깊이 꽂으며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썰매를 탄 뒤 메사라가 갑자기 호텔로 가자며 나를 끌고 가서는 세 번이나 했다. 스포츠에 가까운 섹스였다. 갖가지 체위를 취하며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메사라를 받는 내내 몇 번이고 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리뿐 아니라 섹스 내내 졸린 허리까지 얼얼했다.
순간 황량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흐흠…… 걷기 힘든가 보지요?」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메사라가 말했다. 나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뇨. 괜찮아요.」
「아닌 것 같은데. 여기 업혀요.」
대뜸 메사라가 등을 내밀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다리를 삐었다면 별생각 없이 업혔겠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체내삽입으로 아랫도리가 후들거리기 때문 아닌가. 참을 수 없이 민망했다.
「거, 걸어갈 수 있어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하하하.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자, 어서. 업힐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겁니다.」
메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투는 짓궂되 행동은 막무가내였다.
「그렇지만…….」
나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늦은 밤중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그의 등에 몸을 실었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였다. 내가 거절하면 강제로 업고 가고도 남았다.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삼켰다. 이게 무슨 꼴이냐.
한편으로는 속절없는 기대가 몰려왔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하는 어리석은 기대가, 떨치고 또 떨쳐도 자꾸만 밀려왔다. 그 감정은 무서울 만큼 일방적이었다. 예고 없이 찾아와 기어코 모든 것을 앗아 가고 부패시키는 죽음보다도.
나는 눈을 감았다. 정신 차려, 레이 아리사.
잊지 마. 자작나무숲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마.
「와앗!」
메사라가 갑자기 뛰는 바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쳤다. 시린 바람이 내 뺨을 베듯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무심결에 파안대소하며 메사라의 어깨를 쳤다.
「아하하. 갑자기 왜 그래요?」
「왜긴요, 그냥 해 본 거죠. 하하하. 재미있어요?」
메사라가 물었다. 그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재미있냐고……?
재미있었다. 살아오며 거의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무서웠다. 알지 못했던 것을 이 남자에게 자꾸만 배워 가는 상황이 두려웠다.
자꾸 내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이토록 다정한 웃음과 몸짓, 언어를 던진단 말인가. 무슨 심산으로 이제껏 내가 몰라 왔던 것을 일깨우고 가르쳐 준단 말인가.
그 이유에 화사한 수식어를 덧붙이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작나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유혹의 웃음으로 치장한 늪에 발목을 담그고 싶지는 않았다.
불현듯 우울해졌다. 표현할 수 없이.
표현할 수 없이…….
메사라와 병원 온실을 나서며 허공으로 손을 뻗는 순간, 떠오른 기억이었다. 그것은 찰나에 가까우리만치 짧으면서도 뚜렷했다. 메사라와 내가 왜 호텔 계단에서 그러고 있었는지 연유는 알 수 없었다. 내 전신을 출렁거리던 어색함과 기대감, 그리고 우울함만 코트에서 풍기는 담배냄새처럼 은은히 남았다.
무엇보다도 깊은 절망감이 전신을 저몄다. 켜켜이 쌓인 절망감에 짓눌리다 못해 거의 자포자기해 버린 상태에서, 나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왜, 어째서.
무엇에……?
알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연애 초반의 기억인 것만은 분명했다. 여전히 나는 메사라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내게 왜 이러는 걸까, 혹 관심이 있어서 저러나, 하며 메사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의아했다. 나는 스물여덟 살의 레이 아리사는 인간관계의 경험도가 열일곱 살의 레이 아리사보다는 원숙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억에 등장하는 나는 여전히 사람의 감정에 서투르고 눈치가 없었다.
왜 모를까. 기억 속의 메사라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해 주고 있는데.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다며, 업어 주겠다고 말할 정도면 뻔하지 않은가. 눈빛과 말투도 저렇게나 다정한데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상황도 이상했다. 메사라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단계일 뿐인데도 잠자리는 가졌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혹, 개꿈으로 치부했던 그 광경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그 꿈에서 나는 메사라의 마음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잠자리를 가졌다. 그 정황의 의미는 하나뿐이었다.
한마디로, 메사라와 나는 사랑이나 연애가 배제된 섹스를 한 것이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십대의 레이 아리사는 다른 건 몰라도 성적인 부분만은 꽤 너절했던 모양이다. 억눌린 십대 시절의 분노가 요상한 방향으로 폭발하기라도 했나.
그리고 뭔가가 하나 더 있었다. 눈앞에서 펄럭거리던 무엇인가가. 매우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메사라에게 이 기억을 털어놓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솔직하게 털어놓기에는 민망한 이야기였다.
운전을 하는 메사라를 곁눈질했다. 핸들을 톡톡 치던 메사라가 문득 카 오디오 볼륨을 높였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메사라는 클래식을 좋아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에도 클래식 시디만 가득했다.
“이 곡을 좋아하나 보죠. 볼륨까지 높이고.”
“음? 아, 네. 하하하. 좋아합니다.”
메사라가 이쪽을 흘끗 쳐다보며 웃었다.
“의외예요. 메사라가 클래식을 즐겨 듣다니. 겉만 봐서는 록뮤직이나 팝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내가요? 이런, 내 얼굴이 록뮤직을 선호할 것 같이 생겼단 뜻입니까. 천만에요. 불평투성이 가사로 일관하는 록뮤직은 딱 질색입니다. 뭐, 그것도 그거지만 한때 같이 산 외할머니께서 워낙 클래식을 좋아해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죠. 레이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데요?”
“나야 뭐…… 아무거나 다 좋아요. 아무튼 특이하네요. 어릴 때는 그래도 다들 한 번쯤은 록뮤직에 심취하기 마련인데. 혈기왕성한 소년들일수록.”
“편견이죠. 그건 십대들은 여기저기 찢어진 블루진을 입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격이나 마찬가집니다. 사실 그따위 넝마의 유혹에는 나도 한때 빠지긴 했지만…… 하하하. 그때 생각을 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군요. 레이는 그럼, 십 대 때 록뮤직이나 괴상망측한 패션에 열광했나요? 그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러진 않았죠.”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못했다. 매일매일 다락방에 틀어박혀 주술 수업을 받느라 옷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던 메사라가 대뜸 말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네? 뭘요?”
“아까 그 영감탱이요. 그렇게 잘 빼입고 겉으로 점잖아 보이는 영감탱이 같은 남자들 말입니다. 딱 봐도 변태던데요.”
“설마. 멀쩡해 보이던데.”
“멀쩡해 보이니까 더 위험하지요. 레이는 특히나 조심해야 해요. 지금에야 하는 이야깁니다만, 당신에겐 이상하게도 변태들이 유난히 꼬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조심해요.”
“네에―?”
나는 음성을 높였다. 내게 변태들이 유난히 꼬인다고? 나한테?
메사라의 딱딱한 표정을 보건대 농담은 아닌 듯했다. 아까의 할아버지를 돌이켜 보았다. 어딘지 슬픈 눈빛으로 나를 계속 응시했다. 그게 변태성욕의 발로였단 말인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딱 보이죠. 고단수의 변태일수록 옷차림이 세련되고 면상도 단정해요. 말투며 행동거지도 아주 점잖죠. 고전적인 취미를 과시하고요. 평범한 게이들은 화끈한 테크노 바에서 춤추는 것을 즐기는데 반해, 변태들은 고풍스런 카페에서 교향곡을 음미하며 셰리주나 홀짝거리더군요. 조심해야 합니다. 겉만 보고 방심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으니까요.”
“알았어요.”
메사라의 진지한 어투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메사라는 변태들에 관해 되게 잘 아네……? 하고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방금 열거한 변태들의 특징은 메사라 본인에게도 정확히 해당되는 사항인데……? 하며 콧잔등을 슥슥 긁었다.
역시, 메사라도 변태성욕자라서 그런가.
나는 메사라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런 말은 대놓고 못하지만, 메사라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본인 입으로 직접 늘어놓은 변태들의 특징을 비롯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것을 포함, 야릇한 섹스도구 사용과 관장, 심지어 가벼운 수위의 가학적인 행위까지, 하나같이 보통 수상쩍지 않았다.
물론 메사라도 나를 충분히 만족시킨 후 수상한 섹스로 돌입했기에 딱히 그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다만, 메사라가 거듭 강조했듯이 과연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즐기는 것이 사실일까, 의구심은 품어 보았다. 실은 자주 의심해 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지. 절대 아니야.
“이런, 제기랄!”
메사라가 갑자기 끼어드는 앞차에 신경질을 부렸다. 경적을 퍽퍽 눌러 대며 화냈다. 그러다가 이쪽을 흘끗거리더니 재빠르게 표정을 고쳤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군요.”
메사라가 생긋 웃었다. 나도 웃었다. 욕설 좀 했다고 사과하는 저 모습이 애들 앞에서 입 조심 하는 어른 같았다.
메사라는 나를 코흘리개 어린애로 보나 봐…….
제아무리 정신연령 17세의 해리성 기억장애인 레이 아리사라지만, 기본적인 분별력은 갖추고 있었다. 메사라는 점잖고 다정하되 섹스만큼은 일반적 기호에서 동떨어진 취향의 소유자라고,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병원에서 틈틈이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알아본 결과도 내 의혹에 확신을 안겼다.
메사라는 변태성욕자였다. 틀림없었다.
당혹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의 저런 면모도 내가 인정하고(어쩌면, 몹시 좋아하고) 받아들였으니 동거를 했을 터였다. 몰래 소년을 추행하는 괴벽까지 있다면야 문제겠지만, 지금 우리는 엄연한 연인관계 아닌가. 한데 왜 메사라는 거짓말만 늘어놓을까. 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것 아닌가?
아무튼 메사라에게 변태성욕자냐고 대놓고 묻자니 이쪽도 좀 껄끄러워서 가만히 있던 참이었다. 얌체처럼 구는 앞차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는 메사라를 곁눈질하며, 나는 콧잔등만 계속 슥슥 긁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메사라가 변태는 아니었을 테고.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성장과정이 반듯한 메사라에게 변태성벽이 연유한 원인도 자주 헤아려 보았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탓인 듯했다. 그것 외에는 딱히 까닭이 없었다.
사실 내가 진짜 걱정하는 문제가 이것이었다. 나만 해도 자작나무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분위기를 봐서 메사라에게 이직이나 정신과 치료를 조심스럽게 권해 볼 생각이었다.
“흐음.”
메사라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아까부터 도로 정체로 차가 멈춰 서 있었다.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감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나 다를까 메사라가 이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엉큼하다…….
메사라가 내게 몸을 기울이며 키스했다. 내 다리 사이로 손을 뻗어 국부를 더듬거렸다. 내게서 입술을 떼어 낸 메사라가 가슴으로 얼굴을 이동했다. 으레 그랬듯이 나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차에서 가볍게 섹스할 때조차도 메사라는 내 옷을 반드시 모두 벗겼다. 차창에 선팅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창피했다.
메사라가 내 가슴을 집요히 혀로 애무했다. 가슴이 흠뻑 젖을 만치 타액으로 적시고 유두를 깨물고 빨았다. 나는 메사라가 가슴을 애무해 주는 것이 좋았다. 메사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신음을 흘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메사라가 내 머리카락을 고정한 핀을 풀어서 흩뜨렸다. 출렁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훑으며 매끄럽게 피부를 간질였다. 창피했지만, 역시 나쁘지 않았다. 긴 시간 달콤한 애무가 잇따랐다. 메사라의 입술이 내 다리 사이로 향했다. 타액으로 은밀한 부위를 적시며 엑스타시로 이끌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신음했다.
“아…… 아. 아, 아. 흐윽!”
나는 몸부림치며 메사라에게 매달렸다. 한 번의 절정이 치솟았다. 메사라가 나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뭘 하려는지 깨달은 나는 하얗게 질렸다.
“메, 메사라. 지, 지금 우, 운전 중이에요.”
“무슨 상관입니까. 빨리면서 운전한 때도 많았는데요. 빨리면서 하나, 박으면서 하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메사라가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밖에선 전혀 보이지 않아요. 내 어깨에 얼굴 기대고 편히 있어요. 한 번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메사라가 태연하게 내 아래를 벌렸다. 단단히 발기한 물건이 입구에 닿았다. 나는 숨을 삼켰다. 잠깐 멈칫하던 그것이 안으로 꽉 밀고 들어왔다.
“아아, 아! 아, 아파!”
“처음만 그래요. 몸에서 힘 빼요. 움직이면 더 아픕니다.”
메사라가 되레 허리를 더욱 쳐올렸다. 나는 힘을 빼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세 때문에 삽입이 훨씬 깊었다. 그만큼 아래를 찔러대는 감각도 강렬했다. 메사라가 나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걸치게 했다.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요…….”
나는 옴짝달싹도 못했다. 조금씩 희미한 전율이 고통 속으로 스며들었다.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메사라가 핸들을 잡는 기척이 났다. 차가 앞으로 스르륵 밀리는 운동감이 그대로 전신을 달렸다. 미묘하고도 선명한 감각이었다.
나는 숨을 규칙적으로 내쉬려 노력하며 메사라의 목을 감아 안았다. 아랫배를 꽉 채운 페니스가 딱딱하고 컸다. 메사라가 슬쩍 허리를 움직였다. 가볍지만 그 반동에 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우, 우, 움직이지 말아요.”
“왜요? 아파서요?”
“그건 아니지만…….”
“하하하. 그럼 긴장 풀고 가만히 있으십시오.”
메사라가 내 가슴을 애무하며 말했다. 이대로 계속할 태세였다. 드물게 콘돔까지 착용하고 삽입할 때부터 알아챘지만 그래도 민망했다. 할 수 없이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한번 넣으면 끝까지 갈 때까지 메사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얌전해지자 메사라의 숨이 거칠어졌다.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철퍽철퍽 부딪쳤다. 차가 들썩들썩 흔들렸다. 도로에 타이어 마찰되는 소리가 노골적이었다. 메사라의 허릿짓이 점차 격렬해졌다. 더해가는 반동에 멀미까지 치솟았다. 더는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아! 아!” 하며 비명 질렀다.
메사라도 절정인 듯, 뒤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경적에 아랑곳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가혹하게 찔러 넣었다. 내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더 세게 조여 봐요.” 하고 재촉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며 비명 질렀다.
“아아아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좋습니까? 좋아요?”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아아아!”
삽입이 끝없이 잇따랐다. 구멍에서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뜨겁고 딱딱한 그것이 무자비하게 헤집었다. 아래가 뻥 뚫리는 듯했다. 메사라가 내 허리를 힘껏 졸랐다. 내벽이 페니스를 짓누르는 감각이 치달았다. 까끌한 음모가 구멍 입구에 연속으로 부딪쳤다. 퍽퍽퍽 소리가 났다. 차체가 아래위로 난폭하게 흔들렸다. 그 반동으로 전신을 관통하는 감각이 배가 되어, 한 번 찔릴 때마다 구멍에서 머리끝까지 해머로 강타당하듯 얼얼했다.
나는 이제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칠 것 같았다. 비명만 지르며 메사라의 어깨를 잡고 매달렸다. 엉덩이를 정신없이 흔들었다. 흐느끼다시피 신음했다. 성기가 한계까지 박히는가 싶더니 잠깐 멈추었다. 페니스가 안에서 떨리며 요동쳤다. 내벽을 한 바퀴 헤집으며 절정을 달렸다. 전율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메사라의 어깨에 머리를 축 늘어뜨렸다. 황당했다. 일순간, 안이 정액으로 젖어 들지 않아 아쉽다고 생각해 버린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이성이 돌아온 때는 잠시 후였다.
메사라의 어깨 너머에서 뒤차 운전자의 얼굴이 보였다.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끔찍한 창피함이 온몸을 저몄다.
“우리 오늘 강아지 사러 가요, 하하하.”
내게서 물건을 빼내지 않은 상태로, 메사라가 핸들을 잡으며 짓궂게 웃었다.
극장이 운집한 84번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페라를 관람했다. 「투란도트」였다. 아름다운 세트와 의상, 아리아에 숨이 막혔다. 오페라를 관람한 뒤 쇼핑센터로 향했다. 또 쇼핑이냐며 화들짝 놀라는 내게 메사라가 미소 지었다.
“오늘은 월급날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막무가내로 끌고 다니며 쇼핑을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목도리와 장갑 세트를 내게 떠안겼다.
“집에 있는 목도리와 장갑만 해도 마흔 개가 넘어요.”
“또 그 소립니까. 부담 갖지 말라니까요. 앞치마나 사러 가죠.”
“아, 아, 앞치마요?”
나는 절로 낯이 벌게져 말을 더듬었다. 메사라가 나를 《코알라》라는 앞치마 전문 숍으로 끌고 갔다. 숍에 바글바글한 아주머니들에 뒤섞여 그가 앞치마를 골랐다. 기장은 이게 적당하네, 색상은 이게 어울리네, 흥얼흥얼하며 내게 여러 장의 앞치마를 대 보았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앞치마 쇼핑을 끝낸 뒤 펫숍으로 향했다.
갑자기 웬 강아지냐고 묻자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요.”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다정한 사람이었다. 변태성욕자인 점만 빼면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인이었다. 고마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빌어먹을 데이탄즈가 이 광경을 못 보다니 억울할 정도였다. 뭐, 그 자식이 우리를 보고 열 받아 할 일 따위 없겠지만서도, 하며 나는 코웃음 쳤다.
“어떤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요? 겨울이 기니까 마당에서 키워야 하는 대형견종은 안 됩니다. 슈나우저, 치와와, 푸들…… 하하하. 골라 봐요. 슈나우저 어때요? 파이프 모양 개껌을 물리고 셜록 홈즈 의상을 입혀 보면 어울릴 것 같은데. 미용하는 재미도 있고.”
“음…….”
나는 강아지들을 훑어보며 고민했다. 다들 귀여웠다. 강아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을 보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문득 한 강아지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초롱초롱한 큰 눈에 짧은 연갈색 털이 인상적인 치와와였다.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홀로 떨어져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저 치와와요.”
“흐흠? 나는 슈나우저가 더 좋은데……. 그래도 레이를 위한 강아지니까 저 아이로 하지요.”
수의사는 강아지가 암컷이라고 말했다. 혹독한 겨울왕국인 만큼 강아지에게도 방한용 옷은 필수였다. 원피스와 목도리, 외투 및 강아지 용품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향하면서 강아지 이름을 두고 메사라와 설왕설래했다. 메사라는 웬디, 나는 디아나를 원했다.
“디아나? 강아지 이름으론 어감이 지나치게 고상한데요. 강아지 이름은 웬디나 팅커벨, 해피, 밥, 보보, 뭐 이런 게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래도 디아나로 하고 싶어요.”
“그렇습니까. 뭐, 레이의 강아지니까 할 수 없죠.”
메사라가 핸들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디아나의 까만 코에 내 코를 맞대며 생각에 잠겼다.
디아나……. 달과 숲의 여신.
달과 숲은 마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뭐, 이런 것도 한 가닥 남은 주술에 대한 미련의 발로에 불과하지만…… 하며 피식 웃다가 움찔했다.
차창 밖으로 비올라 성당이 보였다.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으나, 도로 정체 때문에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제비꽃 성당이라…….”
메사라가 혼잣말했다.
“참, 오늘 근사한 모사화를 하나 샀는데 말입니다.”
“모사화요?”
“뭐라더라, 무슨 밀레인지 하는 화가의 오필리아라는 작품인데요. 어찌나 정교하게 모사했는지 진품과 거의 흡사하지 뭡니까. 차 트렁크에 있는데 집에 가면 구경하지요.”
“와아. 기대되는데요.”
“거실에 걸어 놓으면 그럭저럭 예쁘겠더군요. 아, 그런데 말입니다.”
“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사라가 핸들을 톡톡 치며 “어, 그러니까.” 하다가, 내 허벅지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문득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갑자기 허벅지가 축축해졌다. 설마…… 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디아나가 오줌을 싸고 있었다. 바짝 힘주고 있는 엉덩이에서는 갈색 변까지 나오고 있었다. 나와 메사라는 동시에 비명 지르며 화장지와 비닐봉지를 찾았다.
아름답다…….
나는 멍하게 오필리아를 응시했다. 볼수록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림이었다. 메사라가 트렁크에서 그림을 꺼내는 순간 숨이 턱 막힐 뻔했다. 그것은 흡사 어둠 속에서 베일을 벗어 던지는 미녀의 나신처럼, 갑작스럽고도 찬란했다.
모작이라도 이 정도면 퍽 비쌀 듯한데 메사라는 싸게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은 벽난로 위에 걸어 두었다. 메사라가 내게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의왼데요. 레이가 이 그림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름답잖아요.”
“아름답지만 죽은 여자 아닙니까.”
메사라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차를 마셨다. 나는 찻잔을 기울이며 “그래 봤자 그림일 뿐이잖아요?” 했다.
“진짜 시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메사라는 저런 주제를 싫어하나 봐요. 죽음이나 시체를 다룬 예술작품을 꺼려하는 편?”
내 질문에 메사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그건 아닙니다. 따지고 보니 내가 네크로필리아 운운할 자격이 없긴 하군요.”
“자격이라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메사라가 픽픽 웃었다. 저렇게 웃을 때마다 메사라는 어딘지 음산한 인상을 풍겼다. 평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비틀린 느낌이었다.
메사라가 나를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옷이 한 꺼풀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오필리아와 디아나를 한꺼번에 얻은 밤인가…….
문득,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차디찬 고독과 가난에 짓눌려 있지 않았던가. 숨 막히게 행복한 와중에도 불안감이 치켜들었다.
왼손 약지를 응시했다. 사파이어 반지가 심연처럼 깊은 푸른빛을 뿌리고 있었다. 서로 사랑해서, 우리가 영원히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란히 맞춘 반지라고 메사라는 설명했었다.
반지 때문일까. 자꾸만 증폭되는 이 불안감은.
그날도 지금과 비슷했다. 흰 눈이 소복소복 떨어지는 어느 겨울날, 자작나무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흔한 표현이 남발된, 서툴기 짝이 없는 필체로 씌어진 왕의 청혼편지가.
「아아, 나는 싫어요, 싫어요! 왕비라니! 순장 제도를 뻔히 아는 당신이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평민청년에게 시집보내렵니다!」
방을 나가 버리는 아버지의 등에 대고 자작나무의 어머니가 소리 질렀다.
한동안 흐느껴 울던 어머니가 슬픈 눈빛으로 자작나무를 쳐다보았다. 딸의 뺨을 수차례 매만진 후, 속삭였다.
「가엾은 것! 자거라. 밤은 길단다.」
어머니가 자작나무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자작나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놓인 왕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일찍부터 자작나무는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몰래 익힌 터였다. 왕의 글 솜씨는 엉망이었다.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못 쓰다니, 왕비가 되면 왕에게 글이나 가르쳐 줘야겠다…… 생각하며, 자작나무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자작나무는 거대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높고 넓은 성당에서 왕과 최초로 마주쳤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작나무는 긴 담비털 외투를 걸치고, 옷자락이 십여 미터나 바닥에 끌리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아름답지만 너무도 무거워 고통만 안겨 주는 옷이었다.
소년 왕은 자작나무에게 일말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작나무 또한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성당과 화려한 예복을 걸친 주교들과 귀족들에게 시선을 팔았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품위에 넘쳤다.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텅 빈 메아리처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므로.
주교가 어린 부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겠느냐고 물었다. 왕은 성의 없는 어조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반지를 자작나무에게 끼워 주었다. 푸른색 사파이어 반지였다.
영원한 사랑의 증표가 손가락에 걸쇠처럼 끼여지는 순간, 자작나무는 깨달았다. 왕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축복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사형집행인들이며, 이 화려하고 엄숙한 성당은 냉혹한 권력의 제단일 뿐임을…….
영원한 사랑…….
메사라가 욕조 옆에 놓인 와인 잔을 들었다. 그의 왼손약지에서 사파이어 반지가 화사한 빛을 뿌렸다. 잔잔한 욕조 수면으로 레몬빛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은 시냇물에 드리워진 오필리아의 옷자락 주변에 흩어진 꽃들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영원한 사랑. 그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하길 바랐다. 적어도 나와 메사라에게는 그것이 영속하기를 바랐다. 영속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후회 없기를 바랐다. 긴 시간 뒤 어느 순간, 나와 그가 함께하던 때를 회상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사실상 나는 지금도 자작나무보다는 훨씬 행복했다. 텅 빈 소라껍질 같은 높고 넓은 성당에서 가식의 옷자락을 두텁게 둘러쓴 채, 붉게 덧칠한 입술로 거짓된 맹세를 내뱉은 자작나무보다, 소박하게 사는 지금이 몇 만 배 나았다.
그래도 메사라가 언젠가는 떠나리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아팠다. 내가 자꾸 이별을 생각하는 이유는, 역시 자작나무 때문일 것이다. 자작나무는 사랑의 종말을 최악의 방식으로 겪었으니까.
모르겠다. 데이탄즈가 자작나무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는 증거가 기록으로 남았다면 이렇게까지 사랑을 의심할지. 자작나무와 데이탄즈에게 내가 얻은 교훈은 하나뿐이었다. 사랑은 찰나에 피었다가 지는 꽃처럼,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지금에만 충실하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메사라가 나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별생각 안 했어요.”
“흠. 그래요? 피곤한가 봐요?”
“뭐, 조금.”
나는 얼버무렸다. 메사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내 어깨에 턱을 걸쳤다. 손짓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다정했다.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지나치게 앞질러 가는지도?
냉정히 말하면, 그들의 파국에는 왕과 왕비라는 특수한 신분과 복잡한 시대도 한몫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비록 메사라가 변태성욕자이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우리 관계가 꽤 오래갈 것 같긴 했다. 평생 함께하는 연인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오만한 단정일지도 모르지만, 나와 메사라는 잘 어울렸다. 활기에 넘치고 정력적인 메사라는 조용한 내게서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다. 우울한 나는 생기 넘치는 메사라가 좋았다. 각자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커플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도 평생 함께하는 커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민망해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다가 멈칫했다.
뭐지…….
온실을 나설 때 문득 떠올랐던 기억이 눈앞을 스쳤다. 뒤이어 전율과도 흡사한 위화감이 목덜미를 훑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욕조 수면을 둥둥 떠다니는, 레몬빛 머리카락. 목이 졸리는 듯했다.
저 머리카락…….
비로소 깨달았다. 기억이 떠올랐을 때, 몹시 두려우면서도 익숙한 ‘무엇인가’의 정체. 그건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기억 속에서 눈송이와 난폭하게 뒤섞여 펄펄 휘날리던 머리카락.
그 기억에서 내 머리카락은 레몬빛이 아니었다.
흑단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