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씨발, 주둥이 안 열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지 7일째, 서인은 무명이 언제 또 도망가려고 할지 모르니 아예 집무실에 그를 데려다 놓았다.
온종일 같이 있으면 좋아할 줄 알았던 무명이밥도 먹지 않고 다 죽은 눈으로 땅이나 허공만 응시하자 서인은 반쯤 광증을 앓는 사람처럼 폭력적으로 굴었다.
“말해, 대답해!”
“네….”
무명은 오랫동안 말하지 않아 다 갈라진 목소리로 힘들게 대답했다. 그마저도 시선은 서인이 아닌 바닥만 내려다본 채였다. 종알종알 떠들고 삐치거나 화가 나도 금방 풀렸던 무명인데, 벌써 일주일 동안 이 지경이니 서인이 안 미치고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명아, 응?”
“응….”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안아줘 봐도 호전되지 않았다. 막말은 한 두 번 듣는 게 아니니 원인을 부러뜨린 발목 때문이라고 예상한 서인은 치료도 해주고 사과도 했는데 왜 이러는지를 몰랐다.
“형이랑 계속 같이 있는데, 안 좋아?”
“…….”
“오늘부터 명이가 형 비서 할래? 서류 관리도 하고 응?”
이번에야말로 좋아할 줄 알고 던졌던 말인데, 무명은 여전히 느릿느릿했다. 할 건지 말 건지 대답도 안 했는데 그에게 서류를 건네준 서인은 형식적인 비서 일을 시키며 하는 행동을 관찰했다.
“비서 하면….”
“응?”
무명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서인이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비서 하면 예뻐해 주냐, 좋아해 주냐는 말을 기대했던 서인은 이어진 그의 발언에 말문이 틀어막혔다.
“비서 하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네? 이 비서처럼 죽어요? 그리고 죽으면 또 새 비서 찾아요?”
“하, 너 진짜 왜 그래?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옷 좀 벗어. 히터 켰는데, 왜 두껍게 입고 있어, 답답하지도 않아?”
무명의 헛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서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옷을 벗지 않는 무명의 패딩을 잡아당겼다. 지퍼를 내리자 가만히 앉아있던 그가 사지를 파르르 떨어가며 격하게 반응했다.
“아아아, 악! 아악!”
거의 돌고래처럼 비명을 지른 무명은 바닥을 구르며 제 몸을 마구 털어댔다. 배가 나온 걸 들키기 싫기도 했으나 그는 서인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무너져내린 정신이 온전치 못해 모든 자극이 무섭게만 느꼈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명이, 명이 죽을 거야!”
“누가 그런 말을 해? 하지 마.”
서인은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무명의 상태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달래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다그치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서 우선은 꾹 참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배 나와도 괜찮아, 형이 미안해.”
서인은 눈물과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무명의 모습을 보고는 어제와 같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사과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 보고 싶지가 않았다.
“하아, 하아….”
“괜찮으십니까?”
“…응.”
대욱이 물과 담요를 가져다주며 묻자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상하게 대욱의 말에는 반응하면서 서인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이라도 갈래, 명아?”
“…….”
그러니 서인이 짜증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화를 내도 소용없고 달래도 소용이 없으니 서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이 타들어 갔다.
“병원 싫으면 놀러라도 갈까?”
“…….”
놀러 가자는 말에 살짝 움찔하는 듯했으나 무명은 응하지 않았다. 급한 일이 있으면 대욱에게 말하고 대욱에게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옆에 가만히 선 서인은 병풍 취급받으며 표정만 구기고 있었다.
“실험은 언제 해? 나 주사 안 맞아?”
“이제 안 해도 돼. 이 비서 짓인 거 알았으니.”
“실험은 언제 해? 나 주사 안 맞아?”
“이제 안 해도 괜찮습니다.”
고의로 무시한다는 생각이 적중했다. 무명은 서인의 대답을 들어놓고서도 대욱에게 한 번 더 물어 대답을 들었다. 서인이 그를 내보내고 나서부터는 아예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서류에 고개만 처박고 있었다.
“…….”
물론 눈치를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인이 움직일 때마다 티 나지 않게 흘끔흘끔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 수준에 맞지도 않는 어려운 서류를 보던 무명은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짜증 나….”
그는 서인에게 들리지 않게 개미만 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짜증을 냈다. 어차피 사랑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비서는 왜 시켜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럴 거면 사랑이 뭔지 알려주지나 말 것이지 괜히 사람 마음만 들쑤셔놓고, 난리인지 속이 상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배도 불러오고 몸도 아프고 여러모로 울적했다.
“명아, 배 안 고파?”
“…….”
서인에게 실망했고 아직 다 낫지 않은 발목을 볼 때마다 그가 무서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미워할 순 없었다. 좋아하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식욕처럼 오락가락하는 마음 때문에 서인에게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 열나는 거 같은….”
“만지지 마세요!”
무명은 서인의 손이 이마에 닿기 무섭게 쳐내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에 그는 또 맞을까 봐 무서워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그, 그게….”
이상하게 요 며칠간 예민해져서 저도 모르게 반응했을 뿐이지 쳐내고 밀어낼 의도는 없었다. 새하얀 손등에 남은 붉은 자국을 마주한 무명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사과를 해야 하는데 굳은 표정의 서인을 보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시, 싫어….”
제 발목을 부러뜨리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막말했던 서인과 지금의 서인이 무명의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꼭 그 일 만이 아니더라도 서인에게 받은 사랑보다 폭력과 하대를 받은 경험이 더 많은 무명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했다.
“으으, 으…. 오지 마, 싫어!”
무명은 괜찮다며 제게 다가오는 서인을 거부했다. 분명히 서인을 미워하지 않는데, 몸과 머리가 그를 피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소리쳤다. 서인은 상태가 이상한 무명이 진정할 수 있게끔 저 멀리 떨어져 섰지만, 속은 이미 문드러진 채였다.
“안 가, 안 다가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반항하는 것도 싫지만, 무명이 저를 거부하고 무서워하고 아파하는 게 더 싫었다. 무명을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서인은 그와 제가 동시에 미친 놈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처 먹지 말라는 고기를 처 먹어서 돌아버린 게 아닐까 생각하며 실소했다.
“하아, 하….”
무서운 건 무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서 웃는 서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은데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엉엉 울며 집무실 바닥에 앉아있던 무명이 천천히 일어나 서인에게로 다가갔다.
“형, 슬퍼요? 형이, 형이 울 거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다는 말이 슬프냐니. 서인은 제 품에 안긴 무명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웃었다. 슬프기는 무슨 그냥 기분이 더러울 뿐인데, 슬프냐고 물으니 황당했다.
“안 슬퍼. 왜 그런 생각을 했어?”
“형, 우는 거 같아서, 우는 줄 알고….”
“전혀?”
무명은 제가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리고 있는 주제에 우는 줄 알았다며 서인을 걱정했다. 서인은 이유가 어떻게 됐든 무명이 다시 제게 달려와 안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형, 나 좋아해요?”
“…그래.”
좋아한다는 말 앞에 망설임이 붙었고,
“그럼 사랑은요?”
“…….”
사랑한단 말에는 침묵이 따라붙었다.
언제부턴가 무명이 아닌 서인 쪽이 더 사랑을 겁내게 되었다. 무명은 대답하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왜 안아주고 왜 저를 감싸주는지 몰라서 무명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몰라.”
“아직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평생 모르는 거예요? 형도 사랑이 무서워요?”
“…….”
서인은 어휘력이 늘어버린 무명을 보며 그저 웃기만 했다. 사랑이라면 치를 떨었던 놈이 사랑을 갈구하는 꼴이 된 것과 사랑해주겠다고 자신했던 제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러면, 그러면 제가 노력할게요. 형이 저를 사랑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그러든지….”
서인은 제 감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무명을 보며 대충 대답했다. 노력한다고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말은 간신히 삼켜냈다. 저 혼자 결정을 내리고 땀을 닦은 무명은 비서를 할 테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알려달라며 폴짝폴짝 뛰었다.
“무슨 감정변화가 그렇게 들쑥날쑥해?”
“…저도 모르겠어요.”
조금 전까지 서인의 손을 쳐내고 바닥을 구르며 울었던 무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인의 눈에도 제 격한 감정변화가 보인다는 게 슬펐다. 자신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음을 확인받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비서 일할래요! 가르쳐 주시면 좋겠어요!”
슬퍼하던 무명은 금방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품에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들자 서인은 그만 눈치도 없이 발기해버렸다.
“…비서 일 말고 다른 일은 관심 없어?”
“무슨 일요?”
그는 은근슬쩍 무명의 손을 제 허벅지 부근에 가져다 대며 비볐다. 따뜻하고 묵직한 것이 손에 닿자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안 한 지 오래됐기도 했고 웃는 무명의 얼굴이 예뻐서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인은 무명이 아픈 사람이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 역시도 발기한 성기를 보고 흥분한 것 같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빨아볼래?”
“흐…. 네에….”
서인이 바지 지퍼를 내리자 무명의 목소리에 신음이 섞였다. 서인의 것을 만지기 무섭게 흥분한 그는 벌써 발발 떨며 혀를 움찔댔다.
“너 진짜 좆 좋아하는구나?”
“아닌데….”
무명은 좆을 좋아한다는 낯부끄러운 말에 얼굴을 붉히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성관계를 좋아하고 성기를 밝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그럼 형 좆 싫어?”
서인은 짓궂게 무명의 뺨에 성기를 비비며 대답을 강요했다. 귀두가 볼살을 밀어 올리자 무명이 마치 눈웃음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는 그는 입을 벌려 서인의 것을 머금으며 눈을 감았다.
“봐, 하아…. 환장하네.”
“하아, 욱, 컥!”
뜨겁고 비릿한 물건이 입속으로 들어오자 무명은 저도 모르게 허겁지겁 삼키며 허리를 들썩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서인이 높은 곳에 서서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때리는 건 무섭지만 강압적으로 굴고 억지 이유로 몰아가 수치심을 느끼면 이상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둘은 이렇게 서로를 만나고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후, 아….”
무명은 입을 몇 번 우물거리더니 성기를 툭 뱉어버렸다. 압력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무명은 성기를 앞에 두고 바보처럼 웃었다.
“아, 왜 뱉어? 다시 물어….”
사정 봐주지 않고 목구멍 끝까지 박아넣으려던 서인은 버겁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뱉어버린 무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다시 성기를 욱여넣으려고 하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혀, 형…. 저는 변태가 봐요….”
난데없는 헛소리에 무르익은 분위기가 깨지고 말았다. 서인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무명이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노려보는 시선이 분명히 무섭긴 한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숨길 수 없는 흥분이 타올랐다.
그는 결국 제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짧게 털어놓았다.
“맞는 건 아프고 무서운데 그 분위기가 좋아요. 아마…. 반 정도는 변태가 아닐까요?”
서인은 엉덩이를 맞으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던 무명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서인 역시 기복이 심한 성격이었지만, 무명은 그보다 더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네?”
무명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오자 크게 당황했다. 서인이라면 어떻게든 결론을 내줄 줄 알았던 그가 입술을 내밀며 토라졌다.
“나한테 강압적으로 해달라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참나.”
서인은 그가 욕 들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더 때려달라고 요구하는 모습도 흥분됐지만, 싫다고 반항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왠지 싫다고 우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거 같기도 했다.
“형은 그, 그런 거 좋아해요? 버, 범죄….”
“강제로 하는 거?”
“네.”
“몰라.”
무명과의 잠자리를 제외하면 여태까지 맺어왔던 모든 관계가 말이 좋아 합의지 거의 강간에 가까웠다. 건물을 주거나 일을 해결해주는 대신 풀지도 않고 대충 박아넣던 것이 서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 행동을 죽어도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 안 해봤어요?”
“해봤겠어? 날 뭐로 보는 거야.”
무명이 의외라는 듯 놀라자 서인은 신경질적으로 등을 돌리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계속 같이 있었다간 저를 강간범으로 확신하는 무명을 쥐어박을 것만 같았다.
“날 얼마나 쓰레기로 보고 있었으면 당연히 강간을 해봤을 거로 생각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네.”
“아니, 형!”
“한 대 쥐어박고 싶으니까 저리 가.”
서인이 기분 상한 티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명이 다짜고짜 그의 성기를 붙잡았다. 손목을 잡고 싶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게 성기였기에 손이 먼저 나갔다.
“윽…. 놔.”
“싫어요. …잘못했어요, 네? 형도 그런 거 좋아하니까, 저는 형이 좋으면 다 좋단 말이에요….”
무명은 화가 단단히 난 서인에게 애교를 피우며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옷을 벗은 탓에 가슴, 성기 할 거 없이 조금씩 흔들렸다. 허벅지에 남겨둔 제 이름 석 자가 눈에 띄어서 서인은 백기를 들었다.
갑자기 이상한 요구를 해대는 그가 이해하기 어렵긴 했지만, 서인도 싫진 않았기에 무명의 머리채를 붙잡고 입속에 성기를 쑤셔 박았다.
“예고해야 하나? 갑자기 처박아도 바로바로 받아먹을 줄 알아야지.”
“우윽, 윽! 컥!”
말도 없이 시작된 행위에 무명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구역질했다. 소파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묶인 두 손을 기도하듯 가슴 앞에 모아놓고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야, 혀를 제대로 쓰라고. 평생 걸레 짓하고 살았던 놈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있나?”
“우응, 흣, 응…. 큭, 잠, 깐… 악!”
허락도 없이 성기를 뱉어낸 무명의 얼굴로 곧바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손바닥으로 맞을 때와는 사뭇 다른 통증에 무명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흐윽….”
“처맞고 자지 세운 것 좀 봐. 약 먹은 건 난데. 왜 네가 발정이 났어?”
서인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벌벌 떨었다. 성기를 세운 채로 나뒹군 무명은 열심히 일어나려 했지만, 소파가 푹신푹신한 나머지 쉽게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는 주먹으로 얻어맞고 잠시 놀라 훌쩍였다. 그가 상처를 받고 혼자 땅을 팔 것 같아 서인이 두 번째부터는 반응을 살피며 힘을 조절했다. 그러자 무명이 끙끙 앓으며 힘겹게 일어나 다시 무릎을 꿇고 성기를 입에 담았다.
“우, 읍….”
서인은 숨을 몰아쉬며 충동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무명이 진심으로 두려워할 때까지 두들겨 패고 그를 짓누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서인의 속을 모르는 무명은 부어오른 뺨을 침대 시트에 문지르며 끙끙 앓았다.
“흐으, 응….”
서인은 무명이 손가락으로 뒤를 넓힐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를 다리 사이에 둔 채로 서랍을 열어 제 손가락에 콘돔을 씌웠다.
“형, 뭐 하는 거예요? 흐, 안 해요? 더, 더 해요…. 저 더 잘할 수 있어요….”
“뒷구멍을 넓혀야 네 무식한 좆을 넣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무명은 제 위에 올라타 스스로 뒷구멍을 쑤시는 서인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처음 했을 땐 뭘 볼 정신도 없었는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이니 서인이 지나치게 음란해 보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삽입할 기회를 준 적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가슴이 떨리고 목덜미가 뻐근했다.
“형은 진짜 저를 사랑하나 봐요!”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분위기 좀 깨지 마라…. 하아, 참.”
무명은 제가 유일하게 서인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찼다. 그는 서인을 다리로 껴안고 거의 자지러지다시피 좋아했다.
“형이 좋아요! 형 너무 좋아요! 형 좋아!”
“반말하려면 반말을 하고 존댓말을 하려면 존댓말을 해.”
강압적인 플레이를 하자더니 무명은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입을 맞추고 난리를 피웠다.
서인은 정신없이 움직이는 탓에 팔에 눌려 골이 푹 팬 무명의 가슴을 훑어보더니 그를 일으켜 아래에 무릎을 꿇렸다. 가슴을 모을 것을 명령하고는 성기를 두어 번 쳐올려 무명의 가슴골 사이에 쑤셔 박았다.
당장 박힐 것처럼 뒤를 풀더니 갑자기 가슴 사이에 성기를 넣자 무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가, 가슴에 넣는 건가요?!”
“입 닥치고. 가슴, 윽…. 모으고, 하…. 혀 내밀어.”
“네에, 으, 형, 뜨거운 거 같아요…. 뜨거워요…. 악!”
시킨 대로 혀를 내밀지 않고 감상평을 말하던 무명은 또 뺨을 얻어맞았다. 아팠지만, 서인이 제 머리채를 강하게 휘어잡고 흥분해 신음하는 모습을 보자 금방 아래를 세우고 허리를 들썩였다.
“으응, 흐, 좋아…. 이상해, 으으, 읏….”
샤워할 때 가슴 사이를 씻는 것 빼고는 굳이 손을 대본 적 없는 무명은 뜨겁고 굵은 살덩이가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가슴을 더 조이며 혀를 내밀었다.
핏줄과 요철 따위가 말랑말랑한 살을 뭉개고 거칠게 비벼졌다. 무명은 마켓에서 주원과 고위관계자들에게 성 학대를 당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에 눈꺼풀을 경련했다.
“하아, 하…. 쓸모없는 살덩이에 처박아주니까 좋아?”
“네에, 흐으…. 으….”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냥 가슴 사이를 쑤시는 것뿐이었기에 서인은 그가 심심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올려 저를 바라보며 열심히 가슴을 움직이는 모습이 대견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후…. 가만히 있어.”
그는 무명을 집무실에 처박아 뒀던 날부터 준비해뒀던 작은 진동기를 꺼내 들었다. 귀두에 케이블을 칭칭 감고 전원을 켜자 무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쾌감에 침을 질질 흘렸다.
“흐아, 아아! 악!”
폭발할 것 같은 성욕을 억누르던 서인은 액을 질질 흘리며 허벅지를 덜덜 떠는 무명의 모습을 보고는 반쯤 이성을 잃었다.
“다리, 하아…. 벌려, 빨리.”
“내, 내가 박기로 했는데에, 했는데….”
무명은 눈두덩까지 경련하며 느끼기 바쁘면서도 제가 삽입하기로 했다며 칭얼거렸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린 서인은 눈을 반쯤 감고 무명에게 새 콘돔을 던졌다.
“혀, 형…?”
“쑤셔 봐. 직접.”
“네, 네!”
뒤를 쑤실 기회를 주겠다는 말에 무명이 손을 움직여 콘돔 포장지를 뜯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상자를 열기 무섭게 서인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져 괴롭게 기침하며 손을 떨었다.
“손 쓰지 말고.”
“컥! 흐윽, 흐…. 네, 네….”
서인이 하도 격하게 박아넣은 탓에 가슴 사이가 쓸려 붉은 자국이 남았다. 무명은 쓸린 가슴이 아파 울먹거리며 입으로 콘돔을 뜯었다. 서인은 그의 행동이 굼뜰 때마다 뺨을 때리고 가슴을 짓뭉개며 학대했다.
“흐윽, 흑….”
“다 했니?”
“네, 네에, 네….”
입으로 콘돔을 씌운 탓에 무명의 입에 딸기향 윤활제가 범벅이 되었다. 그는 손가락에 콘돔을 씌운 채로 서인에게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혀, 형….”
“쑤셔. 네 좆 들어갈 정도로 넓혀 봐.”
서인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간 그는 서인이 했던 것처럼 두 손가락으로 입구를 문질렀다. 막무가내로 쑤신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상기하며 항문 주름을 꾹꾹 눌러 펴더니 젤을 듬뿍 짜 구멍에 바르고 조심스레 손가락 끝을 삽입했다.
“으…. 기분 좆 같네….”
한 번 해봤건 어쨌건 아직 뒤에 무언가 삽입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서인은 불쾌했다. 무명은 손가락을 삽입하는 순간 그의 흥분이 식었음을 알고 구멍 언저리를 애무하며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읏, 됐어. 쑤시기나 해.”
“막무가내로, 흐으…. 쑤신다고 다 되는 거 아니라면서요…그리고 형, 저 있잖아요….”
“뭐.”
무명은 흥분해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열심히 떠들어댔다. 말없이 박고 흔드는 게 성관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서인은 웃는 얼굴로 떠들어대는 무명이 답답하고 귀찮았다.
“막 여기가 찌릿찌릿해요….”
서인의 손을 잡아당겨 제 성기에 얹은 무명은 역시 저는 변태인 것 같다며 부끄러워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인은 일단 한 판 하고 나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무명의 손을 잡아당겼다.
“쑤시라고.”
“네!”
무명은 서인의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가위처럼 넓게 벌렸다. 배운 대로 안에서 긁어내듯 최대한 손톱을 세우지 않고 느릿느릿 쑤시던 무명은 몸을 크게 움츠리며 사정했다.
“뭐야, 쌌어? 아니. 왜 싸?”
서인은 제 구멍을 쑤시다가 난데없이 사정한 무명의 등을 가볍게 쓸었다. 그러자 무명이 자지러지며 몸을 덜덜 떨고 침대 위로 축 늘어졌다.
“흐으, 혀, 형…. 싫, 싫어…. 이거 떼, 빼줘, 흑….”
뒤에 손가락을 삽입하고 나서부터 뚱해 있던 서인은 무명이 싫다며 성기에 매달린 진동기를 떼 달라고 울자 입이 귀에 걸렸다. 싫다는 반응이 나옴과 동시에 흥분한 그는 벌떡 일어나 성기를 본뜬 장난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혀, 으흐, 윽…. 나 쌌어요. 나왔어요. 그만, 그만 해요, 싫어, 싫어!”
무명은 사정 직후에 몰려오는 지독한 쾌감에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했다. 진동기를 떼어내려 손을 밑으로 내릴 때마다 서인에게 가슴을 쥐어짜였다.
“후응, 응, 흑….”
무명은 뒤를 넓힐 힘도 없이 반쯤 눈이 풀린 채로 시트에 성기를 비볐다. 입은 열심히 거부하고 있었지만, 몸은 솔직했다. 소파 가죽에 뭉개진 귀두 끝을 보며 웃던 서인은 장난감에 젤을 잔뜩 묻혀 무명의 뒤에 망설임 없이 쑤셔 넣었다.
“흐, 으아악! 아! 아! 아파! 아!”
“에이, 작은 건데 뭘 그래?”
서인은 그리 작지 않은 물건을 억지로 쑤셔 박아놓고서 엄살 부리지 말라며 무명의 엉덩이를 세차게 내려쳤다. 따끔한 통증과 여전히 진동하는 작은 물건에 헐떡이던 무명은 또다시 정액을 찔끔 싸질렀다.
“아파, 아파아….”
“정말 아픈 게 맞아? 이렇게 싸지르고 비벼대면서, 후…. 응?”
구멍에 딜도가 틀어박힌 그는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신음했다. 아프고 싫다고 애원하는 무명을 홀린 눈으로 바라보던 서인이 딜도 끝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쑤시기 시작했다.
“흐아아! 아, 흐아, 아! 앙!”
“형 뒤는 형이 알아서 풀게요? 알겠죠?”
“네헤, 네…. 아, 으으…. 읏, 응….”
무명은 쾌감에 젖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꼬박꼬박 대답했다.
딜도와 엉덩이 살이 맞닿는 마찰음이 서인을 흥분케 했다. 이대로 제 것을 박아넣고 무명의 허리를 짓눌러 복종하게 하고 싶은 충동에 서인은 땀을 닦아내며 무명을 밀어 눕혔다.
“아, 으응! 윽!”
뒤에 딜도가 박힌 채로 엉덩방아를 찧은 무명은 다리를 오므리고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아프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몸서리칠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몸 위로 올라탄 서인은 대충 풀린 구멍에 젤을 쏟아붓고 무명의 귀두로 제 구멍을 문질렀다.
“으, 윽…. 큭!”
“혀, 형, 잠깐만, 이거, 하, 으, 윽…. 안 빼는….”
서인은 삽입 당하는 게 아프기만 했기에 성감을 찾기 위하여 무명의 성기에 달라붙은 진동기를 떼지 않았다.
안 그래도 굵고 큰 성기에 진동기까지 더해지자 삽입이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한숨을 내쉰 서인은 떨리는 손으로 젤을 퍼붓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무명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허, 어, 억…. 윽, 큭….”
“싸지 마. 후…. 윽….”
더 버거운 건 서인 쪽인데, 도리어 무명이 숨을 헐떡이며 침대 시트를 쥐어뜯었다. 넓게 벌어진 구멍 속으로 진동기가 모습을 감추자 서인은 과감하게 몸을 움직였다.
“우리 명이, 후…. 싸면 끝이야. 더는 안 해. 알겠어?”
“네, 흐, 응…. 응, 알았, 알았어…. 흑, 으….”
커다란 성기에 구멍에 틀어박히자 서인은 속을 게워낼 것만 같아 잠시 눈을 감았다. 내장이 뒤틀리고 장기가 뒤 섞이는 역하고 힘든 감각이었다. 그나마 조금씩 울리는 진동기 덕에 견딜 만은 했다.
서인이 몸에 힘을 풀고 천천히 내려앉자 무명이 저도 모르게 그의 허리를 붙잡고 하체를 쳐올렸다.
“우, 윽….. 윽!”
“하아, 아, 아! 좋아, 아아, 형, 아!”
멈추라는 명령도 들리지 않았다. 흥분하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힘으로 짓누르고 보는 무명의 특성을 잘 아는 서인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으, 윽…. 형, 숨 막혀….”
“계속해. 허리 멈추면 죽여, 버릴…. 하아, 씨발….”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게 뻔하니 무명이 급하게 박을 때마다 서인도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구멍이 어느 정도 풀려 흐물흐물해지자 무명도 삽입하기 편해졌는지 서인의 눈을 바라보며 크게 쳐올렸다. 그에 질세라 서인도 무명의 목을 힘껏 짓누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윽, 흐…. 씨, 더럽게 크네. 진짜….”
“흐응, 흣, 아, 으응! 좋아아, 좋아아!”
서인도 이왕 하는 거 쾌감을 느끼고 싶어 열심히 움직였지만, 진동 탓에 간지럽기만 할 뿐 쾌감이라곤 아무리 해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무명과 제가 속궁합이 안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몸을 무르려는 순간 무명이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만졌다.
“형, 흐으…. 저는 너무 좋아요, 좋은데, 형은요? 으응, 흣….”
쾌감도 야릇한 신음을 내는 것도 모두 무명의 몫이었다. 무명은 서인의 유두와 가슴, 복근을 천천히 쓸어주며 어떻게든 그가 느낄 수 있게 애무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구멍도 풀고 전희를 충분히 했음에도 서인이 즐기지 못하자 무명도 속이 상했다.
“어, 흐…. 어떻게, 해야, 형이 좋을까요? 흑…. 형도 하아….”
그는 쾌감에 젖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서인의 쾌감을 도우려 했다. 서인은 그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느끼고 싶은데 도무지 흥분되지 않았다. 밋밋하고 역겨웠다.
“제가, 흐으…. 더 노력해볼게요, 흐….”
움직이기 편하게 앉은 무명은 서인의 허리를 붙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마음 같아선 멈추지 않고 처박고 싶었지만, 서인을 위해서 꾹 참았다. 한 방향만 찧기를 고집하던 그는 오른쪽으로도 움직여보고 조금 더 깊은 곳을 눌러보기도 했다.
“느낌이 어때요? 흐…. 저는 어디든 형이라면 좋….”
무명이 자꾸만 낯간지러운 말을 하자 서인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움직였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몸을 흔들던 서인은 무명이 오른쪽 구석을 세게 쳐올리자 비음 섞인 신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 으, 읏….”
“형? 좋아요? 좋은 거예요?”
무명은 숨소리만 내던 서인이 앓는 소리를 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가 잘하는 건지 아닌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저번과 같은 소리였기에 쉬지 않고 움직였다.
“흐, 읏…. 윽, 큭….”
여전히 무명에 비하면 정적인 신음이었다. 하지만 첫 관계와는 달리 서인의 얼굴에 흥분의 기색이 돌았다. 무명은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 목에서 손을 뗀 그의 반응을 살피며 다시금 가볍게 쳐올렸다.
“윽, 으…. 하아, 아….”
갑작스레 들이닥친 쾌감에 중심을 잃은 서인이 무명의 두 가슴을 잡고 고꾸라졌다. 무명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을 세워 하체를 열심히 움직이며 울었다.
“아! 씨발….”
서인은 그가 좀 더 깊이 삽입할 수 있게 두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러자 무명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움직였다. 결합부에 마찰을 가하자 젤과 뒤엉킨 정액이 크림처럼 뚝뚝 떨어졌다. 질척이는 소리가 서인과 무명에게도 들렸다.
“흐, 씨…. 좋아, 미친…. 지랄….”
정신을 차린 서인은 무명의 목을 짓누르고 제멋대로 엉덩이를 찧기 시작했다. 한 번도 군살이 생긴 적이 없는 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야, 씨발, 네 거보여? 윽,…· 여기…. 만져봐.”
“으…. 크윽…. 아, 응!”
그는 무명의 손을 제 배 위에 얹고 픽 웃으며 희롱했다. 극도로 흥분한 서인은 제가 무명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숨통이 틀어 막힌 무명의 움직임이 멈추자 인상을 쓰고 뺨을 내리쳤다.
“아!”
“허리 흔들어, 빨리. 쑤셔. 쑤셔 박아, 빨리…. 하아, 아….”
잠시라도 삽입이 늦어지면 서인은 아래에 깔린 무명의 얼굴을 후려치며 재촉했다. 한쪽 뺨이 퉁퉁 부어올라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얻어맞은 무명은 엉엉 울며 사정했다.
“그, 흐윽, 흑…. 그만할래요, 그만할래. 아파, 아파요….”
“어디가 아파, 하아….”
“조, 좆, 성기가 아파요!”
먼저 사정하지 말라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 무명은 서인을 밀어내며 도망치려고 했다. 이제야 꽤 그럴듯한 쾌감을 느끼던 서인은 무명의 뒤에 틀어박힌 장난감의 전원을 켜고 그의 배를 짚은 채로 세차게 움직였다.
“으응, 흣! 흐아, 아아! 아! 형, 으, 으응, 읏! 하…. 나 나와요, 흐, 나와, 아, 아!”
무명은 앞도 약하고 뒤도 약했다. 또 사정한 그는 이제 더는 못하겠다며 몸을 마구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후으, 응, 읏! 하아, 아…. 응….”
“하아, 좋아…. 명아, 형이 좋았으면 한다며? 윽…. 더 움직여, 빨리.”
무명은 멈출 생각을 않는 서인인 탓에 죽을 맛이었다. 사정하기 무섭게 또 움직이게 되니 밑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 내벽에 성기가 문질러지고 서인이 가슴을 계속해서 어루만져주자 정액이 울컥 터져 나왔다.
“으응, 읏…. 아파, 흑…. 쓸려서, 쓸려서….”
무명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쾌감에 젖은 서인의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어 허벅지가 마구 경련하는데도 허리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아, 아아…. 아, 좋아, 아…. 윽, 큭….”
서인은 뒤로 성기를 받는 게 이제야 두 번째고 무명의 움직임만으로는 사정할 수 없었기에 허리를 움직이며 무명의 배 위에 성기를 문질렀다.
“하으, 으, 형…. 배에, 배에, 형 거 성기가, 흑, 으… 아아!”
“조금만 더 빨리 움직여. 하아, 아…. 형도 갈 것 같아…. 윽.”
서인이 무명의 성기를 품은 구멍에 힘을 주고 유두를 깨물자 무명이 온몸을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셀 수 없을 만큼 사정한 무명은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다.
“모, 못해…. 이제 못해, 흑, 싫어…. 아, 아니, 좋아! 흑….”
“한 번만 더 하자. 응? 너 할 수 있어.”
무명은 싫다고 울며 발악하는 게 좋다고 했던 서인의 말을 떠올리고는 말을 바꿨다. 좋으니까 이제 그만하자고 애원하는 말을 무시하고 무명의 안에 든 모조 성기를 만지작거리던 서인은 물건을 반쯤 뽑아냈다가 다시금 깊게 박아넣었다.
“흐아, 앙! 아! 흐, 으윽, 으! 흐…. 흐으…. 흑, 흑….”
제 뒤에 틀어박힌 물건을 뺄 권한이 없는 무명은 등을 돌려 무릎으로 침대를 기었다. 제 딴에는 도망을 치고 있었지만, 서인에게는 박기 좋게 엉덩이를 들이댄 격이었다. 서인은 무명의 발목을 움켜쥐어 힘을 주어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싫어, 싫어어! 싫어, 흑, 못 해. 못해….”
“으응,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괜찮아.”
엎드린 채로 주르륵 끌려온 무명은 서인이 당기는 대로 움직였다. 무명이 소파에 다리를 벌린 채로 앉고 서인이 얼굴에 성기를 들이민 민망한 자세였다. 서인은 무명에게 제 성기를 물리고 스스로 뒤를 쑤시게 했다.
“우읍, 흡, 큭, 흐응, 응…. 우욱, 켁!”
“혀를 써서, 후…. 잘 빨아야지 빨리 끝나지. 응?”
“흐읏, 컥, 컥!”
서인은 꽤 오래 참고 있었던지라 무명의 목구멍이 조이자마자 이를 악물고 사정했다. 예고도 없이 터져 나온 정액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오자 무명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뱉어내려 했다. 잠시 숨을 고른 서인은 그가 뱉지 못하게 머리통을 쥐고 다시 성기를 삽입했다.
“삼켜야지. 너 안 삼키면 네 입에 오줌까지 싸줄 거야.”
“흐윽, 흑…. 에, 자모, 했어여….”
무명은 무릎을 꿇은 채로 눈을 지그시 감고 서인의 정액을 얌전히 받아마셨다. 엉망이 된 얼굴로 저를 숭배하듯 바라보는 시선에 서인은 정복감과 만족감에 몸을 떨었다. 이번에는 꽤 만족스러운 잠자리였다.
“힘들어?”
여러 번의 사정으로 녹초가 된 무명을 씻기는 것은 이번에도 서인의 몫이었다. 엉망이 된 무명을 대충 수습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물에 젖은 모습에 동해서 두 번은 더 했다.
“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무명은 제 허벅지에 자리한 타투를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정신도 없었고 아프기도 해서 뜻을 묻는다는 걸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서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이거 무슨 뜻이에요?”
“너 한자 잘 알잖아.”
“…잘 몰라요.”
서인이 알아서 찾아보라며 쉽게 알려주지 않자 무명은 덜컥 겁을 먹었다. 제 몸에 천박한 놈이라든지 걸레라는 단어가 새겨졌을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형…. 나 좋아한다고 했지?”
“…어, 몇 번을 말해?”
무명은 좋아하는 사람의 몸에 그런 나쁜 말을 새길 리가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서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나쁜 뜻이에요?”
무명은 제 허벅지를 가리키며 떠보듯 물었다. 바보 멍청이도 괜찮으니 성적인 단어만큼은 아니기를 바랐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질문에 서인은 고민 없이 부정했다.
“아니? 좋은 뜻인데.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좋은 뜻은 없을걸.”
자기애가 돋보이는 짧은 대답이었다. 서인은 제가 가장 잘났고 가장 훤칠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제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뜻이라고 확신했다.
가끔 토라질 때가 아니면 서인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하는 무명은 걱정을 덜고 더는 묻지 않았다.
♦ ♢ ♦
두세 달 후, 무명의 배는 살이 쪘다고 말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불러왔다. 그는 계절이 바뀌고 봄이 다가오는데도 두꺼운 옷을 포기하지 못했다. 서인도 이제는 지적하지 않고 무명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형식적인 비서 자리에 적응한 무명은 서인의 서재 금고를 관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아, 하….”
금고를 박박 닦고 안을 정리한 무명은 헉헉대며 땀을 닦았다. 요즘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계단만 올라도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어제는 서인이 일이 많이 힘드냐고 물을 정도로 안색이 좋지 못해서 먼저 집에 가 있기도 했다.
“보자, 서류가…. 어, 이게 여기 왜?”
서인의 금고를 정리하던 무명은 마켓에서 다루던 포트폴리오를 발견했다. 도축 전 고기의 사진과 번호 도축방식을 정리한 포트폴리오였다. 무명은 그가 고기를 많이 먹고 사실상 레드 마켓의 주인과 다름없다는 걸 알았지만, 막상 서류가 발견되자 기분이 묘했다.
“많이도 드셨네….”
서인이 먹었던 고기들의 사진과 도축 방법을 하나둘씩 살피던 무명은 제가 도축한 고기도 많은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못 본 척 포트폴리오를 다시 또 다른 서류를 훑던 무명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서류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뭐야, 이게?”
‘임상 시험 리스트’
무명은 서인의 첫 실험 내용이 담긴 기록지에서 처음 생긴 친구이자 스승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동명이인이겠지, 착각이겠지 하고 몇 번을 다시 봐도 이공일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실험체들은 다 1번, 2번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공일만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더 눈에 띄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그가 사라졌던 연도와도 적중했다.
“아니야, 설마, 아니야….”
순수했던 예전에는 공일이 정말 미국에 갔다고 생각했지만, 무명도 언젠가부터는 마켓에서 그를 처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불안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도 이런 식으로 소식을 접하는 건 원치 않았다.
[이공일 : 제 3차 약물에서 부작용 반응 보임. 발작, 구토, 경련, 발진]
“인당 몇 mg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 한계 실험? 아니야, 아니야….”
무명은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지만, 공일이 발작과 구토, 경련을 일으켰음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공일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서인의 약물 시험이었음을 알게 되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마켓의 고기를 소비하고 굵직한 자리에 앉은 사람인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공일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임은 용납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어떨진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그랬다.
“어, 일어났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부들부들 떨던 무명은 서재 문이 열리고 서인이 돌아오자 서류를 급히 숨기고 억지로 웃었다. 최근 그가 다정하게 대해주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또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뭐 해? 소파에서 자고 있지 않았어?”
“아, 네에…. 잠이 깨서.”
“요즘 아파서 걱정이네. 신경성인 거 같던데.”
무명은 서인이 저를 걱정해주며 안타깝다는 듯이 인상을 쓰자 마음이 약해졌다. 공일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살아온 건 사실이지만, 서인과 함께 지내던 내내 그를 그리워한 기억이 없었다.
고민에 빠져 그의 얼굴을 빤히 보던 무명이 은근슬쩍 서류 이야기를 꺼냈다.
“형, 이 실험서류 말인데요.”
“아, 그게 거기 있었어? 버려도 돼.”
“…거기에 공일이 형 있….”
“또 그놈의 공일 타령이야? 웬일로 조용하다 했다.”
서인은 무명이 다 말하기도 전에 짜증을 냈다. 몇 달간 공일의 ‘공’ 자도 안 꺼내서 이제야 잘 지내나 싶었는데, 또 반복하려고 드니 진저리가 났다. 서인이 그만하라며 자리를 옮기려 하자 무명이 그를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세요?”
“뭐? 머리 돌았어?”
“어떻게 공일이 형을 죽일 수가 있어요! 어떻게, 어떻게!”
무명은 머리가 돌았냐는 말에 스위치가 눌려 서인에게 서류를 집어 던졌다. 서인은 확인할 생각도 안 하고 미쳐 날뛰는 무명만 험상궂게 노려보았다. 공일인지 뭔지 그 재수 없는 놈을 왜 저한테 와서 찾는 건가 싶었다.
“요즘 너 좀 이상해. 병원 가 봐야겠는데.”
“…이거 보시라고요!”
무명은 바닥에 나뒹구는 서류를 주워 서인에게 던지듯 건네며 씩씩댔다. 그제야 내용을 살펴본 서인은 수많은 실험체 중 유일하게 이름으로 기재된 공일과 그 밑에 쓰인 실험기록을 보고는 혀를 찼다.
무분별한 약물 투여로 죽어나간 실험체가 하도 많아서 누군지도 모르고, 개발을 위해 남겨둔 서류라 할 말이 없었다. 기록에 있으면 실험한 게 맞는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네.”
“할 말 있잖아요, 저한테 할 말 있잖아요!”
“그래, 내가 죽인 거 맞네.”
“그게, 그게 할 말이에요?!”
사과를 바랐던 무명은 부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공일을 대상으로 약물 한계치를 실험했고 과용으로 죽어버렸다고 말하는 서인이 무섭기까지 했다.
“너 알기 전에 그런 거야. 누군지 따위는 신경 안 썼어. 그냥 흔한 실험체일 뿐이었다고. 따지려거든 너네 수장한테 가서 따져. 제공은 거기서 했으니.”
“제가 지금 그런 말을 원하는 거 같으세요?”
“그럼 뭐. 이미 뒤졌는데 어디 가서 사과할까? 없는 무덤이라도 만들어서 사….”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우세요!?”
무명은 끝까지 비아냥대는 서인의 태도에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서인의 가슴을 주먹으로 밀치며 격한 분노를 내비쳤다.
“내가 뭘 미안해야 하는데? 난 쓰라고 준 걸 쓴 거야. 씨발, 여기 서류에도 뒤진 놈들 많은데, 그럼 하나하나 다 가서 사과해야 하냐? 그럼 너도 네가 도축한 고기들 명복은 빌어줬어? 어? 그것도 생명이니까 사과해야지. 안 그래?”
“…저는요! 형이 공일이 형을 죽였다는 것도 화가 나지만, 그보다 더 화나는 건 제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는 뻔뻔한 서인을 보며 제 분노의 방향을 바로 잡았다. 공일의 죽음을 향한 분노가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 잘 따르던 스승을 죽여놓고서 미안한 척도 안 하는 서인의 태도를 향한 분노였다.
“왜, 네가 그 새끼를 사랑해서?”
“네?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뭐.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 새끼 살아있을 때 배라도 맞았던 사이야? 아니면 뭐, 애새끼라도 가졌나?”
서인은 불룩 나온 무명의 배를 손등으로 치며 그를 조롱했다. 미안하다고 말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무명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며 무시했다.
“사과하세요!”
“미친놈.”
서인은 공일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버리는 그가 싫었다. 제게 사랑해달라, 예뻐해달라며 온갖 애교는 다 피워놓고서 결국은 옛 남자보다는 못하다는 듯이 행동을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과 안 하시고 어딜 가시는 거예요!”
서인은 사과할 마음이 없으니 더는 대응하지 않고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자 무명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따라붙었다.
“명아, 사과할 마음 없으니까 그만하자. 경고했어.”
“사과하세요! 사과해요!”
“마음대로 쓰라고 준 걸 사용한 게 무슨 잘못인데? 난 줘서 받은 거야. 그리고 그 놈도 홍주원 눈 밖에 났으니까 실험체로 왔겠지, 일 똑바로 못 한 그 자식 잘못 아닌가?”
“지금 형 너무 역겨워요!”
“씨발, 역겨워? 그럼 너는? 사람 죽이면서 쾌감 느끼는 놈이, 뭐? 역겹다? 난 적어도 실험하면서 자지는 안 세웠어 씨발 새끼야!”
물론 무명이 어릴 적에 팔려 가 강제적으로 시작한 일임은 알지만, 무슨 사연이 있든 표면적으로는 그가 불법 도축가에 청부살인업자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서인은 대다수 사람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저 역시도 그런 부류였기에 눈이 돌아 대드는 무명이 같잖았다.
“너도 할 말 없지? 도축은 즐거운 거라며? 의뢰 받아서 사람 처 죽이는 것도 정의로운 일이라며?”
무명은 그의 페이스에 말려 대화의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제게 상처 준 것을 사과받길 원했을 뿐인데, 어쩌다가 서로를 비하하고 무시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그건 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에요! 하기 싫었어요! 하기 싫었다고요!”
“거짓말하지 마.”
양지로 나와 여러 가지 법칙을 배우고 사회화 과정을 거친 무명은 마켓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죄악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에선 세뇌당한 15년과 새로 새겨넣은 도덕성이 충돌하고 있었는데, 서인의 자극으로 저도 인지 못 한 본심이 튀어나왔다.
“흐….”
제 입으로 내뱉고 인정하는 순간 그간 당해왔던 온갖 학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명은 결국, 감정이 앞서 본 목적을 잃고 말았다.
“너무해,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괴롭힘당한 게 어떻게 제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저는… 전!”
“네가 나를 추악한 사람 취급했잖아, 내 행동이 역겹다는 건 나 자체도 역겹다는 거야. 그건 날 무시하는 거잖아? 난 상대가 누구든 무시하는 건 못 참아.”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화내야 하는 건 제 쪽….”
“네가 나한테 대들잖아! 네가 나를 부정했잖아, 네가 나를 역겹다고 했잖아?”
“제가 언제 그랬어요. 저는 그냥 사과만 해달라고 했을 뿐이잖아요. 왜,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무명은 눈물을 닦아내며 천천히 제 의견을 전했지만, 서인은 제 분을 누르지 못해 날뛰었다.
육류를 소비하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다고 손가락질받는 것도 지겨운데, 죄만 짓고 살아온 무명에게까지 그런 소리를 들으니 그는 논리고 뭐고 어떻게든 자신을 합리화하려 애썼다.
그 합리화에 무명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형한테 대들지 마. 무시하지 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형이 그러셨죠. 흥분했을 땐 대화하지 말자고? 나중에 이야기해요.”
역할이 반전되었다. 언제나 무명을 달래던 서인은 잔뜩 흥분해 화를 냈고 화를 내던 무명은 서인을 달래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즐겼잖아, 너. 사람 죽이는 거 즐기고 내가 고기 처먹는 보고 흥분했으면서 왜 깨끗한 척해? 씨발, 하하! 진짜 웃기는 새끼네?”
“아니야…. 아니에요!”
“어떻게 확신하지? 지금에서야 생각이 바뀐 거지. 나 납치했을 때 만해도 즐겼잖아. 죽일 생각에 들떴던 거 아니야?”
“아니라고 했잖아요! 죽여버릴….”
도발에 가까운 서인의 자극에 무명은 순간적으로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내뱉고 입을 틀어막았다. 서인은 놀란 그를 보고 픽 웃었다.
“거 봐. 죽이고 싶지? 그럼 해 봐.”
서인은 무명의 손에 칼을 쥐여주고는 팔을 잡아당겨 제 목에 가져다 댔다.
말실수한 무명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잘못했다고 빌었고 서인은 칼을 계속해서 들이댔다. 날에 긁혀 목에서 피가 조금 배어 나오자 무명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
“근데, 너 절대 나 못 죽일걸? 왜 그런 줄 알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네가 날 사랑하니까.”
무명이 눈물을 터뜨리며 주저앉았을 때야 서인이 칼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저 상처 줘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무명은 제 과거 이야기와 청부살인, 도축까지 들먹여 싸우게 된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니었는데에, 흐…. 흐으,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인데, 흐…. 윽, 끅!”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돈까지 갖다 바치는데, 뭘 그딴 걸 바래? 근본도 없는 놈 명복 빌어주고 사죄할 생각 없어.”
대리석 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명은 사과를 받기는커녕 상처만 잔뜩 받았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을 서인은 주저앉아 우는 그에게 멈추지 않고 막말을 퍼부어댔다.
“고마움을 알아야지.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끄집어내 줬잖아. 일당도 제대로 안 쳐주는 그 쓰레기 같은 곳에서. 그런데 뭐가 그리 불만스러운데?”
“불만이 아니에요…. 전, 제, 흑…. 유일한 친구이자, 흑, 스승님을 죽였으니, 미안하다고 사과해주시길 바랐어요. 흐…. 공일이 형이 아닌, 상처받은 절 위해서….”
“그러니까 씨발. 말만 다르지 결국 뜻은 같잖아? 내가 그 새낄 처죽여서 네가 상처받았다는 거 아냐. 다시는 평생 만날 수 없으니까!”
“저는 형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데, 흐, 흑…. 형은….”
“희생? 내가? 내가 왜 그딴 걸 해.”
서인은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했고 또 예민했다. 무명은 제가 왜 혼나는지, 서인이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몰라서 무서웠다.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고 멋대로 생각해버리니 더는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그냥 참아. 절대 못 사과 못 해주니까. 이미 뒤진 걸 나더러 어쩌라고.”
“…너무해, 흐으, 내가 형 집에 오면 잘해준다면서, 이제 힘들게 안 살게 구? 구원? 해준다면서!”
“내 존재 자체가 너한테 구원이지, 아냐?”
의도치 않은 말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한 무명은 슬픈 얼굴을 하고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겨진 서인은 죽어서도 저와 무명의 사이를 방해하는 공일을 흉보며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하….”
약 상용화 이후로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 같아 예민한 상황에서 무명이 저보다 공일을 우선시하니 폭발적인 분노가 몰려왔다.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몰아붙이던 제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무명의 모습을 비교해본 서인이 한숨을 쉬었다. 우는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으니 그는 아예 방에 가보지도 않았다.
서인은 언제나 그랬듯, 무명이 먼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9시, 평소보다 늦게 눈을 뜬 서인은 제 옆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서 큰 소리로 무명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딜 간 거야.”
2층 방부터 욕실까지 모두 열어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옷장도 열어보고 테이블 밑도 살펴봤지만, 무명은 없었다. 가진 물건이라곤 서인이 사준 옷밖에 없으니 그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무방했다.
“…뭐야.”
전화를 걸어도 역시 받지 않았으며 마당에 산책하러 나간 것도 아니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이쪽저쪽 무명의 흔적을 찾아보던 서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제가 있어서 형이 힘들다면 떠나드릴게요. 찾지 마세요. 사과할 마음이 들면 저를 찾으세요.]
벌써 두 번째 받는 통보 메시지에 서인은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가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그는 관심을 못 받아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구는 무명의 쪽지를 구겨버리고 제 할 일을 했다.
‘사과해요! 사과하세요!’
서인은 조금 잘 해줬다고 제가 우위에 선 것처럼 명령하는 무명을 아예 찾지 않기로 했다. 뭣도 모르는 놈이 가봐야 마켓이 전부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찍소리도 못하고 울기만 했던 놈이 대들고 기어오르니 짓밟아 제 주제를 알려주고 싶었다. 몇 달간 찾아가지 않으면 울면서 먼저 돌아올 모습이 눈에 선해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제 부재가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게 우습기만 했다. 무명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좆이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그깟 징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인은 제 공간이 함부로 들락날락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이참에 확실히 알려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건방진 새끼.”
따뜻한 곳에서 배불리 먹고 살다가 고생 한 번 해봐야 소중함을 안다며 그는 무명의 전화번호까지 아예 차단해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서재에 앉아있던 서인은 머리를 말리며 출근 준비를 했다.
’형, 제 머리 봐요…. 왜 저는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거예요?‘
젤을 발라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니 딱 달라붙어 칭얼거리던 무명이 생각났다.
제 머리는 왜 부풀어 오르냐고 툴툴댈 때마다 서인은 귀찮은 척했지만, 부푼 그의 머리를 젤로 정리해주는 것을 즐겼었다. 갓구운 빵 같아서 좋기도 하고 저도 멋진 남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거냐며 좋아하던 얼굴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아…. 씨발.”
제 머리를 다 정리하고도 습관적으로 무명의 몫을 짠 서인은 손바닥에 남은 젤을 보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그런 이상한 행동은 회사 집무실에서도 이어졌다. 혼자인데 두 사람 몫의 커피나 점심을 부탁한다던가 등등 누가 봐도 무명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모습이었는데, 본인만 인정하지 않았다.
“대표님, 오늘 일정 없으시지 않습니까? 주말에 모처럼 만에 휴일인데….”
“내가 언제 휴일이 있었나, 뭐.”
서인은 식어 빠진 커피를 갖다 치우며 다 본 서류만 보고 또 봤다. 그러다가 문제를 만든 포트폴리오가 생각나서 열이 확 올랐다. 그딴 쓸모없는 쓰레기를 서재 금고에 처박아둔 과거의 제가 혐오스러웠다.
“하, 명이 지금 어딨나 알아봐. 마켓이겠지만, 뭐.”
“네? 집에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니까 알아보라고 하겠지?”
대욱은 서인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무명과 싸운 것 정도로 예상했지 집을 나갔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몇 달간 싸우지 않고 연인처럼 잘 지냈었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내가 신경 쓰는 거로 보여? 내가? 내가 왜.”
대욱은 서인과의 대화에서 데자뷔를 느꼈다.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서인이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볼 바에야 대욱은 좀 욕을 먹더라도 그가 제 마음을 자각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미 아시잖습니까.”
“뭘.”
“온종일 무명 님만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곁에 두고 싶으시면 데려오세요. 어차피 발목도 성치 않으신데, 잡아 오면 또 도망갈 수나 있겠습니까?”
“…….”
제게 싫은 소리 안 하는 대욱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공격적으로 말하자 서인도 닥치고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회장님 사랑이 대표님과 같다는 법도 없는데, 뭘 그리 겁내십니까?”
“겁?”
“그깟 사랑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그깟 사랑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 건 기분 탓일까, 서인은 제 일처럼 분노하는 대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벌써 두 번이나 말했는데, 세뇌하는 것도 아니고 제게 사랑을 강요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또 대욱이 개인적인 일로 이렇게 간섭하는 건 처음이라 불쾌했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날 무시하기 바쁘지, 씨발.”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뜻 아니에요! 불만 있다는 게 아니에요!‘
건방진 건 무명 하나로 족한데, 언제나 충성하는 대욱까지 이런 식으로 나오자 서인은 다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실컷 무시해놓고서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는 것도 똑같았다.
저 안 보는 사이에 둘이 잠이라도 잤냐고 말하려던 그는 미친 소리를 하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하, 하하….”
서인도 확실히 제가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대욱과 무명이 잤다는 선 넘는 발언까지 하려 했다는 게 충격적이었고 그런 자신이 낯설었다. 제 혼란스러움이 타인에게도 보인다고 하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우선, 무명 님의 거처를 찾아보겠습니다.”
“됐어. 찾지 마. 너, 나 잘못 봤어.”
“…….”
대욱은 서인이 제 마음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자극했는데, 막상 그는 다른 쪽으로 자극을 받고 말았다. 필요 없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무명을 아예 찾지 말라고 명령했다.
“대답해.”
“예, 알겠습니다.”
대욱은 어쩔 수 없이 대답하면서도 무명이 어디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서인을 알고 지낸 긴 세월 간 한 번도 하지 않은 명령 불복종이었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그렇게 해야 하겠다고 판단했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