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인의 상용화 당일, 무명은 더 부풀어 오르는 배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스트레스와 불안도가 높아진 그는 매일 토하고 손등을 깨물며 울었다. 이 비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낮에 와서 주사만 놓고 그냥 가버려서 무명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갔다.
“외로워, 흐, 외로워…. 아파, 아파….”
배는 배대로 나오지, 말 상대도 없지, 어릴 적 갇혔던 감옥과 다를 것 없는 환경이었다. 서인이 그토록 바라던 날이라고 하니 전화도 못 하는데, 아파서 정말로 죽기 직전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눈물이 날 때쯤 이 비서가 방문을 열고 다가왔다.
“이, 이 비서. 나 아파, 아파…. 너무 아파, 병원에, 병원에 갈래, 갈래…. 흐윽, 흐….”
무명은 분위기와 주사가 무서워서 꺼렸던 병원을 가겠다며 이 비서를 붙잡고 빌었으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주사만 놓으며 나가버리려 했다.
“배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고!”
“아, 씨발…. 그래서 어쩌라고!”
“…뭐?”
이 비서에게는 더는 무명을 신경 써줄 만한 이유가 없었다. 상용화 날에 맞춰 모든 일을 터뜨릴 테니 무명이 이대로 죽든가 말든가 알 바 아니었다.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무명은 충격받은 얼굴로 이 비서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는 거야?”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던 무명은 좋지 않은 상황을 감지했다. 서인이나 대욱이 없을 때 유일하게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그가 돌변하자 무명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왜 그래? 이 비서, 응?”
“애 뱄으니까 배가 처 나오지.”
“애 밴 게 뭐야? 무슨 말이야?”
무명이 배를 문지르며 불안해하자 이 비서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무명은 제게 돈도 주고 일자리도 내주던 그의 호의를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캐물었다.
“이 비서!”
“이제 너나 권서인이나 볼 일 없어.”
“왜 서인이 형 이름을 함부로 불러?”
“그 새끼도 오늘이면 끝나! 네 덕분에 내 복수가 빨라졌거든!”
“…복수라니?”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이 나오자 무명이 인상을 찌푸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 비서는 어차피 오늘이면 볼 일 없으니 언제부터 무명을 속이고 이용했는지를 떠들어대며 그를 조롱했다.
“하하! 그것도 모르고 나한테 달라붙었다니. 안타까워서 어떡하냐?”
이 비서는 더는 두려울 게 없었다. 약한 정보부터 터뜨려 서인에게 협상을 요구하고 만일 결렬 된다면 수위를 높일 생각이었다. 이틀 뒤 아침, 기자에게 보낼 메일을 예약해뒀다는 말에 무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 비서의 멱살을 쥐었다.
“취소해! 당장 취소해. 미쳤어? 서인이 형이랑 오래 일했다며! 형이 잘 해줬잖아!”
“잘? 잘해줘? 씨발, 잘 해줘? 내가 씨발! 아무것도 아닌 고기나 써는 새끼가 뭘 알아?! 권서인 그 새끼가 나를 어떤 식으로 부려먹었는데! 잘해준다고? 잘해줘? 어!?”
서인을 향한 분노와 자격지심에 눈이 뒤집힌 그는 무명을 향해 컵을 집어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난 무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덜덜 떨기만 하자 이 비서는 볼 일 다 봤다며 그대로 떠나려 했다.
“어딜 도망가!”
화가 난 무명은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도망칠 수 없게 단단히 옭아맸다. 그 순간, 이 비서의 옷이 당겨지며 길쭉한 만년필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 대표님, 고기는 무슨 맛으로 드십니까?
-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데, 이번에 주문하면서 이 비서도 하나 가져가.
-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가격이 비싸서 궁금했는데 먹어볼 수가 없었거든요. 대표님 덕에 이렇게….
“…이게 뭐야?!”
만년필을 집으려는 이 비서를 힘으로 제압한 무명은 서인과의 대화는 물론 저와 나눴던 대화까지 모두 녹음된 것을 확인하고 이 비서를 노려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러게 누가 믿으랬어? 이미 끝났어! 네가 다 뒤집어쓰게 될 테니까!”
무명이 배신의 충격에 빠져 정신을 놓은 틈을 타 만년필을 빼앗은 이 비서가 이를 악물고 도망치려 했다. 배신감에 슬퍼하던 것도 잠시, 무명은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이 비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놔! 내놓고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해! 서인이 형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뭘 잘못했는지는 세상이 판단해주겠지!”
긴 시간 동안 연락도 없고 집에 돌아오지 않은 서인에게 상처를 받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가 바닥으로 내려앉거나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아서 무명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너 같이 불우한 놈이 들으면 공감이 될….”
“상관없어, 너 따위가 뭘 어쨌든…. 서인이 형 괴롭히는 사람은 다 죽여버릴 거야.”
도망치다 보니 욕실로 몰리게 된 이 비서는 칼을 쥐고 다가오는 무명을 피해 뒷걸음질쳤다. 만년필 녹음기를 둔 몸싸움은 더 격해졌다. 무명이 칼을 휘두르자 놀란 이 비서가 황급히 피하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찢어진 옷가지에 발목이 휘감겼다.
“어, 어!”
중심을 잃은 데다가 무명이 무게로 몸을 짓누르자 당황한 이 비서가 손을 더듬어 아무거나 붙잡고 봤는데 그 물건이 하필 힘없는 드라이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손가락 사이에 드라이기 선이 칭칭 감겼다.
“잠깐만! 악, 아! 윽!”
무명은 그러거나 말거나 만년필을 빼앗기 위해 칼로 이 비서의 손을 망설임 없이 내리찍었다. 서인을 지켜야 했다.
손가락 사이에는 드라이기 선이 휘감겼지, 발목은 옷가지들이 붙잡고 있지, 이 비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자 땀 젖은 손에서 만년필이 미끄러졌다.
“잡았다!”
“안 돼, 윽, 내놔!”
“죽어!”
무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만년필을 잡아냈으면서도 이 비서의 가슴을 마구 찔러댔다. 서인을 힘들게 하는 존재는 모두 죽어도 싸다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에게 마구 칼을 휘둘렀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그는 뒷일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얼굴과 욕조 주변이 피가 튀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을 들이받는다던 해태 조각상의 머리도 피 범벅이 되어 눈 뜨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흉했다.
“서인이 형 괴롭히지 마! 다 죽어! 죽어!”
입은 서인을 향한 복수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무명은 몸을 쑤시는 감각에 손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훼손된 부위를 응시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아, 하, 흐….”
축 늘어진 몸을 보고 정신을 차린 무명은 핏빛으로 물든 욕조 속과 동상을 보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장 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정도로 격하게 뛰었다.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눈 앞에 펼쳐진 자극적인 색상이 그의 학습된 본능을 흔들어 깨웠다.
“하아…, 씨.”
죽도록 찔렀는데, 이 비서는 꽤 질겼다.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물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모습을 본 무명은 이 비서의 팔을 붙잡아 물 밖으로 끌어냈다. 시체의 부피를 줄여 치워야 했다.
‘욕실에서는 천천히, 조심히 움직여야 해 미끄러져서 해태 동상에 머리라도 박아봐. 그날로 죽는 거야, 너. 그래도 내가 주인이니까 괜찮아. 내가 너 죽이지 말라고 할게, 그러니까 그만하고 씻자.’
“해태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을 들이받아. 나는 정의로우니까…. 서인이 형이 주인이라고 그랬으니까.”
이 비서를 끌어내며 서인의 목소리를 떠올린 무명은 이 모든 게 해태의 주인인 서인의 뜻이라며 중얼중얼했다. 급기야는 이 비서가 주인인 서인을 무시해서 해태가 벌을 준 것이라고 사고를 합리화까지 했다.
“해태가 그러라고 했어.”
이 비서의 시신을 물 밖으로 끌어낸 무명은 더는 숨 쉬지 않는 그를 번쩍 들어 바닥에 눕히고 확인사살을 하듯 목을 졸랐다. 눈을 까뒤집고 죽은 이 비서의 모습을 본 무명의 몸뚱어리는 상상 이상의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발기해버렸다.
“하, 씨….”
욕조 물을 모두 내려보낸 무명은 물이 묻은 이 비서의 손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마지막 예의 따위가 아닌 지문 인식으로 이 비서 휴대전화 잠금을 풀기 위함이었다. 잠금을 푼 그는 황급히 메일함을 열어 예약을 취소하고 휴대전화와 만년필을 숨겼다.
“사용법 배워둬서 다행이다.”
검은 비닐까지 야무지게 챙겨온 무명은 시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서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증거인멸 시간이었다. 칼로는 턱도 없는 상황에 그는 굳은 목을 주무르며 심호흡을 했다.
솜씨가 좋아 깔끔하게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도구가 부족했다. 톱과 절단기 따위를 사러 가려던 무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꼬리가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하실로 내려가 서랍을 뒤적이던 그는 왜 있는지 모를 족쇄를 가져와 이 비서의 양 발목에 묶고 해태의 머리에 쇠사슬을 연결해 거꾸로 매달았다. 그 밑에 비닐봉지를 수십 개를 깔아두고 욕실 문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하아, 얼른, 빨리….”
무명은 작업에 마땅한 도구가 보이지 않자 불안하고 화가 났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제게 휴대전화를 빌려줬었던 부하 노동자에게 뻔뻔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오전 5시까지 작업 도구, 운반구 준비. 집 앞.]
기본 인사도 없이 필요한 물건만 적어 보낸 무명은 답도 보지 않고 이 비서의 몸을 널어둔 욕실에서 몸을 씻어냈다. 샴푸까지 풀어 욕조를 깨끗이 닦아낸 그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등을 기댔다.
♦ ♢ ♦
서인은 밀렸던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약이 완성되지 않아 미루고 미뤘던 기자회견도 이제 더는 늦출 필요가 없었다.
끼니까지 거른 그는 보고서를 몇 번이나 살폈다.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일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또, 제가 써야 하는 약이기도 하니 더 꼼꼼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너도 수고했어.”
마지막으로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서인은 제 위상과 사회적 지위가 한층 더 높아질 중요한 자리로 한 걸음 다가갔다. MS 그룹의 이사가 아닌, 그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한 약을 개발한 SI 그룹의 대표로 완벽히 탈바꿈하게 될 역사적인 순간이다.
서인은 벅찬 마음을 숨기고 덤덤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성분과 임신 기간, 남성의 몸에 미칠 영향까지 모두 순조롭게 설명해나가고 있는 가운데, 조금은 날 선 질문이 들어왔다.
“권서인 대표님께 질문드립니다. 기존 S 사의 남성 임신 촉진 약물의 부작용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예.”
“SI의 제품인 아젝신, 안트로덱신 역시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이치를 깨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성도 임신이 가능한데 말이죠.”
예상했던 질문에 서인은 당황하지 않고 준비한 약물을 꺼내 들었다. 부작용에 관해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이런 질문들이 진부했다.
그는 제 앞에 놓인 약의 포장지를 벗겨 입에 넣고는 보란 듯이 씹어 삼켰다. 삼켜서 복용하는 제품이라 입이 썼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안에 숨겼다는 의심이 싹틀 테니 선택한 방법이었다.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습니다. 가벼운 두통, 메스꺼움 정도는 따를 겁니다. 하지만, 그 밖의 부작용은 생기지 않으리라고 확답드립니다. 약을 먹은 지금부터 저는 제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거짓 없이 기록하여 보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서인이 몸소 보여주고 보상을 어떻게 할 건지 자세히 설명해도 성별을 강조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질문이 많았다. 그는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기자들의 답변을 받고 그들의 성별을 확인한 뒤 한숨을 쉬었다.
“아젝신을 개발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남성들이 임신을 이렇게나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동안 여성의 임신은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지 않습니까? 막상 남성의 일이 되자 부작용을 극심하게 걱정하고 경과를 직접 보이겠다는 말에도 불신하고 계시군요.”
질문을 골라 받으며 기자회견을 끝마친 서인은 기자회견 내내 윙윙 울려대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는 모두 대욱이었는데, 전화를 걸기 무섭게 들려온 말은 거슬리는 보고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작업 도구랑 운반구를?”
- 예, 메시지를 보낸 장소도 별장이 아닌, 집입니다.
당장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무명이 수상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는 보고를 듣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미친놈이 죄 없는 행인을 죽인 게 아닌가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누굴 죽였는지는 몰라?”
- 예, 메시지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우선 계속 보고 있어. 전화하면 바로 도청하고.”
-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비서와 연락이 닿지 않….
“그런 시시한 것까지 내가 알아야 하나? 끊어.”
서인은 안 가겠다고 지랄하더니 얼마 못 가서 도축도 아닌 살인을 한 무명을 참 깜찍하다고 느꼈다. 제가 육류 소비를 멈추지 못하듯, 그 역시 평생 해 온 일을 멈추지 못할 게 뻔한데, 대답을 망설이긴 왜 망설인단 말인가.
킬킬 웃던 그는 아프다는 소식도 자해했다는 소식도 아니니 내일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 ♢ ♦
아침 6시, 야무지게 세수를 하고 양치까지 마친 무명은 이 비서에게 아침 인사를 한 뒤 사방에 방수포를 깔았다. 해태에 매달린 몸을 바닥에 눕힌 그는 목장갑과 마스크, 방수 옷으로 무장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으으음, 음…. 즐거운 작업, 즐거운 작업!”
무명은 숙련자라 처리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업하기에 장소가 조금 협소하긴 해도 고수는 장소나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이 비서를 처리한 뒤 거실에서 TV를 보았다.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이 반복되고 또다시 해가 져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홀로 지내는 동안 혼잣말의 빈도가 높아진 무명은 이런저런 음식의 이름을 읊으며 혼자 떠들어댔다. 냉동 피자와 즉석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던 그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
이 비서는 죽었으니 찾아올 사람은 대욱 아니면 서인이었다. 그는 욕실 앞에 담요와 옷가지들을 쌓아놓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도대체 왜 온 거야?”
“…….”
그는 아직 이 비서의 시체를 처리하기 전인데, 여태껏 단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다가 곤란할 때 와서 시간을 빼앗는 대욱이 원망스러웠다. 혹시나 욕실이라도 열어보면 큰일이니 등지고 서서 그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틀어막았다.
“대표님 곧 집에 오실 겁니다.”
“왜!?”
“예?”
무명은 서인이 오는 게 좋기도 했고 현재로선 싫기도 했다. 그가 이 비서를 죽인 일을 칭찬할지, 화를 내며 때릴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무명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자 대욱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욕실에 뭔가 있습니까?”
“없어!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우선 알겠습니다. 대표님 화나지 않으시게 알아서 잘해주세요. 그리고 피곤해 보이시니 좀 쉬시고요.”
그 밖에도 대욱은 식사는 했냐, 옷은 왜 이렇게 두껍게 입고 있냐 등등 무명에게 계속 말을 걸며 상태를 살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두꺼운 옷을 입은 그가 영 수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명 딴에는 볼록 나온 배를 가리기 위함이지만, 모르는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추워서 그런 거니까…. 어?”
변명 가득한 대답을 내놓으며 대욱을 쫓아내려던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서인이 들어왔다. 무명은 달려나가려다가 욕실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뭐야, 안 반가워?”
“반갑죠…. 정말 반가워요!”
서인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던 무명은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울상을 지었다. 서인은 잘생기고 멋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고백을 받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자, 꽃.”
다 데워진 피자를 꺼내든 무명이 식탁에 앉기 무섭게 서인이 그 앞에 장미꽃을 던져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필이면 피자 위에 정확히 떨어진 탓에 서인이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무명은 다른 남자에게 받았다고 생각해 장미꽃을 무심하게 쳐내며 서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네, 정말 예쁜 장미꽃이네요. 누구한테 받으셨어요?”
“그래.”
“아, 바쁘지 않으세요?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하세요? 형은 이런 거 안 드시잖아요.”
화가 난 무명은 너는 고기만 먹지 않느냐고 은근히 무시하는 투로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찾아오지도 않았으면서 기껏 와서 한다는 게 다른 놈에게 받은 꽃을 던져놓으니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오다가 주웠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버리든 말든.”
서인은 굳이 피자를 먹는 무명에게 나쁜 말을 하며 성질을 긁었다. 널 위해서 샀다, 오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될 것을 끝까지 자존심을 세웠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무명이 보란 듯이 장미꽃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너…!”
그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서인은 화가 난 얼굴로 무명의 어깨를 붙잡았다. 벌써 울고 짜고 할 정도로 무서웠지만, 지금은 제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를 표출하고 싶었다.
“마음대로 하라면서요?”
꽤 오랜만에 만난 둘은 반가워하기는커녕 또 싸우기 시작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명이 꽤 당당하다는 점이다.
물론 겉으로는 그랬지만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심장이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요동치고 몸이 뜨거웠다. 보고 있다가는 감정을 들킬 것 같아 무명은 욕실 문 앞에 늘어진 옷가지를 치우는 척했다.
“야.”
“…….”
“야!”
무명은 서인이 소리를 지르며 저를 불러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옷가지만 만지작거렸다. 결국, 열 받은 서인이 무명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입을 맞췄다.
“으, 읍!”
오랜만에 만났으니 꽃을 주며 좋은 분위기를 잡아보려 했건만, 성격 못 죽이고 지랄해대니 강제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대욱은 갑자기 불 타오는 둘의 사랑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흐으, 흐…. 턱 아파요!”
대욱이 나가거나 말거나 짜증이 난 서인은 다짜고짜 바지 지퍼를 내려 핏줄이 불거진 성기를 꺼내냈다.
“씨발, 내가 이 나이 먹고 자위나 하고 살아야 하나? 알아서 대줘야 할 거 아냐!”
무명은 그 와중에 빳빳하게 일어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서인의 물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묘한 흥분이 따라서 몸이 간질간질했다.
“어떻게 할 거야. 책임져.”
서인은 서지 않는 것도 아니고 망가진 것도 아니면서 흉측한 물건을 무명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밀며 흔들었다. 자위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듯 귀두 끝이 조금 부어있었다. 무명은 붉고 커진 성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 반항은 끝났어?”
그는 못 본 사이에 성기가 더 커진 것을 신기해했다. 기둥을 눈으로 훑으며 구경하던 무명은 서인의 도발에 눈을 끔벅이다가 침대맡 서랍에서 콘돔을 꺼냈다. TV 프로그램에서 성관계할 때에는 꼭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배웠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콘돔? 뭐 하는 거야?”
“우리 성관계하는 거 아녜요?”
서인은 서랍에서 콘돔을 종류별로 꺼내 드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썼다. 제가 사둔 건 맞는데, 어떻게 알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제가 집에 없는 사이 누군가와 붙어먹은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함께였다.
“뭐 하는 거냐니까!”
“딸기랑 바나나 맛이에요. 형이 좋아하는 고기 맛은 없더라고요.”
무명은 눈앞에서 덜렁이는 성기를 붙잡고 바나나 맛 콘돔을 꺼내 들었다.
콘돔을 버벅대며 씌우는 모습에 서인이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무명은 그저 TV에서 배운 대로 해보는 것뿐인데, 서인의 머릿속은 온갖 불순한 생각으로 가득 차 혼란스러웠다.
누가 무명에게 콘돔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는지, 누구에게 더럽혀졌는지 따위를 생각하며 폭발적인 질투를 짓눌렀다.
“해 봐. 그래.”
안 그래도 장미를 거절당해서 자존심 상하는데 질투하는 것까지 티 내고 싶지 않은 서인은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투로 성기를 들이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명은 바나나 맛 콘돔을 씌운 성기 끝을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벌렸다. 배운 게 있으니 그는 자신만만하게 서인의 어깨 쪽에 발을 놓고 고개를 사타구니에 처박았다.
“읏….”
무명의 말캉하고 뜨거운 혀가 예고도 없이 닿자 서인이 신음했다. 강제로 구강성교를 시킨 적은 있었지만, 무명이 자발적으로 시도하는 건 처음이었다. 신음이 듣기 좋았던 무명은 혀로 두툼한 귀두를 핥기 시작했다.
“윽!”
“우욱, 욱!”
경험이 많은 서인도 콘돔을 씌운 채로 구강성교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행위였다.
“콘돔 빼, 후….”
서인은 콘돔의 윤활제를 먹은 무명과 키스하기 싫었다. 처음으로 주도권을 쥐고 분위기를 잡던 무명은 마음대로 하라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그에게 화가 나 한숨을 쉬며 또박또박 따지고 들었다.
“형이 책임지라면서요? 책임지려고 하는데 자꾸 움직이면 어떡해요? 흐….”
“하는 건 좋은데, 콘돔을 씌운 채로 입에 넣으면 어떡하냐고.”
어느새 무명의 입속에 손가락을 넣은 서인은 못 볼 걸 봤다는 얼굴로 입안을 열심히 긁어냈다. 무명은 두꺼운 손가락이 입속에 틀어박혀 설명도 하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렸다.
“그러고 보니 너 때문에 정신 팔려서 씻지도 못했잖아. 씻고 해.”
서인은 애무를 받다 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오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무명은 살인 및 도축이 일어났던 장소로 향하는 서인의 손목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짓눌렀다.
“형은 안 씻어도 예뻐요!”
무명은 서인을 붙잡고 끙끙 앓았다. 성내는 일에 집중하다가 그만 가장 중요한 욕실을 사수하지 못하게 된 무명은 씻는다는 서인의 말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더러우니까 씻고 하자고.”
“좀 가만히 있으세요!”
위생을 잊고 있던 서인은 씻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며 무명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욕실로 가려는 서인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입을 맞췄다.
“으, 읍…. 좀 씻고 하자고!”
“안 돼요. 그냥 해요. 제발…. 형 만지니까 아래가 터질 것 같아요. 당장 하고 싶어요. 빨고 싶어요…. 네?”
무명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서인의 입술을 문지르며 안달 난 사람처럼 애원했다. 흥분에 절은 눈동자가 서인을 동하게 했지만, 그는 제가 정한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제발, 제발 가지 말아요….”
아무리 막아도 서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무명은 황급히 작전을 바꿔 동정심을 유발했다. 잠시 흔들리는 듯했던 서인의 두 눈이 떨리는 무명의 손에 닿았다.
“씨발, 이 개새끼가. 너, 욕실에 남자 숨겨놨지?”
“네!?”
“여자야, 남자야? 뭘 숨겨놨길래 못 가게 막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튀었다. 씌우는 법도 몰랐던 콘돔을 어떻게 이리 잘 쓰는가 하는 의심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무명에게 음란한 행위를 가르쳐 준 사람의 얼굴을 봐야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너, 지금껏 다른 새끼랑 붙어먹었지? 너덜너덜한 걸레 새끼가 씨발….”
질투와 분노로 눈이 뒤집힌 서인은 무명을 밀어내고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무명은 그가 욕실로 들어서자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했다. 혹시 몰라 이 비서의 시체가 든 가방을 욕조 뒤에 숨겨놓긴 했지만, 자세히 본다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열심히 작업해서 부피가 그리 크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 아무도 없으면서 왜 그따위로 행동해!”
“죄송해요…. 그러니까 이제 나오세요!”
그 누구도 없음을 확인한 서인은 뒤늦게 몰려오는 수치심에 무명에게 괜히 윽박질렀다. 상대를 숨겨둔 게 아니면 도대체 왜 욕실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는 작정하고 숨겨 둔 게 아닐까 싶어 욕조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이게 뭐야.”
“흐윽, 흐….”
결국, 서인이 삐쭉 튀어나온 캐리어 손잡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무명은 변명하거나 말려봐야 늦었다는 걸 알고 주저앉아버렸다. 가방을 열어 본 서인은 신원 파악이 불가할 정도로 잘게 달라진 사체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거 설마…. 명아, 너, 오늘 주사는?”
“맞았어요!”
“언제.”
“오전에 이 비서가 와, 와서요….”
서인은 손등에 손톱을 세우는 무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더듬는 꼴이 지나가던 개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다. 서인은 온종일 연락도 닿지 않던 이 비서에게 주사를 맞았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는 그의 태도로 가방 안의 시체가 이 비서임을 확신했다.
“이런 식으로 형한테 거짓말하는 건 별로 안 예뻐.”
“거짓말 아니에요. 마켓가서 도축하라고 허락해주셔서 도축했을 뿐이에요. 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서인은 무명에게 솔직히 말할 기회를 주었다. 석 달을 혼자 둬도 크게 사고 치지 않았고 저를 위해 약물 실험까지 해주니 이 비서 정도야 죽여도 봐줄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유를 알아야 하니 물었을 뿐인데 이따위로 거짓말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명아, 형 열 받게 하지 마. 말해. 이 비서 왜 죽였는데? 네가 뭘 하든 봐줄 순 있지만, 거짓말은 용서 못….”
“안 죽였어요!”
서인은 이미 다 아는 거 왜 이렇게 우기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비서를 죽여도 그냥 넘어가겠다는데 끝까지 우기는 건 제 말을 못 믿는다는 뜻밖에 되지 않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하….”
“안 죽였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소중해요? 이 비서가 중요하냐고요! 키스도 거절하고 너무해요!”
“내가 이 비서가 소중해서 이러는 거 같아? 이해력이 안 좋아? 머리통은 왜 달고 있어? 그냥 박살 내, 씨발.”
무명은 화내는 서인의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벽에 붙인 뒤 소독까지 마쳤는데 서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핏자국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소독약 냄새는 환기를 시킨 탓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
무명은 그의 의도를 완전히 착각했다. 서인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는데, 무명은 이 비서를 죽였음에 분노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말해봐야 더 혼나면 혼났지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거 같아 계속해서 거짓을 고했다.
“명아, 여긴 내 집이야. 나는 환경에 예민한 사람이고.”
“안 죽였어요, 안 죽였어요!”
“너, 해태 동상. 신경 안 썼지?”
무명은 해태 동상을 가리키는 서인의 손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두 번 하는 작업도 아닌 데다가 열심히 닦고 소독도 했기 때문에 무언가 남아있을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뭐가요?”
“해태 목 부분을 뭐로 묶어뒀어? 뭘 널어뒀나?”
“…….”
족쇄를 이용해 이 비서를 해태에 매달아 두었던 무명은 식은땀을 뚝뚝 흘렸다. 해태의 목이 단단한 족쇄의 쇠사슬에 긁힌 모양이었다. 작은 흔적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래요, 죽였어요! 죽였다고요!”
“그래, 알았어.”
“믿었어요? 이 비서 같은 사람을? 왜요? 왜 이용당해요? 그 사람은 형을 배신할 생각뿐이었는데?”
무명은 제 범행이 발각되자 무슨 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눈이 뒤집혀서 서인에게 달려들었다. 저보다 이 비서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니 버려지기 직전 마지막 발악이었다. 저 역시 이 비서에게 속았으니 속상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아니, 조용히 좀 해 봐.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
“처리, 처리까지 해야 해요? 흐, 저 좋아한다면서요!”
“너 도대체 왜 이래? 말 좀 들어!”
무명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난리를 피우자 서인도 어쩔 수 없이 힘을 써야 했다. 난리 치는 그를 앉히고 두 뺨을 아프지 않게 툭툭 쳐봐도 무명은 혼자 벌벌 떨며 악을 질렀다.
“형도 제 말 안 듣잖아요! 형 배신하려고 해서 죽였어요! 오늘 기자들한테 형이 고기 먹는다고 다 메일로 전송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뭐?”
토막 난 시체를 마켓으로 보내기 위해 연락을 취하던 서인이 멈칫했다.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입을 다물고 앉아있는 무명을 한 번 보고 이 비서였던 덩어리를 번갈아 본 서인의 머릿속에서 조각난 퍼즐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이 비서가 지금껏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유, 관계자만 알 수 있는 협박성 서류가 도착한 이유, 약물에 부적절한 성분이 검출되었던 이유 등등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이 비서가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흐…. 저는, 정말 도와드린 건데….”
눈물을 뚝뚝 흘리던 무명은 줄까 말까 망설이던 만년필 녹음기를 건넸다. 서인은 이미 그를 용서했고 처음부터 나무랄 생각도 없었는데, 혼자 오해하고 결론 내린 무명은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뭔데, 이게.”
“이 비서가 형 배신한 거…. 왜 그랬는지 말하는데요….”
“들을 필요 없어. 내가 그 새끼 사정까지 알아야 해?”
서인은 저를 배신한 은혜도 모르는 놈의 사정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녹음기를 밟아 부숴서 버려버리자 무명은 충격받아 몸을 덜덜 떨었다.
서인은 그가 건네준 이 비서의 휴대전화에서 예약 메일이 취소된 것을 확인한 후 초기화한 뒤 기기를 폐기했다. 무명이 찍은 영상과 이 비서가 임의로 만든 메신저 대화 기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비서의 흔적을 정리하는 서인을 멍하니 보고 있던 무명은 제게 떨어질 처벌을 기다렸다.
“명아.”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무명은 얼굴을 들이밀며 맞을 준비를 했다. 저보다 이 비서가 우선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지만, 서인이 용서만 해준다면 팔다리가 부러져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잘했어.”
그러나 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욕설도 비난도 아닌 칭찬이었다. 게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껴안아 주기까지 했다. 무명은 서인이 뭔갈 잘못 먹은 게 아닐까 혼란스러워하며 키스하려는 그를 피해버렸다.
“형? 제가 이 비서 죽였는데요….”
“알아. 욕실에 다른 남자라도 숨겨둔 줄 알았더니만, 겨우 이 비서 죽인 거로 뭘 그래? 내내 의뢰받으면서.”
“그건 그렇지만….”
“다른 놈 생긴 거 아니면 됐어.”
당황한 무명은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인과 많이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그도 서인이 분노하는 기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은 서인이 칭찬해주는 게 좋아서 그냥 넘어가 버렸다.
“형, 그런데요…. 질투한 거예요?”
“무슨 헛소리야. 내가 너한테?”
단어의 뜻이 두 개가 아니라면 분명히 질투인데 서인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키워준 개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공격한 것과 다름없어서 화가 난 거라며, 기대했던 무명을 실망하게 했다.
“좋아한다고 해주시면 안 돼요?”
분리불안에 애정 결핍까지 있는 그는 질투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에 그만 상처받고 말았다. 제 아지트에 있었을 때는 진심이 아니더라도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해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애정이 고팠다.
“…뭘 그딴 걸 바래? 됐어.”
서인은 형식적으로 좋아한다고 해주려 했건만, 무명의 얼굴을 보자마자 목덜미가 뜨끈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이 튀어나왔다. 평소에는 꾀어내기 위해서 잘도 했던 표현인데, 마치 입을 꿰맨 것처럼 나오지 않으니 서인도 황당했다.
“형이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 너만 모를 거다.”
서인은 제 모습을 낯설게 느낄 정도로 무명에게 관대했는데 그는 다정하게 대해줄 수 없냐고 투정을 부렸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토록 너그러웠던 적이 없는데 말이다. 서인은 무명이 좋아한다고 해주지 않아서 툴툴댄다는 건 알았지만, 끝까지 표현해주지 않았다.
“이 비서는 실장님이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식사나 하자. 밥은? 잘 챙겨 먹었어?”
“네에, 피자요. 딸기도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
무명은 배가 많이 나와서 후드티로 간신히 가린 상태인지라 입맛이 돌아도 서인이 볼 때만큼은 식사를 거르려 했다. 서인이 뚱뚱하다고 그만 먹으라고 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피자쪼가리가 밥이 돼? 이리 와. 형이랑 같이 먹자.”
“괜찮은데….”
무명은 곤란했다. 먹고는 싶은데 배가 나오니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시무룩한 얼굴로 식탁으로 향했다.
서인은 지금까지 잘 참고 기다려줘서 기특하다며 집에 오기 전에 미리 주문해둔 각양각색의 음식들을 먹게 해주었다.
“형이 앞으로 아침은 꼭 먹고 나간다고 약속할게.”
“어, 어, 전….”
“싫어?”
“아니요…. 좋아요.”
시큰둥한 무명의 반응에 서인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좋다고 방방 뛰고 껴안아야 할 놈인데 이상하게 계속 불안해하니 정말로 다른 놈을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너 왜 자꾸 그러는데.”
“배 많이 나와서…. 먹고 싶은데 먹기 싫어요.”
“먹고 운동해 그럼. 뭘 그런 거로 그래?”
서인은 겨우 그런 거로 왜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냐며 무명의 배를 툭툭 쳤다. 좀 나오긴 해도 흉할 정도도 아니고 삐쩍 말랐을 때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아, 운동! 그럼 잘 먹겠습니다!”
굶어도 뱃살이 빠지지 않아서 걱정이었던 무명은 운동하라는 서인의 말에 해답을 찾은 사람처럼 숟가락을 들었다. 서인은 여전히 허겁지겁 먹지만 입에 묻히거나 손으로 먹는 버릇을 고친 그를 칭찬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안정적인 일상이었다.
♦ ♢ ♦
[유산 걱정 없는 남성 임신, 드디어 현실화]
기나긴 노력 끝에 세상에 내놓은 약물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으니 서인은 인생의 목표를 이룸과 다름없다. TV를 켜면 온통 신약 이야기로 떠들썩했고 기자회견 장면도 지겨우리만큼 반복되었다.
이토록 온 세상의 대화 주제가 서인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속이 텅 빈 듯한 허함과 느껴본 적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토록 바라던 회장의 인정도 고작 이러려고 죽도록 일했나, 온갖 무시 속에서 살며 제가 얻은 게 무엇이 있나 생각해보기 바빠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상용화로 끝나는 게 아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알아도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허무했다.
“하….”
더 짜증이 나는 건 예전에는 이렇게 기분이 나쁠 때면 예외 없이 폭력적인 성관계를 맺곤 했는데, 이제는 무명의 얼굴만 둥둥 떠다닌다는 점이었다. 딱히 성욕이 들끓지도 않아서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서인에게 그는 좋게 말하면 흥밋거리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거슬리는 존재였다. 마조히스트가 아님을 멋대로 일깨웠고 온종일 보고 싶거나 잘해주고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멍하니 앉아 잡생각에 지배당한 서인을 지켜보던 대욱이 그를 살피며 걱정했다. 지금처럼 멍하니 넋을 놓은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으니 어디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무명 님을 모셔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걔를 왜. 내가 이 꼬락서니인 거 광고할 일 있나?”
“아닙니다.”
“그럼 왜.”
“죄송합니다.”
서인을 깨울 수 있는 존재는 무명뿐이었다. 그러나 서인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대욱이 그를 데려오겠다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날카롭게 반응했다.
“아니, 죄송할 게 아니라 왜.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느냐고 묻잖아. 걜 데려오면 내가 나아질 것 같았나?”
“예. 함께 계실 때 대표님이 가장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넌 성욕 풀이 도구에 편안함을 느끼나 봐? 난 그렇지 않아서.”
성욕 풀이 도구라 칭하는 놈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건 제 쪽인 주제에 대욱을 몰아세웠다. 그도 그럴 게 무명은 손이 많이 가서 함께 있으면 꽤 귀찮았기 때문이다. 사람 보는 눈 좀 기르라고 잔소리를 해대자 대욱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대표님께서 무명 님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느꼈습니다.”
“특별? 어떤 식으로.”
서인이 어디 한번 말해보라고 고개를 까딱이자 대욱이 길게 침묵했다. 그는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서인을 힐끔대다가 간략하게 대답했다.
“사랑이요.”
“뭐?”
“대표님께서 무명 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귀엽게 여기는 편이라고 할 줄 알았던 서인은 신중한 대답에 고개를 젖히고 경박하게 웃어댔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발언이라 화조차 나지 않았다. 제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허상이라고 여기는 걸 아는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사랑? 사랑은 무슨. 내가 고기나 썰던 놈을?”
서인은 그런 쓸모없는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인생에 사랑이 있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무명과 저는 급이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노예와 주인이 정분나는 수준인데, 무슨 사랑이란 말인가.
“사랑에는 급이 없습니다.”
“없긴 왜 없어. 그럼 내가 레드 마켓 놈들 수준이라 이거야?”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아, 조금 전에 무명 님께 연락이 왔는데….”
“그래서, 뭐. 내버려 둬.”
“두고 가겠습니다.”
대욱은 서인의 책상에 개인용 휴대전화를 올려두고 서류 더미를 챙겨 집무실을 나섰다. 무명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형, 오늘 집에 언제 오세요?]
[보고싶어요.]
[오늘도 TV에서 서인이 형 봤어요. 너무 멋있었어요! 그날 입었던 옷 입고 저랑 놀아주세요!]
[부끄럽지만, TV에 나오는 형 보면서 고추 만졌어요…. 인터넷에서 성기를 고추라고 부르더라고요.]
[저 그거 하고 싶어요. 형한테 넣고 싶어요!]
[엉덩이 때리셔도 돼요!]
[놀고 싶어요. 언제 놀아주실 거예요?]
서인은 상용화 건만 마무리되면 꼭 예뻐해 주겠다고 해놓고서는 제 마음이 혼란스럽고 대욱에게 사랑이라는 소리까지 들어놓으니 괜히 속이 뒤틀려 전화도 해주지 않았다. 온종일 저를 기다리는 무명이 바보 같은데, 그런 바보에게 이상한 마음이 생기는 제가 더 바보 같았다.
“하아, 씨발….”
가득 쌓인 서류 더미는 대욱이 대신 처리할 수 있지만, 메시지 함에 가득 쌓인 무명의 애정은 오롯이 서인의 몫이었다. 절절한 구애도 아니고 어딘가에 개인정보가 털린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음란한 내용에 서인이 픽 웃었다.
“귀엽네.”
이렇게 뒷구멍까지 내주고 성희롱성 메시지가 귀엽다고 하면서 사랑은 아니라고 하니 가장 옆에서 지켜보는 대욱이 답답해서 밀어줄 만도 했다.
서인은 수신이 월등히 높은 메시지창을 하나씩 살펴보며 무명을 떠올렸다. 죽어도 사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꾸만 떠오르고 보고 싶어도 서인은 아예 만나러 가지 않았다. 대욱이 재수 없는 말을 해서 괜히 의식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갈 테니까 기다려.]
그렇게 서인의 마음은 주인도 모르는 새에 점점 더 깊어졌다. 그는 제 답장 하나에 가슴 설렐 무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무실을 나섰다.
♦ ♢ ♦
[나중에 갈 테니까 기다려.]
“…언제….”
서인의 메시지를 받은 지 일주일 째, 무명은 매일 아침 식사만 함께하고 가버리는 서인 탓에 외로움을 느꼈다. 식사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분위기가 좋았지만, 항상 가지 말라고 매달리게 돼서 결국에는 혼이 나곤 했다. 오늘도 그런 상황이라 무명은 서인이 나오는 동영상을 돌려보며 우울해했다.
“보고 싶다….”
정확히는 서인이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않은 시점부터 머릿속이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과연 언제까지 곁에 남을 수 있을지, 배가 나오고 못생겨져서 버림받는 게 아닐지 따위의 건강하지 못한 감정 덩어리가 정신을 갉아먹었다.
고작 아침 식사 시간으로는 무명이 바라는 애정은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친구는 오늘도 어김없이 TV였다.
[TV는 하루에 한 시간만 보는 겁니다.]
오래 들여다봐야 좋을 거 하나 없는 스크린을 멍하니 응시하던 무명은 대욱의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울상을 지었다. 그때는 한 시간만 보라고 제약 두는 그가 싫었는데, 혼자 지내는 지금은 그 잔소리마저 그리웠다.
“나는 아무도 신경 안 써주고…. 미워.”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혼잣말의 빈도도 높아졌다. 무명은 홀로 훌쩍거리다가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레드 마켓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고기 시장을 다룬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살이 연하다는 이유로 주로 어린개체를 도축한다고 합니다. 특히 국산일수록 육질이 좋아서….]
“아닌데?”
무명은 사실과 다른 정보를 퍼뜨리며 자기들끼리 소름 끼친다고 호들갑 떠는 출연진들을 노려보았다. 아예 거짓은 아니어도 대부분은 괴담에 가까운 헛소리였다. 어린 개체를 찾는 건 소수의 VIP들 뿐이었고 꼭 국산만 육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살인에 중독되는 악마들….]
[계획적 살인 처벌 기준, 도대체 언제나 강화?]
뒤이어 다큐멘터리는 살인, 범죄, 경찰 등의 자극적인 단어로 떠들어댔다. 무명은 죄를 저질렀으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몸을 덜덜 떨었다. 모두 제게 해당하는 단어인 데다가 감옥에 수용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으니 무서울 만도 했다.
“도축은 나쁜 게 아닌데…. 죽여도 되는 건데? 바보 같은 것들!”
무서워하던 그는 도축과 살인을 무조건 나쁘다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비난했다. 도축은 인간들의 식량을 만드는 일종의 구원이다. 고기가 됨으로서 세계 각국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그게 어떻게 나쁜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무명은 무분별한 건 나쁠지 몰라도 죄 지은 놈을 벌하는 경우는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켓 노동자들도 전부 저와 의견이 같다며 들리지도 않는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말도 안 돼!”
그는 이 프로그램이 잘못된 게 분명하다며 관련된 다른 프로를 찾아봤지만, TV는 물론 인터넷 등 모든 매체에서 모두 도축과 살인이 나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기사나 동영상을 찾아본 무명은 살인을 다루는 기준이 마켓과 전혀 다름을 깨닫고 급격한 불안에 시달렸다.
“들키면, 들키면 어떡해….”
그는 대욱과 서인이 이미 알아서 다 처리하고 장례식까지 마친 이 비서의 시체를 걱정하며 덜덜 떨었다. 경찰에 잡혀가고 감옥에 갇힌다는 공포가 생각보다 컸다.
순식간에 총관리자에서 재활용도 불가능한 범죄자로 전락한 무명은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서인이 사는 세상에서는 마켓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제 일터를 음지라고 칭하던 말도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혀, 형아! 저, 저 다 했어요. 소, 손질은 즐거운 일이야, 그, 그렇지, 며, 명아?]
“흐으, 흐…. 아니야, 아니야. 도축은 나쁜 일이 아니야. 즐거운 일이야, 그렇지, 명아? 흐윽, 흐….”
도축은 즐겁고 좋은 일이라며 자신을 세뇌했던 어릴 적 그 말과 같았지만, 무명은 이제 아이가 아니니 제가 처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 아침 서인에게 도움을 요청해볼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괜히 징징거린다고 혼날 것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무서운 말들을 떠드는 TV의 전원을 끄려던 무명은 살인과 도축도 모자라 폭행에 살인방조죄까지 설명하는 사회자를 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살인방조죄? 공범?”
살인 방조에 공범, 저 혼자 체포되는 게 아니라 서인까지 체포될 수 있다는 뜻에 서럽게 울던 무명이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를 지키기 위해서 이 비서를 죽인 것이 어쩌면 더 큰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덜덜 떨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도움을 청해야 해….”
무명은 제가 벌 받는 것보다 서인이 잘못되는 게 몇 배는 더 두려웠기에 누구든 좋으니 저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켓 부하들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일개 노동자인지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아, 하….”
서인이 잡혀가서 벌 받는다는 생각에 숨이 턱 끝까지 찬 무명은 제 목을 감싸 쥐고 침대를 데굴데굴 굴렀다. 마켓에서 받았던 벌을 떠올린 그는 시트를 뜯으며 괴로워했다. 제 실수로 인해 서인이 얻어맞고 남의 몸을 만져야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헉, 허….”
남이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과하게 반응하나 생각하며 무명을 이상하게 보겠지만, 마켓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겐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애초에 고기를 도축하는 일이 나쁘다는 인식조차 못 할 만큼 세뇌당하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하아…. 안 돼, 안 돼….”
그런 무명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제 범죄를 덮고 서인을 지켜줄 사람이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당하든 괜찮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옛 주인인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요 보고가 아니라면 먼저 연락하지 말라는 규칙을 어기고도 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제발, 제발….”
수화음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명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주원이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주원이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심장이 정신없이 요동쳤다.
건조한 수화음 속에 무명의 손톱 깨무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세 번째 걸었을 때는 왼쪽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 와, 이게 누구야?
“수장님!”
총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된 통화에 무명이 비명을 지르듯 주원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주원의 목소리도 저를 반가워하는 것 같아서 무명은 잠시 당황했다. 쓸데없는 일로 전화하면 짜증부터 냈던 사람인데, 어째서 반가워하는지 몰라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 그래, 다시 돌아오고 싶니?
“아니, 제가,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무명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는 주원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뭐든 할 테니 도와달라는 책임이 무거운 부탁을 했다.
- 누굴 죽였다고?
“이 비서요…. 제가, 제가 죽였어요!”
- 깜찍한 짓을 했네? 그걸 내가 어떻게 도와줘? 조만간 집으로 경찰 가겠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수장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역해서 무명은 부탁과 구역질을 반복했다. 사랑이 더는 이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쓰려고 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게다가 주원이 도와줄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자 눈물까지 핑 돌았다.
- 대표님은 알고?
“죽인 건 아시는데, 흐…. 경찰이 오는 건 몰라요.”
- 거기 있으면 잡혀갈 텐데, 마켓으로 올래?
“서인이 형은요? 흐, 형은요?”
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느냐며 그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무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인의 사회적 지위를 아는 그는 그럴수록 더 위험한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요? 서인이 형 매일 TV에 나오는데…. 그런데, 사람 죽였다고 하면 난리 나는….”
- 너 많이 컸다? 사람 죽이는 게 나쁜 일이었니? 교육을 받아야 하나?
“죄송합니다!”
- 죄송?
“사랑합니다….”
싸한 주원의 말투에 무명이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주원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안 본 지 오래돼서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사람을 죽이면 나쁜 일이라고 하고 저기서는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 그럼 새벽에 차 보낼 테니까 와. 그게 대표님을 위한 일이니까.
“네, 수장님!”
그래도 우선 서인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무명이 아무리 똑똑해졌고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알아보는 감이 생겼다고 한들 서인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고 드는 건 평생 변할 수 없었다.
“하….”
사랑한다는 말을 백 번 더 반복하고 전화를 끊은 무명은 울어서 짓무른 눈가를 닦으며 서인의 방으로 향했다. 서인의 베개나 이불에 몸을 비벼보던 그는 향수를 꺼내 가방에 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괜찮아….”
마켓 환경이 열악하고 추우니 따뜻한 옷이나 식량을 챙기면 좋을 것을 그는 서인의 냄새라도 맡으며 버텨보겠다고 향수를 챙기는 미련한 짓을 했다.
[형, 저 잠시 다녀올게요. 오늘 아침밥 다 만들어두고 갔으니까 저 기다리지 마세요. 형을 위한 거예요. 사랑해요.]
새벽 5시, 무명은 출발 1시간 전, 서인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레드 마켓으로 향할 차량을 기다렸다. 처음 해보는 사랑 고백에 혹시나 서인이 답장을 해주지 않을까 휴대전화를 뚫어지라 보던 무명은 감감무소식임을 확인하고는 도착하고 울상을 지었다.
“슬프다….”
제가 멍청하게 이 비서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서인과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슬퍼하던 것도 잠시, 저 멀리에서 검은 차량이 다가오자 그는 긴장한 채로 차에 올라탔다. 평소와 달리 차량이 검은색이라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차를 바꿨겠느니 하고 부하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요즘 마켓은 어때? 수장님 화 안 나셨어?”
“…….”
운전대를 쥔 부하는 무명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명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만 젓는 꼴이 말을 못 하는 놈이구나 싶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 야! 여기 아니야! 어디로 가는 거야, 장난해?! 빨리 가야 한다고!”
“…….”
40분쯤 달렸을까, 무명은 마켓이 아닌 서인이 준 별장 앞으로 차를 대는 운전자의 머리통을 마구 내리쳤다. 안 그래도 경찰이 따라붙을까 봐 무서워 죽겠는데, 다른 곳을 가고 있으니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안 그래도 놈들이 따라올까 봐 걱정되는데, 왜 여기를 온 거야? 위험해지면 책임질 수 있어?!”
“씨발, 뭐!?”
머리를 맞고도 조용히 있던 운전자가 놈들이 따라올까 봐 걱정된다는 말에 욕을 하며 핸들을 내리쳤다. 경적이 비명을 지르듯 쩌렁쩌렁 울리고 차체가 아지랑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운전 똑바로 안 해? 어? 어?”
“씨발, 따라와? 왜, 내가 따라올까 봐 개 좆 같았어? 이 씨발 새끼가!”
모자를 벗어 던진 운전자의 얼굴을 확인한 무명이 경악했다. 분명 마켓 부하가 있어야 마땅할 자리에 꼭 지켜야만 할 서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운전대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아예 몸을 돌린 채로 무명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형, 형! 앞에요! 차요! 차!”
“씨발, 어딜 가려고! 어떤 개씹새끼한테 가려고?!”
“네?! 그게 아니라, 경찰이, 경찰이!”
“아, 짭새를 꼬셨어? 와, 씨발, 이거 진짜 걸레 새끼였네, 씨발!”
앞에서 차가 오거나 말거나 서인은 무명의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반쯤 미친놈처럼 천박한 욕설을 해댔다. 이러다 둘 다 죽겠지 싶어 무명이 가슴이 뜯기는 고통을 참아가며 운전석으로 넘어가 핸들을 쥐었다.
“으, 아아! 형 죽는다니까요!?”
“그래, 죽어, 죽여버릴 테니까!”
서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건데, 그가 화를 내자 무명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운전대를 힘겹게 돌려 갓길에 정차한 그는 서인의 멱살을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 미쳤어!?”
무명은 그에게 건방지게 소리치는 것도 모자라 옷깃을 쥐고 세게 흔들었다. 저는 튼튼하니 차 사고가 나도 좀 아프고 말겠지만, 연약한 서인은 그렇지 않으니 다칠 수 있으니 분노에 손이 발발 떨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고인 눈물이 서인의 허벅지에 뚝 떨어졌다.
“이거 놔! 감히 날? 나를 버려? 어떤 씨발 놈이야? 어떤 새끼냐고!”
“아!”
분에 찬 서인은 저를 걱정하느라 화낸 무명의 뺨을 후려치며 숨겨둔 남자를 데리고 오라고 난리를 쳤다. 무명을 좋아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면서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는 때린 적이 없는데, 얼굴을 후려칠 정도로 뵈는 게 없었다.
“아니, 형이 왜 여깄어요! 아파요, 왜 때리는….”
“아,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지, 그래? 데려와, 데려오라고!”
“아, 아악, 아!”
저 혼자 눈이 돌아버린 서인은 무명의 머리채를 잡고 별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침대 위로 내던져진 무명은 경찰이 지키고 있을까 봐 창문을 흘깃대느라 바빠 서인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에 더 열이 오른 서인은 어딘가에서 골프채를 꺼내와 무명의 발목을 내리쳤다.
“아, 아아악! 악! 아!”
“하하, 어쩔 수가 없어. 네가 자꾸 빡돌게 하잖아! 하아, 하….”
“아윽, 흐, 윽, 윽….”
무명은 부러진 것처럼 이상해진 제 발목을 내려다보며 괴로워했다. 살아온 세월의 반을 맞으면서 지냈는데, 서인에게 맞는 게 가장 아팠다. 몸도 아프지만, 마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파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때리고, 마켓의 사랑과 다른 달콤한 사랑을 주기로 해놓고 아프게 하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인생의 전부인 서인이 저를 거절하고 사랑하지 않으니 삶의 의미가 없었다.
“아파, 흐…. 아파, 아파….”
“넌 내 거야, 내 소유라고! 다음에도 이러면 그땐 눈깔을 뽑아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
무명이 큰 고통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늘어져 있자 서인의 눈두덩이 붉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때려놓고서 맞은 무명보다 더 아파했다. 서인은 무명의 얼굴에 휴대전화를 들이밀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왜, 배불리 밥 먹여주고 예뻐해 주니까 다시 도망가고 싶었어? 이 비서 한 번 쳐 죽이더니 다시 그 아무것도 아닌 권력이 그리워졌어, 응?”
서인은 기다리지 말라는 말 뒤에 사랑한다는 말이 붙었든 어쨌든, 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무명을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다른 남자가 생긴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밖으로 나돌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답해! 꿀 처먹은 벙어리처럼 입 닫고 있지 말고 뭐라도 말해. 변명이라도 해 봐. 혹시 알아, 용서해줄지?”
“…말하면.”
“뭐?”
“말하면 들어주기는 해요? 제 말 믿어주신 적 한 번도 없잖아요, 사랑한다면서요? 윽, 연인이라면서, 왜 나를 때리고 괴롭히기만 해요?”
무명은 여느 때처럼 울긴 울었지만,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변하는 게 없었으니 이번에는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봤다.
그는 서인이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랑의 뜻이 인터넷에서 말하는 소중한 감정이라면, 저를 이토록 함부로 대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 내가 널? 미친 소리 하지 마.”
“…….”
무명은 걱정과 경멸로 뒤섞인 서인의 얼굴과 부러진 제 발목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마켓과 다른 사랑을 주겠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서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역시 모두 거짓이었음을 확인받게 된 무명은 더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널 성욕 풀이로밖에 생각 안….”
“네, 그럼 저한테 넣으세요. 넣고 정액 싸요. 그렇게 해요 그럼.”
무명도 사람이니 실망하고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는 소리 지르거나 울면서 징징대지 않고 서인을 향해 보란 듯이 다리를 벌렸다. 사고는 제가 쳤지만, 그래도 서인을 지키려고 도망 온 건데, 이런 식으로 발목을 분지르고 막말할 줄은 몰랐다.
“뭐?”
“형이 좋아하는 구멍에 넣고 허리 흔드세요. 저는 이제 상관없어요!”
“그만해.”
서인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무명을 보고 나서야 분을 가라앉혔다. 잘못 맞아 부러진 발목이 눈에 들어왔고 골프채를 쥔 제 손에도 옅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서인은 모든 게 무명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며 그를 내버려 두고 별장을 나가버렸다.
“씨발, 씨발!”
별장 밖 차에 등을 기대고 선 서인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숨을 내쉬다가 욕하고 실소하는 등 제 분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는 빌어먹을 다혈질 때문에 무명의 발목을 분질러놓고 후회했다. 하지만 분명 그 순간만큼은 정말 저를 떠나 다른 곳에 가거나 다른 놈에게 빠지면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낫다는 마음이 컸다.
“하….”
성욕 풀이 도구가 도망가면 당연히 화가 날 일이지만, 막상 저를 범하라고 다리를 벌렸을 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성욕까지 꺾여버렸다. 도리어 기분이 나빴고 결국,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형, 저 잠시 다녀올게요. 오늘 아침밥 다 만들어두고 갔으니까 저 기다리지 마세요. 형을 위한 거예요. 사랑해요.]
무명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한 서인은 다시금 분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저를 찾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순간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뭔지 알 정도로 열이 받아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벽에 딱 달라붙어 주변을 살피며 혹시나 제게 들킬까 봐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무명을 봤을 땐 손까지 떨려서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따라오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러나 무명을 데리러 온 차의 운전자를 죽여버리고 그를 태우고 나서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소리를 듣자마자 서인은 폭발하고 말았다. 몸이 덜덜 떨리는 게 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씨발, 성욕 풀이는 개뿔.”
서인 역시도 제가 무명을 성욕 풀이 도구 이상으로 느끼고 있음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사랑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다.
무명이 자라온 환경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했듯 서인 역시도 제 부모를 보고 자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 가장 가까이 있는 대욱이 말해줘도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명아, 가자.”
“…….”
감정을 추스르고 별장 안으로 들어온 서인은 벌써 퉁퉁 부어 멍까지 올라오는 발목을 치료해주기 위해 무명을 불러세웠다.
엉덩이를 받치고 공주님 안기를 시도하자 그가 가슴팍을 세게 밀어내며 절뚝절뚝 걸었다. 서인은 제 손으로 부러뜨려놓은 주제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모진 말을 해댔다.
“그 다리로 뭐, 집까지 걸어갈래? 미련한 짓거리 좀 그만하고 제발 내 말 좀 들어.”
“…….”
무명은 울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서인이 안기라는 대로 안겼다. 서인은 무표정한 무명이 단순 아프고 화가 나서 시위한다고만 생각하고 그를 안아 들고 가 차에 태웠다.
“너, 집에 가서도 입 다물고 있으면 정말 혼나.”
무명은 으름장 놓는 서인을 보고도 입을 열지 않았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무시한다는 듯한 태도에 서인이 이를 악물고 운전대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