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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72화 (27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72화

제272화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화를 한 사람이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셉.

이 녀석이 어쩐 일이지?

나는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나다."

-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경기 잘 보고 있습니다.

"뭘, 새삼스럽게. 어쩐 일이냐. 네가 전화를 다 하고."

- 혹시 주변에 듣는 사람 있습니까?

나는 임창용에게 눈짓을 하며 먼저 무대에 나가 있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창용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일행들을 이끌고 먼저 무대로 향했다.

그제야 주변이 조용해지자, 나는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탁.

고요한 침묵이 대기실에 내려앉았다.

"이제 괜찮다. 말해라."

스으읍. 후우우-.

전화기 너머로 조셉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졌다.

커다랗게 심호흡을 내뱉은 조셉은 그제야 다짐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 그게….

조셉의 어조가 너무나 낮고 진지했기에 내 눈빛도 심상치 않게 번들거렸다.

"말해봐라."

- 얼마 전 재성이 형님 이름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될 것이란 걸 예상하셨는지, 1년 뒤에 도착하도록 손을 쓰셨던 모양입니다.

"강재성 박사를 말하는 거냐?"

- 예. 그런데 형님이 보내신 건 좌표였습니다.

좌표?

뜬금없이 왜 좌표를 보냈는지는 나로서도 의문이다.

그럴 것이라 짐작했는지 조셉의 말이 이어졌다.

- 동봉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경기 때문에 바쁘실 테니 간략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비밀을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찾아와.'라고 적혀있군요. 그런데….

"또 뭐냐."

- 이게 우리나라에서 쓰는 좌표가 아닙니다.

나는 가만히 조셉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 아크 스타에서 쓰는 좌표입니다.

"……!"

- 적혀있는 좌표는 분명 게임에서 쓰는 좌표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지도를 구해 확인해본 결과….

옅은 숨소리와 함께 침을 삼킨 조셉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바다였습니다."

* *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조셉의 사무실.

"그럼 게임 속에서 뵙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띠룩!

옅은 한숨에 뒤섞인 담배 연기가 흩어지며 조셉이 통화를 끊었다.

전화는 약 1분가량 더 이어졌는데, 피고 있던 담배의 끝이 다 닳아서 없어질 만한 시간이었다.

조셉은 마지막으로 피고 있던 담배를 깊게 한 번 빨아들이고는 재떨이에 짓이기며 꺼트려 버렸다.

"후우우-."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듯, 입과 코로 연기를 뿜어대며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연기와 연기가 만나 뭉게구름처럼 뒤엉키고 얽히고 설기는 것이 마침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셉은 책상 위에 흐트러진 강재성의 편지들을 훑으며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재성이 형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말하고 싶은 진실이 뭐에요…."

식물인간이 된 매형.

강재성은 언제나 올곧으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급하게 휘갈겨 적은 듯한 글씨와 함께 좌표를 적어 보냈다.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분명 매형은 긴박한 상황이었으리라.

어쩌면 지금 쓰러져 있는 이유 또한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조셉은 생각했다.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기에….'

조셉은 차가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자신은 이제 매형이 밝히고자 했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조셉은 곧장 책상에 올려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앉으며 TV를 켰다.

- 와아아아-!

마침 TV에선 아까 통화했던 최춘택이 관객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며 입장하고 있었다.

"하여튼 참 대단한 어르신이야."

조셉이 한쪽 입꼬리를 씰룩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첫 만남부터 범상치는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세계적인 인물로 우뚝 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저토록 높은 기개와 용기.

그리고 결단력과 힘이 어딜 봐서 칠순을 앞둔 노인이란 말인가.

조셉도 경기 영상을 보면서 최춘택의 놀라운 컨트롤 실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아까 전화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편지에는 강재성의 당부 아닌 당부가 적혀있었다.

그건 반드시 일곱 별의 선택을 받은 사람과 함께 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재앙의 해결을 위한 열쇠가 그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재앙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셉에게 최춘택은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었다.

- 한국과 브라질의 맞대결입니다. 과연 누가 이길까요?

- 저번에도 보셨다시피 브라질은 최춘택 선수에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첫날 있었던 깃발쟁탈전에서 증명이 된 사실이지요.

- 그렇습니다. 그가 있는 한 대한민국은 올해 월드 대항전에서 어느 나라보다 강한 팀이 될 것입니다. 풍채가 정말 위풍당당하지 않습니까?

- 하하.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윽고, 모든 선수들이 캡슐에 들어섰고, 화면이 전환되며 경기장의 전경이 비쳤다.

그 사이로 문득, 최춘택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해설자들의 말처럼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힘내십쇼."

조셉이 책상 위에 놓인 새우 과자를 입에 물고는 아까 올려두었던 맥주캔을 땄다.

탁! 쏴아아-!

맥주 거품이 나오다 못해 흘러넘쳐버렸다.

젖은 손을 바라본 조셉의 미간에 팔자주름이 패였다.

"에이, 바지 다 젖어버렸네."

* * *

내가 접속했을 때는 이미 팀원들은 서로 누가 먼저 나갈지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런 일행들을 쳐다보는 백무열의 옆에 나란히 섰다.

"무슨 전화를 그리 오래 해?"

"그리됐다. 나중에 설명할게."

"흥. 그러든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던 백무열이 문득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손짓.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백무열이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아, 빨랑 내놔. 다 떨어졌어."

"하여간."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예 그의 손에 담배 한 보루를 올려주었다.

어차피 내겐 두 보루나 더 남아있었다.

그나저나 이걸 다 피고 나면 무슨 낙으로 금연을 하지.

"에휴. 골초야."

"뭘, 이제와서. 한두 번 봐?"

최근 나는 금연을 시작했다.

이곳 세상에서 담배를 피더라도 몸에는 절대 해롭지 않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능력치가 감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10분간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현재 니코틴 수치 10%]

벌써 니코틴이 이렇게 올랐나?

많이도 폈네.

"이겼다-!"

때마침 승자가 결정되었는지, 일행들 사이에 환호성이 들려왔다.

손을 높이 치켜든 것은 은정혁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나와 백무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배웅했다.

우웅-!

은정혁의 신형이 사라지며 경기장에 나타났다.

상대는 브라질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한 쌍도끼를 쓰는 근접 딜러 '아이토'.

아까 대기실에서 감독에게 설명을 들었던 녀석이었다.

"흐흐흐. 잘게 토막을 내주마-!"

자신만만한 아이토의 음성이 경기장을 넘어 우리가 있는 관객석에 까지 들렸다.

백무열이 그런 아이토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그가 하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있었던 훈련 중 가장 잠재력이 높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은정혁이라고 대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삐이이이-!

[경기가 시작됩니다.]

은정혁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온몸의 빛을 굴절시켜 사라지는 빛의 궁수가 가진 독특한 은신.

은정혁은 아이토의 눈앞에 실명 효과를 부여하는 블라인드 에로우를 쏘았다.

찌이잉-!

한줄기 섬광이 아이토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마치 경기장 전체가 한 순간이지만, 섬광탄에 집어 삼켜진 것 같은 빛이었다.

"큭."

아이토가 잠시 주춤하더니 고개를 털었다.

은정혁은 곧장 아이토의 왼쪽으로 돌며 머신 에로우를 날렸다.

두두두두두!

"잔재주 부리기는…!"

아이토가 쌍도끼를 넓게 휘둘렀다.

어떤 것은 쳐내고, 어떤 것은 피해냈다.

과연 브라질의 대표 선수다운 유연하고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은정혁의 컨트롤과 그가 가진 창조적인 생각들은 이미 아이토를 한참이나 뛰어넘어 있었다.

두두두두두!

아이토의 머리 위로 빛의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까 블라인드 에로우를 쏘았을 때부터 하늘로 쏘아보냈던 머신 에로우였다.

"어느 틈에…!"

주춤하던 아이토가 돌진 계열의 스킬인 휠윈드를 사용하려는 순간.

어느새 등뒤로 나타난 은정혁의 활시위에 걸려있던 다섯 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것은 레슬리가 쏘는 나선의 마탄을 보며 은정혁이 직접 개발해 응용한 스킬이기도 했다.

이름하여.

쒸아아악-!

"나선의 화살."

다섯 개의 화살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아이토의 양팔과 두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마지막 남은 한발의 화살은 한 줄기 유성처럼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별빛을 닮은 화살이었다.

"커윽…."

목을 부여잡았던 아이토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은정혁을 바라보며 고꾸라졌다.

"이겼다-!"

"자, 다음 주자! 빨리 빨리!"

"다음은 내가 복수할 거야."

"자, 가위바위보-!"

이미 일행들은 다음 주자를 정하고 있었다.

* * *

[유저, '실바스'가 패배하였습니다.]

[다음 주자를 결정해주십시오.]

브라질의 주장 카를로스가 이를 으득 갈았다.

벌써 3연속 패배.

초반부터 최춘택이나 백무열이 나온다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한국은 초반부터 두 사람을 아끼는 전략을 취했다.

아까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크게 벼르고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단호했고, 만약 여기서 또 진다면 4연속 패배를 하는 것이었다.

6번을 먼저 이기면 되는 PVP 종목이지만, 그때 가서 자신이 출전한다면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카를로스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내가 나간다."

아무도 카를로스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가뜩이나 브라질에서 카를로스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으니까.

그의 말은 곧 법이라는 것이 팀 내에 정해진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유저, '카를로스'가 출전합니다.]

우우웅.

카를로스의 몸이 흩어지며 사라지더니, 나타난 곳은 거대한 들판으로 이루어진 경기장.

아까 승리를 거둔 '임사라'는 이미 선수 교체를 위해 사라진 뒤였다.

과연 다음에 나올 것은 누가 될 것인가.

카를로스는 심호흡을 하며 PCC의 보스에게 받은 것을 꺼내 쥐었다.

그것은 아주 조그만 화살이었다.

[시간의 화살]

등급: 부분 성유물

공격력: 12-24

-타임 슬로우[패시브]

-스피드 스타[1급 마도공학]

"……."

시간의 화살이라고 명명된 부분 성유물 등급의 아이템.

이것은 파르타 공국에 자리 잡은 PCC가 스타피스를 분해 재조립을 해서 무기로 개조한 인공적인 스타 피스였다.

화살대는 파르타 공국의 것이 분명한 것처럼 얇고 정교한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를로스는 화살대 끝부분의 버튼을 눌렀다.

지잉-.

시간의 화살이 두둥실 부유하며 자신의 오른편에 떠다녔다.

비록 공격력이 약하지만, 지금 카를로스가 믿고 있는 것은 아이템에 달린 '타임 슬로우'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화살촉에 닿은 대상을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만들고, 인지 능력을 비롯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마저 감소시키는 어머어마한 사기스킬.

'만약 이게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카를로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시 이것의 위력을 무시했던 카를로스는 한 번 시험해보라는 PCC 보스의 말에 잠깐 대련을 펼쳤다.

결과는 무참한 패배.

자신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이긴다면 이것을 자신에게 줄 것이라고 했고, 파르타 공국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신체 개조까지 해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비스트 마스터의 동물적인 감각과 마도 공학 신체 개조.

그리고 인공 스타피스의 힘이 합쳐진다면 자신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아크스타의 1인자가 될 것이리라….

바로 그때 건너편에 누군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위우웅-!

[유저, '잭슨'이 출전하였습니다.]

"오랜만이다. 멍멍아."

웨어울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카를로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포크 숟가락에 찍힌 이마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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