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59화
제259화
경기가 끝나고, 한국팀 전원은 사기진작을 위한 간단한 회식을 가지기로 했다.
당연히 장소 섭외는 내가 했다.
이래 보여도 왕년에는 한 식당의 최고 주방장으로 있었기에, 통째로 빌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 혁아,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좋구나. 어쨌든 1시간 뒤에 그리로 간다.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다. 그래그래. 고맙다. 그려~ 수고해라."
뚝-.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지금 내가 전화를 한 사람은 나의 수석 제자였던 '원정혁'.
이제 그는 나를 대신해서 월운정(月雲停)을 이끌고 있었다.
당연히 섭외한 장소 또한 월운정이었고, 방금 전 나는 그와 통화를 하며 저녁 식사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뒤돌아 선수들에게 가려는 순간.
"……."
이미 미도를 비롯한 다른 젊은이들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내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뭐래요…?"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꺄악!"
"꺅!"
미도와 임사라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서로에게 손뼉을 치며 방방 뛰었다.
저렇게 좋은가.
"와, 우리가 그 유명한 식당을 갈 수 있게 되다니."
"거기 대통령도 한 달 전에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곳인데 대박…."
"할아버지가 에드워드 원의 스승님이셨을 줄은…."
각각 안승현, 김현우, 은정혁의 말이었다.
참고로 은정혁이 말한 '에드워드 원'은 아까 통화를 했던 원정혁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같네. 껄껄.
"다들 버스에 올라타라. 바로 출발해야 돼. 시간이 빠듯하다."
"아싸-!"
"이게 웬 횡재냐!"
"회식 가즈아!"
그렇게 모두 일제히 버스에 올라탔다.
백무열은 급한 약속이 있어서 안타깝게도 회식에 참가하진 못했다.
뭐, 어차피 그놈이랑은 40년이나 봐와서 지겹다.
부릉-!
그렇게 버스가 내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월운정.
그 이름처럼 달과 구름이 머무르는 운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와보는 식당을 흐뭇하게 보며 나는 앞장서 들어섰고, 뒤이어 한국의 젊은이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감탄을 뱉으며,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 바빴다.
"와, 저거 봐. 저거 진짜일까?"
"아직 겨울인데 벚꽃이 피어 있잖아?"
"저거 인공으로 만든 가짜래. 할아버지가 그랬어."
"개쩐다…."
정문을 넘어서자, 넓은 마당 뜰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좌우로 일렬로 서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장 앞에 서 있는 남자와 포옹을 나누었다.
"환대가 너무 거창하다. 쓸데없이 바쁜데 다들 왜 나와 있어? 아직도 혼구녕이 덜 난 모양이지?"
"하하. 잠깐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스승님. 이젠 제가 최고주방장입니다."
"허허. 하긴 네가 이젠 이곳을 책임지고 있지. 잘 지냈냐."
나는 그와의 포옹을 풀고, 그제야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언제 봐도 별이 담긴 것 같은 눈은 총명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시절의 원정혁을 만났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였다.
"예. 전 잘 지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 말고 다들 그렇지요."
원정혁은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내가 직접 가르쳤던 아이들도 있었다.
이젠 다들 듬직하게 자라서 이곳 월운정의 대들보가 된 이들이었다.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싸움을 그렇게 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스승님께 안 맞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하하하하-!
주방장들 사이에서 일제히 폭소가 터졌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쯧쯧. 일해라. 이놈들아. 어디 내 앞에서 놈팡이를 피우는 게야. 손님이나 받아라."
주방장들은 그제야 내 뒤를 따라 들어오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씩 웃더니, 내게 거수경례하듯 손을 척 올리며 사라졌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웃기는 놈들이라니까.
"하하. 드시지요. 스승님. 좋은 자리를 봐뒀습니다."
"그래. 저 놈팡이들은 조만간 엉덩이를 한 번 손봐줘야겠다."
"하하하. 쟤들도 아마 그리워할 겁니다."
그렇게 나는 원정혁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 * *
회식은 순조로웠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웃고 떠들었고, 맛있는 음식은 덤이었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겠다며 해외에서 '에드워드 원'이라고 불리는 원정혁이 만들어낸 갖가지 산해진미들은 내게도 무척이나 흡족스러웠다.
누가 가르쳤는지 아주 잘 가르쳤구만. 흠흠.
그나저나….
"아조씨~ 여기 한 병 더."
"미도야 그만…."
"아, 한 병 더어어!"
"……."
우리 미도의 주사가 저리 심할 줄이야.
이거 완전 깨는데.
"크흠. 미도야. 할애비가…."
"헛! 삽살개다!"
나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뜬 미도가 내 수염과 찰랑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더니, 헤실헤실 웃으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헤헤. 복실복실하니 귀엽네에~"
"……."
"이제 네 이름은 복실이야. 복실이~"
졸지에 난 복실이가 되고 말았다.
미, 미도야….
"우헤헤. 복실아, 술 가져와 술! 자, 물어!"
난데없이 테이블 위에 있던 고깃덩이 하나를 바닥에 내 던진 미도가 내게 물어오라는 듯 소리쳤다.
나는 그런 미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곳엔 내 손녀가 아니라, 웬 50대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이거 참.
"복실아, 꼬! 고고! GO!"
"허허."
그저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말 신기하게도 내 눈엔 저 모습마저도 이뻐 보인다.
이게 바로 손녀 바보라는 것이겠지.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다.
"큼. 아무래도 난 미도를 데리고 돌아가야겠구먼."
"아, 벌써 가십니까?"
조용히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던 임창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저 다시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들 재밌게 노는데 주장이 자릴 비워서야 쓰나. 배웅보다는 이 친구들을 부탁한다."
"아."
임창용의 고개가 식탁 위에 널브러진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이미 대부분은 술에 만취가 되어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이어서 말했다.
"맡겨도 되겠지?"
"물론이지요. 그래도 배웅은…."
"괜찮다니까."
사실상 회식에 남은 인원은 나를 비롯해 임창용밖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미도가 꽤 오래 살아남았는데, 보다시피 이 모양이 되었다.
물론, 그 모습마저도 귀여운 건 두말할 것도 없다.
"2차는 노래바아앙…."
임창용이 피식 웃었다.
"손녀분이 노래방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다음엔 노래방으로 가자고."
"하하. 좋지요."
"그럼 난 진짜 가보마."
"예. 조심히 가십시오. 선배님."
"그래. 너도 조심히 가."
그렇게 나는 직원들이 불러준 콜택시 뒷자리에 미도를 앉히고, 바로 옆에 앉았다.
문을 닫음과 동시에 택시가 출발했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내려오는 길에 자리한 가로등은 너무나 이뻤다.
"으음, 할아부지 머시써ㅇ…."
"허허."
나는 혹여라도 미도의 머리가 창문과 부딪혀 혹이 날까, 그녀의 고개를 살짝 어깨 쪽으로 당겼다.
곧장 나도 그녀의 머리를 베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잠들었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 * *
다음 날.
"와, 할아버지. 이거 봤어요?"
"음? 뭘 말이냐."
나와 미도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언제나처럼 유니온 스퀘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의 회식이 생각보다 피곤했는지 다들 잠들어 있었지만, 나와 미도는 유독 쌩쌩하게 살아있었다.
역시 술 또한 유전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이거요. 이거."
미도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건네주며 보여준 화면에는 갖가지 뉴스 기사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최춘택, 날씨 요리사의 진면모를 보여주다!>
<진정한 할간지를 보여준 최춘택. 그는 진짜 요리사였다.>
<속보, 아크 스타 노년 유저 급증!>
<다크울프의 팬카페, '늑대의 유혹'. 이젠 '꽃보다 할배'로 이름이 바뀐다.>
<엄청난 미노년, '최춘택의 등장'. 젊은이들 못지않은 수트핏에 60대 여심 술렁.>
<최춘택을 향한 광고계의 러브콜 쇄도 중.>
"아니, 이게…."
"할아버지. 이제 완전히 연예인 되셨어요. 축하드려요."
"으음…."
"왜요?"
축하받을 일이다.
분명 축하받을 일은 맞는데….
"너무 갑작스럽구나."
"아, 막 엄청 부담스럽고 그러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즐기세요. 스승님…. 아니, 무열이 할아버지도 즐기면서 사시잖아요. 전 할아버지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더 멋있을 거 같아요. 지금도 멋있지만?"
그 순간 미도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이쁜 말만 골라서 하는데 어찌 안 이쁠 수 있을까.
그건 손녀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미도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이젠 부담가지지 않으마."
"후훗. 역시 할아버지 최고. 뿅뿅-♡"
"홍홍홍. 뿅뿅-♡"
그렇게 서로에게 손 하트를 날리며 장난치다 보니, 어느새 유니온 스퀘어 경기장에 도착했다.
곧장 대기실에 들어가 다음 경기에 대한 토론을 했고, 앞에서 새로 고용된 감독이 띄워진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제 들으셨다시피 다음 경기는 '골렘 공성전'으로…."
어제 보스 레이드가 끝나고, 사회자는 다음 날 펼쳐질 새로운 종목을 공개했다.
그것은 골렘 공성전이란 것이었는데, 평범한 공성전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룰을 가지고 있었다.
각 대표 선수들은 양쪽의 진형.
즉, 성에서 나와 중앙에서 싸우며 들판에 버려진 마력 코어를 모아야 하는데, 제한 시간 안에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더욱 강한 골렘이 생성되어 적의 성을 향해 돌진한다.
당연히 골렘이 생성되는 건 보다 많은 코어를 모은 쪽이고, 많은 골렘을 소환해야 공성전이 더욱 유리해지는 만큼 마력코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최종 목적은 골렘을 동반해 적들의 성을 무너트리는 것. 또는 적들의 전멸입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감독의 간단한 브리핑과 토의가 다시 이어지며, 어느새 우리들은 한자리에 모여 대기실에 설치된 TV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마침 사회자가 대진표의 추첨을 위해 공을 뽑으려 하고 있었다.
- 자, 그럼 제가 한 번 공을 뽑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
연속된 드럼 소리가 심장과 맞물려 뛰었다.
TV 속 사회자가 침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과연 골렘 공성전 첫 번째 경기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바로 바로…!
사회자가 공을 빼내자마자 나지막한 탄성이 대기실에 흘렀다.
"아, 미국이네."
"와, 첫 경기부터 나온다고?"
"미친. 저거 걸리면 망한다."
- 미국이군요! 그렇다면 미국의 상대는 과연 누가 될까요.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긴장되는데요.
모두의 시선이 사회자에게 꽂혔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도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자의 손이 올라와 공에 쓰여진 미국의 상대를 공개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우리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