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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60화 (26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60화

제260화

"아, 어쩐지 오늘의 운세가 안 좋더라니."

"…큰일 났네."

"우린 망했어-!"

한국 팀 대기실이 절망적인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과 탄식으로 머릴 감싸 쥐며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지금 꿈꾸는 건가? 그래. 꿈이겠지?"

"한 대 때려줄까?"

"그래. 한 대 세게 쳐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김해일이 신부 출신답게 짧게 성호를 긋더니, 박장소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참고로 두 사람은 어제 있었던 회식 이후로 동갑이어서 꽤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물론, 어제 김해일이 술을 먹었다는 건 비밀이다.

생각해보니 불량 신부로구만. 쯧.

"악. 이 미친놈아 왜 이렇게 세게 때려!"

"네가 세게 때리라면서."

"아오. 그렇다고 머릴 때리냐. 큭…."

그러나 그렇게 한탄만 내뱉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벌컥- 별안간 대기실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차림새를 한 유니온의 직원이 들어왔다.

"한국 팀 5분 뒤에 나갑니다. 준비하세요."

짧은 말을 남기고 떠난 유니온의 직원이 '침묵'이라는 폭탄을 터트린 것처럼 대기실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아무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흐음."

가뜩이나 오늘은 무열이 놈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불참을 한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이 경기가 끝나면 병문안을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 찾아올 줄이야….

무열이 놈이 지금의 우릴 보면 꼴 좋다고 하겠군.

"…다들 나갈 준비하자."

우선 나는 최연장자로서 눈앞의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그래도 오늘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었다.

최춘택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김장할 때만 쓰던 단어였으니까.

* * *

유니온 스퀘어 미국 팀 대기실.

"…한국이라. 첫 경기부터 결승전을 치르게 생겼군."

TV 속 사회자가 들고 있는 공에 적힌 '한국'이라는 글자를 본 데미안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어쩌면 그는 잘 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애초에 예상치 못한 최춘택과 백무열의 등장 때문에 여러 계획들이 틀어졌고, 한국이 기세 좋게 전력이 상승하면서 미국은 한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중엔 미국이 이긴 것도 있었고, 또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어이없이 패배한 것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은 강했다.

데미안은 그 사실을 먼저 인정했다.

그래야 적을 이길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번 전략은….'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아도 데미안은 미국이 한국에 밀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

전략, 전술, 스킬, 능력치, 아이템.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만 없다면, 그 어느 것도 미국은 한국에 뒤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제임스."

"네."

"이번에도 나와 줘야겠다. 마이클과 나란히 투톱 체제로 간다."

"…알겠습니다."

제임스가 주변의 눈치를 힐끔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은 곱지 않았다.

한낱 동양인인 자신이 미국의 국기를 달고 대표로 뛰고 있음에도 인종차별은 여전했던 것이다.

또한 미국 최고의 선수와 나란히 선다는 것 자체가 동양인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잘 부탁한다."

"엇, 아아아, 가, 감사합니다.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형."

팔짱을 끼고 있다가 난데없이 걸어와 악수를 건네는 마이클이 제임스는 한편으로 놀라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그렇기에 제임스는 저절로 그에게 허리가 숙여졌다.

아직도 몸에 밴 전형적인 한국식 인사법.

사실 그동안 있었던 팀원들의 왕따에 의기소침해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그런 제임스를 보며 다르게 느꼈다.

"…예의가 바르군."

"예?"

"나도 그렇게 90도로 허리를 숙인 적이 있었지. 얼마 전에 사귀게 된 한국분이 예의가 없다며 내게 한국식 인사법을 가르쳐주셨다."

"아, 그, 그래요?"

마이클이 잠깐 회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백무열이었다.

얼마 전에 칼부림을 하며 싸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이클은 그가 존경스러웠다.

기술적으로 너무나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비록 그날은 자신이 이겼을 지라도 말이다.

"아무튼 잘 부탁한다."

그렇게 마이클이 자리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팔짱을 끼자, 다른 선수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조금이지만 옅어지는 듯했다.

제임스는 감개가 무량하면서도 그런 마이클에게 감사했다.

"나가지."

어느새 무대를 나갈 시간이 되자, 미국의 선수들은 데미안과 마이클을 필두로 삼각형의 대형으로 무대를 향해 나갔다.

제임스는 그런 마이클의 오른편에 서 있었다.

제임스로서는 마이클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나름의 존경의 표시였다.

와아아아아-!

언제나처럼 쏟아지는 관객들의 함성.

그것을 들으며 제임스는 또 한 번 가슴이 벅찬 것을 느꼈다.

비록 다른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있었지만, 의외로 한국인 팬들도 많이 생겼다.

지난번 있었던 경기에서 자신이 스타 프루츠 능력자로 각성한 일 때문이었다.

또 듣자 하니 한국 게임 연맹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자신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는 이상한 오해가 생겨버렸다.

'뭐, 내게는 나쁜 일이 아니니까. 굳이 여론에 변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며 손을 흔들어준 데미안은 바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 건너편에서 올라오던 최미도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하필이면 지금….

"……."

"……."

그러나 먼저 눈을 피한 것은 최미도였다.

최미도는 아주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입술을 질겅거리듯 씹으며 캡슐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래도 아직 자신에게 묵은 감정이 남은 듯 보였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그렇게 작게 되뇌듯 말한 제임스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제임스는 철저히 한국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데미안이 말했던 정공법으로.

* * *

[골렘 공성전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약 1분의 작전 회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1:00]

들어옴과 동시에 허공의 모래시계가 뒤집히며 카운트다운이 움직였다.

들어오기 전 사회자에게 작전 타임 시간이 1분정도 있고, 그것은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었던 그대로였다.

"다들 여기로 모여!"

임창용이 크게 소리쳐 서로 떨어진 한국 대표팀을 끌어모았다.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골렘 공성전은 속도가 생명이야. 들판에 떨어진 마력 코어를 빨리, 그리고 많이 모아야 골렘을 계속 소환할 수 있지."

"잠깐만 오빠. 근데 그 총잡이 녀석은 어떻게 막을 거야? 제임스 말이야."

"으음, 그자는…."

"거, 그놈 좀 막을 방법 없소? 나 그놈한테 죽은 것만 벌써 네 번이우."

박장소의 말에 임창용의 미간 주름이 깊게 패였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골치가 아프구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답이 없는 상태였다.

그만큼 제임스가 가진 속사의 능력과 그가 가진 그림자 탄이라는 무한 탄환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제임스는 눈앞의 젊은이들이 말한 '양민 학살'이란 것을 하기에 딱 좋은 스킬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의 젊은이들이 양민이 아니라 국가 대표팀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아마, 제임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겠지.

사실 그것도 프로메테우스의 '혜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백무열도 사자의 갑옷을 입고 두들겨 맞아가며 싸웠으니,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지금 백무열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가.

하필이면 그림자 탄이….

잠깐, 그림자?

"일단 우리는 최대한 싸움을 피해 마력 코어를 모으자. 그게 아무래도 최선일 것 같다. 그리고…."

박장소는 입을 쭉 내밀며 "빌어먹을."이라며 투덜거렸고, 그의 말과 동시에 작전 회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작전 회의가 종료됩니다.]

[중앙 대지에 마력 코어가 형성됩니다.]

[골렘 공성전을 시작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삐이이이-!

그렇게 임창용을 비롯한 한국 팀 전원이 성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는 순간.

"잠깐만! 멈춰봐라. 얘들아."

"……?"

"……?"

"……?"

나를 제외한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의중을 궁금해합니다.]

"이리로 모여봐라."

"네? 할아버지. 우리 지금 경기해야 돼요."

"안다. 다시 모여봐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면 우린 진다. 크게 한 방을 노려야지. 빨리 모이거라. 작전을 새로 짜야겠다."

* * *

- 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죠?

- 한국팀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 이러면 한국이 많이 불리할 텐데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 아무래도 작전 회의 시간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 옹기종기 모여 작게 얘기하고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아무래도 최춘택 선수가 무언가 생각이 있는 듯합니다만….

갑작스러운 한국 팀의 작전 회의에 경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말 그대로 긴장감이라는 단어로 된 강물이 경기장 곳곳에 흐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 아, 작전 회의가 끝난 모양입니다.

- 말씀 드리는 순간 한국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다행입니다.

- 음?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최미도 선수가 움직이지 않고 있네요?

경기장 내에 자리한 스크린 화면이 그런 최미도를 확대해 비추었다.

미모가 자체발광 하듯 빛나는 수려한 외모.

관객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최미도는 혼자 멍하니 선 채 성내에 남겨져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녀는 멀어지는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아까 있었던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말들.

'미도야.'

'네?'

'너한테 모든 것이 달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 이걸 너한테 지금 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넌 검에 대한 재능이 충만한 아이니 말이다.'

'그게 대체 무슨…. 알아듣게 설명해주세요. 할아버지.'

아까 있었던 할아버지와의 대화.

뜬금없이 작전 회의를 하자며 팀원들을 끌어모은 할아버지는 아까 임창용이 말했던 것처럼 수비적으로 마력 코어를 모을 것을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페이크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며 한 아이템을 건네주고는 비밀 임무를 맡겼다.

그것이 너무나 엄청난 아이템이라서, 미도는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사실 너한테는 다른 녀석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네가 가진 검의 재능과 만나면 아주 잘 어울릴 법한 녀석이지. 그런데….'

'그런데요…?'

'어쩌면 네가 가진 다른 재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택은 네게 맡기마. 잊지 마라. 빛의 모방가다.'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가 건네준 아이템.

최미도는 마치 비싼 보석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것을 두 손으로 들었다.

그것은 정말 보석이었다.

말하자면 하늘의 보석.

또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까만 밤하늘의 과일.

어느 누구라도 탐낼만한 성좌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연결고리.

'…스타 프루츠.'

우웅-!

최미도의 손에서 영롱한 3등성의 스타 프루츠가 환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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