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58화
제258화
"어떻게 알았냐. 나 안 죽은 거."
백무열이 궁금하다는 눈으로 묻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모르는 게 어딨겠냐."
"흥. 잘난 척하기는."
백무열이 최춘택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거머쥔 몽둥이를 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오오오.
온몸을 휘감은 황금빛 아우라.
백무열은 천천히 오래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닌, 헤라클레스의 기억 속에 있던 오래된 신화와 전설.
그의 몸에 맺힌 황금빛의 아우라가 연기처럼 흩어지며 어떠한 형상을 맺어가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시련이 재현될까.'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춘택은 헤라클레스가 가진 능력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반인반신의 능력.
하루에 한 번뿐이지만, 헤라클레스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 30초간 무적 상태가 된다.
바로 지금처럼.
피슝!
난데없이 속사를 쏘아 머리를 맞춘 제임스의 탄환이 백무열의 고개를 젖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백무열은 멀쩡히 다시 고개를 들어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입을 벌린 제임스의 표정이 가관이다.
"아니, 이게 그…. 버그세요?"
그런 그에게 백무열은 그저 목검을 휘두를 뿐이다.
쐐애액!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간 무형의 반월이 제임스를 향해 날아가 폭음을 냈고, 제임스는 가뿐하게 피해 데미안의 옆으로 다가왔다.
"저거 버그 아니에요?"
"……."
그러나 데미안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백무열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데미안은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데미안이 가진 독특한 능력치인 '육감' 때문이었다.
그의 육감은 지금 눈앞의 최춘택보다 백무열이 더욱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좀 위험한데.'
바로 그때.
순식간에 근방으로 넘어온 독가스의 구름이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15분.
그리고 넘어온 것은 독가스뿐만이 아니었다.
"형님들 살아계셨군요."
왠지 모르게 한국과 친해 보이는 견소룡과 중국.
"최춘택 할아버지~? 저 왔어요. 그동안 절 속이셨으니, 제 낫에 베여주실래요?"
왠지 모르게 한국에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레이나와 러시아.
"우하하! 우리 길드원들이 다 있었군! 오랜만이다. 레이나! 나랑 사귀자!"
"시끄러. 이 대머리야! 너 때문에 자꾸 스캔들 생기잖아!"
독일의 라인하르트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파비앙.
그리고 아랍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흑표범.
가브리엘까지 속속들이 도착했다.
데미안은 그런 그들을 훑으면서 눈을 치켜떴다.
"토레즈가 없다…?"
대답은 앞쪽에서 들려왔다.
"그 물 지렁이 놈이라면 내가 쓰러트렸다."
놀란 표정의 데미안이 최춘택을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백무열의 등 뒤에서 사자의 형상이 맺혔다.
그것을 본 최춘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메아의 사자인가. 나쁘지 않지.'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메시지가 떴다.
[성좌스킬, '열두 가지 시련'이 발동합니다!]
[지금부터 해당 필드에 '네메아의 사자'의 시련을 재현합니다.]
[유저, '백무열'은 목을 조르지 않는 한 12분 동안 죽지 않습니다.]
최춘택이 뒷짐을 지며 모두에게 말하듯 선언했다.
눈엔 이미 '혜안'이 발동되어 있었다.
"자네들은 우릴 쉽게 쓰러트릴 순 없을 게야."
"…미친놈. 잔소리는 그쯤 해. 저놈들 귀에 딱지 앉겠다."
감았던 눈을 뜬 백무열이 사방으로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검격의 파도가 그들을 집어삼키며 달려들었다.
* * *
한편, 그 시각.
유니온 본사의 꼭대기에서 이건명은 주치의인 김성국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건명은 팔뚝을 뚫고 들어오는 주사를 맞으면서도 약간의 미동조차도 없었는데, 그런 이건명을 보며 김성국은 눈앞에 있는 이 늙은 노인이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회장님. 이 이상 무리하시면 위험합니다. 이제 진통제로 버티기도 힘드시지 않습니까."
"…음."
이건명은 욱신거리는 가슴의 흉통을 느끼면서도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지금보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죽은 아내를 만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사과를 할 수 있다면, 그랬다면 참으로 좋았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김 원장.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나."
"……."
"솔직히 말해주게."
김성국은 잠깐 눈을 감더니,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지금 눈앞의 이 늙은 영웅이 더 오래 살려고 발버둥을 칠 수 있을 테니까.
그가 알고 있는 이건명은 이제 역사책에도 실리기 시작한 세계의 위인이었다.
"6개월…. 아니, 1년입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보필한다면 1년은 더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김성국은 최선을 다해 이건명은 보필하고 치료했다.
그가 비록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기암이었어도 김성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겐 세계의 위인을 곁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사명감이 가득했다.
김성국에겐 자부심이 어린 일이었다.
"…그렇군. 1년이라."
이건명은 소파에 앉은 채로 한껏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더니, 나지막히 말했다.
"자넨 이만 가보게."
"…예. 회장님 쉬십시오."
끼익-
김성국이 조용히 회장실의 문을 닫고 나가자, 이건명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완성하기엔 조금은 빠듯한 시간이었다.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겠군."
그렇게 내뱉은 이건명이 소파 옆에 있는 지팡이를 쥐고 일어섰다.
그는 곧장 회장실 옆에 마련된 비밀의 방으로 들어섰고, 그곳에 있는 것은 유니온과 아크스타를 이루는 방대한 크기의 에너지 코어가 자리해 있었다.
이건명은 찬란한 한 줄기 햇살처럼 일렁이는 에너지 코어의 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이아."
이건명은 에너지 코어에서 눈을 떼고 바로 옆에 자리한 캡슐을 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에너지 코어와 연결되어 있는 캡슐.
이건명은 지팡이를 옆에 뉘이고 캡슐에 누웠다.
그리고 익숙하게 손을 움직여 접속버튼을 눌렀다.
푸쉬이이익-
어둠이 찾아왔다.
그 사이로 언뜻 비친 이건명의 눈빛은 광기에 젖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의 표독스러운 눈매처럼.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결론만 말하자면, 두 번째 경기인 '스타필드'의 우승은 미국이 거머쥐었다.
나와 백무열이 최선을 다해 버티긴 했지만, 남은 시간 3분을 남기고 우리들은 아깝게 탈락했고, 그렇게 한국은 2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세 번째 날의 종목 '쥬얼리 그랩'.
가운데서 튀어나오는 보석을 가장 많이 차지한 팀이 승리를 하는 토너먼트 경기였지만, 여기서 한국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나는 쿨타임 때문에 펜릴을 소환하지 못했고, 백무열도 열두 번의 시련에 대한 쿨타임이 하루 정도 존재했기에 큰 힘을 쓰지 못한 채 5위에 머물렀다.
이어진 넷째 날.
종목은 '몬스터 웨이브'.
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종목과의 상성이 좋지 못했다.
의외로 선전을 한 것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언데드 대군을 앞세우며 지난번에 본 임모탈 나이트를 진화시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넷째 날 처음으로 1위를 거머쥐며 지난번의 굴욕을 만회할 수 있었다.
2위는 영국이었는데, 데이비드가 나무를 미로처럼 만들어 오래 버티는 전술을 택했고, 그것은 주효하게 맞아 떨어졌다.
3위는 탄탄한 조직력과 전술, 평균 이상의 실력을 겸비한 미국이 거머쥐었고, 한국은 이날 4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대망의 다섯째 날.
종목 '보스 레이드'.
- 아, 대단합니다! 최춘택 선수가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보스를 잡고 있습니다!
- 설마, 이런 전략이 통할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을 했을까요!
- 이것이 바로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전략이죠! 정말 대단합니다!
나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보스 몬스터를 공략했다.
보스의 이름은 '탐식의 키마이라'.
사자의 얼굴에 튼튼한 말의 하체를 가지고 있으며 상체는 드래곤을 닮아있었다.
꼬리는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이 입을 벌리며 신경독을 뿜어냈고, 거대한 날개는 날지는 못해도 강철과 같은 강도를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스치면 치명상을 입기 일쑤였다.
또한 그것으로 말미암은 날갯짓으로 인한 거대한 풍압은 태풍이 되어 우리들을 위협했다.
키마이라는 모든 나라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그만한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열 받는 것은 주변에 소환한 몬스터들을 먹어치울 때마다 생명력을 회복하고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에 어느 나라도 레이드를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로 알려진 미국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 아아! 쓰러집니다! 키마이라가 결국 쓰러집니다!
-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최춘택 선수를 비롯한 한국의 선수들이 결국 해내고 말았습니다!
- 이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전개입니다! 놀랍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 한국이 첫날 있었던 깃발쟁탈전 이후로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러갑니다!
- 단독 선두입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금메달도 목에 걸 수 있습니다!
삐이이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알람과 동시에 한국 선수들의 캡슐이 일제히 열리며 환호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할아버지!"
미도를 비롯한 한국팀 전원이 나를 향해 뛰어오며 감격에 겨운 듯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가장 기뻐하는 것은 미도였다.
"해냈어요! 할아버지가 해냈어요! 정말로 이 작전이 먹혔다구요!"
"허허허. 그래그래."
나는 그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다.
지금 미도가 말하고 있는 작전이란, 바로 키마이라에게 세상에서 가장 매운 요리를 먹이는 것.
몬스터를 먹어서 강해지고 회복하는 키마이라의 특성은 오히려 내게 독이 아닌 기회로 작용했다.
나는 키마이라가 먹는 몬스터에 내 요리를 던져 넣었다.
키마이라는 요리를 먹자마자 어마어마한 매운맛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먹었던 것을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해진 키마이라에게 나는 계속해서 태양의 미트볼을 먹이며 공격을 퍼부었다.
당연히 키마이라의 크기만큼 미트볼도 컸기에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아라.
지금 결과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미국을 꺾었다구요! 1등이에요. 할아버지! 1등! 아직 1점차이지만, 우리가 1등이라구요!"
그녀는 사방에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 것도 잊은 채 폴짝거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자들의 시선이 좀 민망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콩수니 가면 때문이었다.
"음, 미도야. 잠깐만."
나는 그제야 콩수니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어우, 답답해라."
또 한 번 환호 소리와 뒤섞인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촤촤촤촤촥!
"끙. 망할 기자 놈들."
지금 내가 이것을 쓰고 있는 이유는 설명하자면 길다.
간단히 말하면 돈 때문이다.
이 캐릭터를 만든 회사가 다짜고짜 내게 찾아와서 이걸 쓰고 경기에 나와주면 수십억에 해당하는 광고료를 주겠다고 했거든.
참고로 어제는 아기공룡 돌리의 가면을 썼다.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혀.
나는 천천히 관객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제 나는 명실공히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