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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36화 (23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36화

제236화

메테우스의 판자촌 인근에 위치한 <낙원>  .

"아, 따거."

"아이, 진짜 좀 가만히 있어. 덩치에 안 맞게 왜 그래."

짜악!

김수정이 마석두의 등짝을 시원스럽게 때렸다.

너무나 화끈한 손맛에 등을 긁으려 애쓰는 마석두였지만, 자신의 팔뚝이 너무 굵어서 긁지를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수정은 쿡쿡 웃었다.

"이런 것까지 가상현실에서 재현될 줄은 몰랐는데 되게 실감나네. 근데 진짜 웃긴다. 다시 해봐. 오빠."

그런 김수정의 재촉에 마석두가 다시 한번 끙끙거리며 등을 긁으려 했지만 팔이 닿지 않았다.

마석두가 "에이." 하며 토라진 표정을 짓자 김수정이 빵 터졌다.

"푸하하하!"

김수정이 배꼽을 잡으며 한참이나 웃었다.

마석두가 이곳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사건 사고가 많은 판자촌의 치안이 이만큼 좋아진 것은 모두 자경단의 덕이었다.

그렇기에 자경단의 일원들은 다쳐서 김수정에게 자주 찾아오곤 했고, 사냥을 가기 전에도 버프를 받으러 자주 왔었기에 부쩍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웃음을 참습니다.]

"아, 너무 웃겨서 눈물이 다 나네."

김수정이 오른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닦자, 마석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치료를 재촉했다.

"빨리해줘. 애들이 기다리니까."

"알았어."

김수정이 빠른 속도로 마석두가 다친 곳을 살피며 침을 놓기 시작했다.

우선 이마에 있는 약간의 두부 손상.

이마에 점 3개가 있는 걸보면 분명 포크 숟가락에 찍힌 자국이다.

그리고 갈비뼈가 몇 대 부러졌고, 다리에도 타박상이 가득하다.

보통 이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 사실 걷기도 힘들 부상인데도 마석두는 이곳까지 태연하게 걸어왔다.

생각보다 남자다운 모습이 있는 그였다.

'다크울프라….'

그리고 마석두는 아까 있었던 전투를 복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바람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설마 그 많은 자경단의 일원이 가세했음에도 당해내지 못할 줄이야.

마치 하늘의 왕이라 불리는 독수리를 하늘에서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스킬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레벨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한 건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마석두가 포크 숟가락에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마석두가 아까 포크에 찍힌 곳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아직 만지면 안 돼. 치료 중이야."

"아, 쏘리."

마석두가 멋쩍게 대답하며 다시 아까 있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명예 회장인 무열이 형님 이후로 그동안 무각회가 이렇게 힘없이 굴복한 적이 있었던가….

다크울프와의 일전에서 패배한 직후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속여서 미안하다. 나는 이곳 메테우스의 주인인 다크울프다. 너희들의 실력을 한번 보고 싶었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여기 술집으로 와라. 내가 술 한잔 거하게 대접하지.'

그렇게 말한 그는 당당히 다시 술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한 것도 서러운데 술까지 사겠다니.

마석두는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그를 이길 방법이 지금의 그에게는 없었다.

'젠장. 정체가 뭐야?'

그걸 떠나서 다크울프는 싸움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타격기, 관절기, 잡기, 맷집, 그리고 힘과 스피드.

그 무엇 하나 소홀하지 않은 완벽한 밸런스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기도 했고.

그야말로 그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광인 같았다.

마석두는 오랜만에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그 또한 타고난 싸움꾼이었기 때문이다.

'가서 또 한 번 싸워달라고 해볼까.'

마침 사냥도 질렸고, 자경단 일이나 하고 있자니 무료했던 마석두였다.

그는 갑자기 목표의식이 생기니 온몸에 활기가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됐어."

"고맙다. 수정아."

"아냐. 조심히 가~"

"그래."

마석두가 문을 열고 나오자, 치료를 마치고 멀쩡히 서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마석두가 험상궂은 미소를 씩 지었다.

"술 먹으러 가자."

* * *

한편, 그 무렵의 나는 '주홍'이라는 술집의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이 큰돈을 저한테 주신다구요?"

"그래. 내가 오늘 이 가게를 통째로 좀 빌렸으면 하는데. 술은 넉넉하게 준비해줄 수 있겠나? 그 친구들이 생각보다 술을 많이 먹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무, 물론이므닙죠!"

인식 장애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주인장은 내가 이곳의 영주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사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메테우스는 지금 '늑대 가면'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렇기에 눈앞의 그는 설마하니 내가 이곳의 영주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헤헤. 이게 웬 떡이냐."

주홍의 사장 NPC 안톤이 허둥지둥하며 기쁘다는 표정으로 창고에 있는 술을 탁자마다 세팅하기 시작했다.

구석진 골목이라 장사가 잘 안 돼서 그런지 술은 넉넉했다.

아니, 넘쳐났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런데 안주가….

"혹시 안주는 없나?"

"아, 그게…. 사실 이틀 뒤에 폐업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재료 정리하러 오늘 들른 거라 안주를 만들 수가…."

안톤이 괜히 말했나 싶은 표정으로 말꼬리를 흩트렸다.

그는 내가 가게를 통째로 빌리는 것을 철회할까 두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되었네. 내가 만들도록 하지."

"아, 넵!"

안톤이 다시 밝은 표정으로 술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날씨 요리술을 시작했다.

공중부양 냄비를 꺼내 솔라로 불을 지폈다.

"해해. 즐거운 날씨 요리~"

솔라가 2차 진화를 하며 생긴 손이 공중부양 냄비의 겉면을 쓸며 더욱 골고루 화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솔라를 처음 본 안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억!"

…이주민인가 보네.

처음부터 메테우스에 살았던 주민이라면 아마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봤기에 내 정체를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놀라는 걸 보면 그는 아무래도 새로 정착한 이주민인 모양이었다.

뭐, 그래도 내 백성이라고 봐야겠지.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줏거리를 만들며 안톤에게 물었다.

"폐업을 한다고?"

"아, 예. 그렇습죠. 하하…."

술 세팅을 모두 마친 안톤이 땀을 닦으며 멋쩍게 웃었다.

"폐업을 하고 어쩔 생각인가."

"글쎄요…. 사실 장사도 잘 안되고 그냥 용병 일을 할까 싶습니다. 근데 손님께서 주신 돈이 갑자기 생겼으니 이걸로 또 장사라도 해봐야죠. 제가 어렸을 때 굶고 자라서 돈 많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큰 꿈을 꾸고 있구만."

"꿈은 꿈일 뿐이죠."

안톤의 체념에 가까운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혹 장사를 하며 불편한 점은 없었나?"

"불편한 점이요?"

"뭐, 예를 들면 개선됐으면 하는 것들 있지 않은가."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안톤이 잠깐 골몰하더니 내뱉었다.

"굳이 꼽자면 세금이겠네요."

"세금…?"

"예~ 지리적으로 좋은 자리를 먼저 선점한 사람들은 장사가 잘 되어서 세금을 낼 수 있겠지만, 저처럼 뒤늦게 들어온 이들은 세금을 낼 돈도 빠듯합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장사를 접으려는 것도 있어요."

"흐음."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헬레나가 어련히 알아서 세금을 잘 매겼다길래 마음 놓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잠시 골몰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말게."

"예?"

"아닐세. 자넨 이만 가보게나. 아무래도 친구들이 찾아온 모양이야."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자, 벌써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마석두를 필두로 나한테 두들겨 맞은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내심 얻어맞았다고 삐져서 안 오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아,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쇼. 정말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 제 인생에 나타나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톤이 정직하고 바르게 고개를 푹 숙이며 예를 표하곤 밖으로 나섰다.

그는 신이 난 것처럼 총총거리며 달빛 너머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까 안톤이 했던 마지막 말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거, 무슨 생각을 그리하쇼. 우리 왔수다."

상념이 깨지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술집을 가득 메운 인파가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 마석두가 있었다.

"앉아라. 술은 전부 내가 사마."

"거, 가면은 좀 이제 벗지 그러쇼. 술을 사겠다는 걸 보면 우리와 친해게 지내고 싶은 모양인데 얼굴은 서로 터야 할 것 아니오. 아니, 그 전에 혹시 또 도전하면 받아주시려나?"

"도전? 흐음."

잠깐 생각하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래도 호승심을 느낀 모양인데, 나 또한 가끔 대련을 하면 심심하지 않고 재밌을 것 같았다.

"받아주지. 한데 그 전에…."

나는 '인식 장애' 스킬을 해제했다.

해제하는 법은 간단했다.

그저 진짜 가면을 벗는 것처럼 손으로 시늉을 하면 되었다.

내 손에 의해 벗겨진 늑대 가면이 허공으로 흩어지며 마법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 얼굴을 확인한 눈앞에 이들이 경악에 빠지며 입을 쩍 벌렸다.

그야말로 턱이 땅까지 닿을 정도였다.

"다시 한번 소개하지. 너희들이 몸담은 무각회의 초대 수장이자, 무열이의 오랜 친구인 최춘택이라고 한다."

* * *

휘황한 달빛 아래 메테우스의 밤은 깊어갔다.

마석두를 포함한 무각회의 일원들과의 술자리는 너무나 즐거웠다.

인상은 험악해도 착한 심성을 가진 친구들이었고, 나와는 곧잘 어울릴 수 있었다.

과연 무열이 녀석이 사람을 가려서 잘 운영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끼이익-

그리고 나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왔다.

로그아웃을 하기 전 해결을 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마침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던 헬레나가 피곤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널브러져 있는 서류 더미를 보니, 일이 굉장히 많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던 모양이구나.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제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 걸요. 쓰레기촌 주민들도 기뻐하고 있어요. 이제 이곳은 저희들의 두 번째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너무 심려치 마세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나는 딸을 보는 듯한 심정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곳 세상에서 NPC일 뿐이지만, 내게는 정으로 낳은 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너랑 상의를 좀 하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세금 말이다. 좀 줄였으면 하는데."

"아, 어느 정도로요? 지금 아마 1인당 걷는 세금이 1만 달러일 텐데. 상인들은 5만 달러였나."

나는 안톤이 떠나며 했던 마지막 말이 무심코 떠올랐다.

포기하려 했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줘서 고맙다는 말.

그 감명 깊었던 한마디가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다.

어쩌면 백성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는 자는 왕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왕이 아니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다스리고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4달러."

"네?"

"4달러로 하자."

그날 이후로 메테우스의 모든 세금은 '4달러'로 고정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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