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35화
제235화
오늘도 평화로운 메테우스의 남쪽에는 유저들이 머무는 판자촌이 존재한다.
그곳은 언제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그렇기에 가장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순찰을 돌곤 했다.
최근 그곳에는 자경단이 하나 생겼는데, 그곳을 책임지는 사람은 백무열의 부탁으로 최근에 메테우스에 정착한 무각회의 수장 '마석두'였다.
지금 그는 판자로 지어진 자경단의 아지트에서 동생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끼이익-
그러던 중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고개가 그곳으로 향했다.
"좀 지낼 만한가?"
"오셨수까."
그는 바로 메테우스에 머물고 있던 실피드 기사단의 부단장 '베커'라는 NPC.
마석두는 저번에 자신의 돈을 훔쳐간 소매치기를 정직의 방으로 끌고 가 매우 평화로운(?) 방법으로 돌려받았고, 마침 근처를 서성이던 베커의 눈에 띄어 자경단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지낼 만합니다. 파리만 날리는 것만 빼면요."
마석두가 책상에 올린 발을 내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베커에게 걸어가 악수를 건넸다.
베커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도 이곳 남쪽이 제법 조용해진 건 자네들 덕이지."
"하하, 베커 형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시우. 우리야 뭐 그냥 가서 인상 한 번 쓴 게 다 인데."
마석두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보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베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세상에 이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
누구라도 이 얼굴을 마주한다면 자연스럽게 공손해지고 말리라.
"큼. 그나저나 자네한테 부탁할 일이 있다네."
"부탁할 일이요?"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게 의외였는지 마석두의 눈이 커졌다.
"그래. 아주 흉악한 범죄자 하나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첩보가 있네."
"예? 그게 누군데요."
"아무래도 자네가 속한 자경단에 원한이 있는 인물 같아. 이 근방에 '주홍'이라는 간판이 걸린 술집으로 가보게. 기다리고 있겠다더군."
"그 정도로 흉악한 범죄자라면 실피드 기사단에서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도 도우면 되구요."
"아직 말썽을 피우지 않아서 명분이 없어. 그냥 자네를 포함해 자경단을 모두 데려와 달라더군."
"흠, 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네. 형님도 가실 거죠?"
"그래. 당연히 가야지."
마석두가 까칠한 까까머리를 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침대와 같은 널찍한 소파에 누워있던 자경단의 일원들이 하나둘 조용히 일어났다.
그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하러 가자."
마석두를 포함한 자경단의 눈빛이 모두 흉흉한 기세로 빛났다.
* * *
나와 케레노스는 메테우스의 시내로 나왔다.
녀석이 말했던 그 '자경단'이라는 놈들을 한 번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바람을 다루는 방법을 알았기에 그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메테우스의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렇게 가던 중. 베커와 실피드 기사단을 만날 수 있었다.
"마석두라는 친구입니다. 아주 유능한 동생이죠. 저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입니다."
마석두라는 이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설마 그 녀석이 메테우스에서 자경단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나저나 이토록 빨리 이곳에 도착하다니.
역시 젊은이들은 다른 건가.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자경단은 이곳과 가깝습니다만."
그런 베커의 말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백무열의 말에 따르면 마석두에게도 내 정체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다고 들었다.
심심한데 장난이나 좀 쳐볼까?
"베커야. 그놈들 여기로 좀 끌고 와라."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주홍'이라는 간판의 술집을 가리켰다.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한적한 곳이었다.
거하게 술 한잔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물론, 그 전에 신고식부터 치르고.
"이유는 아무렇든 상관없습니까?"
"그래. 그 녀석들 실력이나 좀 봐야겠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유야 제가 대충 만들어보지요."
"그럼 기다리마."
그렇게 베커를 포함한 실피드 기사단이 자경단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30분 후-.
"온 거 같은데요. 영감님."
케레노스와 탁자에 마주 앉아 맥주 한잔하고 있던 나는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을 슥 둘러보며 눈앞의 맥주를 원샷하며 비웠다.
그리곤 나무 탁자 위에 맥주잔을 화끈하게 내려놓았다.
타악-!
"갔다 오마.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예~ 살살하세요. 애들 다칩니다."
"글쎄. 저놈들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일단은 가볍게 시작해볼까."
나는 가볍게 문을 열고 나갔다.
당연히 인식 장애를 이용해 얼굴도 바꾸고 목소리 또한 바꾼 상태였다.
마주 걸어오는 인파 속에 눈에 띄는 덩치가 하나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 녀석이 '마석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열이 놈보다 험상궂은 놈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댁이 나를 불렀어? 혼자야?"
"솔로다."
"아니, 커플이냐고 물은 게 아니잖아."
마석두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녀석의 옆에 서 있는 놈들은 모두 무각회의 일원인 듯하다.
그나저나 진짜 무섭게 생겼네.
"흠. 진짜 혼자인가 보네. 근데 너 뭐하는 녀석이야? 잠깐 이리 좀 와봐. 나랑 같이 정직의 방으로 좀 가자."
백무열이 곰 같았다면 지금 걸어오는 마석두는 진짜 그냥 곰 그 자체였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가 마치 튼튼한 짱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놈은 탱커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있었다.
…가볍게 시작해볼까.
나는 오랜만에 인벤토리에서 포크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저번에 라인하르트와의 일전 이후로 내구도가 약간은 감소한 상태지만, 그래도 그 뒤로는 한 번도 감소하지 않았다.
"야, 뭐야. 손에 그거 내놔봐."
잘 자란 참치처럼 튼튼한 마석두의 오른팔이 덮치듯 뻗어왔다.
나는 가볍게 녀석을 옆으로 제치며 옷자락을 펄럭이며 허공을 날아 그대로 뒤차기를 놈의 뒤통수에 날리고는 멋지게 착지했다.
"뭐, 뭐야. 지금 뭘 본 거야?"
"무슨 발차기가 저래…?"
"새 아니냐. 새. 벌~드(Bird)."
"새는 버드야 병신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자경단의 일원들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돌아보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다 덤벼라. 한번 피 터지게 싸워보자."
* * *
메테우스의 남쪽에 위치한 판자촌에는 사냥을 나가기 전 유저들이 꼭 들르는 곳이 한 곳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이곳에서는 유용한 버프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고, 치료도 공짜로 해주는 미모의 유저가 머물고 있다는 후문이 커뮤니티에 돌면서 사람들은 그야말로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밤에도 사람이 끊이질 않네."
<낙원> 이라는 이름을 써 붙인 간판을 보며 어깨를 주무르는 김수정은 끝을 모를 정도로 길게 늘어선 줄이 이젠 거의 다 줄어든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힘내자. 힘."
처음 이곳을 열 때만 해도 사람이 없어서 파리만 날렸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이곳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맛집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김수정은 그래도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어서 내일부터는 정말 급한 환자만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같이 사진 한 번만…."
"안 되니까 가세요~"
김수정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거리며 다음 환자를 찾아갔다.
다행히도 다음 환자는 진짜 아파서 온 NPC였다.
그녀는 곧장 신성 형화 침술을 발동해 다친 곳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김수정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침을 꽂았다.
"가만히 계세요. 따끔합니다. 따끔~"
[환자의 통증이 완화되었습니다.]
[신성력이 주입되는 중입니다.]
카미유도 이제 익숙한지 반딧불을 움직이며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눈앞의 환자가 치유되자, 김수정은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이번엔 사지가 멀쩡한 것을 보면 분명 버프를 받으러 온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이 마지막인가.
초등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난쟁이처럼 작은 키를 가진 여성 유저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귀엽게 말했다.
"버프좀여."
생각보다 귀여운 모습에 김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넹."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신의 말투를 싫어합니다.]
"큼큼. 네. 무슨 버프 드릴까요?"
"지식 올리는 버프 주세염."
"네. 잠시 가만히 계세요~"
[반딧불성, 카미유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수정은 곧장 차분한 모습으로 신성 형화 침술을 이용해 곧장 눈앞의 소녀에게 버프를 주었다.
지식 능력치를 올리는 버프는 머리에 침을 놓으면 된다.
하지만 부위가 부위인지라 조심을 해야 한다.
키 작은 소녀는 능력치가 올라간 것을 보며 귀엽게 대답했다.
"고마워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총총거리며 사냥터를 향해 뛰어갔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마법사인 것 같긴 한데….
엄청 귀엽네.
어떻게 걸었더라, 이렇게였나?
김수정은 주변을 둘러보며 더는 줄 서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바닥을 앙증맞게 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팔을 허리춤에 붙였다.
그리고 디딤 발을 디디며 그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총총 뛰어갔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아이, 진짜. 카미유. 내가 귀여운 게 싫어?"
김수정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못마땅하다는 투로 카미유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여자는 조신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에이, 그게 무슨 조선시대 같은 발상이야. 여긴 조선시대 아니니까 난 이렇게 걸어 다닐 거야. 내가 태어난 곳은 여성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니까~"
김수정이 자유로운 영혼처럼 낙원의 주변을 거닐었다.
카미유가 조선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궁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그냥 애써 무시했다.
역시 환자를 모두 치료하고 느끼는 이 보람되고 자유로운 순간이 김수정은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이제 그녀는 피를 봐도 거의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혈액 공포증은 거의 완치 단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그동안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까….'
그렇게 10분가량이나 현실과 가상현실을 저울질하며 낙원 앞에 있는 작은 동산을 귀엽게 뛰어다닐 즈음.
"너 뭐하냐."
"꺄아아악-!"
바람처럼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에 김수정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곁눈질로 남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놀랬잖아. 케레노스!"
김수정이 성난 표정으로 케레노스의 팔뚝을 한 대 때렸다.
케레노스가 "스읍."하며 팔뚝을 문질렀다.
"아, 미안. 급하게 치료해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근데 아까 그 자세는 뭐냐? 꽤 귀엽던데."
"벼, 별것 아니야!"
그녀는 벌게지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흐음. 그래? 그럼 저기나 좀 봐줘."
케레노스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자경단 오빠들 몰골이 왜 저래?"
케레노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두들겨 맞았다."
"누구한테?"
"영감님한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