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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37화 (23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37화

제237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월드 대항전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그동안 아.스.라 커뮤니티는 아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바로 메테우스의 영주인 내가 걷겠다고 공고한 세금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주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 소식은 전 세계의 속보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덕분에 메테우스는 유저들이 넘쳐나서 받을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헬레나는 돈을 뜯어먹을 놈들이 늘어났다며 좋다고 판자촌을 늘리기 바빴지만, 어쨌든 너무 과분한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만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과연 가난한 유저와 NPC를 챙기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며 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뛰어난 정치력이 있다는 헛소문 또한 생겨났다.

다가오는 월드 대항전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져 갔지만, 오늘은 내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다녀오마."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단정한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타이를 매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는 백무열이 자신의 차를 앞에 세워두고 담배를 뻑뻑 태워대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담배꽁초를 떨어트리며 발로 짓이겼다.

"뭐가 이렇게 늦어."

"미안하게 됐다. 빨리 가자. 동백이 기다릴라."

"어우 추워라."

백무열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운전석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인 조수석에 올라탔고, 백무열이 직접 고급 세단을 운전하기 시작했다.

부릉-.

제법 안정감 있는 출발이 꽤 좋은 차인 모양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작은 추모공원.

"여긴 언제와도 추운 것 같단 말이야."

백무열이 춥다는 듯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야 우리가 겨울에만 오니까 그렇지."

"아, 그런가?"

우리는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겨 납골당 안을 누볐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곳은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 항상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의 유골함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그저 묵묵히 앞에 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나 또한 저렇게 조만간 유골함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생각과 함께 걷고 걸었다.

백무열이 나지막하게 걸으며 말했다.

"70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건데 말이야…."

"……?"

나는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요즘 관짝으로 기어 들어가는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누구는 안 그런가.

"아무래도 우리가 동백이를 만날 때가 됐나 보지."

김동백.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유골함의 주인이다.

그는 나와 백무열과 함께 무각회를 세웠던 초창기 친우였다.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고아로 태어났고, 그렇기에 우리 셋은 그야말로 영혼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 시절의 우리들은 정말 가족과 같았다.

"다 왔다."

앞서 걸어가던 백무열이 멈추자, 나 또한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을 찾아온 지 햇수로 거의 35년이 다 되어가기에 우리가 찾는 유골함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故 김동백 이곳에 잠들다.

그것을 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오늘따라 유독 그가 죽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오늘처럼 눈이 펑펑 쏟아졌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 * *

35년 전 인천에 위치한 어느 폐공장.

그곳에 중절모를 쓰고 정장과 구두를 멋지게 차려입은 앳된 청년이 걸어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최춘택.

무각회라는 단체를 세워 상인들을 보호하며 자신의 힘을 약자를 위해 썼던 그야말로 상인들 사이에서는 영웅이라며 칭송을 받는 이의 이름이었다.

"어서 와라. 네가 그 다리 없는 새라는 별명을 가진 애송이냐."

최춘택이 어둠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곳엔 우람한 덩치를 가진 중년의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인파가 갈라지며 만들어낸 길을 걸어오는 그에게선 과연 우두머리로서의 남다른 풍모가 느껴졌다.

"…불곰."

"선배라는 말을 뒤에 붙여야지. 아무래도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딱-!

불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환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수하들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끌고 왔다.

그것은 작은 바퀴가 달린 의자에 묶여, 입에 청테이프가 붙어 있는 여인.

자신의 연인 유선영의 모습이었다.

"선영아!"

"읍! 으으읍!"

유선영이 발악하듯 몸부림쳐봤지만, 밧줄은 생각보다 강하게 묶여있는지 쉽게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박환이 손짓하자, 부하들은 알아듣고 그녀의 입에 있는 청테이프를 떼주었다.

"춘택 씨!"

"선영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최춘택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지금 그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는 앙숙을 품은 불곰파의 박환이 유선영을 납치해왔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었다.

박환은 혼자 오지 않으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라야 했다.

"그럼 상봉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박환이 다시 손짓하자, 그의 수하가 다시 유선영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였다.

"으읍…! 이거 놔! 놓으라고! 춘택씨…! 으읍…! 읍!!"

유선영은 다시 드르륵 소리를 내며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최춘택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까득 갈았다.

"…불곰. 여자는 풀어줘라."

"이런 젠장. 예의라곤 밥 말아 먹은 놈이군. 그건 네놈이 하기에 달렸지 않겠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글쎄. 적어도 네놈을 죽도록 팰 수는 있겠지…. 얘들아!"

박환의 외침에 불곰파의 일원들이 원을 그리며 빙 둘러쌌다.

그 움직임을 본 최춘택은 곧장 몸의 긴장을 유지하며 언제든 발차기를 날릴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과연 좋은 자세로군. 빈틈이 없어. 어디 무각조(無脚鳥)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볼까? 쳐라!"

박환의 외침에 불곰파 전원이 한 명씩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그들의 손에 무기는 없었기에 생각보다는 수월한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최춘택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날아다녔다.

파라라락-!

그야말로 다리 없는 새와 같은 움직임.

파파파팟!

박환은 최춘택의 발차기를 보며 등 뒤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과연 당대 제일의 주먹인 단우성을 쓰러트렸다는 소문은 헛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발차기로군. 저게 진정 인간인가?'

듣자 하니 최춘택은 정말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생겨났는지 박환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만!"

박환의 일갈에 불곰파 전원이 물러났다.

수하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발차기 한방에 안면이 함몰된 이도 있었고, 갈비뼈가 나가 일어날 수 없는 이도 있었다.

이건 뭐 평범한 발차기가 아니라 묵직한 해머에 맞은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짝짝짝짝!

그런 최춘택을 향해 걸어가며 박환이 박수를 쳤다.

"정말 놀라워. 자네 같은 친구가 대한민국에 있었다니. 도대체 그 발차기는 어디서 배운 거지?"

"후우. 글쎄, 나도 사실 어렸을 때라 기억이라 어디서 배운 건진 기억이 나질 않아."

"…그렇군. 어렸을 때라. 하긴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한 불곰이 정장 재킷을 벗더니 뒤에 있는 수하에게 던졌다.

"동생들이 맞고 있는데 안 나설 수가 없어서 말이야."

박환이 가볍게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1대1 신청인가?"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아, 이젠 애송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아무래도 내가 네놈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아."

"그건 고맙지만, 선영이를 풀어주지 않겠나? 그녀는 죄가 없다."

"흐음…."

박환이 까끌한 턱을 한 번 쓸고는 잠시 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좋다. 날 이기면 여인을 풀어주지."

"큰형님!"

뒤에서 불곰파의 부두목 장두칠이 소리쳤다.

그런 그에게 박환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끼어들지 마라.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최춘택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고맙군. 덕분에 최선을 다해 이길 수 있겠어."

"웃기는 놈이군. 벌써 날 이겼다고 생각하나?"

"난 지는 법은 몰라서 말이야."

"좋은 말이지.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서로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최춘택과 박환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바닥에 깔린 자잘한 모래가 아스팔트 바닥과 만나 끌리는 소리가 폐공장 안을 고요하게 울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긴장감.

선공은 박환이었다.

"조심해. 나도 옛날에 황소 제법 탔거든…!"

박환이 덤프트럭처럼 자신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 폭발적인 돌진에 최춘택이 눈을 빛냈다.

재빨리 좁혀진 거리를 재며 잽을 날리듯 채찍처럼 왼발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속도가 마치 전광석화와 같다.

파팍!

"……!"

하지만 생각보다 박환의 맷집은 단단했다.

그는 약간의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발차기를 받아내더니, 이빨을 보이며 씩 웃었다.

순간 오싹한 소름이 등 뒤로 끼쳤다.

"이게 바로 전투씨름이다."

박환은 그대로 접근해 최춘택의 멱살을 잡고는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최춘택은 그야말로 공중제비를 돌며 묘기처럼 가까스로 제자리에 착지했다.

"다음엔 바닥에다 메쳐야겠는걸."

박환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최춘택은 직감했다.

아무래도 쉬운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맷집은 거의 단우성 수준인데.'

다행이라고 한다면 당대 제일의 주먹이었던 단우성은 그 맷집에 속도와 힘 또한 가히 일품이었다.

최춘택으로서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고, 간신히 그에게 이기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눈앞의 박환은 힘과 스피드가 그에 비하면 지극히 떨어졌다.

그나마 맷집이 단단한데, 문제는 가까이 때리려고 하면 저 씨름 기술이 여지없이 들어올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아마 다음번에 잡히면 필시 땅에 메쳐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단 한 방에 승부를 내야 한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단련하기 어렵고, 취약한 곳이 어디일 것인가….

최춘택은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잡생각이 많은데…!"

박환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마치 탱크 같았다.

최춘택은 좁혀오는 양팔을 피하기 위해 가볍게 점프를 했고, 박환은 노렸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걸렸다…! 네놈은 뒤로 피했어야 했어…!'

박환은 이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허공으로 떠오르는 최춘택의 옷자락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는 그대로 최춘택을 잡아 땅에 메다꽂아버릴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결은 자신의 승리로 끝나고, 당대 제일의 주먹인 단우성을 쓰러트린 자를 이겼으니, 그 명성 또한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

스륵.

잡았다고 생각했던 옷자락이 그야말로 귀신처럼 사라졌고, 박환은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최춘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큰형님 위입니다!"

"위…?"

박환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허공의 최춘택은 얼굴을 땅에, 발은 하늘로 향 한 채 옆으로 몸을 틀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 놀랄만한 체공 시간에 박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맙소사.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순간 번개 같은 발차기가 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빠아악-!

그리고 그것이 박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박환은 그야말로 부실하게 지은 건물처럼 스르륵 무너져 내렸고, 맥없이 쓰러지는 박환을 보며 최춘택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모래 바닥을 뒹굴며 일어났다.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다리 없는 새의 그림자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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