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12화
제112화
거인의 광물 엘바프리움.
알렉서스가 왕이었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 대장장이가 그를 위해 직접 구해서 만들어 준 우정의 상징이 바로 이것이었다.
훗날 이것은 아틀란의 왕을 상징하는 무구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창에 있는 글귀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바뀐 내용을 확인했다.
'숟가락'은 '창'으로 바뀌어 있었고, 스킬 또한 바뀌어 있었다.
-미식가의 눈(액티브)
(쿨타임: 30분)(지속시간: 5분)
미식가의 눈으로 대상을 식재료로 바라본다. 어떤 대상이라도 미식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으며, 부위별로 감별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형 몬스터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식재료 부위 타격 시 2배의 데미지.
-요리사의 분노 (패시브)
솜씨 능력치와 감각 능력치를 합친 것만큼 방어 무시 데미지가 숟가락에 추가된다. 일정 확률로 식재료를 뽑아낼 수도 있다.(현재 방어 무시 데미지 441)
그 설명을 읽으며 나는 오싹한 소름을 느꼈다.
알렉서스의 요리 무구 중 하나.
첫 번째 키친 웨폰(Kitchen Weapon)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요리사의 분노가 거머쥔 창에 깃듭니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포크 창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식가의 눈."
[고귀한 미식가의 눈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미노타의 몸이 갑자기 소고기 부위처럼 보였고, 여기와는 조금 떨어진 곳까지 한눈에 보였다.
채끝살. 안창살. 갈비살. 치마살. 제비추리 등등.
다 맛있는 부위들이지만, 중요한 건 멀리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에도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존재한다.
콱.
[소의 첫 번째 위 '양'을 찔렀습니다.]
[방어 무시 데미지가 2배로 적용됩니다.]
나는 뛰면서 창을 연속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용암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한 부위에서 멈칫했다.
"오, 여긴 진짜 비싼 부위인데."
양은 보통 국거리나 전골용으로 쓰이는 얇은 부위도 있지만, 구이용으로 쓰이는 두툼한 부위도 있다.
이것은 '양깃머리'라고 하는데, 주로 곱창과 함께 '특양구이'로 판매하기도 한다.
거구의 황소에서도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 굉장히 귀한 부위 중 하나였다.
콱콱콱!
[특수 부위 '양깃머리'를 찔렀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소량의 불타는 양깃머리를 획득하였습니다.]
나는 포크에 붙은 '양깃머리'를 인벤토리로 던지고, 다시 빠른 속도로 달리며 찔렀다.
스파이더 클라이밍을 이용해 위벽을 달리기도 했다.
미노타의 저항이 거셌지만,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크아악! 누구냐…! 감히! 감히!!"
[폭염의 미노타의 생명력이 5% 남았습니다.]
10%까지 회복된 놈의 생명력도 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나는 어느새 두 번째 위인 '벌집양'을 지나 '천엽'의 위를 달리고 있었다.
[소량의 불타는 천엽을 획득하였습니다.]
"이건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지."
그렇게 천엽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자, 미노타의 생명력은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내가 도달한 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였다.
"오늘 막창에 소주 한 볼때기 탁(?!) 해야겠구만."
콱콱콱콱!
[폭염의 미노타의 생명력이 2% 남았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소량의 '불타는 막창'을 획득하였습니다.]
"우오오오오-!!"
나는 무아지경에 빠지며, '막창' 부위를 찔렀다.
오로지 이놈을 안줏거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일념이 내 머릿속엔 가득했다.
[폭염의 미노타의 생명력이 1% 남았습니다.]
"으으! 이럴 수는… 안 돼. 안 돼에에에!"
"돼."
콱!
마지막 일격을 찌르자, 어마어마한 수의 메시지가 떴다.
[World. 윈디아를 공포에 떨게 만든 폭염의 미노타가 안식에 들었습니다!]
띠링-!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미노타의 거대한 갈비뼈를 획득하였습니다.]
[최초로 마왕의 핏줄을 죽였습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엄청난 업적입니다!]
[칭호 <마왕을 적대하는 자> 를 얻었습니다.]
[마계의 누군가가 미노타의 죽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레벨이 안 오르는군."
100레벨이 넘고 나서 필요한 경험치가 2배 이상 늘었다.
지금 내가 오른 레벨은 10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겠지.
[크하하! 진짜로 쓰러트리다니, 인간 꽤 강하구나! 취이익!]
'시끄럽게 하지 마라. 이놈아. 피곤하다.'
[크하하하하!]
왜 자꾸 귀청 떨어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많은 사람들이 미노타를 레이드를 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데미지를 입힌 순서대로 아이템에 대한 권한이 주어집니다.]
[현재 누적 데미지 1순위는 당신입니다.]
"음? 이런 것도 있나."
갑자기 눈앞에 창이 떴다.
동시에 미노타의 시체가 잿가루처럼 휘날리며 사라져갔다.
주변의 정경은 바람의 언덕으로 바뀌었고, 익숙한 얼굴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제일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아까 나를 미노타의 입속으로 던진 마이클이라는 놈.
"진짜로 살아있었군."
"그래."
"넌 대체 정체가 뭐지…?"
"나는…."
대답하려는 순간 스파크가 머리 위로 튀었다.
츠츠츠츳.
[늑대성, 로믈라나와 연결되었습니다.]
…다시 영성을 회복한 건가.
나는 마이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하늘을 향해 말했다.
"미노타는 죽었다. 로믈라나."
[늑대성, 로믈라나가 당신의 역량에 깜짝 놀랍니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정말 고맙다고 말합니다.]
"아니다. 네 덕에 물리칠 수 있었다. 고맙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과찬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레무스의 심장이 내 가슴에서 튀어나왔다.
많은 힘을 소진했을 법도 한데, 여전히 강대한 흑야의 힘을 퍼트리고 있었다.
뒤에 있던 젊은이들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 저거 스타피스잖아…?"
"봉인이 모두 풀려있어. 어이가 없네."
"그래서 그렇게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던 건가?"
"크하하! 아주 마음에 드는 사내야! 우리 길드에 들어오라구!"
갑작스러운 그들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다.
머릿속으로 로믈라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고맙습니다. 약속의 군주.]
…음?
설마 이렇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여긴 북극이 아니라, 정 반대쪽에 위치한 대륙.
아마 꽤 많은 영성(靈星)을 소모할 것이 틀림없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로믈라나가 말했다.
[꼭 이렇게 제 입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하늘에 있는 레무스도 이젠 조금 한을 풀 수 있겠군요.]
"꼭 그랬으면 좋겠군."
[저와 한 약속은 잊지 않으셨죠?]
"그래. 알데바란이 나타나면 말해주지."
그때였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당신을 찜했습니다!]
이건…?
간혹 성좌들이 눈여겨 봐둔 존재들을 찜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성좌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약속을 지키려면 그대가 죽으면 안 되겠지요.]
그 순간 허공에 뜬 레무스의 심장 일부가 다시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성좌스킬, '흑야랑 소환'을 습득하였습니다.]
[흑야랑 소환][액티브]
등급: 전설
소모 마력: 5%
흑야 속에서 사는 어둠의 늑대들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전자의 10%에 해당하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소모하는 마력이 늘어날수록 늑대의 지속시간과 숫자가 늘어납니다. (현재 5마리 소환 가능)
로믈라나가 말했다.
[흑야의 힘이 없어서 다시 살아날 순 없겠지만, 미약한 힘이나마 당신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알데바란을 발견하면 흑야랑을 통해 소식을 전해주시면 됩니다.]
"고맙군. 근데 이러면 등성을 올리는데 힘이 부족하지 않나?"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렇구먼."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편리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타고 다녀야지.
[별들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레무스의 심장이 하늘로 솟구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월드 메시지가 떴다.
[World. 북극의 한 늑대 성좌가 1등성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 * *
잠시 뒤, 나는 제우스 길드라는 놈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케레노스는 마을로 가봐야겠다며 서둘러 돌아갔고, 나는 갑자기 변신이 풀려버리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다행히 백호 가면은 남아있어서 그걸 쓸 수 있었다.
…이제 놀 가면은 쓰지도 못하겠군. 다 찢어졌어.
눈앞의 데미안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 뮬란의 영웅이 당신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흥미로운 얼굴로 말하자, 나는 대답했다.
"뭐, 그냥 우연이었습니다."
"레벨이 몇입니까?"
"비밀입니다."
"흥미롭군요."
뒤에서 레이나라는 여인이 입을 열었다.
"난 비밀이 많은 남자 좋아. 후훗."
…아니, 자꾸 입술은 왜 핥는 건데.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하하하! 정말 우리 길드로 들어올 생각 없어?! 우리 꽤 죽이 잘 맞는 것 같던데! 하하하!"
"고맙지만 지금은 생각 없다."
"그렇구나! 하하하! 그럼 어쩔 수 없지!"
카푸치노란 남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야, 라인하르트. 그래도 계속 설득해야지 인마. 정말 생각 없습니까? 당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저희가 키워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키워준다라…. 그리 썩 유쾌하진 않군.
"미안합니다. 난 혼자가 편해서."
"흐음, 안타깝네요."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나무에 기대고 있던 마이클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물어도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겠지?"
"그래.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일단 아이템을 골라라."
"아이템…? 음, 내 정신 좀 보게."
순간, 아이템에 대한 첫 번째 권한이 나에게 있음을 떠올렸다.
나는 창을 활짝 열어 어떤 아이템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미노타의 해머]
[미노타의 폭염 심장]
[미노타의 불타는 가죽]
……
……
생각보다 아이템이 많네…?
저번에 레무스가 죽었을 때보다 많은 아이템이 나왔다.
사실 그때는 그걸 가지는 게 찝찝해서 모두 로믈라나에게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흠."
…일단 해머는 내가 쓸 일이 없으니 넘겨야겠군.
심장 같은 경우는 먹으면 미노타의 스킬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기본 속성이 화염 속성으로 영구적으로 고정된다는 것이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불타는 가죽을 얻을까…?
아마 드레인에게 가져다주면 꽤 괜찮은 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화염에 대한 내성이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잠깐의 생각 끝에 나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난 이걸로 하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