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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13화 (11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13화

제113화

[미노타의 타오르는 뿔을 획득하였습니다.]

내 선택이 의외였는지, 옆에 있던 데미안이 재차 물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교환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제가 중간에 끼어든 거니까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런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젊은이들. 듣고 있던 '라인하르트'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 더 마음에 드는데! 데미안! 이 친구 강제로 데려가도 돼?"

"라인하르트. 진정해라. 너 그러다가 뚜들겨 맞을지도 몰라."

"우하하하! 그럼 하는 수 없지!!"

호탕하게 다시 한번 가슴을 치는 라인하르트. 그 모습이 꼭 오크들이 하는 행동을 닮았다.

[취이익. 저놈은 인간의 탈을 쓴 오크인가…?]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겉모습은 전혀 다른데…?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거지?]

'너처럼 무식하잖냐.'

[취이이익-!! 이노오오옴!!!]

'껄껄껄!'

그렇게 속으로 웃는 사이, 눈앞의 젊은이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아이템들을 나눠 가졌다.

아까 눈 여겨봤던 '전갈 성애자' 청년은 불타는 가죽을 고른 것 같았다.

아쉽긴 하지만.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크리스탈: 아버님! 이제 5분 뒤면 도착할 것 같아요! 조금만 버티세요!

- 잭슨: 그럴 것 없다.

- 크리스탈: 네? 그게 무슨….

- 잭슨: 천천히 와라. 송아지는 처리했으니까.

- 크리스탈: 네…????

- 잭슨: 설명하자면 길구나. 아무튼 그렇게 알고 천천히 오거라.

그 말과 동시에 귓속말을 끄고, 아까 얻은 아이템의 정보창을 열었다.

[미노타의 타오르는 뿔]

등급: 전설

소지 시, 화염 내성 +50%

마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마왕의 아들. '폭염'이라는 칭호를 가진 미노타가 죽어서 남긴 뿔이다.

무기를 만들기 좋은 강도를 가지고 있고, 가지고만 있어도 화염에 대한 내성을 가지기에 비싼 값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스킬: 크고 아름다운 뿔!(전설)(액티브)

모든 소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우상이 됩니다. 시전자보다 능력치가 높은 소는 당신을 따르지 않습니다. 굴복시킨 소는 무조건 복종합니다.

"…흠. 우선 화염 내성은 100%인가."

사실 화염 내성에 대한 옵션은 이것 말고도 다른 것에도 달려 있다.

심장도, 가죽도, 해머에도 달린 그야말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다른 것에는 굉장히 유용한 옵션들이 더 붙어있었다는 것.

내가 가진 뿔에는 웬 희한한 스킬 하나만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쓸모가 없는 스킬이다.

이딴 스킬이 전설 등급이라니. 쯧.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미노타가 성좌급의 격을, 하다못해 마왕이라도 되었다면 스타피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미노타는 죽고 사라졌다.

성좌가 되지 못한 존재는 저 멀리 있는 별의 요람에도 닿지 못한 채 바로 명계로 가버린다.

"근데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네."

그는 진짜 마왕이었다.

어쩌면 알데바란의 성정이라면 당장 쳐들어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간이지만 마계 또한 금제의 영향을 받는 곳.

만약 그가 사악한 마기를 지니게 되었다면 그가 인간계로 나와도 70%의 힘밖에 내지 못할 게 뻔했다.

물론 그건 신들이나 성좌들이 마계로 갔을 때도 마찬가지.

그들이 금제라는 거대한 규율 속에 존재하는 한 서로를 침범할 수 없고, '라그나로크'때와 같은 대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가긴 가야겠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꽤나 많은 숫자. 조금 더 지나자 목소리도 들려왔다.

초감각으로 올라간 청력으로 그들의 말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방송국 관계자인 것 같다.

"망할 기자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쫓아다니네."

나는 조용히 로그아웃을 눌렀다.

* * *

적막이 흐르는 모니터링 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방금 벌어진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놀란 건 유민석의 옆에 있는 이석준 부장. 그가 놀란 표정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봐. 저자의 정체를 알 수 있나…?"

이석준이 모니터에 뜬 팔다리가 짧은 늑대인간을 가리키자, 직원 하나가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누구지? 누구길래. 저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초창기 아크스타가 출시할 때부터 모든 랭커들의 행보를 줄줄 외고 있는 그였다.

순수하게 유저들의 플레이를 즐겼고, 월드 대항전이 열릴 땐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의 기억 속에 저런 랭커는 없었다.

아니, 솔직히 유저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그래. NPC가 틀림없을 것이다.

"혹시 NPC가 아닌지 한번 알아보도록."

아까 고개를 저었던 모니터링 직원이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직원이 말했다.

"NPC가 아닙니다. 유저입니다."

"……."

또 한 번 모두가 정적에 휩싸였다.

이제 아크스타가 오픈한 지 1년.

그런데 저 남자는 대체 누구기에 현재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제우스 길드도 잡기 힘들어하는 미노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단 말인가.

'저 남자가 정말 유저라면 이번 월드 대항전은 밸런스가 붕괴되어 버릴 거야. 이거 큰일인데….'

작년 월드 대항전 같은 경우는 맏형인 이명준이 맡아서 개최했었다.

하지만 올해 월드 대항전은 이석준이 책임지고 개최하게 되었고,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발돋움하며 차기 회장의 자리도 넘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인 이건명에게 자신을 알리려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된 것이다.

'그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만약 내가 공들이는 중인 <베스트 리그>  에 저 남자가 출전한다면 랭커들이 모조리 학살당할 거야. 그럼 관중들의 실망과 동시에 매출도 확 떨어지겠지. 모두가 노밸런스 망겜이라고 욕을 할 거야.'

관중들은 치열한 경기를 좋아한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때론 웃고, 울기도 한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에 박수를 보내고, 그것을 보기 위해 돈을 쓴다.

최근에는 스타 프루츠의 능력을 얻은 '8인의 초신성'이 모두 참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서, 이번에 열릴 월드 대항전은 그야말로 '별들의 축제'라고 사람들은 떠드는 중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순 없지. 젠장. 하필 이럴 때 강재성 박사가 없다니….'

강재성 박사는 유일하게 가이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쥔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처럼 식물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손쉽게 저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마스터키의 행방만 알았다면 좋으련만…."

그때, 옆에 있던 유민석이 입을 열었다.

"부장님."

"응?"

"제가 저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 * *

푸쉬이이익-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읏차-!"

이상한 현상이지만 이제 가상현실에서 나오면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내가 레벨이 올랐기 때문이겠지.

…끙. 이젠 어떤 게 내 몸인지 모르겠구만.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밖은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안방 문을 열고 나오니,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강현이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한쪽 어깨를 주무르며 그의 옆에 앉았다.

"아버지, 어디 몸이 아프세요? 제가 진찰을 좀 봐드릴까요?"

"아니다. 그냥 오래 누워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해서 그래."

"다 좋은데 몸 생각하시면서 하세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아직 너보다는 체력이 좋다. 이놈아."

"에이, 아버지 나이가 있는데. 이젠 제가 이기죠."

"허어, 이놈이 못 믿네. 그러고 보니 넌 나랑 등산 가본지 꽤 오래됐지?"

"그렇죠. 한 20년은 된 것 같네요. 제 기억엔 그때도 아버지는 저희들이랑 같은 속도로 올라갔던 것 같은데."

첫째인 강현이는 아내를 닮아서 운동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늘 등산을 갈 때는 둘째 녀석을 데리고 갔다.

그 덕에 둘째인 정현이는 몸이 제법 튼튼한 편이다.

"조만간 한번 가자."

"좋죠. 정현이도 부를까요?"

"그래. 둘째도 불러라."

내가 그땐 천천히 걸었다는 걸 알면 이놈들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내심 상상을 해보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졌다.

"아버지. 좋은 일 있으세요?"

"큼. 아니다. 그나저나 TV 이거 보는 거냐?"

지금 TV에 나오는 것은 '남편의 유혹'이라는 드라마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이 점 하나 찍고 돌아와서 복수하는 막장 드라마였는데, 아직까지 안 끝났을 줄은 몰랐다.

…재방송인가 보군.

"아버지 보시고 싶은 것 보세요. 저도 볼게 없어서 보던 거예요."

나는 곧장 채널을 돌렸다.

아크스타 전문 방송 채널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강현이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 TV 취향 많이 바뀌신 거 아세요?"

"내가 말이냐…?"

"예전엔 드라마 본방 사수하겠다고, 10시만 되면 TV 앞에 앉아계셨잖아요. 막장 드라마가 좋다면서."

"그땐 내 유일한 낙이 그거였으니까. 세상이 워낙 막장이잖냐."

"저보다 아버지가 더 젊게 사시는 것 같네요."

"나 아직 청춘이야."

우리들은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TV로 시선을 돌리자, 마침 바람의 언덕이 나오고 있었다.

근방이 모두 파헤쳐진 것이 꽤 치열한 싸움이었던 것 같다.

…완전 난장판이네. 설마 영주 놈이 물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불안함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는데,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그들은 아까 봤던 젊은이들.

기자가 입을 열었다.

-미노타를 레이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다크 울프'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다크 울프?

모두가 입을 오물거리며 망설이자, 마이클이란 청년이 대표로 말했다.

- 그자는 우리가 잡던 것을 가로챘을 뿐이다.

- 정말입니까? 아까 방송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않던데요.

-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지.

아무래도 다크 울프는 날 얘기하는 말인 모양이다.

멀어지는 그들의 뒤로 플래시가 팡팡!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포터의 말과 동시에 화면이 전환됐다.

익숙한 해설자들. 그들은 아크스타의 전문가를 자청하는 이들이었다.

- 제우스 길드가 이번에 제대로 망신을 당했군요.

- 그래도 아직 많은 팬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아.스.라 커뮤니티에서 방송을 본 유저들이 '다크 울프'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 다시 한번 화면을 볼까요?

띄워진 화면은 조금 멀리서 찍은 것이었다.

용암이 윈디아를 향해 질주했고, 갑자기 나타난 얼음 덩어리가 용암을 막았다.

그곳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뭐야, 저것도 찍고 있었던 거냐.

저 난장판 속에서도 찍을 생각을 했다니, 어이가 없다.

이어지는 내용은 내가 거대한 늑대로 변신을 하는 장면. 옆에 있던 강현이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멋있네."

"큼큼."

나도 모르게 귀가 빨개졌다.

TV에서는 나와 미노타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푹 빠져서 그것을 감상했다.

잠시 뒤, 전문가들의 얼굴로 앵글이 바뀌었다.

-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제우스 길드조차 싸우기 버거워하던 것을 단 한 명의 유저가 저렇게 싸우다니요.

- 그는 분명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틀림없을 겁니다. 그것도 마이클을 뛰어넘는 능력자예요.

- 제 추측인데 아마 그의 능력은 이번에 밝혀진 북극의 늑대 성좌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현재 많은 유저들이 북극으로 가기 위해 시도 중이라고 합니다.

- 음, 그것보다는 전 이것에 집중하고 싶군요.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저 늑대 가면과 뮬란의 영웅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만 들켰을 뿐.

그들은 내가 고레벨이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심지어 내 종족이 늑대라는 헛소리도 있었는데, 얼토당토않은 얘기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다크울프라…. 검은 늑대라는 뜻인가.

…마음에 안 드는군.

내 기준에 늑대는 전부 미도에게 찝쩍거리는 놈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나보고 망할 늑대라고 하니, 조금 열이 받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리링-!

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

아무래도 이 시간에 올 수 있는 건 미도밖에 없다.

그런데 발소리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누구지…? 친구라도 데려온 건가?

웃으며 미도를 반기려는데, 뒤에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뒤틀렸다.

미도가 그를 소개했다.

"진철 오빠예요."

진짜 늑대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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