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11화
제111화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마이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라.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일 때 공격해야 효율이 좋아. 네 모래라면 날 저놈의 입속에서도 지킬 수 있을 거다."
사실 그냥 들어갈 생각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요리사'라 화염에 대한 저항력이 좋아도 50%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저놈의 모래가 도와준다면 얘기는 다르지.
"내 모래에 대해서 잘도 아는 듯이 지껄이는군. 그럼 저놈을 죽일 수 있나…?"
"아마도."
"좋다. 믿어보지."
많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가 손을 휘젓자, 모래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그것은 공처럼 단단하게 휘감았다.
마이클은 미노타의 공격을 막으며 한 손으로 모래를 조종했다.
"앞으로 30초 뒤, 널 저놈의 입속으로 던질 거다. 무운을 빌지."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관속에 묻히는 게 이런 기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심호흡을 하는데, 무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 인간 넌 정말 미친놈이구나! 날 이렇게 즐겁게 하다니!! 취이익.]
'미친놈은 내가 아니라 네놈이지.'
[크흐흐. 방금 그 발언은 용서해주마. 하지만….]
'야. 너 몇 살에 죽었냐?'
[취이익. 48살이었던 것 같군. 근데 그건 왜 묻지…?]
'나이도 어린놈이 반말하지 마라. 썩을 놈아.'
[크륵. 이런 미친…! 취이익!!!!]
'형님이라고 불러라.'
몸이 들려지는 느낌이 든 건 그때였다.
마이클의 목소리가 모래 너머로 들려왔다.
"간다."
파아아앙-!
엄청난 힘의 반동이 모래 속에서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고, 이리저리 튀며 굴러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손주들이 가지고 놀던 탱탱볼 같다.
"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 노호성과 함께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무사히 입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생명력은 조금 닳았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군.
나는 날카로운 늑대의 발톱으로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퍼걱!
단 한 번의 발길질에 무너져 내리는 모래. 나오자마자 반기는 것은 불길이 가득한 정경이었다.
"후우, 엄청 덥구만."
잠깐 숨을 들이켰는데도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땀을 닦을 새도 없이 곧장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디 보자. 그게 어딨더라…."
설마하니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보험용으로 120레벨까지 올려둔 것이었는데, 진짜 쓰게 될 줄은….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지팡이와 책이었다.
뿌연 수증기 속에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땀이 뻘뻘 흘렀고, 잠시 후, 메시지가 떴다.
띠링-!
[하급 어둠의 마법 '어둠의 화살'을 습득하였습니다.]
"후우, 더럽게 오래 걸리네."
나는 반대 손에 쥐어진 지팡이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라그너스의 미쳐버린 해골 지팡이].
전에 여기에 저장된 한 마법에 고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내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이템 설명을 읽으며 스킬을 등록했다.
띠링-!
[라그너스의 미쳐버린 해골 지팡이에 '어둠의 화살' 마법이 저장되었습니다.]
이제 시작해볼까.
"광란의 어둠!"
콱.
지팡이를 아래로 꽂자, 수십의 어둠의 화살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미노타의 몸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퓨퓨퓨퓨퓻-!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 하지만 동시에 빠른 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큰 허탈감에 나는 조금 놀랐다.
"흐읍…!"
인벤토리를 열어보니, 남은 굴라 특제 마력 포션은 없었다.
[당신의 마력이 20% 남았습니다.]
[당신의 마력이 19% 남았습니다.]
[당신의 마력이 18% 남았습니다.]
……
……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젠장. 이거 팔려고 했던 건데."
어느새 나는 손에 쥐어진 푸른 수정구슬을 깨물었다.
저번에 북극에서 어렵게 구한 아이스 골렘의 핵이었다.
와그작.
[차가운 혹한의 마력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최대 마력의 50%가 천천히 회복됩니다.]
[일시적으로 당신의 공격이 얼음 속성으로 변경됩니다.]
북극에서 얻은 아이스 골렘의 핵은 총 서른 개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어둠의 화살의 데미지가 약하다는 것.
분명 수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미노타의 생명력 회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망할 송아지 놈….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어느새 주변은 용암이 들끓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을 것 같다.
입술을 짓이기며 상태창을 열었고, 200개가 넘게 쌓여있는 능력치 포인트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으라차차차!"
[당신의 순수한 지식이 100이 넘었습니다.]
[더욱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순수한 지식이 200이 넘었습니다.]
[더욱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순수한 지식이 300이 넘었습니다.]
……
사실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 능력치를 힘이나 민첩에 투자했다면, 더욱 빠르고 강한 공격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중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아까운 것도 아니다.
비천기상무는 날씨의 힘을 이용한 비각술.
지식 능력치가 오른다는 건 곧 날씨의 힘이 증가하는 것이니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띠링-!
[능력치를 이대로 투자하시겠습니까?]
"그래."
쿠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풍과 함께 어둠의 화살의 크기가 증가하고, 폭발력이 증가했다.
그와 동시에 빠른 속도로 미노타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미노타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크워어어어어억!! 이게 무슨…!"
동굴 같은 울림과 동시에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쓰러진 모양이다.
주변에서 엄청난 용암이 솟구치며 다가왔다.
울컥. 울컥.
나는 기합을 지르며 주변을 할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
미노타의 생명력은 이제 10%도 채 남지 않았다.
저 용암이 내 몸을 먼저 녹여버리느냐, 아니면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어둠의 화살이 미노타의 목숨을 먼저 끊어놓느냐의 싸움.
하지만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콰직! 콰직!
[미노타의 몸에 냉독이 스며듭니다.]
수인이 되었지만, 다행히 냉독(冷毒)에 관한 힘은 남아 있다. 나는 쉬지 않고 미노타의 살점을 뜯으며 피해를 입혔고, 얼음과 어둠 속성의 공격을 무차별적 퍼부었다.
촤촤촤촤촥-!
울컥거리는 용암이 내 몸에 닿았지만, 나는 그저 무아지경으로 발톱을 휘두를 뿐이었다.
차마 스파이더 클라이밍으로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광란의 어둠이 금세 취소되고 말 테니까.
[용암이 발에 닿았습니다.]
[화염 저항력 50%를 갖고 있습니다.]
[초당 지속 데미지로 변경됩니다.]
[당신의 생명력이 60% 남았습니다.]
[당신의 생명력이 59.5% 남았습니다.]
[당신의 생명력이 59% 남았습니다.]
……
……
[폭염의 미노타의 생명력이 7% 남았습니다.]
…제길. 생명력이 부족해.
이럴 줄 알았다면 건강도 좀 찍을 걸 그랬다.
마치 내 생명의 불꽃이 시계처럼 째깍거리는 것 같았다.
교차하는 메시지 속에서 나쁜 소식도 들려왔다.
[라그너스의 미쳐버린 해골 지팡이가 파괴되었습니다.]
"…염병하네."
쉬지 않고 어둠의 화살을 발산하던 지팡이가 너무도 허무하게 용암에 녹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화력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미노타의 생명력은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고, 내 생명력은 이제 40%도 채 남지 않았다.
[크르륵. 이봐 내가 도와주지. 내게 몸을 넘기는 게 어때.]
그럴 수 있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몸을 넘기는 방법을 모른다.
"빌어먹을 놈. 할 수 있다면 해봐라."
[흐흐흐, 좋다. 취이익!!]
뭐야, 설마 진짜로 몸을 뺏기는 건 아니겠지…?
무두르는 고함을 지르며 애쓰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지만, 정적만 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무두르가 말했다.
[큼, 오늘은 짐이 좀 피곤한 것 같으니 다음에 하도록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니다!! 취이이익-! 짐은 대 오크제국 라이카의…!!]
"…쓸모없는 놈."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계속해서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미노타의 생명력은 계속해서 회복되었다.
[폭염의 미노타의 생명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시부랄.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거미 독을 요리에 쓰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그때 쓰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손쉽게 미노타를 잡았을 것이다.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독을 풀어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후회하기엔 늦어버렸다.
이럴 때 그놈은 뭐라고 했을까….
프로메테우스였다면 늘 한결같이 나를 도와주며, 조언을 해주었을까?
…아니, 코딱지부터 튕기겠지.
새삼스럽지만 그리웠다.
외팔에, 코를 자주 파서 그런지 콧구멍도 짝짝이었지만, 그 못생긴 놈을 떠올리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아직 포기하긴 이르지."
아마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카미유도 실망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나를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스킬창을 열었고, 공격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스킬은 없다.
"망할 개발자 놈들. 요리사는 사냥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함께 이번에는 아이템 창을 열었다.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창을 훑었다. 혹시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
"잠깐. 이거…?"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
등급: 전설
내구도: 300/300
착용 제한: 요리사 직업 한정
공격력 1~1
솜씨 능력치+50 감각 능력치+50
-미식가의 눈(액티브)(쿨타임: 30분)
매의 눈으로 대상의 식재료 감별을 시작한다. 어떤 대상이라도 미식가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전설 속 거인들의 광물 중 하나인 '엘바프리움'으로 만들어진 포크 숟가락.
과거 아틀란의 왕이었던 알렉서스는 숟가락에 포크를 합치는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손잡이 말미에 글이 적혀있다.
"요리사는 불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 알렉서스. A
그래. 이거라면….
누군가 본다면 평범한 숟가락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평범한 숟가락이 아니다. 이것은 알렉서스의 요리 무구.
나는 빠르게 숟가락을 장착하며, 솔라를 불러냈다.
"해해. 주인아 불렀…! 읍!"
"미안하다. 시간이 없어서."
곧장 솔라의 입속으로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숟가락.
나는 손잡이 말미에 적힌 알렉서스의 글귀를 읊었다.
"요리사는 불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왜냐하면 이 포크 숟가락의 진가는 불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니까.
띠링-!
[아이템의 숨겨진 기능이 드러나며 일부 정보가 변경됩니다!]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이 '알렉서스의 포크 창'으로 변경됩니다!]
[숨겨져 있던 스킬, '요리사의 분노'가 생성되었습니다.]
휘날리는 불꽃과 함께 창을 뽑았다.
"2라운드다. 시부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