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110화 (11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10화

제110화

내 손에 쥐어진 레무스의 심장은 흑야를 퍼트리며, 뜨겁게 뛰고 있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자신의 원수를 알아보는 듯.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다.

뒤에서 라인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너 지금 나한테 애송이라고 했냐?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다치기 싫으면 떨어져라. 난 두 번 말하지 않으니까."

그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소리였다.

눈앞에 있는 그들은 황당한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미노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로믈라나."

[늑대성, 로믈라나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네 힘이 필요해졌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꽈르릉!

갑자기 내리쳐진 하얀 벼락.

그것을 맞자 온몸에 힘이 충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로믈라나의 힘의 상징.

백야(白夜).

환하게 빛나는 힘의 파장 속에서, 북극을 떠나기 전 그녀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레무스의 심장은 평범한 스타피스와 다릅니다. 그것은 레무스의 근원 그 자체. 당신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막대한 별의 힘이 당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과부하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레벨을 더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로믈라나의 힘은 내 몸에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터질 것만 같은 힘이 내면에서 용솟음쳤다.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크윽. 진짜 엄청난 힘이구만.

과도한 영성(靈星)의 부담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저번에 내가 이틀간 쓰러졌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막대한 힘을 발산할 수만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스타피스, 레무스의 심장]

등급: 성유물

사용 제한: 가련한 사랑의 군주

모든 능력치 +50

*흑야강림 - 시전자의 주변 100M를 흑야로 물들이며 검은 눈이 내리게 만듭니다. 흑야는 시전자를 따라다니고, 어둠의 힘이 2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마력 소모 10%)

*흑야랑 소환 - 시전자의 10% 능력을 가진 흑야랑을 소환합니다. 현재 소환할 수 있는 흑야랑은 100마리입니다.

(마력 소모 5%)

*냉독 – 이빨과 발톱에 차가운 냉독이 깃듭니다. 공격을 당한 적은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 동상에 걸립니다. (마력 소모: 없음)

*야수의 본능 – 웰시 울프의 본성을 깨워 일시적으로 공격력과 공격속도를 올립니다. 방어력은 소폭 감소합니다. 공격을 받을 때마다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자신을 보는 모든 대상을 억압합니다. 단, 시전자보다 능력치가 낮아야합니다. (마력 소모 30%)

쿵. 쿵.

심장에서 퍼져나가는 흑야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로믈라나가 알려준 것처럼 그것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레무스의 심장이 흡수되며, 갑자기 몸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득.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 내 전신을 뒤집고, 부수고, 비트는 것이 느껴졌다.

터질 것만 같던 막대한 영성(靈星)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크하하하! 인간!! 넌 아주 미친놈이구나! 재밌어!! 하하하!!]

무두르가 호탕하게 웃었지만, 나는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미 내 몸의 골격과 근육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몸이 재구성되는 중입니다.]

[다리가 더욱 날렵하게 뛸 수 있도록 바뀌고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이 길게 자랍니다.]

[냉독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온몸의 갈기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고귀한 늑대의 피가….]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떴지만, 그것을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가슴에서 뛰는 흑야가 전신에 퍼졌고, 내 몸은 점점 커졌다.

어느새 나는 사족 보행을 하며 뛰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

"늑대잖아…?"

"늑대 가면이 아니라, 진짜 늑대였어??"

뒤에 있던 이들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미 나는 거대한 늑대가 되었으니까.

[아우우우우-!]

[성좌스킬, '흑야 강림'을 선포합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근방에 있던 용암이 식기 시작했고, 주변의 정경을 뒤바꿔버렸다.

한쪽에선 용암이, 한쪽에선 검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독특한 풍경이 연출 되었다.

묘한 쾌감 속에서 나는 몸을 살폈다.

…이게 바로 성좌가 되는 느낌인가.

[현재 당신의 레벨이 낮습니다.]

[모든 힘을 끌어내기가 벅찹니다.]

[변신의 지속시간이 10분으로 고정됩니다.]

[어떤 성좌가 당신에게 별의 힘을 공급 중입니다.]

본디 스타피스는 성좌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것에 담긴 힘도 일부였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다르다.

레무스의 심장은 나를 레무스처럼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평범한 스타피스가 아닌 레무스의 일생이었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나는 레무스가 아니다.

용암을 이끌고 달리던 미노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크르륵. 그대가 어떻게 여기까지…?"

[뭐긴, 뭐야. 복수하러 왔지. 소 새끼야.]

그와 동시에 미노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거대 괴수가 부딪히는 것은 엄청난 파공음을 낳으며,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콰콰콰쾅-!

나무는 부서지고, 잿더미가 되었다.

들판은 이미 재해가 쓸고 간 것처럼 파헤쳐지기 시작했고, 평화로웠던 바람의 언덕은 없었다.

이미 그곳은 용암으로, 눈으로 뒤덮여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나는 해머를 피해내며, 다리 밑으로 파고들었고, 발목을 물었다.

어마어마한 냉독에 미노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크으윽. 이놈!"

부우우웅.

불타는 해머가 등허리에 있는 갈기를 살짝 스쳤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입안에 흐르는 용암을 뱉어냈다.

"늑대 따위가 감히…!"

미노타의 살점은 없었고, 아무래도 그를 감싼 용암이 단단한 갑옷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걸 써야겠지.

[성좌스킬, '흑야랑 소환'을 사용합니다!]

대지를 물들인 어둠 속에서 작은 늑대들이 일어났다.

본신의 힘에 10%의 힘을 발휘하는 흑야랑(黑夜狼).

비록 약할지라도 그 수가 자그마치 100마리에 이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노타가 코에서 불을 뿜었다.

"크륵. 정말 내가 아는 당신이 맞군. 아버지에게 한쪽 눈을 잃은 걸로 내게 복수를 하러 온 건가…?"

[반은 맞다.]

"반은…? 그게 무슨 소리지?"

[네놈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그게 뭐지?"

[윈디아.]

콰아아앙-!

다시 한번 미노타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성좌 스킬 중 하나인 야수의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촤아악. 콰직.

"크아악!"

아무리 미노타라고 해도 이 많은 수의 흑야랑들은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고, 미노타는 연신 해머를 휘두르며, 흑야랑들을 없앴지만, 흑야 강림이 선포된 이상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났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어느새 그의 생명력은 20%도 채 남지 않았다.

…생명력이 왜 이거밖에 없지? 누구한테 공격받았나?

"크륵.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시끄럽다. 소 새끼야.]

"크으으. 죽여버리겠다!!"

[폭염의 미노타가 <초열지옥>  을 준비합니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대지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땅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고열의 화염이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젠장. 설마하니 이걸 쓸 수 있을 줄이야.

그래서 이 근방이 다 용암이 된 거였나…?

초열지옥은 원래 알데바란이 쓰던 기술이다. 생각해보니, 그 아들이라고 쓰지 못할 이유는 없군. 제기랄.

하지만 그때, 얼음과 모래가 뒤섞인 폭풍이 미노타를 휩쓸고 지나갔다.

콰아아아아-!

그 엄청난 파괴력에 미노타는 타격을 받으며 넘어졌다.

다행히 초열지옥은 발동하지 못했다.

"아까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옆을 보니 아까 그 젊은이들이 모래를 밟은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한 공격인 모양.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고맙단 말은 필요 없다. 나도 저놈에게 빚이 있어서."

[건방진 놈.]

"칭찬으로 듣지."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공격을 막았고, 눈앞에는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미노타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그나저나 그건 어디 있지…?

[미노타. 판도라의 조각은 어디 있나.]

"크흐흐,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은가."

[말해주면 살려주지.]

"크륵. 그런 거짓말엔 속지 않는다."

확실히 고블린들 보다는 소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괘씸한 건 마찬가지지만.

콰직.

"크아아악!"

퍼져나간 냉독이 용암을 굳혔다.

조금씩 굳어가는 용암을 보며, 미노타를 감싼 힘이 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확실히 성좌의 격을 갖추지 못한 그는 '알데바란'보다 많이 약했다.

…덩치도 많이 작고.

"크흐흐. 나를 죽인다면 아버지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건 걱정 마라. 나도 믿는 구석이 있거든.]

하지만 그때였다.

[변신이 해제됩니다.]

엥…?

거대했던 늑대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10분도 안된 것 같은데,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판도라의 조각을 분리하느라 막대한 힘을 소모했었다고 말합니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는….

[당신을 지탱하던 별의 힘이 사라져 갑니다.]

[<레무스의 심장>  이 힘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당신의 겉모습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늑대성, 로믈라나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환장하겠네."

우득. 우드득.

어느새 나는 다시 몸이 바뀌고 있었다.

처음 변신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옷은 이미 넝마가 되어 찢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드레인한테 한 소리 듣겠군. 그런데 내 모습이….

[몸의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수인'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에 남은 흑야의 힘이 기본 공격의 속성을 어둠 속성으로 고정시킵니다.]

[어둠 속성 공격을 할 경우 데미지가 2배로 증가합니다.]

[당신의 이빨과 발톱은 여전히 냉기가 가득합니다.]

[변신 지속 시간이 6분 남았습니다.]

나는 완전한 '늑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그대로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두 발로 섰다는 것이었다.

흠이라고 한다면 '웰시 울프' 특성상 팔다리가 엄청 짧았다.

모래 위에서 지켜보던 젊은이들이 피식 웃었다.

"어머, 아까랑 모습이 다르네…? 귀여운걸?"

"저게 뭐냐. 늑대냐 인간이냐."

"늑대인간이야, 멍청아."

그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설마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이야.

민망함이 밀려오는데, 미노타가 불을 뿜었다.

"죽어라!"

화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때, 하늘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그는 내 앞을 막아서며,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강철의 벽!"

짓쳐오는 화염은 거대한 방패를 뚫지 못했다.

나는 앞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고맙다. 대머리."

"흥. 이제 보니까 그쪽이 애송이구만. 누구보고 애송이래."

"그 말은 사과하지."

해머가 휘둘러진 것은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크윽, 제기랄. 방패 내구도가…!"

미노타가 엄청난 속도로 연타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라인하르트가 살짝 밀리는 것이 보였다.

그때, 위에서 떨어진 한 남자가 모래를 이용해 미노타의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마이클이란 이름을 가진 청년이었다.

"라인하르트. 뒤로 빠져라."

"야, 아직 괜…."

"고집 피우지 마. 네 방패가 부러진다면 곤란한 건 우리들이라고. 그건 평범한 방패도 아니잖아. 구하기도 힘들다."

"크윽. 제기랄. 미안하다!"

그렇게 그곳엔 나와 마이클만이 남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군."

"그대를 도와준 게 아니다. 라인하르트를 도운 거지."

"…그렇다고 치자고."

주변을 둘러보니, 케레노스와 다른 젊은이들이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미노타를 막는 것은 무리였다. 이미 그들도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고, 나는 마이클에게 물었다.

"왜 안타라스의 독을 쓰지 않는 거냐."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지금 모래의 힘뿐이다. 안타라스가 협조를 하지 않아서 말이야."

"제길."

안타라스를 성단(星團)에 초대해 힘을 빌리려 했는데, 안되겠군.

"그럼 그 방법뿐인가…."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이걸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는 다른 방법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저 모래를 믿는 수밖에.

"어쩔 생각이지…?"

마이클이 묻자 나는 골똘히 생각한 뒤 말했다.

"나를 저 망할 송아지의 입속으로 던져라."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