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09화
제109화
드레인이 만들어 준 스킬 아이스 실크로드로 바다를 가로지르던 나는 엄청난 구토감을 느꼈다.
생각보다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고, 30분간 쉬지 않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성체로 자란 '황제펭귄'은 하루에 한 번씩 이걸 탄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걸 매일… 우웁."
침과 뒤섞인 토사물을 옆으로 뱉은 나는 퀭한 눈으로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아이스 실크로드의 길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구불구불하게 불규칙적으로 생성되고 있었다.
롤러코스터가 이것보단 나을 것 같다.
"어우, 시부럴."
미도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단둘이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그녀에게 성년이 된 기념으로 뭐가 갖고 싶냐고 물으니, 그냥 나랑 같이 놀이공원을 한번 가고 싶다고 했었다.
미도가 요상한 토끼 머리띠 같은 것을 내게 씌우고는 롤러코스터라는 것을 탔던 게 기억난다.
다행히 키 제한이 있지, 나이 제한은 없어서 탈 수 있었다.
"그래도 그건 위에서 아래로 갈 때만 무섭지 이거는 뭐…."
갑자기 엄청난 회전 코스로 들어섰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구간이었는데, 온몸이 뒤틀릴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나를 제외한 세상 전부가 도는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젠장. 내가 롤러코스터 탈 때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사람인데…!
사실 무서웠다.
그땐 미도가 옆에 있어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하지만 지금 내 옆에 미도는 없다.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겠다 싶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메시지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충하지 않으면 '아이스 실크로드'가 중단되고 맙니다.]
"이런 육시랄."
지금 여기서 중단된다면 바다에 수장되고 말 것이다.
나는 다시 나오려는 구토를 참으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마침 북극에서 얻은 굴라 특제 마력 포션이 있었다.
나는 탄산의 알싸함을 느끼며, 그것을 마셨다.
[전체 마력의 20%가 회복됩니다.]
"꺼억. 염병하네."
생각보다 회복되는 양이 적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지식 능력치를 좀 찍을 걸….
그래도 다행이라고 한다면, 굴라 특제 마력 포션이 5개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가는 동안 다 쓰게 되겠지.
그래도 이 정도 투자해서 윈디아에 갈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귀환석을 쓸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취이이익! 어지럽다!!! 썩 멈추지 못할까!! 대체 이딴 실력으로 어떻게 조종을 하는 것이냐!]
"에잉. 시끄럽다! 운전도 못하는 놈이 말이 많구나!"
운전할 때 밟아야하는 것은 엑셀과 브레이크만이 아니다.
자신감이지.
콰아앙!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나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30분쯤 달리자, 윈디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하늘이 새까맣게 물든 것이 심상치가 않다.
"저, 저런…!"
붉은 용암들이 윈디아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모습은 변했지만, 저번에 갔던 코볼트 광산이 있는 곳 같았다.
꼭대기엔 익숙한 송아지가 한 마리 보였다.
나와 무두르는 동시에 말했다.
"망할 송아지."
[망할 소고기.]
단어는 틀렸지만, 뜻은 통했다.
우선은 윈디아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미노타에게 달려들면 좋겠지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용암을 막는 게 먼저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윈디아는 내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아이스 실크로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가면을 쓰고, 허상의 날개를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야아아아아-!"
콰아아아앙-!
아이스 실크로드가 용암과 부딪히며 엄청난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대형 교통사고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순식간에 식어버린 용암을 보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란 무릇 통증을 동반하는 법.
"아이고, 아이고.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야."
허리를 두들기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늑대 가면?"
…아차,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대한 낫을 든 젊은 여인이었다.
나는 저번에 얻은 헬륨 슬라임의 핵을 먹으며 목소리를 바꾸었다.
당황스럽게도 이번엔 '아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랜덤하게 목소리를 바꾸는 특성 때문이었다.
"큼. 그렇소."
"어머, 꼬맹이였어? 얘, 너 몇 살이니…?"
"육ㅅ…."
제길. 하마터면 나이를 말할 뻔했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여섯 살…? 아니, 열여섯인가? 그래. 열여섯이구나? 아직 영계네?"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제길. 입술은 왜 핥는 건데.
쫙 빼입은 타이즈를 보며,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케레노스였다.
"영ㄱ…."
퓨웃!
다행히 그가 입을 열기 전에 거미줄로 입을 막았다.
나는 성큼 걸어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 왔다.
"입 다물어라."
"큼, 죄송합니다. 영감님. 근데 목소리가 왜 그러십니까?"
"알거 없다. 그 영감님이란 소리도 하지 말고."
"그럼 영계님이라고 합니까?"
"미친놈. 그냥 형님이라고 해라."
"예, 영계 형님."
누군가 소리 친 건 그때였다.
"용암이 넘친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식혀버렸던 용암의 위로 새로운 용암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막은 용암은 극히 일부였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누군가 외쳤다.
"블리자드 스톰!"
쏴아아아아아-!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얼음 폭풍이 용암을 순식간에 얼려갔다.
하늘을 보니, 엄청난 양의 모래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
그 위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저자가 모래를 조종하는 건가…? 근데, 이만한 양의 모래를 조종할 수 있는 건 그놈뿐인데….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데미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또 날아온다! 다들 조심해!"
하늘을 올려보니, 어마어마한 돌덩이들이 이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케레노스에게 말했다.
"가자."
"예."
나는 그들을 도와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부쉈다.
어느새 내 발엔 해오름이 전개되었고, 그들이 모래를 밟고 뛰어오르는 것을 보며, 함께 가세했다.
아까 말을 걸어왔던 여인이 웃었다.
"어머나, 역시 영계는 다르네…? 불타는 발이 너무 섹시하다."
아니, 입술은 왜 자꾸…. 큼큼.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누나가 잘 해줄게."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노골적인 그녀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나쁜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음란마귀!! 물러가라 이노옴!!
"레이나. 좀 자제하지?"
"내가 왜? 데미안도 눈독들이던 거 아니었어…?"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도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제우스 길드입니다. 발차기 실력이 대단하군요. 우리의 동료가 되지 않겠습니까…?"
동료라…. 말은 고마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미안합니다."
"아쉽군요. 그럼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비밀입니다."
"그럼 이 싸움이 끝나고 물어보겠습니다."
"말 안 해줄지도 모르는데."
"그것 참 아쉽군요."
데미안이 목에 있는 은색 해골 목걸이를 거머쥐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창으로 변형됐다.
그가 창을 휘두르자, 채찍처럼 흐물흐물해지며 돌덩어리를 빠르게 부수기 시작했다.
…굉장한 젊은이로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말을 걸어왔던 젊은 여인도 낫을 휘두를 때마다 날카로운 기운들을 날리며 돌을 부쉈다.
아래에 있는 덩치 큰 대머리는 거대한 강철 방패로 돌덩어리를 막고 주먹으로 부수기도 했다.
아까부터 얼음 마법을 날리는 잘생긴 청년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옆에 보이는 이 청년이다.
역시 스타 프루츠 능력자였나…?
[통찰 정보]
이름: 마이클 레벨: 271
천성(天星): 차가운 자비의 군주
성호: 전갈 성애자(星愛者)
능력치:
힘 400(+81) / 민첩 400(+121)
건강184(+55) / 지식100(+95)
투지 340(+0) / 초감각 158(+0)
스킬: 모래의 권능(전설), 사막의 해바라기(영웅) 안타라스의 독(전설) 스콜피온 소드(영웅), 윤회 침식(전설) …(생략)
약점: 알 수 없음.
마이클이라는 청년은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휘두르는 검이며, 피하는 움직임까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12궁좌 중 하나인 '안타라스'의 성애자(星愛者)라는 것이었다.
안타라스는 지난 라그나로크 전쟁에서 유피테르의 편에 섰던 궁좌 중 하나.
…그나저나, 아직 모든 능력이 개화한 게 아닌 모양이군.
마침 그도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넌 누구지? 누구길래. 내 성좌가 이토록 난리를 치는 거냐."
…잘됐군. 안 그래도 인사하려고 했었는데.
나는 하늘을 향해 말했다.
"안타라스. 약속의 때가 왔다."
츠츠츠츳!
스파크가 하늘에서 튀었다.
아무래도 놀란 모양이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천궁에 가서 전해라. 약속의 군주가 왔다고."
츠츠츠츠츠츳!
아까보다 더 격렬한 스파크.
눈앞의 마이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넌 대체…."
어느새 날아오던 돌덩어리들은 사라져 있었다.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고, 마침, 미노타가 포효하며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저 녀석 왜 저렇게 커졌지…?
"크르륵. 하찮은 인간 놈들…! 모두 흔적도 없이 태워주마!"
온몸에 용암을 휘감은 미노타는 그때 봤을 때보다 한층 커져 있었다.
근처에 있던 젊은이들은 데미안이라는 청년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데미안이 말했다.
"제기랄. 용암을 몰고 오잖아? 마이클. 네 성좌는 아직 힘을 안 빌려준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아까부터 패닉 상태에 빠졌거든."
"걔는 왜 그러냐. 싸이코패스 아니냐?"
"널 모래 속에 묻어버리겠대."
"진짜 돌아이였네."
어느새 옆에 케레노스가 다가와 있었다. 그가 조용히 속삭이며 물었다.
"영감님. 그때 말한 늑대에게 힘을 빌려오신 겁니까…?"
"빌려왔지."
"다행이군요. 그럼 저 미노타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글쎄다."
"예? 아니, 그렇게 확신하시고선…."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놈아."
그렇게 말한 나는 앞에 있는 젊은이들의 앞에 섰다.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대머리가 소리쳤다.
"이보쇼! 안 보이니까 좀 비키쇼!"
…고얀 놈.
내가 지금 정체를 숨기는 게 아니었다면, 아마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곧장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고, 대머리에게 말했다.
"저 송아지는 내꺼다. 애송아."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메시지가 떴다.
[늑대성, 로믈라나와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