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69화 (6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69화

제69화

밴쉬라는 유령과 맞닥뜨렸을 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벽을 통과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이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 날카로운 손톱에 목이 댕강 날아갔을 테지….

밴쉬는 입꼬리를 쭉 찢으며, 악마 같은 미소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여기서 싸울 순 없는데….

미도는 이미 몬스터들에 둘러싸인 채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 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우선 도망치고 다시 오자고 말합니다.]

"그래, 그 방법밖엔 없겠지."

나도 알고 있다.

문제는 미도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미도가 자신을 향해 외친 건 그때였다.

"할아버지!"

"걱정 말거라! 어차피 나는 죽어도 마을에서 부활한다!"

그렇게 밴쉬들을 유인해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달렸다.

곧장 비천기상무(飛天氣象舞)의 묘리를 펼치며 태양의 춤을 췄고, 동시에 파티를 탈퇴했다.

[파티를 탈퇴하였습니다.]

…내가 잡은 걸 눈치채면 안 되니까.

파티를 한 상태에서 잡으면 경험치가 공유가 된다.

나는 혹여라도 의심을 살만한 이유들을 원천봉쇄 해버렸다.

앞에 있던 밴쉬들이 날카로운 손톱을 할퀴기 시작했고, 다섯 개의 날카로운 예기가 허공을 가르며 바위를 긁었다.

작은 얼음이 사방으로 튀며 깊게 패였지만, 지금의 내겐 통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파라라락-! 콰아앙!

[유령계열 몬스터에게 물리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2배로 적용됩니다.]

물리 데미지가 안 통하는 녀석이었나?

하마터면 미도가 큰일 날 뻔했군.

옆구리를 얻어맞은 밴쉬가 기우뚱거렸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듯했다.

오크와 비교하면 한참이나 낮은 방어력이었지만, 공격력은 오크 못지않았다.

콰콰콰쾅-!

…이렇게 여러 명을 상대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사람이 아닌 몬스터였지만, 충분한 상대였다.

밴쉬들은 한이 서린 목소리를 내며 쓰러져갔다.

나는 재빨리 떨어진 아이템들을 주웠다.

[영결석을 획득하였습니다.]

[한이 서린 얼음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사라의 편지를 획득하였습니다.]

"편지? 왜 이런 게 떨어졌지."

[사라의 편지][퀘스트 아이템]

등급: 일반

아렌이라는 사람에게 남긴 사라의 편지.

"항상 빛나던 천사는 나의 기쁨이었음을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퀘스트 아이템이라.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서둘러 미도를 향해 달렸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가면을 쓰라고 말합니다.]

"깜빡했군."

한동안 안 썼더니, 잊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정체를 드러낼 수 없음을 말이다.

미도와 단둘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방송 중이었다.

곧장 가면을 쓰고, 허상의 날개도 사용했다.

[허상의 날개를 사용합니다.]

[유저의 모든 정보가 가려집니다.]

불룡파 놈들에게 얻은 것이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또 말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헬륨 슬라임의 핵을 먹으라고 합니다.]

"헬륨 슬라임…?"

아까 미도가 내게 주었던 것들 중 하나였다.

아까 대충보고 넘긴 별 볼일 없는 아이템이었는데, 이걸 왜 먹으라는 거지…?

나는 정보창을 열었다.

[헬륨 슬라임의 핵]

등급: 일반

코볼트 광산에 사는 헬륨 슬라임의 정수이다. 영구적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는 포션 제작의 핵심 재료가 된다. 그냥 먹게 되면 1시간 동안 랜덤한 목소리로 바뀌게 된다.

아, 마지막 줄을 내가 못 읽었구나.

프로메테우스는 아마 이 마지막 줄 때문에 자신에게 이것을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곧장 헬륨 슬라임의 핵을 꿀꺽 삼켰다.

[헬륨 슬라임의 핵을 섭취하셨습니다.]

[1시간 동안 목소리가 랜덤하게 바뀝니다.]

"아, 아."

다행히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한 40대 정도? 물론 내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뛰어야겠군."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위험에 처한 미도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죽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생명력을 보니,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안쪽의 실을 잡아당기며 정장으로 변신했다.

"고얀 놈들. 감히 누구를 건드리는 거냐."

[태양 스킬, 썬 로드가 발동합니다!]

[태양의 에너지가 50 소모되었습니다.]

[15초간 이동속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태양의 길을 걷는 동안 발걸음에 화염이 충만합니다.]

퍼어어어엉-!

익숙한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의 무리를 가로질렀다.

콜로서스, 그렘린, 쌍칼해골 등.

갑자기 들이닥친 교통사고처럼 그들은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끄어어억-!"

"딱딱딱!"

"크르륵!"

불기둥에 닿을 때마다 그들의 팔이 녹고, 다리가 녹았다.

고열의 화염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만상 일체를 태우고 모든 것을 지워나갔다.

콰콰콰콰콰-!

마침내 태양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미도의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녀에게 파티신청을 했다.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Lv.???. ?????' / 'Lv151. 미도']

"괜찮습니까…?"

목소리가 젊어져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말투도 젊어져 있었다.

회춘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아, 네…! 저 혹시 뉴스에 나왔던 늑대가면 아니세요?"

"맞습니다."

사실 이미 정체가 드러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파티를 맺자마자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으니까.

-와 대박. 방금 봄?

-미친, 레벨 100이 넘는 몬스터 무리를 한방에 쓸어버렸네?

-저 사람 뉴스에 나왔던 늑대가면 아님?

-100% 맞음.

-개쩐다.

-나 팬티 좀 갈아입고 올게.

-야. 같이 가.

-나도.

[늑대가면개쩐다 님이 별사탕 2,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히어로 늑대 님이 별사탕 1,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원샷원킬 님이 별사탕 1,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이미 방송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들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근데 늑대가면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옴?

-맞음. 갑자기 구해주고 파티는 왜 함. 우리 여신님이랑 무슨 관계?

-혹시 남친은 아니겠지? 그럼 오늘부터 늑대가면 안티.

-이거 무조건 내일 뉴스에 뜰 거 같은데.

…고얀 놈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미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며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아, 저기…."

"……?"

미도가 궁금한 것이 있는지 볼을 긁적였다.

"파티는 갑자기 왜 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녀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파티 초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나는 대답했다.

"친구가 불러서 왔습니다."

"친구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친구? 웬 친구 드립?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설마 거짓말 하는 건가.

"그대의 할아버지가 내 친구입니다. 아, 나이가 같다는 건 아니고 그냥 게임 상에서 알게 된 친구란 뜻이죠."

"네?????"

너무나 놀란 표정의 미도.

그것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할아버지랑 늑대가면이랑 친구?

-여신님 할아버지 친구 클래스;;;

-근데 우리 할아버지 어디감ㅜㅜ

미도는 이제야 알아차렸는지, 급히 귓속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젠장, 나한테 하는 것 같은데.

-미도: 할아버지. 어디세요?

-잭슨: 어어, 죽어서 마을에 왔다.

-미도: 늑대가면이랑 할아버지랑 친구예요???

-잭슨: 어어, 그래. 우연히 알게 되었지. 나보다 어린 친구지만 정의감이 아주 투철한 친구야.

-미도: 대박! 왜 진작 말씀 안 하셨어요?

-잭슨: 그 친구가 워낙 매체에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늑대가면인 척 연기하려니, 묘한 쾌감이 들었다.

-미도: 근데 이분을 갑자기 왜 부르신거에요?

-잭슨: 너가 위험한 것 같아서 좀 도와달라고 불렀다. 마침 이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더구나.

-미도: 그랬구나. 알겠어요. 저도 곧 윈디아로 갈게요.

-잭슨: 아, 아니다! 거기서 계속 사냥하거라. 어차피 나는 따로 볼 일이 있어서 바쁠 것 같아.

-미도: 그래요…? 음, 알겠어요. 로그아웃 할 때 연락드릴게요! 전 이분이랑 방송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잭슨: 그래. 재밌게 놀거라.

휴우, 이 짓도 쉽지 않네.

심장이 쿵쾅거리며 터질 것 같았다.

미도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같이 사냥하실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요리사와 화가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아.스.라.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그 이유는 바로 '늑대가면' 의 인성에 대한 게시글 때문이었다.

자신을 기자라고 주장하는 그는 '늑대가면' 이 저지른 악행을 스스럼없이 적어 놓았다.

그것은 지금 뜨거운 냄비나 마찬가지였다.

-와, 늑대가면 인성 무엇.

-개웃기네 ㅋㅋ 스파이더맨이냐.

-근데 이게 사실이라면 인성이 그리 좋지는 않아 보임.

-ㅇㅇ 그런 거 같음. 저번에 카메라에 중지들었잖아.

-난 남자답고 좋던데. 화끈하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근데 기레기들 잘못도 있지 않을까?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모를 거 같음.

-가면 속에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네. 진짜 추남일까?

그곳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여론은 거의 그가 잘못했다는 것으로 몰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ㅇㅇ 동의함. 좀 심한 것 같긴 함.

-솔직히 절벽에 묶어놓은 건 너무했다.

-기레기도 사람이지.

그때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지금 크리에이터 '미도'가 생방송으로 '늑대가면'이랑 폐광에서 사냥하고 있음.

-미도? 그게 누구임.

-최근에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인데 직업 화가임. 이카루스 길드 출신인데 열라 이쁨.

-그게 사실이라면, 난 지금 보러가겠다.

-좋다. 가즈아!

-늑대가면 보러 가즈아!

그렇게 그들은 자연스럽게 미도의 방송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 방송이 전설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