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32화
제32화
그녀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요리사였고, 그녀는 손님일 뿐이었다.
나는 요리사로서 손님에게 주문을 받은 것이었다.
[플로라를 위한 만찬]
난이도: D
사랑했던 연인을 잊기 위해 바람꽃 요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플로라. 그녀가 다시 한번 바람꽃을 이용한 요리를 먹고 싶어 한다. 그녀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자.
*요리사 한정 퀘스트
*완료 조건: 플로라의 만족 0/1
*보상: 알 수 없음.
…요리사 한정 퀘스트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이것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고마워요. 재료들은 집안에 있는 것을 써도 좋아요."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밖으로 향했다.
바람꽃 요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나 '아이올리아'였다.
넓은 들판에 아침 햇살을 머금은 아이올리아가 싱그럽게 피어있었다.
"냄새 좋네."
나는 제일 가까이 있는 꽃밭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아이올리아를 하나 꺾어 맛을 보았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고로 식재료도 생으로 먹을 줄도 알아야한다.
"독특한 맛이로군. 풀 냄새도 나고, 진한 숲의 향이 느껴지면서 알싸함도 느껴져."
아이올리아의 맛을 느끼며 진정한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고민했다.
번쩍 눈을 뜬 나는 아이올리아를 채취했다.
어느새 인벤토리엔 100개가 넘는 아이올리아가 채워져 있었다.
"다른 재료도 한번 찾아볼까."
나는 다시 플로라의 집으로 향했다.
부엌을 뒤지며 어떤 식재료들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만약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밖에 나가서 찾아와야만 했기에 이것은 꽤나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방이 좁으니 안에서 요리를 할 수는 없었다.
나오자마자 공중부양 냄비를 던졌고 어느새 구경중인 플로라의 품엔 아이올로스의 알이 함께 있었다.
…실망시킬 순 없지.
나는 인벤토리에 챙겨 놓은 야채를 공중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깍둑썰기!"
사사삭-
야채들이 모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냄비를 향해 들어갔다.
숙련도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깍둑썰기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감자, 양배추, 파프리카, 호박, 양파까지.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려 냄비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플로라는 알을 쓰다듬으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고기는 뭘로 한다….
현재 구상중인 요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람꽃 무침. 다른 하나는 바람꽃 수프.
영상에서 보았던 두 가지를 플로라를 위해 만들 예정이었다.
나이가 든 그녀를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고 싶었다.
[고블린 고기]
등급: 일반
유통기한: 2일
고블린들을 잡아 얻은 고기. 피부 특성상 식감이 조금 질기다.
[놀 고기]
등급: 일반
유통기한: 3일
놀을 잡아 얻은 고기. 길쭉한 팔다리와 잘 뛰어다니는 유연한 근육을 가져서 식감도 유연하다.
"놀 고기가 좋겠네."
고기는 집안에서 썰어야 했다.
도마가 있어야만 채썰기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채썰기를 마쳤다.
그렇게 모든 재료들의 손질이 끝나자 곧장 냄비 앞으로 이동했다.
"날씨 요리술."
화아아아악-!
오른손에서 피어난 하늘의 불꽃이 바람의 언덕을 휘감았다.
플로라는 또 한 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느새 나타난 솔라가 활기차게 웃으며 말했다.
"날 불렀냐!"
"그래. 냄비 좀 데워줄래?"
"알겠다! 해해~!"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솔라가 힘을 주자, 금세 물이 끓는 것이 보였다.
역시 화력 하나는 끝내 준다니깐.
"솔라야 조금만 낮추자."
"알았다! 해해!"
냄비와 멀어지는 솔라.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포크에 고기들을 끼워 살짝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어차피 수프에 들어가야 했기에 오래 구울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장 고기를 잘게 찢으며 냄비에 넣었고, 수프를 휘저었다.
미리 다져놓은 아이올리아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졸이면 되겠군.
나는 다시 주방으로 갔다.
무침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냄비에 물을 채워 바깥으로 가져왔고 서서히 물이 끓자 아이올리아를 소금물에 정성스럽게 데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치이익.
나는 플로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옅은 웃음을 지어 주었고 살짝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곧장 데쳐진 아이올리아를 찬물에 헹궜다.
원래 무침 요리는 쓴맛이 운명을 좌우했다.
아이올리아로 하는 요리는 처음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다.
나는 다시 수프를 확인해보았다.
"잘 끓고 있네."
그녀가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알렉서스의 후예인 자신에게 바람꽃 요리를 부탁하기는 그녀의 입장에선 쉽지 않았으리라.
나는 다시 한번 국자를 거머쥐고 정성스럽게 수프를 저었다.
동그라미로, S자로, 8자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휘저으며 상념에 잠겼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 놀라운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요리의 주제를 정해주십시오.]
"음?"
이건 처음 보는 메시지인데…?
나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주제라….
빨리 짓지 않으면 수프가 식어버릴 것 같았다.
잠깐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플로라의 추억."
파아아앗-!
수프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은 세상의 시간을 잠깐 멈추게 하는 마법 같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그라져버렸다.
띠링-!
[일품! '플로라의 추억'이 담긴 아이올리아 수프!]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 가련한 여인을 위한 당신의 고뇌가 음식에 깃들었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 찬란한 태양의 기운이 수프에 넘쳐흐르고 있다.
-맛 스타: ☆☆☆☆☆
-유통기한: 10일
-생명력 회복: 400 / 마력 회복: 400
효능: 이 요리를 먹는 순간 모든 힘들었던 것들이 위로됩니다.
하루 동안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바람 속성 저항력 50% 상승.
공격속도 20% 상승.
*태양의 가호: 30분간 힘 40%, 방어력40%, 화염 공격력 40%, 화염 내성 40% 증가합니다.
[최초로 일품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명성이 200 올랐습니다.]
[명성이 '이름없는'에서 '평범한'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올랐습니다.]
[태양의 정령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보다 섬세한 불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엄청난 것을 만들어낸 것 같은데….
수프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요리의 등급을 나타내는 '맛 스타' 라는 것도 5개나 있었다.
과연 일품요리라 이건가…?
나는 수프를 그릇에 담아 그녀의 앞에 올려놓았다.
"아직 드시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참기름과 참깨를 가지고 나왔다.
찬물에 담가놓은 아이올리아의 물기를 빼내 그릇에 담았고, 손으로 버무리기 시작했다.
된장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띠링-!
[별미! 아이올리아 무침!]
요리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가볍게 데쳐서 참기름과 참깨를 넣고 버무렸지만 간 조절이 살짝 아쉬운 요리가 되었다.
이것은 요리사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맛 스타: ☆☆
-유통기한: 3일
-생명력 회복: 100 / 마력 회복: 100
효능: 이 요리를 먹으면 하루 동안 민첩이 5% 증가한다.
바람 저항력 20% 상승.
*태양의 가호: 30분 간 힘 10%, 방어력 10%, 화염 공격력 10%, 화염 내성이 10% 증가합니다.
…이번엔 일품이 아니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요리의 등급은 별미, 진국, 일품 순으로 있는 듯했다.
별미에서 일품으로 갈수록 맛 스타의 개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앞에 아이올리아 무침도 올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
플로라는 요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잘게 떨려오는 어깨가, 아이올로스를 향한 그녀의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젓가락을 들어, 아이올리아 무침을 입에 넣었다.
…이거 생각보다 긴장되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침을 꼴깍 삼킵니다.]
"맛있네요. 제가 만들었던 무침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이정도면 훌륭해요."
"감사합니다."
조금 못 미친다는 말이 걸렸지만 그래도 아직 괜찮았다.
나에게는 아직 한방이 있으니까.
이어서 플로라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목울대를 꼴깍 삼키고 있었다.
"긴장되십니까?"
"네, 조금요."
아무래도 향이 예사롭지 않긴 했다.
이제껏 맡아보지 못했던 최고의 향이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도 처음 맡아보는 세상 달콤한 향기에 정신이 몽롱했다.
그녀가 곧장 수프를 입에 넣었다.
"아아…!"
플로라의 눈이 번쩍 뜨여지며 감탄사를 뱉었다.
어느새 닭똥 같은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울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그가 생각날까 봐 바람꽃 요리를 하지도 못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키며, 나는 그녀에게 점점 감정 이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 밖에 있는 저건 뭐ㅇ…."
순간, 정적이 흘렀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은 울고 있는 플로라를 발견하곤 내 멱살을 잡았다.
"당신 뭐야?! 우리 어머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우리 어머니가 울고 있는 거야! 어?!"
…곤란하군.
아무래도 아들인 모양인데.
"그만하거라. 케레노스…."
플로라가 목이 잠긴 목소리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느새 케레노스는 멱살을 풀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있었다.
그가 앞에 놓인 요리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보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네요. 최고였어요."
플로라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나는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저 잠깐이라도 행복했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올로스 님이 죽고 그분을 원망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몸을 던져 알렉서스를 구했던 이유를 이젠 조금 알 것 같네요."
기나긴 400년의 세월이 담긴 원망과 용서의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은 이내 볼을 타고 턱으로 흐르며 마침내 그녀가 안고 있던 아이올로스의 알을 향해 떨어졌다.
토옥.
그 순간.
찌이이이잉-!
플로라의 품에 안겨 있던 알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