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2화
제12화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도? 성애자? 대체 이게 뭐지…?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외모에 깜짝 놀랍니다.]
"뭐야, 이건…?"
궁금함이 커졌지만 금세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버리고 말았다.
눈앞에 있던 고블린들이 빛이 사라지자,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급한 김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내 뒤에 바짝 붙거라!"
그녀는 뒤에서 양손 가득 하얀 불빛을 쥐며 버프를 준비 중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그 불빛들은 내 몸을 감싸 안았고, 나는 또 한 번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보였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을 구하기 위해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내비게이션이었어?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우선은 도망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런 미친놈이!"
"아버님! 왜 그러세요!"
뒤에 있던 김수정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해할 만도 하지.
경건한 마음으로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으니….
"아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남았던 것이니까.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와라!"
"킥, 잡아라! 식량이 도망간다!"
"캬아아악! 죽어라!"
드디어 시작된 싸움.
제일 앞에 있던 놈들이 일제히 검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씩 흘리며 반격을 했고, 피가 터지며 앞에 있던 놈들이 잿빛으로 물들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앞 열을 없애자 곧장 두 번째 줄에 있던 녀석들이 무기를 휘둘러 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사람이었기에 모든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큭…."
지친다.
아무래도 아까 경비대장과 싸울 때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모양이었다.
생명력 게이지도 겨우 100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우라질.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가운데 통로가 좁은 편이라 한꺼번에 덤벼오지는 못한다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고 있었다.
만약 통로가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끔찍하구만."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을 비웃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그렇게 절반에 가까운 고블린들을 죽였을 때였을까.
"저쪽이다! 키익!"
뒤에서 지원군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수가 자그마치 아까의 2배가 되어 보이는 숫자.
진짜 끝도 없이 나오는 게 바퀴벌레들처럼 느껴졌다.
"이 미친 고블린 놈들이!"
나는 튼튼하지도 않은 이를 꽉 깨물며, 단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뮬란의 주민 5/10 뮬란의 병사 15/30 구출]
이제 절반이 완료된 건가….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고 있었다.
하지만 이 미친 고블린들이 또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팍! 팍! 팍! 팍!
"……?"
갑자기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바로….
[Lv.10 노동자 고블린.]
뼈로 만든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에게서였다.
그들은 각자 들고 있는 무기(?)로 통로를 넓히기 시작했다.
"염병하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짙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내 목을 옥죄여오는 것 같았다.
나는 선택해야했다.
이곳에서 죽을 것인지. 아니면, 비겁하게 도망을 칠 것인지.
그래. 비겁하게 도망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났….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이 우선 출구를 향해 뛰어가기를 원합니다.]
"예끼 이놈! 안 간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뭐?"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자신을 한번 믿어보라고 외칩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도대체 이 사도라는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불도둑이라는 글자도 내심 마음에 걸렸다.
도둑이라니… 이 녀석을 믿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선택했다.
이 녀석을 한번 믿어보기로.
나는 수정이의 손목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머…!"
"거기 서라!"
"잡아라!"
"캬아아악!"
짧은 다리임에도 꽤나 빠른 속도로 따라오는 고블린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 왔었다면 절대로 못 깼을 퀘스트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통로의 중간쯤에 이르렀을까.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좌회전을 가리킵니다.]
…이 내비게이션 새끼. 길 안내 잘못하면 넌 뒤질 줄 알아라.
가이아고 뭐고 필요 없었다.
길 안내 못하는 내비게이션의 운명은 결국 폐기처리이듯, 나 또한 이 녀석이 잘못된 길을 안내한다면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골목을 돌았다. 그런데,
"막다른 길이에요!"
"야이! 미친 도둑놈아! 너 똑바로 안해?! 이 멍청한[email protected]#!%&^&-"
나는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지껄였다.
김수정은 그런 나를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아마 속으로 치매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불도둑에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진정하고 앞에 있는 상자의 물건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상자?
나는 재빨리 상자를 열어젖혔다. 이미 고블린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에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벌컥-!
스멀스멀.
"크윽. 뭐지 이건?"
"흐읍…!"
나와 수정이는 동시에 한쪽 손으로 코를 막고 말았다.
하지만 뒤에서 달려오던 고블린들은 그러지 못했다.
"끄악! 이게 무슨 냄새야!!"
"악취! 심하다! 인간! 더럽다!"
"다가가기 싫다! 더럽다! 인간! 싫다! 키이익!!"
고블린들이 주변에서 슬금슬금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봐라?
한쪽 손으로 코를 막고 눈에 보이는 악취를 따라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고블린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걸음. 또 한걸음.
그렇게 고블린들에게 점점 다가서던 나는 잘 가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악취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눈에 보이는 악취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여길 좀 보세요!"
"……?"
나는 재빨리 그녀가 가리키는 상자 안의 내용물들을 확인했다.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갑옷 하의]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 부츠]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 장갑]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아이템인데…?
순간 떠올랐다.
수정이를 만나기 전 얻었던 한 냄새나는 갑옷의 이름을.
"그래. 이건 내가 얻었던 그 갑옷의 세트인 모양이구나."
"네? 그게 무슨…."
"자세히 설명 할 시간이 없구나. 우선 이것을 입어야겠어."
그래, 입어야한다. 불도둑 녀석이 이것을 '사용'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이걸 입으시겠다구요??"
…놀란 만도 하지.
그녀의 생각에 지금 내 말은 쓰레기를 입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블린들의 반응을 보니 이게 녀석들의 약점이 틀림없었으니까.
이곳에서 나가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적어도 여기에선 말이다.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갑옷 상의를 착용하셨습니다.]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갑옷 하의를 착용하셨습니다.]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 부츠를 착용하셨습니다.]
[냄새나는 고블린 가죽 장갑을 착용하셨습니다.]
[세트 효과가 있는 아이템 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특수 효과가 발동합니다.]
"……?"
[몸에서 악취가 납니다. 고블린들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고블린에게 선공을 당하지 않습니다.]
"악취…?"
스멀스멀.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망할 놈. 넌 이따가 보자.
나는 한손으로 코를 막고 재빨리 고블린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너도 코를 막고 나를 따라 오거라!"
모든 능력치 10이 더해진 속도가 온몸에서 터져 나오며, 고블린들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삭-!
끝없이 이어지는 난도질.
끝없이 이어지는 놈들의 비명소리가 이곳 지하 동굴을 무너뜨릴 듯이 울려왔다.
"끄아아아악!"
"아악! 아프다!!! 키이이잇!!"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참겠다! 으아아악!"
쉬지 않고 뜨는 메시지.
끝없이 올라가는 경험치.
지금의 나는 그야말로 고블린들의 천적이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업은 보너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고 정도가 가르쳐줬었는데 뭐였더라…?
아, 생각났다.
"개꿀이네. 껄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더욱 빠르게 고블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서걱-!
마지막 고블린을 처리한 나는 반가운 메시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히든 퀘스트 - 뮬란의 병사들을 구하라!> 의 숨겨진 결말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칭호 : '고블린 학살자'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고블린 계열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50%의 추가데미지를 입힙니다.]
"후우. 간만에 힘들구만. 몇 명이나 상대한 건지 모르겠어."
땀이 비오듯 흐르자, 그 자리에서 '大'자로 누워버렸다.
나는 누운 상태로 경험치 게이지를 확인했다.
[92.79%]
10레벨이 되고 거의 11레벨이 다 되어가는 경험치.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의 목표치를 달성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김수정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슬로우 힐을 받았습니다.]
[5초간 125의 생명력이 천천히 회복됩니다.]
"그래, 고맙구나."
"뭘요, 전 별로 한 일도 없는데요. 그나저나 그곳에 상자가 있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실 말해준다고 믿을지도 모르겠고, 음….
"신이 알려주더구나."
"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더라고."
"아, 네."
그녀는 그저 운 좋게 발견했으리라 생각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이 빌어먹을 녀석을 설명하려면 아주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이것을 설명할 기운도, 체력도, 정신도 없었다.
그저 조금 쉬고 싶은 마음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회복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가자."
"네."
우리들은 아까 들어왔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횃불만이 반기듯 타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별자리처럼 우리들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 이름은 최춘택.
믿기지 않겠지만,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다.
그리고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난, 일곱 별의 선택을 받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