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1화
제11화
꽤나 거대한 경비대장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배에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날아온 철퇴였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커윽…!"
"아버님!"
콰아아아앙!
붕 뜬 몸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나는 입에 남아있는 피를 뱉으며, 피어나는 먼지 속을 걸어 나왔다.
제기랄 더럽게 아프네.
"난 괜찮다. 걱정 말거라."
…방금 그 소리 때문에 지원군이 몰려오겠군.
큰일이었다.
퀘스트의 완료 조건은 주민 10명과 병사 30명의 안전한 구출이 관건.
지원군이 몰려온다면 성공 확률은 더욱 희박해질게 뻔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수정이가 성직자라는 건가.
그녀는 버프는 물론 치료마법도 가능했다.
잘만 한다면 병사들과 주민들을 치료하며 입구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녀석을 쓰러트리는 게 먼저라는 전제하에.
경비대장이 철퇴를 회수하며 물었다.
"넌 누구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크륵."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주민들을 살폈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떨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꽤나 모진 대우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용사님…!"
용사라…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훌륭한 위인은 아닌데.
"저희를 구해주실 분은 용사님 뿐이십니다!"
"부탁드립니다. 용사님!"
"저희들은 구해주세요!"
하지만 그들은 나를 용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끙."
어서 빨리 이놈을 해결해야겠다.
아니면 여기서 우리는 몰살을 당할테니까.
"말할 생각이 없으면 죽어라! 크하악!"
경비대장이 거대한 철퇴를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쩍쩍 갈라진 바닥이 보였다.
움푹 들어간 걸 보니,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듯했다.
나는 놈의 철퇴를 피하면서 필요 이상의 아찔함마저 느꼈다.
…아까 같은 파괴력이라면 한 두 대만 더 맞으면 사망이야.
빨리 처리해야 해서 한가롭게 물약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였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나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휘둘러오는 철퇴를 피한 후,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다리 사이를 찌르고 베며 뒤편으로 움직였고, 경비대장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어이 뚱땡이. 여기다."
"이노옴! 잘게 씹어먹어주마! 크르륵!"
뚱땡이란 말이 꽤나 화나게 했는지, 경비대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처럼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녀석, 방어력이 좋아. 맷집도 좋고.
방금 전 공격으로 티끌만큼의 생명력이 닳은 것이 보였다.
역시 15레벨의 값어치는 하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의 메시지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 크리스탈 : 아버님, 저도 같이 도울까요?
귓속말.
아까 친구 등록하는 법을 배우면서 수정이에게 함께 배운 기능이었다.
- 잭슨 : 괜찮다. 넌 나서지 말고 사람들을 보호하거라.
- 크리스탈 : …알겠어요. 지지 마세요.
- 잭슨 : 물론이다.
철퇴를 이리저리 피하며 귓속말을 끈 나는 곧장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8 [이름없는] 모험가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힘1(+20) / 민첩1(+20)
건강1(+20) / 지식1(+20)
능력치 포인트: 28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한 상태창.
그것을 마주함과 동시에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동안은 딱히 필요성을 못 느껴서 능력치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야말로 능력치 포인트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미 무엇을 올릴지 생각해놓았다. 이 썩을 놈아."
나는 엄청난 속도로 힘 버튼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이놈…! 뭔 헛짓거리를 하는 거냐!"
경비대장의 철퇴가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리쳐졌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나는 가볍게 피해내었고, 더욱 빠르게 손가락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능력치 포인트를 투자하시겠습니까?]
"그래."
지이이이잉-!
[당신의 힘이 28만큼 상승하였습니다.]
[온 몸에 근육이 부풀어 오릅니다.]
황금빛과 함께 내 몸 구석구석에서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등등 근육이란 근육은 모조리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수정이에게 버프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충만감에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훌륭하군.
나는 먼지가 피어날 정도의 추진력으로 경비대장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앙-!
다시 휘둘러오는 철퇴를 가볍게 피했고, 오른 다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팍! 팍! 팍!
"끄아아아악!"
경비대장의 비명소리가 동굴을 가득 울렸다.
나는 한 바퀴 돌아 반대편 다리로 이동한 뒤, 놈의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끊어버렸다.
서걱-!
[치명적인 공격! 고블린 경비대장이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합니다.]
"으아악! 내 다리!"
외마디 비명과 함께 경비대장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재빨리 다시 오른쪽 다리로 돌아간 나는 휘날리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엄청난 회전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피피피피피핏-!
그 모습에 주민들과 병사들의 턱은 그야말로 땅까지 떨어질 지경이었다.
다물지를 못했다. 그저 경이롭고 화려한 공격에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는 듯,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있던 김수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은 대체…."
거대한 놈의 몸뚱이가 신음을 흘리며 양 무릎을 동시에 꿇었다.
다시 두 바퀴를 돌아 정면에 나타난 나는, 녀석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다음엔 착하게 살거라."
흉악한 얼굴을 보니 잔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저런 악귀 같은 모습이 되는 건지. 쯧쯧.
"이노옴!"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것인지 철퇴를 휘두르는 경비대장이었지만, 그것은 녀석의 죽음을 더 앞당기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점프해 놈의 목을 두 번 그어버린 후, 적당한 자리에 사뿐히 착지했다.
척.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고블린 경비대장의 철퇴를 획득하였습니다.]
경비대장은 엄청난 양의 잿가루를 날리며 흩어져갔다.
나는 속으로 녀석의 명복을 빌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아멘타불."
교회와 절을 조금 섞어 보았다.
천국이나 극락이나, 좋은 곳인 건 매한가지니까 상관없겠지.
참고로 나는 무교다.
"다들 다친 데는 없나?"
"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만세!"
…용사는 무슨.
그런 인사를 받으려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사소한 이익 때문이었다.
하나, 그런 내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민과 병사들은 내게 감사인사를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었다.
"……."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용사라는 건, 되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이 작은 용기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생각에 작은 고양감이 들었다.
하나하나, 감사를 표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침입자다! 키익!"
…역시 너무 늦었나.
뒤를 돌아보자, 가죽갑옷과 무기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이 보였다.
그들은 쓰러진 경비대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경비대장이 죽었다!"
[Lv.10 고블린 정예병]
아까는 15살. 이번엔 10살인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단검을 거머쥐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구해주었던 젊은 병사중 한명이었다.
그가 다른 병사들과 함께 내 주변에 섰다.
제법 건장한 키에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의 모습.
듬직한 것은 좋았지만 나는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실 의무라기보다는 퀘스트지만.
아무튼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이나 이곳이나 젊은이들은 한 나라의 미래이자 희망이었고,
그것은 어디를 가나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였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곳을 뚫는 것까지만 도와주게. 그 뒤로는 내가 이놈들을 막지. 자네들은 이곳을 뚫음과 동시에 출구를 향해 달리도록 해."
"하지만…."
"내 말을 듣게.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거야."
나는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옆에 있는 젊은 병사를 보며 찡긋거렸다.
"안 그런가? 젊은 친구."
젊은 병사는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라는 사실에 화가 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탁… 드립니다."
"그래. 살아서 보자고."
그와 동시에 고블린 정예병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덤벼오는 고블린 정예병의 목을 그었다.
…대략 생명력은 500인가,
"이놈들, 와라…!"
"이야아아앗!"
나와 병사들이 필사의 각오를 다지며 탈출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 * *
가장 먼저 탈출로를 뚫는데 성공한 나는 재빨리 아까 들어왔던 입구를 가리켰다.
"어서 저쪽으로 뛰게!!"
"하지만…."
"어서…!"
고함을 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
그들은 일제히 출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뛰었다.
문제는, 아직 두 사람이 남아있었다.
아까 내게 말을 걸어왔던 젊은 병사가 그중 한명이었다.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어르신."
그는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기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이름을 묻는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럴 때 영화에서 보면 꼭 주인공이 죽던데…. 젠장. 불길하네.
"잭슨. 내 이름은 잭슨일세."
"잭슨. 꼭 기억하겠습니다! 꼭 살아 돌아오십시오!"
"그래. 이따가 보자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자,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이름 모를 병사의 모습.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썩을 놈. 지 이름은 안 가르쳐주고…."
그때 친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안 가도 되죠?"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머님 돌아가실 때 다짐했어요. 다시는 죽음에게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좋다."
처음 듣는 그녀의 속마음과 그 결연한 각오에 나는 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고블린 정예병들을 마주 보며 천천히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보. 수정이가 제법 강해진 것 같다오. 이제 한시름 덜어도 되겠구려.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
그녀가 죽기 전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친 가족은 아니었지만 2년간 진짜 가족처럼 자신을 돌봐 준 수정이의 아픔과 슬픔이었다.
아내는 그녀가 좌절하지 않고, 더욱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기를 원했고, 그녀는 아내의 바람대로 잘 이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의 이 작은 용기가 이곳의 많은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기를.
오늘 나는 용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 순간 후광이 터져 나왔다.
찌이이이잉-
[당신의 '순결한 용기'에 스타 프루츠 봉인이 해제됩니다!]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나온 무언가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황금빛을 뿜어내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으악…! 이 빛은 뭐지!"
"너무 눈부시다!"
"눈을 뜰 수가 없다!"
고블린들은 찬란한 황금빛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김수정은 나를 보며 눈이 찢어져라 커져 있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과 함께 나는 뒤를 돌았다.
"이건…."
스타 프루츠(Star Fruit).
북두의 일곱 별에게 선택되었던 나에게 쥐어진 정체불명의 과일.
마치 건재함을 알리는 듯, 계속해서 광채를 뿜어내는 그것은 나를 멍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때 김수정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어서 저걸 드세요!"
…뭐?
"어서요!"
나는 재빨리 허공에 있는 스타 프루츠를 잡았다.
생각이란 것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이것을 삼켜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해오고 있었다.
나는 한입에 스타 프루츠를 삼켰다.
아웁.
그 순간 놀라운 메시지가 눈앞에 뜨기 시작했다.
[별이 사랑하는 자, 성애자(星愛者)의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태초 신 가이아의 뜻을 섬기는 '첫 번째 사도'가 눈을 뜹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