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0화
제10화
파스슥- 파스슥-
우리들은 한참이나 나뭇가지를 헤치며 안쪽 숲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엔 다양한 풀과 나무들, 그리고 각종 채소와 야채들이 야생에서 자라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식재료들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거나 집어 먹을 수는 없었다.
신기한 듯 주변의 사위를 살피며 가고 있을 때 김수정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길 좀 보세요."
"음?"
…저게 뭐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엔 조그만 동굴 같은 것이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들은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잠시 뒤, 두 형체가 그곳에서 나왔다.
"크헤헤, 인간들 튀겨 죽이자!"
"난 삶아 먹을 거야. 키헤헤"
동굴에서 나온 건 고블린 두 마리였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건너편 숲으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저기서 수상한 냄새가 나는구나."
"엄청요."
내 짐작이 맞다면 저기는 아마 비밀통로가 틀림없을 것이다.
고블린 부락은 저만치 멀리 있는데 이렇게 많은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라 할 수 있었던 건 비밀통로 밖에 없었다.
"들어가실 거예요?"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얘기하는 그녀의 말에 고민이 들었다.
나는 저 안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를 못했다.
어쩌면 위험 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50레벨 이하의 유저는 죽어도 경험치만 잃고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걸 손자 녀석에게 들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했다.
더군다나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
"다 때려눕히면 되죠.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마세요."
…내가 너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은 그녀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게 우리들은 조심스레 동굴로 접근했다.
다행히 주변을 지키는 경비병은 없었고, 조심스럽게 입구에 도착한 나는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며 동굴로 발을 들이밀었다.
['고블린 부락으로 향하는 비밀 동굴' 에 입장하셨습니다.]
…내가 제대로 찾았군.
우리들은 칠흑 같은 동굴로 몸을 들이 밀었다.
어둠 속에서 덤벼오는 박쥐 떼들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 내부였다.
"지하 동굴이네."
"비밀 통로라는 게 땅굴을 얘기하는 거였나 봐요."
그녀의 말에 잠깐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스치는 트라우마였기에 고개를 털어버린 나는 어둠을 밝힐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주변에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서 밝힐 만한 것을 가져와야하나…?
그때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발걸음이 재빠른 걸 보니, 누군가 우리들이 들어온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우리는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누구지?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심장은 쿵쾅거렸고, 이내 그것은 정체를 드러냈다.
"키릭.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발소리의 정체는 바로 고블린이었다.
이곳의 경비병으로 보이는 녀석은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녀석의 뒤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어느새 단검을 꺼내 쥐었고, 녀석의 목에 예리한 날을 가져다대며 반대 손으로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키익, 읍! 읍!"
"쉬…."
고블린은 똑똑한 놈인지 금세 알아듣고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살짝 입 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살고 싶으면 내가 손을 뗐을 때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서서히 입을 막고 있는 손을 풀었다.
"킥, 넌 누구냐…."
바깥에 있는 고블린들 보다는 훨씬 지능이 좋은 놈인 모양이다.
인간, 죽인다. 라는 말 외에 다른 말도 할 수 있는 걸보면 말이다.
[Lv.7 [돌연변이] 냄새나는 고블린 경비병.]
하긴 7살이면 한글은 떼고도 남지.
그나저나 돌연변이라. 냄새가 난다고…?
그 순간 녀석의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이 내 코를 찌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큭, 이 녀석. 냄새가 심한데?
어느새 나는 한손으로 코를 거머쥐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용건을 묻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여기 빠삭하지?"
"키잇. 빠삭하다는 게 뭐냐. 뭔가 군침이 도는 말인 것 같다."
이 자식이….
딱콩-!
안 그래도 코가 민감한데 자꾸 헛소리를 하니깐 더 열 받았다.
고블린은 꿀밤에 고통을 호소했지만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자신을 죽일 것 같았는지, 입술을 꽉 깨물며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두 번은 없으니까."
"말, 말하겠다. 키익. 뭐든지 물어봐라. 인간."
고분고분해진 녀석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금세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물었다.
"길게 안 물으마. 이곳. 뭐하는 곳이냐?"
"키릭… 말하면 날 풀어줄 거냐."
"그래. 약속하지."
나는 짧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고블린이 대답했다.
"키잇. 이곳은 우리 고블린 부락으로 향하는 지하 비밀동굴이다. 그리고 잡아온 인간들을 가두어둔 감옥이자 창고이기도 하지."
띠링-!
[고블린 부락의 정보 1/1]
[<고블린 부락을 찾아서> 퀘스트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음."
퀘스트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창을 확인하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뜨는 메시지에 나는 눈이 커다래지고 말았다.
[히든 퀘스트 <뮬란의 주민들을 구하라!> 가 시작됩니다.]
…엥?
[히든 퀘스트 - 뮬란의 주민들을 구하라!]
난이도: D+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고블린 부락으로 향하는 비밀동굴. 그 곳엔 그들이 사로잡은 인간들을 가두어둔 감옥이 있다고 한다. 사로 잡혀있는 뮬란의 주민과 병사들을 구출하라!
-완료 조건: 뮬란의 주민 0/10 뮬란의 병사 0/30 구출
-4인 이상의 파티를 권유합니다.
-죽으면 퀘스트는 실패하게 됩니다.
-퀘스트 완료시 뮬란의 모든 상점을 싸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건…."
나는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퀘스트 창을 훑고 있었다.
마지막 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든 상점을 싸게 이용해…?
마치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반값 세일하는 저렴한 물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퀘스트의 내용을 대충 눈으로 확인한 나는 재빨리 창을 끄고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고블린은 날 보며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킥. 이제 날 어떻게 할 거냐니깐?"
"약속은 약속이니. 떠나라. 단,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나는 손가락으로 동굴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가리켰다.
"키잇. 알겠다."
…이놈 너무 순순히 따르는데?
사실 말을 듣지 않으면 곧장 베어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라서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었고,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순순히 따르는 녀석을 보며 수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유도 심문을 해보기로 했다.
"네 친구들 걱정 안 되냐?"
"키륵, 나는 친구 없다. 혼자 산다. 집도 따로다. 키익.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왠지 친구도 없고 혼자 산다니깐 조금 동점심이 들었다.
순간, 미안함이 들어서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코가 찌릿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다. 잘 있어라 인간. 난 이제 이곳을 떠날 거다."
"잠깐."
나는 밖으로 나서려는 고블린을 불러 세웠다.
"혹시 이곳 지도 같은 건 없냐?"
"키익. 있다. 이제 나한텐 필요 없으니 인간이 가져가라. 키륵."
[고블린 비밀동굴 지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제 진짜 가보겠다. 잘 있어라 인간. 키익."
"잠깐."
"끙, 왜 자꾸 부르냐. 인간."
꽤나 귀엽게 말하는 녀석의 말투에 또 한 번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제법 징그러운 애교였지만 나름 귀여운 맛도 있었다.
"그거는 주고 가야지."
"뭐 말하는 거냐. 키륵."
"밖에서도 들고 다닐 거냐?"
나는 턱짓으로 고블린의 손에 들린 '그것'을 가리켰다.
"아,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킥."
[횃불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간다. 인간도 조심히 가라. 키륵."
이 녀석 지금 내 걱정을 해주는 건가…?
잠깐이지만, 이 녀석은 인간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몬스터들 중에서도 착한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선한 몬스터와 그렇지 않은 몬스터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고블린의 뒷모습을 보는데, 김수정이 다가왔다.
"횃불을 얻으셨네요? 근데 왜 죽이지 않으셨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망설였다.
잠깐의 고민을 한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착한 녀석이더구나."
"그렇군요."
우리는 고블린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정이에게 히든 퀘스트를 공유해준 나는 고블린 경비병이 준 지도를 보며, 그들 몰래 움직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 동굴의 구조는 백제의 유명한 검중 하나인 칠지도처럼 되어있었는데, 일직선으로 부락으로 향하는 입구와 출구가 쭉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 나뭇가지처럼 기역자로 이어진 추가적인 동굴들이 있었고,
우리가 찾는 감옥은 부락의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우리가 찾는 감옥 같구나.'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그녀와 입모양으로 뜻을 주고받았다.
입구에는 두 마리의 고블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그들은 1시간 간격으로 근무를 교대하고 있었다.
…완전 철통 보안이로군.
직감했다.
저기에 뮬란의 주민들이 갇혀있을 것이라고.
소란을 피우면 다른 놈들이 금세 몰려올 텐데 어떻게 하지…?
그때, 또 다른 고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근무교대 시간이다! 킥."
새롭게 물갈이 된 경비병들은 방금 전의 고블린들보다는 체구가 조금 작은 편에 속했다.
아무래도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힘의 차이가 조금 있는 모양인지 흉악한 얼굴 일수록 덩치가 큰 것 같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킥,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 키륵."
"바보 같은 녀석. 빨리 갔다와라. 여긴 내가 지키고 있겠다."
…기회다.
나는 수정이에게 다시 한번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나는 돌멩이를 주워들어 재빨리 감옥을 향해 던졌다.
휙- 탁탁.
데구르르르-
"음…? 무슨 소리지. 키륵?"
나는 고블린이 한 번 더 볼 수 있도록 크게 던졌다.
수상하게 여긴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키익. 왠지 저기가 좀 수상하군."
…됐다.
녀석은 나의 의도대로 이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속에 숨어서 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놈이 골목을 돌자마자, 입을 막고 사정없이 옆구리를 찔렀다.
두 번의 치명타가 터졌고, 놈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그렇게 사라져갔다.
뒤를 돌아보니 김수정이 내게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훗, 새삼스럽게.
어깨를 으쓱인 나는 돌아오는 고블린을 기다렸다가 똑같은 방법으로 해치웠다.
우리들은 녀석들의 시체를 뒤져 감옥 열쇠를 찾아내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구… 헉! 사람?!"
"뭐? 사람? 살려주세요!"
"우리 좀 구해주시오!"
감옥에 갇혀있던 주민과 병사들이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그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쉬…."
"네, 네! 쉬…."
모두들 조용해지자 조심스레 다가간 나는 아까 얻었던 열쇠로 문을 따기 시작했다.
문을 열 때마다 주민과 병사들이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고맙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여길 빠져 나가도록하지."
"그래요, 다들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김수정 또한 말을 보태며 다친 사람에게 치료 마법을 걸고 있었다.
아까 내게 걸어주었던 [슬로우 힐]이라는 마법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지만.
역시, 그러면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어진다.
"누구냐! 크르륵!"
갑작스런 목소리에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
나는 조용히 뒤를 돌았다.
커다란 몸.
흉악하게 나있는 상처.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아있는 두개의 어금니.
내가 그동안 봐온 고블린들 중 가장 못생겼고,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의 이름은 바로.
[Lv.15 고블린 경비대장]
…환장하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