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93화 (193/250)

제50장. 익숙한 컴백 (4)

음방 무대를 마치고 나는 영화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다른 멤버들이 푹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홀로 눈을 떴다.

각성 능력자가 일반인들에 비해서 신체 능력이 압도적으로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피곤함이라는 걸 아예 못 느끼는 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피곤한 건 피곤한 거다.

컴백 이후에 미친 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던 나는 승훈이 형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 아래층으로 향했다.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 히터를 틀고 기다리고 있던 승훈이 형이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내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왔냐, 태오야.”

아직 동이 트기 전의 시간이라 그런지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그럼에도 입에서 새어 나오는 입김은 확연하게 보였다.

“미안해, 형.”

“뜬금없이 뭐가?”

“괜히 나 때문에 새벽부터 고생하는 거 같아서.”

승훈이 형이 나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이것보다 더 바쁠 때에는 그런 말 한마디 없더니만. 갑자기 이제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냐.”

“아니, 그냥.”

어쩌면 우리 누나와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게 좋지 않겠나.

물론 많이 늦은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추운데, 닭살 돋는 말 그만하고 후딱 타기나 해라. 오늘은 멀리 가야 하니까 부지런히 출발하자고.”

“알았어.”

스튜디오 촬영이 아닌 야외 촬영이 잡혀 있는 탓에 승훈이 형 말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촬영 장소가 서울이나 수도권도 아니고 지방에 위치해 있다.

거리가 제법 되는 편인지라 일찍 움직이는 게 좋아 보였다.

이동하는 동안, 나는 집에서 미리 챙겨 온 먹거리들을 승훈이 형 옆자리에 놔뒀다.

“커피도 마시고.”

“땡큐.”

승훈이 형이 내가 준비해 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 맛있는데? 이거 뭐야? 네가 직접 만든 건 아닐 테고.”

“내가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

“너, 이런 쪽으로 손재주 안 좋잖아. 형이 다 아는데, 자꾸 거짓말 치려고 하지 마라.”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승훈이 형하고 나하고 너무 오랫동안 자주 어울린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데 말이다.

“누나가 어제 와서 나한테 주고 간 거야.”

“아송 씨가?”

“어, 나 요즘 고생 많이 한다고 이것저것 먹을 거 만들어서 가져다줬어. 내일 지방으로 영화 촬영 있는 것도 다 알더라.”

“아송 씨가 동생에 대한 내조가 확실하시네.”

그렇게 말하면서 형은 나보고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형도 그렇게 될 수 있어.”

“내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늘 변하니까.

승훈이 형이 어떻게 나오느냐. 그리고 얼마나 용기를 내느냐. 여기에 우리 누나의 마음이 결정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말해 주고 싶지만, 그랬다가 괜히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래서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세심한 유리 공예품 같다.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깨져 버릴 수 있다.

‘어렵네, 어려워.’

로맨스물 영화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내가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사실 난 연애에 진심이었던 적이 없다.

그런 쪽으로 감정을 소모하기에는 너무 바빴으니까.

레이드 시대 때에는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빠듯했는데, 거기서 사랑이니 뭐니 하는 여유 따윈 없었다.

“……형.”

시트에 몸을 묻은 채 승훈이 형을 불렀다.

“어, 또 왜.”

“나도 사랑이라는 거 한번 해 볼까.”

순간 승훈이 형이 마시던 음료를 뿜을 뻔했다.

한참을 콜록이던 승훈이 형이 내 쪽으로 눈을 흘겼다.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아니, 그냥. 나도 남들처럼 연애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뭐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보는데. 근데 너, 아이돌이라는 거 잊지 마라.”

“알고 있어. 지금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 나중에 말이야, 나중에.”

뭐든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망치기 십상이다.

특히 남녀 간의 감정은 더욱 그런 거 같다.

물론 내가 체험해 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대본이 나한테 알려 줬다.

* * *

영화 촬영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스태프들이 나를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무엇 때문에 뜬금없이 이런 반응들을 보이나 싶었더니만.

“1위 축하드립니다!”

“저, 실시간으로 방송 보고 있었는데, 태오 씨가 1위 수상하는 거 보고 가족들이랑 같이 소리쳤어요!”

스태프들이 나의 가수 활동에 대한 팬심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드러낸 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 현장으로 올 때에는 가수 태오가 아니라 배우 강태오로 오는 거니까.

일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꺼내면 오세평 감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딱 두 번. 내 가수 활동에 관한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우리 HTB가 컴백했을 당시였고, 두 번째가 바로 지금이다.

오세평 감독도 내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왔다.

“이거, 저희가 준비한 1위 축하 케이크입니다.”

“이런 것까지…… 감사합니다, 감독님.”

“우리 주연 배우가 축하받을 만한 일이 생겼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어색한 웃음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그냥 축하 케이크 받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다 같이 모여서 이 분위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기로 했다.

승훈이 형도 스마트폰을 꺼내서 우리들의 모습을 찍었다.

“이거, 태오 SNS 계정으로 올려도 되죠?”

승훈이 형이 오세평 감독에게 직접 허락을 받기 위해 물었다.

오 감독은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여 줬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영화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을 올릴 때에는 주의해야 하는 게 있다.

영화 내용이 간접적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이전에도 어떤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졸지에 대본 일부도 같이 유출되어서 영화 개봉도 하기 전에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주인공 욕심이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트러블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다.

연예계는 최대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얌전하게 활동하는 게 가장 좋다.

어그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좋은 방향으로 어그로를 끌어야지, 안 좋은 쪽으로 그러면 연예인으로서의 수명이 팍팍 깎인다.

SNS에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영화 내용을 미리 흘릴 만한 건덕지가 있는지 확인 과정을 거쳤다.

승훈이 형도 매의 눈으로 나와 같이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문제 될 만한 거 없지?”

“응, 없어.”

“오케이. 그럼 올린다.”

내 SNS 계정은 나와 회사가 공동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승훈이 형도 내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사진이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의 좋아요 알림이 계속해서 울렸다.

괜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그래서 기껏 켜 놨던 알림을 다시 꺼 두기로 했다.

이거 때문에 촬영에 집중 못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 * *

컴백에 맞춰서 여기저기서 우리들의 출연을 바라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우리가 컴백하기 전에 멤버별로 사전에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은지 조사했던 대로, 니암은 랩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랩 담당 트레이너한테 가서 과외도 받고, 그러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HTB 멤버 타이틀을 달고 경연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예선도 못 뚫고 탈락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니암이 홀로 숙소를 나설 준비를 마쳤다.

준서와 내가 니암을 응원차 배웅해 주기로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알았지? 너, 어디 가서 꿀리는 실력 절대로 아니니까. 당당하게 해.”

“네, 형. 명심할게요.”

마치 국가 대표가 된 것처럼 니암이 굳은 얼굴로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니암을 먼저 보내고, 우리도 각자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늘도 영화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저번에는 단역 배우들하고 촬영하는 신이 많았는데, 오늘은 아이리스하고 호흡을 맞추는 신들이 주로 포진되어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승훈이 형이 니암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곧 촬영 들어간다고 하더라.”

“예선은 저번 시즌처럼 진행된대?”

“어. 이번 시즌은 생각보다 참가자들이 엄청 많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던데?”

니암이 출연하는 랩 경연 프로그램의 예선 방식은 참가자들을 넓은 장소에 쭉 세워 두고, 심사위원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즉석으로 랩 실력을 듣고 예선 합격, 불합격 결과를 알려 준다.

오래 기다릴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알려 준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화끈하고 좋지 않은가.

‘나도 예전에 가수 지망생이었을 때에 차라리 그런 방식으로 월말평가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피 말렸다.

“승훈이 형은 어떨 거 같아?”

“니암 말하는 거지?”

“어.”

승훈이 형도 우리 그룹 멤버들 못지않게 니암의 연습 과정을 많이 봐 왔다.

그래서 니암이 현재 어느 정도의 실력에 위치해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결과는 둘뿐이지만, 이에 따른 여파는 극명히 갈린다.

“나는 붙을 거 같은데.”

“그래?”

“너는? 이런 건 오히려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냐.”

가수니까.

거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승훈이 형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니암이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다고 말했을 때부터 나도 주기적으로 니암의 연습을 도와주곤 했었다.

내가 랩에 소질이 있어서 도와줬다기보다는, 나름 전문가로서 니암이 어떤 식으로 랩을 구사해야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있을지, 주로 의견을 보태는 쪽으로 도움을 줬다.

이게 니암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됐을지는 솔직히 잘 모른다.

어차피 결과로 모든 걸 알 수 있으니까. 그것만 확인하면 될 것 같다.

지금이야 예선을 통과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이다음이 더 문제지.’

본선 무대가 더 빡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력자들과 겨뤄야 하니까.

만약에 니암이 결승까지 진출한다면, 혹은 더 나아가서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우리 그룹에 대한 홍보가 더 많이 될 것이다.

랩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 출신이 속한 그룹이라.

인지도뿐만 아니라 실력 검증도 확실하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니암이 기왕 나간 김에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도와줬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촬영장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니암과 같이 갔던 매니저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승훈이 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뭐? 결과 나왔어?”

승훈이 형의 말에 내 귀가 쫑긋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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