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92화 (192/250)

제50장. 익숙한 컴백 (3)

HTB의 데뷔는 가요계에도 상당한 화두가 되었다.

다른 가수팀들의 경우에는 우리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데뷔 일을 뒤로 미루거나 앞당긴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편이었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헌터로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지만, 가요 쪽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현역으로 활동 죽인 다른 가수 팀들은 우리의 데뷔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건 내가 솔로로 데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데뷔 앨범 때부터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히트를 치고.

이 기세가 두 번째까지 계속 이어지자, 다른 가수 팀들은 아예 우리와의 대결을 피하는 쪽으로 전략을 많이들 바꿨다.

물론 모든 가수 팀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거나 컴백한 가수 팀도 없을 수가 없었다.

1년 365일. 이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 팀 컴백한다고 해서 피하고, 저 팀 피하고, 이러다 보면 본인들이 앨범을 발표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 기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무대 준비라든지. 스케줄이나 각종 이벤트 일정도 고려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가 겹친 모양인지, 우리와 불과 5일 차이로 먼저 데뷔한 그룹도 있었다.

이 그룹 팀과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팀 내 분위기가 어떤지는 얼추 알 것 같다.

‘아마 죽을상을 하고 있겠지.’

괜히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가수 팀들의 사정을 하나하나씩 고려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나뿐만 아니라 데이브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일이고.

억울하면 유명해지면 된다.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알지만 말이다.

오늘은 우리가 컴백하고 난 이후에 처음으로 음악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이다.

음방 무대는 늘 그렇듯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이 여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우리가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은 예능, 토크 프로그램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다.

무대 시간만 따지면 고작해야 5분. 여기에 이번 주 1위를 발표하는 무대 시간까지 포함하면 10분 될까 말까 할 것이다.

효율성으로 따지면 정말 안 좋지만, 그래도 팬들에게 주기적으로 우리의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건 좀처럼 없는 기회니까.

아침부터 샵에 들렸을 때, 매번 우리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하던 샵 원장의 얼굴에는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웃음꽃이 가득 피어올랐다.

원래는 한창 피곤해하는 시간일 텐데.

“오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보네요.”

“어머, 저요?”

“네. 아까 봤을 때부터 표정이 굉장히 좋아 보이시길래요.”

원장이 웃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 덕분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팀이 컴백하셨는데.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하긴. 여기 원장은 우리가 한창 활동할 때도 오늘은 무슨 일정이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음방 몇 시인가요?”

“4시로 알고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꼭 챙겨 볼게요! 아니지, 생방이 아니라 녹화죠?”

“네. 요즘 생방으로 하는 음악방송은 별로 없으니까요.”

하도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 탓에 이제는 미리 무대를 녹화했다가 방송으로 보여 주는 식으로 많이들 진행하고 있었다.

가수 입장에서도 그게 좋긴 하다.

괜히 생방 때 큰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녹방 때에는 편집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 무대를 시작하면 되지만, 생방송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 버린다.

대충 메이크업과 헤어를 끝낸 뒤, 우리는 일정대로 음방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겨울 공기보다 무수한 사람들의 함성이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겼다.

이제는 이런 반응들이 많이 익숙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줬다.

우리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사람들은 크게 열광했다.

기자들도 최대한 좋은 각도에서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온몸을 비틀어 가면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기보다는 우리의 소식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있어서 많은 돈이 되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국에 도착해서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슬슬 의상을 갈아입고. 리허설 때까지 잠시 소파에 앉아 쉬려고 하던 순간, 누군가가 우리 대기실 문을 노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둘, 셋!”

“세피라드입니다!”

세피라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그룹명이다.

내 머릿속에 그녀들의 정체가 떠오르기 전에, 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5일 전에 데뷔하신 분들 맞으시죠?”

“네, 맞아요!”

안 그래도 우리와 데뷔 시기가 겹친 그룹이 있다고 듣긴 했었는데.

어쩐지. 바로 그룹명이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표정은 꽤나 밝아 보였다.

나는 우리와 데뷔 시기가 겹쳐서 많이 우울해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들에게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본의 아니게 활동 시기가 겹쳤네요.”

“아니에요! 선배님께서 사과하실 일 아니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세피라드 멤버들은 오히려 밝게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 들려줬다.

이걸 보고 있자니 괜히 더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무대, 꼭 볼게요!”

기운이 넘치는 인사를 우리에게 건넨 세피라드 멤버들은 다음 선배 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대기실을 나섰다.

우리도 처음 데뷔를 할 때 저렇게 다른 선배 가수 팀들이 있는 대기실을 돌아다니면서 먼저 인사하고 그랬었는데.

준서가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형들, 저희도 이제 선배 소리 듣는 그룹이 되었나 봐요.”

“그러겠지. 벌써 세 번째 앨범인데.”

이쯤 되면, 당연히 선배 소리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앨범까지 발표했는데. 아직도 막내 그룹이라면, 한국 가요계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거라고 본다.

늘 그렇듯 새로운 아이돌들은 계속해서 데뷔하고 있으니까.

오늘도 방금 우리에게 인사하러 온 세피라드 말고도 다른 그룹들이 대량으로 데뷔 무대를 가질 것이다.

대한민국 가요계는 넓고. 그리고 그만큼 많은 가수들이 데뷔한다.

그렇다고 이걸 마냥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늘 힘든 법이다.

이건 내가 헌터로 활동할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법칙이다.

* * *

본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한번 리허설을 가지게 된 우리.

모든 음악 방송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오늘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타 가수팀의 리허설을 같이 볼 수 있게끔 배려해 주는 편이었다.

우리 리허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선후배 가수들이 객석에 자리를 잡고 무대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앉아 있었다.

니암이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에 내게 인상적인 말을 했다.

거의 본 녹화 뺨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다고.

여기에 우리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나 응원 도구 들만 손에 쥐고 있으면, 리허설이 아니라 본 무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보니까 출연 가수들 말고도 관계자들도 앉아 있는 거 같은데.’

타 소속사 관계자도 보인다.

그만큼 우리의 존재가 저들에게 있어서 관심의 대상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우리는 우리 무대에만 충실하면 되기 때문이다.

촬영 감독의 신호에 맞춰서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안무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리허설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도 직접 라이브로 불렀다.

고음 파트에서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나를 보며 객석에 앉은 가수 팀들과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춤추면서 고음을 뽑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수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같은 프로가 봐도 ‘와, 이건 힘들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무대가 종종 있다.

우리의 무대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저렇게 많은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라이브 무대까지 소화하면서 리허설을 마치자,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까 우리가 있던 대기실에 와서 직접 인사를 건넨 후배 그룹 멤버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열광을 하니까, 괜히 우리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반면, 데이브는 그렇진 않은 모양인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후딱 내려가기나 하자.”

“알았어.”

데이브 덕분에 민망함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승훈이 형이 우리를 보면서 작게 웃었다.

“연예인들이 인정하는 연예인이 되었구나, 너희.”

“좋은 일일까?”

“당연히 좋은 일이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이니까. 아무튼 리허설 무사히 잘 마쳤으니까. 조금 있다가 본 촬영 때에도 힘내자. 우리가 마지막 순번인 거, 다들 알고 있지?”

나와 멤버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에게 많이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우리가 오늘 음악방송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했다.

이제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에너지를 비축한 다음에 다시 열심히 무대에 올라가서 무대를 소화하면 되겠다.

* * *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본 무대가 리허설 때보다도 더 쉬웠다.

팬들 앞에서 자주 무대를 가져서 익숙했지만, 아까 리허설 때처럼 선후배 가수들과 관계자들 앞에서 무대를 보여 주는 일은 거의 드무니까. 그래서 본 무대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모양인가 보다.

결과적으로는 두 무대 다 잘 풀렸다.

이제 1위 발표를 위해 다른 가수 팀들과 함께 단체로 같은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1위 후보부터 만나 보시겠습니다!”

“보여 주세요!”

예상대로 우리 HTB가 후보 명단에 올라 있었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점수를 합산한 결과.

“이번 주 1위는 바로……!”

“HTB! 축하드립니다!”

이것도 예상했던 그대로다.

이미 음원 차트를 싹 쓸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1위가 아니면 주작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매번 내가 1위 소감 발표를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멤버들에게 차례를 넘기기로 했다.

“데이브, 네가 할래?”

“아니.”

딱 잘라 거절의 의사를 표현한 데이브는 니암과 딜런에게 마이크를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차례를 양보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준서야, 네가 해라.”

“제가요? 저, 말 잘 못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뭐 어때. 그냥 지금 느낀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돼.”

마이크를 넘겨받은 준서가 있는 힘껏 외쳤다.

“1위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도 1위 가즈아!!”

패기 넘치는 막내의 외침에 나와 멤버들, 그리고 무대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 모두가 빵 터지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