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48화 (148/250)

제38장. 처음은 화려하게 (2)

던전 탐험대 촬영 역사상 내가 알기론 해외로 넘어가서 촬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딱 세 번밖에 촬영 안 하긴 했지만.’

게다가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어서 그런지, 기자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웠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모여든 우리들을 촬영하기 위해서 벌써부터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던전 탐험대 촬영 이전에는 이런 관심도 없었는데.

역시 사람이든 프로그램이든, 일단 유명해지고 봐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직 녹화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카메라들이 나를 찍고 있었다.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나는 던전 탐험대 카메라 앞에 서서 다른 출연자들을 기다렸다.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면서 출연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최연장자였던 배우 양성빈을 포함해서 신에리, 이아담은 그대로 출연하고.

나와 아이리스, 나빈이도 출연을 확정 지었다.

커스티 멤버인 윤선규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합류하지 못했다.

대신에 우리 HTB 멤버인 준서가 합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데이브를 데려올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막내 역할을 하면서 입 좀 잘 털어 줄 수 있는 출연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와서 결국 준서가 빈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게다가 본인도 던전 탐험대에 출연하고 싶어 했고 말이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출연자들.

양성빈이 내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나타냈다.

“태오야!”

“안녕하세요, 형.”

던전 탐험대 출연 이후 우리들은 부쩍 친해진 관계를 통해 서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찍 왔네? 아직 모이기로 한 시간까지 15분이나 남았는데.”

“일찍 눈이 떠져서요. 집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오랜만에 촬영장 분위기도 파악할 겸 해서 왔죠.”

박민진 PD와 스태프들이 내 말을 듣고 카메라 뒤에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늦는 것보단 그래도 일찍 오는 게 훨씬 나으니까.

양성빈을 시작으로 이아담, 신에리도 집합 장소에 등장했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도 오면서 우연히 만났는지, 서로 사이좋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저 둘이 같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까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하세요, 선배님.”

서로 각기 다른 호칭으로 나를 부르면서 가장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좋은 아침’이라는 말로 두 여자의 인사를 동시에 받아 줬다.

마지막으로 우리 HTB의 막내 멤버, 준서가 뒤늦게 현장에 나타났다.

내가 일부러 준서에게 핀잔을 줬다.

“제일 막내가 늦으면 어떻게 하냐.”

“형! 저, 그래도 집합 시간 안 어기고 제대로 왔어요!”

준서 말이 사실이다.

누가 먼저 왔는지, 늦게 왔는지 순서에 따른 차례만 있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우리 중에서 약속 시간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

마침내 던전 탐험대 멤버들이 다 모이자, 박민진 PD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갈 곳은 이미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홍콩입니다.”

원래 제작진은 나 이외의 출연자들에겐 던전 탐험대 첫 번째 목적지에 대해 철저하게 비밀로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기자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뜨거운 탓에 우리가 어느 곳에서 첫 정규 프로그램 촬영을 할지 이미 다 알아낸 상태였다.

그로 인해서 벌써부터 기사가 나가게 되었고, 출연자들은 제작진에게 별다른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우리가 홍콩에서 촬영하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박민진 PD와 제작진이 촬영지를 숨기려고 했던 노력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 거였다.

그래도 촬영에 있어서 엄청 중요한 요소는 아니니까.

박민진 PD는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우선은 여러분들이 오늘 가시게 될 던전 탐험대 첫 번째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태오 씨, 이거 받아 주실래요?”

“네.”

박민진 PD가 건넨 큐시트를 받아 들었다.

던전 탐험대는 원래 따로 메인 MC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출연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합심해서 던전을 탐험하는 그런 포맷으로 짜여 있었다.

그러나 정규 프로그램은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을 당시와는 약간 이런 구성이 달라진다.

메인 MC를 나로 정하고, 내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굴러가게끔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박민진 PD가 나한테 큐시트를 주는 거였다.

오늘의 목적지와 앞으로의 일정 등에 관한 게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박민진 PD가 내게 부탁했다.

“오늘의 목적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원한다면야.

일단은 시청자들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홍콩에 있는 DN-009, 소위 ‘광물 던전’이라는 곳이 오늘 우리가 갈 목적지입니다. 지구상에 없는 다양한 광물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모든 탐구자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던전이라 불리기도 하죠. 미스터리가 가득한 그곳을 오늘, 우리 던전 탐험대 2기가 탐험해 볼 예정입니다.”

1기는 파일럿 프로그램 당시의 구성원들이고, 2기는 지금 우리들을 가리킨다.

그래 봤자 멤버가 딱 한 명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말이다.

“자, 그럼 슬슬 비행기 시간도 됐으니까 이동하시죠.”

“네!”

우리가 비행기를 타러 이동할 때까지도 기자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출연진은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간단한 포즈를 취해 줬다.

만약에 촬영이 끝난 상태라면 여유롭게 사진 찍는 시간을 주고 그럴 테지만.

‘이제 막 촬영이 시작한 단계라서.’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기자들의 열정은 잘 알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촬영 도중이고.

그래서 대충 이렇게 포즈만 취해 준 다음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를 중심으로 왼쪽에 아이리스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나빈이가 자리를 잡았다.

‘뭐, 이런 경우가…….’

하필이면 두 여자 사이에 껴서 앉아 있으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스도 나빈이도, 이런 구도는 예상 못 했던 모양인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앞에 앉은 준서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내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형, 자리 바꿔 줄까요?]

준서가 나를 신경 써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일부러 자리 바꾼 거 알면 더 큰 후폭풍이 몰아닥칠 테니까 그냥 앉아 있으련다.]

그리고 아이리스나 나빈이, 둘 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싸우고 그런 타입은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긴 하겠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둘이 나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던전 탐험대 출연에 흔쾌히 응하게 된 이유는 서로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나빈이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빈이는 아이리스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였다.

‘박민진 PD가 설마 의도한 건 아니겠지?’

이 둘의 관계를 박 PD가 벌써 눈치챘다고 보기는 힘들긴 한데.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박 PD가 원하는 대로 된 셈이니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홍콩으로 가는 동안, 눈 좀 붙일까.’

왠지 그곳에서 고생을 많이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잠이라도 많이 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시트에 몸을 눕혔다.

* * *

홍콩에 오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복구되었네.’

홍콩 역시 서울처럼 인구 밀집도가 상당한 곳이다.

이렇게 쏠림 현상이 심한 지역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하는 순간, 거의 도시 전체가 마비가 될 만큼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울도 그래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서울은 나은 편이다.

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게이트, 던전, 몬스터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홍콩 입장에선 당연히 한국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랭킹 1위 헌터를 보유한 나라니까.

나도 홍콩을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원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응하곤 했었다.

사건 해결하고, 수습 차원에서 당분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맛있는 음식 같은 것도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들은 바로 숙소로 향했다.

던전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먼저 숙소에 체크인을 한 다음, 남은 시간 동안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관광을 온 것처럼 그냥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던전 탐험대라는 프로그램 명칭에 맞게, 홍콩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레이드 시대의 잔상을 찾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우리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메인 MC 겸 가이드를 맡게 된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가장 먼저 DN-009가 열리기 직전에 발생했던 게이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출연자들을 이끌고 장소를 이동했다.

“그때가 아마…… 저기 저 상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아담이 반파된 건물 빌딩 위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어마어마하네요…… 혹시 태오 씨도 당시에 계셨나요?”

“네. 그때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초짜였지만요.”

그때 게이트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걸로 기억한다.

몬스터들만 쏟아져도 난리가 나는데, 심지어 그때는 이 게이트에 이어 DN-009 같은 대규모 던전까지 같이 나타났으니, 당시에는 홍콩이 이대로 망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그러진 않았지만, 그만큼 그때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인간의 저력이라는 건 대단하다. 그런 일을 여러 차례 겪고서도 이렇게 다시 회복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 던전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흔적을 찾아가는 방송이기 때문에 DN-009 입구까지 직접 가 보기로 했다.

홍콩의 빡빡한 도심 풍경 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거대한 동굴 입구.

도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광물 던전 입구를 보면서 출연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심지어 준서도 출연자들하고 같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는 가만히 있는데, 왜 너만 그렇게 놀라냐?”

어이가 없어서 물어봤다.

준서도 우리와 같은 헌터지 않은가.

그러나 준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어투로 말했다.

“저는 이런 대규모 게이트 사건에는 투입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때는 저, 각성하기도 한참 전이었을걸요.”

내가 너무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나.

준서의 말을 듣고 나니 충분히 놀랄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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