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47화 (147/250)

제38장. 처음은 화려하게 (1)

제이커가 일으켰던 인질극이 끝난 뒤,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로 떠오르긴 했다.

그래도 테러가 실제로 인명 피해까지 이어지진 않았고, 사건이 다 마무리되고 난 다음에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서인지,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진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자행한 테러가 남긴 여파는 굉장히 컸다.

그 증거로.

“영화 시상식들, 다 취소되었다고 하더라.”

승훈이 형이 방금 막 최기호 감독 측과 통화를 끝내고 와서 내게 그 결과를 알려 줬다.

“결국 그렇게 됐네.”

원래대로라면 나와 승훈이 형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로 넘어가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열릴 또 다른 영화 시상식에 참가하기로 예전부터 예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단체 인질극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서 또다시 그런 대규모의 시상식을 연다는 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여러 시상식을 주최하기로 한 운영진도 그걸 인지하고 있는 모양인지 일련의 사고가 벌어진 점, 그리고 이에 관해 우려하는 여론을 반영하고자 시상식 일정을 전부 캔슬하기로 했다고 알려 왔다.

이로 인해 내 스케줄도 동시에 사라지게 되었다.

딱히 상관은 없었다. 돈 받고 어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시상식에 얼굴 비치 가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대신에 우리 영화가 좀 더 많은 상을 탈 수 있었을 텐데, 기회가 날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을 뿐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안 열기로 한 시상식을 억지로 열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승훈이 형도 기가 막히는 모양인지 여러 차례 혀를 차면서 말했다.

“하여간 그 제이커라는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기회만 된다면 녀석 머릿속 좀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다고 다 이해할 거라는 보장도 없어.”

“그래도 궁금하잖아. 너는 어떨 거 같아? 감이 좀 잡혀?”

“글쎄.”

녀석이 반사회적 성향이 짙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레이드 시대 때의 그 공포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고 싶어 하는 것도 얼추 알겠는데.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여러 개 있다.

이걸 완벽하게 알아내기 위해선 단 하나의 방법만이 존재한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거겠지.’

본인은 아닐지라도.

이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형, 나 오늘 일정 없지?”

“너? 당연히 없지. 시상식들이 전부 취소되었으니까. 뭐…… 다음 주에는 던전 탐험대 프로그램 촬영 앞두고서 미팅 잡혀 있고. 왜, 숙소에 들어가서 쉬려고?”

“아니,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누구?”

궁금해하는 승훈이 형에게 어떤 남자의 이름을 들려줬다.

“권주영.”

대전 행사에서 제이커의 지시를 받고 테러를 벌였던 남자의 이름이다.

* * *

권주영은 현재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천안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다.

천안의 교도소는 여타 교도소와는 다른, 조금 특별한 곳이다.

권주영 같은 각성 능력을 지닌 특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근무하는 간수들 역시 각성 능력을 지닌 자들이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권주영의 면회 때문이다.

간수가 쓴 미소를 지으면서 권주영을 기다리고 있는 내게 말했다.

“원래 특수 범죄자들의 면회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그래도 태오 씨라서 특별히 허가가 떨어진 거 같습니다.”

간수의 말대로다.

특수 범죄자들은 본인의 각성 능력을 이용해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자 면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게 기본 시스템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엄밀히 따지면 면회는 아니다.

심문이다.

‘뭐, 그게 그거겠지만.’

그래서 나는 간수의 말을 그저 작게 웃기만 하고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손에 수갑을 찬 권주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권주영이 차고 있는 수갑 역시 이철민 소장이 개발한 특수한 아이템이다.

저 수갑은 각성 능력자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각성 능력을 봉인시키는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간수들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한 차례 헛기침을 한 나는 간수들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죄송한데, 잠깐만 이자하고 둘이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다 책임질 테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CCTV도 있잖아요? 이자가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 싶으면 바로 오셔도 됩니다.”

“…….”

간수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최고 선임자로 보이는 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간수들 역시 내 요청에 따라 자리를 비켜 주기로 했다.

그제야 나는 권주영과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오랜만이네, 권주영.”

“…….”

내 인사말에도 권주영은 반응하지 않았다.

시선조차 교환하지 않으려고 했다.

뭐, 대충 예상했던 반응이다.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이전에도 권주영에게 물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냐?”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떤 형태를 취하든 반드시 ‘목적’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목적이 있기에 행동에 나서는 거니까.

그러나 제이커의 행보를 보면, 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레이드 시대를 다시 여느니 어쩌느니, 이건 단순한 내 추측에 불과할 뿐이고.

아직 본인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래서 듣고 싶다.

과연 녀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이다.

“혹시 또 모르잖아? 너희가 원하는 걸 말하면, 우리가 들어줄지도.”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권주영도 말할 생각이 아예 없는 모양인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세간에 침묵이 답이라는 말이 돌긴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반드시 통용된다고 보진 않는다.

가끔은 침묵이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

“계속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다고 능사는 아니야. 그런다고 지금 네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

“뭐, 아무튼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줄게. 대신에 이걸 기억해 둬. 네 말 한마디에 지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만약에 네가 협조한다면, 적어도 네 안전은 내가 보장해 줄 수 있어.”

한 번의 협조가 제이커를 잡는 데에 크나큰 힌트가 될 것이다.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권주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내 회유책이 과연 통할까.

잠시 뒤.

권주영이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녀석이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헌터라고 한들, 제이커 그 사람은 절대로 넘어서지 못할 거다.”

하필이면 골라도 최악의 선택지를 골랐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뒤, 벽 너머에 있는 권주영에게 경고했다.

“내가 넘어서지 못할 존재는 없어.”

나는 그것을 계속 증명하면서 살아왔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겨오면서 나 자신의 한계조차도 뛰어넘었다.

아무리 제이커가 용의주도한 녀석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녀석은 내 손으로 잡을 거야.”

“과연 그게 말처럼 쉬울까?”

“쉽진 않겠지. 하지만 결과는 이미 나와 있으니까 그 과정이 쉽든 어렵든 상관없어.”

“…….”

“뭐, 아무튼 잘 알겠다. 평생 감옥에서 썩으라고.”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린 셈이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자존심 다 굽히고 머리를 숙이는 일이다.

권주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지고 저렇게 으름장을 늘어놓는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나 역시 녀석을 구제해 줄 생각이 없다.

나만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

방을 나오자마자 간수들이 물었다.

“이야기는 잘 풀렸습니까?”

이에 대해 나는 간결하게 답했다.

“아니요.”

시간 낭비였다.

* * *

시상식이 취소되었다 해도, 다른 일정들이 취소된 건 아니었다.

대다수의 셀럽들이 모이는 대규모 시상식이나 행사들만 자제하는 편이었지, 예능이나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던전 탐험대 역시 다음 주에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촬영 장소는 정해졌나요?”

던전 탐험대의 연출을 맡고 있는 박민진 PD는 지난 미팅 때부터 내게 줄곧 이런 상담 아닌 상담을 요청해 왔었다.

첫 방송은 시청자들한테 강한 임팩트를 남겨 줄 만한 편으로 꾸미고 싶은데, 국내에는 그런 던전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였다.

물론 있긴 하다.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최악의 던전도 존재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유형의 던전도 존재한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촬영 허가가 안 날 뿐이다.

그런 던전들은 웬만하면 헌터협회 측에서 외부에 잘 공개를 안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촬영 협조를 구하는 데에도 많은 고생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장소는 결정하셨나요?”

“네. 역시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확 사로잡을 만한 던전 하나를 준비해 뒀거든요. 태오 씨도 들으면 깜짝 놀랄 거예요.”

“아, 그래요?”

내가 듣고 놀랄 만한 던전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이런 생각을 잠깐 해 봤지만.

곧 박민진 PD가 들려준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홍콩에 있는 광물 던전 어떤가요?”

“DN-009요?”

“네!”

박민진 PD가 촬영 장소를 잘 고르지 않았냐는 의미로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잘 고른 건 맞는데.

‘하필이면 거기냐.’

얼마 전에 제이커가 소환수 매개체를 제조하기 위해 광물 던전 재료들을 사용했을 거라는 추측이 나왔는데.

그 많고 많은 국외 던전들 중에서 DN-009가 던전 탐험대 첫 촬영지로 선정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광물 던전이 촬영지로 잡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연 대표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잘됐네. 안 그래도 너도 그곳에 가 볼 참이었잖아.”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한가할 때나 가 보려고 했던 거죠. 이렇게 촬영차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갑작스러운 일도 많이 생기고 그런 거야.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아니면 아예 이철민 소장도 데려가는 건 어때? 이철민 소장도 조만간 연구원들 데리고 그쪽으로 넘어가서 합동 조사 벌이기로 했다는데.”

“언제인데요?”

“아마 다음 달 초쯤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일부러 맞추지 않아도 시기가 겹치겠네요.”

왜냐하면 던전 탐험대 촬영도 그쯤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연 대표가 내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말했다.

“가서 제이커를 잡을 만한 단서가 나오거든 협회장님이나 나한테 바로 알려 주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홍콩 지부 쪽도 있고. 무엇하면 나도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마음만 고맙게 받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쪽으로 넘어가는 이상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알아서 다 해결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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