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67화 (67/250)

제20장. 쉽지 않은 준비 (2)

준서 다음으로 니암, 그리고 딜런의 평가가 시작되었다.

니암은 준서보다 약간 나은 정도. 그리고 딜런은 니암과 비슷비슷했다.

“다음, 여성분들 노래 한번 들어 볼까요?”

내가 먼저 지목한 첫 타자는 바로.

“나빈이, 네 노래부터 들어 보자.”

“저, 저요?”

“어.”

“왜 하필이면 저예요?”

“궁금하니까.”

데이브도 그랬지만, 나빈이도 내 앞에서 한 번도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빈이의 보컬 실력이 궁금했다.

과연 우수한 내 후배의 노래 솜씨는 어떨까?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나빈이가 여러 차례 목을 축이며 긴장감을 지우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잠깐만요.’ 하고 외치더니 추가로 한 모금 더.

“나빈아.”

“네?”

“너, 그러다가 물배 채우겠다.”

이거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갈 생각인데.

이러다가 나빈이는 배부르다면서 혼자 불참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혼자서 생수병을 다섯 개나 비워 버린 나빈이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위치로 돌아왔다.

너무 긴장하는 거 같아서 내가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가볍게 불러, 가볍게. 이거 가지고 막 너한테 나무랄 것도 아니고. 아까 준서가 하는 거 봤지? 저렇게 불러도 여기서 잔소리할 사람 없어.”

의문의 1패를 당한 준서는 입술을 삐쭉 내민 채 작게 불만을 어필했다.

결의를 굳힌 모양인지, 나빈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불러 볼게요.”

“오케이. 반주 시작해 주세요.”

신유화 트레이너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나빈이가 픽한 곡은 언니인 유이빈의 ‘나비처럼 날아서’였다.

이빈이의 2집 싱글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기억하는데.

발라드면서 준서가 도전했던 곡처럼 고음 파트가 악명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노래이기도 하다.

과연 나빈이가 부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빈이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다 음이 높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친언니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 선곡을 한 게 아닐까 생각도 해 봤다.

한숨을 푹 내쉬던 나빈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찾아온 봄날의 햇살. 너의 따스한 온기처럼 내 곁을 머물렀어.”

마치 시 한 편을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온화하고 평온한 느낌을 자아내는 톤이었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신유화 트레이너의 표정이 변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빈이가 말할 때하고 노래하는 톤이 다르구나.’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래할 때에는 이빈이의 목소리 톤하고 굉장히 흡사해졌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빈이의 노래도 남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 음 이탈의 위험이 가득 도사리고 있는 후렴구에서도 나빈이는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뽐냈다.

원래는 1절만 듣고 바로 컷해야 했지만.

이례적으로 나빈이만 완곡으로 듣고 말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잘 부르시는데요?”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자매의 힘은 대단하네요.”

노래에 관한 재능은 이빈이나 나빈이나, 둘 다 동일하게 받은 것 같다.

노래 분야의 전문가인 최 프로듀서와 신유화 트레이너의 평가를 듣고 싶어졌다.

“두 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먼저 신유화 트레이너부터.

“저는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놀랐어요. 일반인 기준이 아니라 가수들 기준치를 놓고 봐도 ‘잘 부르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엄격한 신유화 트레이너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은 셈이었다.

최 프로듀서의 소감도 이와 비슷했다.

“당장 무대에 올려보내도 될 정도입니다. 물론 조금만, 아주 조금만 트레이닝을 받긴 해야겠지만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최 프로듀서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말해 보라고 눈짓을 보내자, 최 프로듀서가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나를 언급했다.

“이사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나은 느낌입니다.”

준서를 괴롭힌 것에 대한 벌을 받은 걸까?

나도 의문의 1패 대상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뭐,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니까.

특별히 억울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성공한 가수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결과가 좋으니까 이렇게 과거의 부족했던 내 모습에도 관대하게 대할 수 있었다.

“오케이. 아무튼 나빈이 차례는 여기까지고.”

이사벨라, 그다음으로 사오리의 보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도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나빈이가 너무 압도적으로 잘해서 그렇지, 딱히 못한 건 아니다.

이제 다음으로.

“춤 실력 좀 볼까?”

데이브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꼭…… 해야 하냐?”

“해야지.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잖아?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 회사의 방침에 따라 적극 협조할 것. 기억하지?”

“…….”

데이브의 한숨이 깊어졌다.

이번에는 데이브부터 먼저 시작했다.

예시로 미리 보내 준 춤 영상이 있다. 그걸 보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춤 영상에서 나오는 모델은 마진수 트레이너, 본인이다.

자신의 담당 분야가 나와서인지 마진수 트레이너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보컬처럼 한 명 한 명씩 나와서 집중적으로 볼 것 없이 남자 그룹 따로, 여자 그룹 따로 나눠서 한꺼번에 보기로 했다.

먼저 남자 그룹부터.

반주가 흘러나오자, 멤버들의 몸이 점점 활동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댄서 출신인 딜런이었다.

니암은 힘이 부족하고, 반대로 준서는 힘과 의욕만 넘쳐서 문제다.

데이브는 어떨까?

확실히 신체 비율이 좋아서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제대로 된 춤선이 나왔다.

마진수 트레이너 역시 높은 평가를 내렸다.

“딜런 씨는 댄서 출신이라는 걸 미리 들어서인지 잘 출 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데이브 씨가 의외네요. 괜찮은데요? 이사님도 그렇게 보셨죠?”

“네, 나쁘지 않네요.”

아무리 나와 관계가 별로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가진 능력까지 멋대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

데이브도 이런 내 성향을 잘 알 거다.

내가 하는 말이 사탕발림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을 터.

처음과는 달리 데이브의 어깨에 약간의 으쓱거림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하여튼 알기 쉬운 녀석이라니까.

뒤이어 여성 그룹의 차례가 되었다.

니암과 마찬가지로 중고등학생 때 춤 동아리에서 활동했었다고 한 이사벨라가 가장 독보적이었다.

이다음으로 나빈이, 그리고 사오리 순서였다.

최 프로듀서가 간단하게 총평을 내렸다.

“여성 그룹 쪽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잡혀 있네요. 보컬에 댄스까지. 반면 남성 그룹은 준비를 좀 빡세게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평가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려고 할 때쯤.

승훈이 형이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이철민 소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연구소 지박령이 여길 다 오고, 별일이었다.

“그냥 다른 헌터분들의 노래, 춤은 어떻게 다를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제가 한발 늦은 거 같군요.”

“한발이 아니라 여러 발이긴 하지만요.”

중간에 들어왔다면 모르겠는데, 아예 다 끝난 시점에서 왔으니까. 그렇다고 다시 하기도 좀 그랬다.

“영상으로 녹화해 둔 게 있으니까 그거라도 보실래요?”

“네, 그래야겠네요. 그리고 MML 수치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요?”

MML라는 말에 나빈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배님, MML이라는 게 뭐예요?”

“네가 노래를 불러서 헌터들의 전투력을 몇 배쯤 상승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수치. 나는 2고, 데이브는 1.5인 것처럼, 너를 포함해서 여기 멤버들도 MML 수치를 매길 수 있는지 내가 이 소장님한테 부탁 좀 해 뒀거든.”

“그렇군요. 근데 MML가 무슨 약자인데요?”

“Music is My Life. 이 소장님이 내가 최초 발견자니까, 내가 명칭 붙여 달라고 해서 그래서 적당히 붙인 거야.”

“……아, 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도 소용없다고. 나한테 학자들처럼 멋들어지고 뭔가 있어 보이는 네이밍 센스를 기대한 이철민 소장의 잘못이니까.

그래도 이 소장은 내 작명 센스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버프력 수치를 이야기할 때마다 MML이라는 약자를 꼭 사용하곤 했다.

“정식으로 학계에 등록도 될 언어니까요. 너무 이상하게만 듣진 말아 주세요.”

심지어 이렇게 나를 옹호해 주기까지 한다.

이철민 소장. 좋은 사람이었구나.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많이 오해한 것 같다.

MML이라는 게 뭔지 알고 나니, 멤버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나와 데이브는 아까 언급한 것처럼 이미 수치가 나왔으니까.

인원별로 MML 수치를 살펴본 결과.

딜런하고 사오리가 1.2.

준서하고 니암, 이사벨라가 1.3.

그리고 나빈이가 1.5를 기록했다.

“나빈이는 데이브하고 수치가 똑같네.”

“그러게요.”

여기서 MML이 2가 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철민 소장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태오 씨가 가장 바빠지겠네요.”

여기 그룹에서도 활동해야 하고, 저기 그룹에서도 활동해야 하고.

내가 끼어 있으면, MML이 무조건 두 배로 뻥튀기되니까.

‘내 몸이 세 개라면 열심히 할 자신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분신술까진 익히지 못했다.

* * *

멤버들의 전반적인 역량과 함께 MML 수치까지.

모두 다 알아냈다.

덕분에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데뷔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으세요?”

내 물음에 전문가 팀의 대답은 이러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연 단위로 생각해야 될 거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연 단위.

당연히 안 된다.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몬스터는 그때까지 우리들을 기다려 주는 착한 녀석들이 아니니까 말이다.

게이트가 닫힌 지금, 녀석들은 언제 어디서 우리들을 다시 습격할지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이 프로젝트를 안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훗날 헌터들이 몬스터와 전투를 펼칠 때 훨씬 안정적으로 토벌에 임할 테니까 말이다.

펜대를 굴리던 나는 마침내 결심을 굳히기로 했다.

“이번 연도 안으로 데뷔시키죠.”

“예?”

“그치만 이번 연도라고 해 봤자…… 6개월도 채 안 남았습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만약 일반인을 대상으로 6개월 안에 데뷔를 시키라고 한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헌터다.

“제가 데뷔할 때를 떠올려 보세요, 여러분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직원들은 이해가 되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멤버들을 향한 동정 어린 눈빛도 보냈다.

“이사님이 하셨던 그 지옥 훈련을 시키시려는 거죠?”

“네, 맞습니다.”

노래 실력이 잘 안 오른다?

그러면 나를 찾아오면 된다.

내가 어떻게든 단기간 내에 성장시켜 줄 수 있으니까.

다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힘들고 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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