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쉽지 않은 준비 (3)
오랜만에 찾은 헌터 훈련소.
미리 연락을 받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고설중 교관이 여전히 시원한 머리를 뽐내고 있었다.
“태오야!”
“안녕하세요, 교관님. 저번에 봤을 때보다도 몸집이 더 커지신 거 같은데요?”
“뭐, 하는 일이라고는 운동밖에 없으니까.”
각성하기 이전에는 헬스의 H 자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했던 고 교관.
하지만 헌터로 각성하고 난 뒤, 운동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눈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근력 운동에 매진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간혹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근육 키우는 것에 맛이 들려 버린 사람들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약간 그런 맛을 알아 버리긴 했었는데, 그렇다고 고 교관처럼 막 우락부락한 근육질 체형까진 되고 싶지 않았기에 딱 적당한 만큼만 운동을 했었다.
복근에 왕(王) 자 정도 있는 수준?
딱 거기까지였다.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훈련소도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레이드 시대 때에 비하면, 지나치게 한산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일반인들 회원도 받고 있다면서요?”
“그렇지. ‘헌터 훈련소 체험 프로젝트’였나? 우리 마케팅팀장이 그런 걸 생각해 냈더라고.”
“마치 군대, 해병대 체험. 이런 느낌이네요?”
“뭐,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비록 미필이긴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헌터로 각성하면, 군 입대는 자동으로 면제된다.
이미 현역들보다 더 빡센 훈련과 실전을 치르는데, 굳이 군 입대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게 은근히 돈이 되긴 하더라. 체험 예약 페이지 열릴 때마다 서버가 마비될 정도야.”
“인기가 엄청 많네요.”
“그렇지. 처음에는 헌터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훈련 체험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적응이 안 되더라고. 너희 정도면 1분도 안 돼서 통과할 장애물 코스를 일반인들은 1시간, 2시간씩 걸리거나 아니면 아예 통과 못 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
“그러면 막 환불해 달라는 진상들도 가끔씩 나오지 않나요?”
“그래? 나는 없던데?”
……라고 말을 하면서 성인 여성 허리 사이즈만 한 고 교관의 굵은 팔뚝 근육이 움찔움찔 움직였다.
하긴, 이런 고 교관 앞에 서 있으면, 분노조절장애도 저절로 치료가 될 테니까.
진상 손님이 없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만약에 있다면, 그 손님에게 오히려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아서 걱정일 정도다.
“참……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어. 그렇지?”
“이런 변화는 기뻐해야 하죠.”
“그렇지. 평화의 시대니까.”
언제 몬스터에게 먹힐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한 평화의 시대가 당연히 더 좋다.
대신에 헌터로서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분명 있었다.
“남아 있는 몬스터들 다 퇴치하고 나면, 레이드 시대 끝났을 때처럼 또 우리들 대상으로 능력 통제 들어갈 거 아니냐.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들도 회수당할지도 모르고.”
정부의 방침에 대해 불만을 품는 각성자들도 있다.
인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돌아온 거라고는 통제와 감시니까.
많이 섭섭할 것이다.
지금이야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규제가 많이 풀리긴 했다지만.
언제 또 그런 통제가 시작될지 모른다.
“조심해라, 태오야.”
“왜요?”
“몇몇 각성자들이 요즘 들어서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거든.”
“…….”
순간 예전에 나빈이와 같이 광고 촬영을 할 때 겪었던 화재 현장이 떠올랐다.
인위적인 마나의 흔적.
범인이 각성자일지도 모른다는 내 추측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협회 측에서도 내가 제보한 것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에 임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재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었다.
“괜히 그 녀석들이 태오, 너한테 어쭙잖게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으니까, 항상 주의하도록 해. 너도 알지? 괴물 녀석들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일까, 고 교관이 먼저 화두를 바꿨다.
“다른 이야기 할까?”
“네, 그러죠.”
여기에 온 목적은 고 교관과 이런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생겨서였다.
“교관님, 저 데뷔하기 전에 여기서 보컬 수련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걸 보컬 수련이라고 해야 하나. 뭐, 폭넓게 보자면 수련이 맞긴 했지.”
“이번에 그때처럼 단련 좀 시켜 줘야 할 헌터들이 있어서요.”
“너희 회사하고 계약했다던 그 헌터들?”
“네, 맞습니다.”
이미 QWE 미디어를 통해 기사화가 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도 우리 HT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데이브도 오는 거냐?”
“네.”
“그 녀석…… 나하고 상성이 별로 안 좋은데.”
“왜요?”
“틈만 나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계속 귀찮게 굴었거든.”
그랬었지.
나도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만큼 훈련 과정에 있어서 열심히였다는 소리니까.
고 교관도 그걸 잘 아는 모양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무튼 알았다. 데이브도 많이 바뀐 거 같으니까. 내가 최대한 열심히 도와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교관님.”
“너도 올 거지?”
“아니요. 훈련에 대해서는 교관님한테 전적으로 맡기려고요.”
“응? 왜?”
이미 고 교관은 내가 보컬 수련을 할 때 모든 훈련 과정을 지켜봤다.
어떤 식으로 하면 될지, 내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 줄 것이다.
그래서 고 교관에게 훈련 과정의 모든 걸 맡길 생각이었다.
나는 그사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방송 활동 해야죠.”
아직 두 번째 앨범 낸 지 얼마 안 됐다.
한창 홍보를 위한 방송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하는 찰나에 갑자기 전수조사 결과가 나와서 지금의 멤버들과 계약을 맺어야 했기에 의도치 않게 일정 펑크가 많았다.
교관이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짜식, 이제 방송인 다 되었구만.”
“그러게요.”
칭찬이 분명하긴 한데.
아까 교관과 나눴던 이야기의 여파 때문인지,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멤버들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아주 재미있는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특별심사위원으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운전을 맡고 있는 승훈이 형에게 프로그램에 대해서 물었다.
“형도 이 프로그램 알고 있어?”
“뭐…… 첫 회 방송은 봤었지.”
이제 막 3회 차가 방영되었다.
송출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로그램이라는 뜻이었다.
“뭐였지? 프로그램 명칭이 ‘걸 스타 스테이지’였던가?”
“어, 맞아. 줄여서 GSS.”
“그거, 인기 많더라. 너한테 출연 제의 들어오기 전부터 주변에서 GSS 꼭 보라고 엄청 압박받았어. 보니까 왜 사람들이 나한테 그렇게 기를 쓰고 추천했는지 알겠더라. 태오, 너도 봤지?”
“당연하지.”
70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각 미션을 수행하면서 걸 그룹 데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오디션류 프로그램 중에서 끝까지 챙겨 본 프로그램은 없었는데.
GSS는 아마 마지막 화까지 챙겨 보게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기 출연하는 지망생들 캐릭터성이 확실하더라. 벌써 웬만한 가수 못지않게 인기 누리고 있는 연습생도 있다던데?”
모 연습생은 이미 CF 계약까지 추진 중이라는 기사가 돌 정도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미디어의 힘이 참 대단해.’
그래서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는 걸 꿈꾸는 것일 수도 있다.
각성 전의 나도 그랬고 말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GSS 쪽에서 정식으로 내게 출연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답했다.
예전부터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류 프로그램에 한 번 정도 출연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도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높이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PD가 나를 격하게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태오 씨! 차는 많이 안 막히셨죠?”
“예, 일찍 출발하길 잘했더라고요. 보니까 연습생들도 이미 도착해 있는 거 같은데.”
녹화 들어가기 전에 미리 나를 연습생들에게 소개시켜 주려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지금 연습생들은 태오 씨가 특별심사위원으로 나온다는 걸 새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일부러 공지 안 했거든요.”
“서프라이즈를 위해서군요.”
“예, 맞습니다.”
그러면 굳이 지금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겠군.
PD의 답변 덕분에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때마침 GSS의 MC를 맡고 있는 아이돌 출신 가수, 조윤혁이 내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 둘이 서로 짧은 악수를 나눴다.
나를 보는 조윤혁의 눈빛이 유독 반짝였다.
“태오 씨하고 이렇게 같이 방송에 출연도 하게 되고, 연예인 되길 잘했네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예전부터 동경하던 선배님하고 같이 방송하게 되니까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니요! 어휴,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음, 내가 선배라고 부르면, 가수들은 하나같이 다 이런 반응이다.
조윤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수 경력으로 따지면 나보다 한참 선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나름 착하고 얌전한 후배 가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데.
선배들이 잘 안 도와주는 그런 느낌이다.
* * *
촬영 시작 5분 전.
나는 무대 뒤에 숨어서 몰래 연습생들의 모습을 한 명씩 살폈다.
지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연습생 자리를 얻는 데에도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개개인별로 상당한 매력을 품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기 저쪽 그룹이 상위권인가 보군.’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PD도 자주 밀어주는 연습생인 거 같고.
확실히 실물로 보니까 상위권에 들 만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소속사 계약은 했으려나?’
내가 직접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때, PD가 슬쩍 내게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우리 애들?”
“괜찮네요. 저기 저 연습생이 지금 가장 인기 많죠?”
“송유별이요? 네, 춤 잘 추고, 보컬 실력 좋고. 비주얼도 압도적이고. 뭐랄까, 완성형 아이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열심히 밀어주고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PD 픽인가.
어쩐지,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서 유독 카메라에 비치는 빈도가 높다 싶었다.
“태오 씨는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봤던 연습생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PD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니까.
그러면 괜히 연습생들에게 나로 인해서 의도치 않은 변수를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일찌감치 말을 아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