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2)
프로그램 명칭을 확인한 승훈이 형이 내게 물었다.
“‘출발, 스타팀!’에 나가려고?”
“어.”
“너, 생각하고 선택한 거 맞지?”
“물론이지.”
“왠지 거짓말 같은데. 아까 ‘뭐시기 뭐시기 척척박사님!’이라고 하면서 고른 거 아니냐?”
“에이, 그럴 리가.”
하여간 눈치도 빨라.
‘출발, 스타팀’은 연예인을 비롯해 유명인을 모아 장애물 경주를 펼치는, 그런 내용의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 팀이 스타팀, 그리고 일반인을 모아 만든 팀이 라이벌팀.
이렇게 두 팀이 경쟁을 벌여 완주 혹은 빠른 기록을 세우는 팀이 승리한다.
한마디로 피지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런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었다.
‘출발, 스타팀’이라는 프로그램 명칭을 바라보던 연 대표가 내 주장에 힘을 보탰다.
“괜찮을 거 같은데? 태오 너, 몸 쓰는 거 특기잖아.”
“물론이죠.”
오른팔로 알통을 만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해 보였다.
내 반응에 씨익 미소를 지은 연 대표가 승훈이 형에게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프로그램이라면 태오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지. 그래도 SSS급 헌터인데, 설마 이런 장애물 경주 하나 못 할까. 태오가 선택 잘했네.”
“그야 그렇지만…….”
승훈이 형은 나를 찌릿 노려봤다.
내가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척척박사님은 항상 옳다고, 형.”
“어련하시겠냐.”
승훈이 형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 *
‘출발 스타팀’ 출연이 결정된 이후.
그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PD로부터 직접 내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와 꼭 통화를 하고 싶다나 어쨌다나.
이유는 간단했다.
-출연하기로 결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설마 저희 프로그램에 태오 씨가 나와 주신다니……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네요.
출연하기로 한 나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미 ‘도정수의 미팅 타임’에서 겪었던 일이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태오 씨가 나온다면 분명 시청률 대박! ……어흠! 좀 더 유익하고 풍성하고 재미있는 방송이 될 겁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저기요, 방금 속마음이 살짝 튀어나온 거 같은데요.
그래도 뭐, 어쩌겠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로선 시청률을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일정이라든지 이런 건 매니저분을 통해서 따로 조율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희 프로그램에 관련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PD님 많이 바쁘실 텐데, 다른 분한테 연락드릴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요즘 방송계에서 잘나가는 블루칩이신데, 문의가 있다면 제가 직접 답변드려야죠! 하하하!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심심하실 때도 괜찮으니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 과분한 대접에 내가 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자리로 돌아와 스마트폰 메모 어플을 실행했다.
‘도정수의 미팅 타임’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출발 스타팀’까지.
인터넷으로 대충 조사하면서 ‘출발 스타팀’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얻은 정보를 살폈다.
‘출발 스타팀’은 그렇게까지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근 10여 년 가까이 장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높은 성적을 기록한 적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낮은 성적을 거둔 적도 없었다. 그냥 쭉 그 시청률 그대로 고르게 가고 있었다.
그것이 장수의 비결일지도 몰랐다.
간단하게 말해서 ‘보는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다.
사전에 이 프로그램이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인지 아닌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조사를 해야 했다.
내가 아무리 방송업계 블루칩이라 하더라도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은 프로그램, 예를 들어서 트러블이 좀 많아 구설수에 오른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 자제해야 했다.
애써 만든 좋은 이미지를 내 손으로 직접 망가뜨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난 방송인으로서 좀 더 성장해야 한다.
헌터로서 강태오의 인지도는 정점을 찍었을지 몰라도, 방송인으로서의 강태오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든 것에 불과했다.
첫 단추로 계획했던 도정수의 미팅 타임은 성공적이었다.
이 흐름을 계속 이어 가는 게 중요했다.
승훈이 형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방송이라는 게 꽤 어렵네.”
고려해야 할 게 많았다.
그중에 가장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 게 바로 대중의 시선이었다.
대중, 즉 시청자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것이 바로 연예인이다.
당분간 방송업계에 발을 담그기로 결정했으니, 나 역시 연예인으로서의 태도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했다.
중요한 건 이미지 관리다.
“재미있네.”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난 이게 재미있었다.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 * *
출발 스타팀은 촬영하기 위해서 여타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다르게 거대한 구조물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실내에서 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오늘 촬영 장소로 잡힌 곳 역시 실외였다.
짐을 챙기고 아래로 내려오자, 주차를 하고 대기 중이던 승훈이 형이 나를 쭉 훑었다.
“그게 다야?”
“응? 뭐가?”
“아니, 가방 없어?”
“가방은 왜? 그냥 몸만 가면 되잖아.”
“여벌의 속옷하고 옷 챙겨 오라고 했잖아.”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아래에 있는 물에 ‘풍덩!’ 하고 빠지는 신세가 된다.
그 때문에 승훈이 형은 사전에 나에게 여분으로 속옷과 양말, 옷가지를 챙겨 오라고 했었다.
그러나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괜찮아. 난 물에 안 빠질 거니까.”
이전에 방영되었던 ‘출발 스타팀’을 모니터링하며 내 나름대로 연구를 했었다.
그 결과.
-내가 저런 장애물들을 통과하지 못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이런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승훈이 형의 불안감은 여전해 보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다가 나중에 나한테 옷 빌려 달라는 소리 하는 거 아니냐?”
“형, 나 랭킹 1위 출신 헌터야. 그까짓 것 눈 감고도 통과할 수 있어.”
“하긴, 나도 그건 인정하지.”
누구보다도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바로 승훈이 형이었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그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같이 보내왔기에 내 능력이 얼마만큼 뛰어난지 잘 알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승훈이 형이 곧장 차를 몰아갔다.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제저녁, 기사를 통해 ‘출발 스타팀’ 라인업이 공개되었다.
그중에 당연히 내 이름도 껴 있었다.
덕분에 강태오라는 이름 세 글자가 또다시 트렌드 순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냈다.
“사람들이 너 진짜 좋아하나 보다.”
승훈이 형도 트렌드 순위를 본 모양인지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글쎄. 난 이걸 ‘좋아한다’기보다 ‘관심과 호기심’이라고 보는데.”
“흠, 그러냐.”
이 관심과 호기심을 팬심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대중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방송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있다. 이 감정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강태오가 출연하면 그 프로그램은 무조건 대박 난다! 이런 말들을 더 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오늘 방송 역시 내가 하드 캐리를 해야 했다.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동 시간에 스마트폰을 계속 봤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음?”
신경 쓰이는 기사 제목이 보였다.
[황조운, ‘1위 헌터? 까짓것 별거 아니다.’ 자신감 보여…….]
황조운이라는 남자는 오늘, 나와 함께 같은 팀으로 활동할 배우다.
그런데 본인이 더 관심받겠다고 감히 같은 팀인 나를 디스했단 말이지?
‘데이브 같은 놈이 또 있었네.’
갑자기 오기가 발동했다.
* * *
경기권 쪽에 위치한 어느 대학교.
이곳에서 오늘, ‘출발 스타팀’의 촬영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오늘 모일 스타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
메인 MC로 김수월이라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여덟 명의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집결하는 셈이었다.
오픈된 장소인 만큼 촬영장을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꺄악!! 태오 오빠!!”
“인류의 구원자! 강태오!!”
“사랑해요, 강태오! 우윳빛깔 강태오!!!”
순간 난 내가 아이돌인 줄 알았다.
헌터로 활동할 때에는 이런 방식의 응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보다 우윳빛깔 강태오라니. 그렇게까지 피부가 깨끗한 편은 아닌데, 흠.
그래도 자고로 연예인이라 함은, 팬들의 환호성에 일일이 보답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자 팬들이 또다시 함성을 내질렀다.
“감사합니다. 응원 고마워요.”
연습생 시절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성장했구나 나란 녀석.
그렇게 짧은 팬들과의 소통을 마친 후, 승훈이 형과 함께 임시로 마련된 대기실 천막 쪽으로 향했다.
PD를 비롯해 MC인 김수월이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나를 찾아왔다.
“반갑습니다, 김수월입니다. 실물이 훨씬 더 잘생기셨네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김수월이라는 남자는 도정수와 다르게 뭐랄까, 살짝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그런 인상을 풍겼다.
처음부터 그는 MC의 길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데뷔 초기에는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MC까지 겸사겸사 맡고 있다고 들었다.
생긴 것도 꽤 말끔한 편이었다. 게다가 도정수 못지않게 전달력이 높았다. 진행자 노선을 탄 게 잘한 선택이었음을 실감했다.
인사를 마친 이후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았다.
김수월을 제외하고 출연진 중에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사람은 나였다.
10분가량이 지났을 때부터 여성 팬들의 함성 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아마 또 다른 연예인의 등장 때문이리라.
출발 스타팀은 여자 연예인보다 남자 연예인의 출연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무래도 피지컬을 요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보니 섭외 비율 역시 남자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여성 게스트들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여자 연예인 특집’ 같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오늘 참가할 연예인들은 모두가 다 남자였다. 그러니 여성 팬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나둘씩 도착할 때마다 일일이 출연진과 인사를 나눴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태오 씨.”
친한 척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오는 한 남자.
누군가 했더니만.
“황조운 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태오라고 합니다.”
기자들을 통해서 나를 공개적으로 디스했던 바로 그 남자 배우, 황조운이 먼저 내게 접근해 왔다.